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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70/304)

폭풍전야(2)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나는 관여할 수가 없다니···!’

에밀리온은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분노가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최근의 연습량이 배로 늘었다. 시온 때문이었다.

시온에게서 패배하고 나서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했다.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 슬픈 것은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더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재결투로 복수하겠다. 마법사 놈!’

이 모든 일은 그가 결투에서 졌기 때문에 발생해 버린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법이었다. 

다시 결투해서 이기면 됐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시온이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시온이 마법을 섞었다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피해서였다. 

기사로서 그냥 실력으로 패배했다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만약에 마법사에게 졌다는 사실이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에밀리온의 기사도는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었다.

기사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사로서의 수명이 끝이 났다는 뜻이었다. 다른 영주를 모실 확률도 떨어지고 기존 영주나 심지어 용병으로 활동할 때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의 노예가 그가 며칠 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식을 듣고 왔다.

“그래! 날짜는 언제인가! 시온이 뭐라고 했지?”

“그게···. 주인님. 일단 진정하시고 들으셔야 합니다.”

“왜, 날짜가 길게 잡히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거면 오히려 다행일 겁니다. 시온 경이 주인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

에밀리온의 눈이 부릅떠졌다. 핏발까지 솟은 것이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제가 몇 번이고 뜻을 전했습니다만 답변은 같았습니다. 모두 거절하겠답니다.”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기사로서의 명예가 없는 것인가? 더러운 마법,, 아니 자식이!!!”

방금까지 마법사라고 비아냥대던 에밀리온이 대번 화가 나서 마법사라고 소리칠 뻔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수련하는 기사가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니 입을 조심해야 했다. 겨우 참은 것이다. 

ㆍㆍㆍ

“이건 대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숙련공의 눈이 예리하게 빛이 났다. 그는 시온이 넘겨준 강렬한 주황색 고체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해줄 수 없다. 내 임무와 관련이 있어서 말이지.”

‘역시 시온 경이신가. 안 보이는 사이에 엄청난 일을 처리하고 오신 모양이군.’

숙련공은 시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의 명성은 펜부르크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난투전의 우승자를 모르면 그들의 무기를 제조하는 숙련공들은 업을 접어야 한다. 

하물며 요즘 펜부르크에서 출세한 기사로 이름이 높은 시온 경이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헤헤. 제가 말을 실수했습니다. 그만한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못 들은 것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걸 너에게 의뢰하려고 한다. 네가 이곳 펜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숙련공이라고 해서 말이야. 맞나?”

시온은 이미 그가 이 삼십 년은 업에 모든 걸 바쳐온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잘 모르는 척 그렇게 물었다. 

시온도 이제 제작 관련해서 발을 어느 정도 들이댄 상황 그가 실력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제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몸집부터 재료를 봤을 때의 눈빛,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 희귀재료일 때 눈에 감도는 흥분이 어린다는 점일 것이다. 

그 감정은 시온도 알고 있었다. 시온도 정수를 제작할 때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 그런 감정을 지금 눈앞에 있는 숙련공도 느끼고 있는 것일 것이다. 

“샤타라는 곤충 영수에게서 극도로 조금씩 발견되는 것이지요. 원리는 모르지만, 가끔 이렇게 응집된다고는 들었습니다.”

시온은 그에게 곤충 영수가 남기는 배설물이 회백색으로 뭉치게 되고 이것을 녹이려면 고농도의 마나액을 부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었으나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이것은 이곳에서 실전되어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면 발견되지를 않았다. 애초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도 명확하지가 않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저에게 이것을 맡기신다면 영광입니다. 저는 이것으로 경에게 어울리는 방패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펜부르크에서 알려진 시온의 신분이 기사이기에 그가 걸어온 제안은 방패였다. 그러나 시온은 방패를 쓰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이것을 방패로 만들 계획도 없었다. 

그런 것보다 더 엄청나게 효율이 높은 구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을 점 장비로 맞추고 싶은데 가능한가?”

“마법 장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안될 것도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런 식의 방향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만든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을지······.”

시온이 그에게 증패를 보여줬다. 마법사 증패는 가상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법사?! 설마 마법사이시기도 하신 겁니까?”

“그래. 난 마법사이기도 하다.”

“허, 그렇다면 그런 요구가 이해가 되는군요.”

이자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안에 있는 열 명이 넘는 숙련공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웅성거렸다. 

물건을 맡기고 온 시온의 걸음걸이는 가벼웠다. 만드는 자도 결과를 모르는 모양이지만 어느 정도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녹 반지를 통해 알고 있는 시온은 저것이 꽤 고단계의 화염 마법을 불러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인파가 많았다. 펜부르크는 강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식량이 어느 정도 기근에 상관없이 해결되는 경향이 있어서 인구가 풍부했다. 

‘그래서 이곳이 뜨거운 감자지.’

자링 가문의 공식 명칭은 백작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론 백작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펜부르크의 도시 자체가 여러 개의 영지가 결합 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거기! 시온 경!!!! 멈추시오!!!”

그리고 여러 명의 기사를 대동하고 대로 한복판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오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대뜸 시온을 발견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시온은 그 남자가 에밀리온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 상대해봤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요행으로 이기긴 했지만···.

누군가는 시온이 에밀리온을 너무 손쉽게 이겼다고 자평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시온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전투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건 에밀리온 경과 결투를 하고 나서부터 더 심해졌지.’

시온은 기회만 된다면 지금 어레이 경에게 부여받은 제국 기사 수도회 메이스 교본보다 더 급이 좋은 교본을 얻고 싶었다.

기사라고 해서 모두 같은 전투 기술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체계가 잡힌 수련법과 특유의 마나 훈련법이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나를 쌓아 고리를 만들어 마치 산을 쌓듯이 쌓아올리려는 구도자의 자세를 가진다면 기사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그들이 배우는 마나에 대한 활용은 거의 장비를 가동하기 위한 유형의 것들이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시온 경! 저랑 말 좀 합시다!”

수백 명의 인파의 시선이 시온에게 집중되었다. 에밀리온의 얼굴도 유명하지만, 이제는 시온도 일반인들도 알아보는 자들이 있는 마당인지라 수백 명의 인파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곧바로 알아챘다.

“시온 경이었나?”

“정말인가? 대단한 몸이군. 기사의 표본 같은 사람이야!”

“에밀리온 경이 대체 무슨 일이지?”

“왜?”

“에밀리온 경이 난투전에서 시온 경에게 한 번에 나가떨어졌단 말이야.”

고래고래 호객하는 사람도 입을 다물고 둘의 주제에 옮겨갈 정도, 모르는 사람도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듣고 주워듣고 이해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에밀리온 경. 이런 한복판에서 시온 경에게 너무 큰 무례가···.”

그의 파벌인 하위 기사들이 에밀리온이 하는 행동을 비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에밀리온이 노려봤는데 보통 기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에밀리온이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동행한 기사들이 비판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에밀리온이 그들의 리더 격인 자였으니까. 

그런데 주변의 시선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웠다. 분명히 시온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시온은 솔직히 놀랐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말하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에멜리온이 보낸 자들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내가 그걸 왜 해. 다시 했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

시온은 냉정하게 말해서 기습이 아니면 에밀리온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긴 했다. 

저 고릴라 같은 작자가 한 번 더 무식하게 파놓은 함정에 달려들어 준다면 똑같이 보내줄 자신은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대체 왜 내 결투를 거절한 것입니까! 말씀해보십시오! 저는 난투전에서의 설욕을 원합니다.”

“거절합니다.”

“?!”

답변이 빨라도 너무나도 빠르고 간단했기 때문에 대동한 기사들은 물론이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럼 이만.”

“명예도 없는 작자라는 소문이 나고 싶은 게요?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은 명예 결투요. 이번에도 나를 꺾는다면 완전히 승복하고 기사 수도회에 가입할 작정입니다.” 

에밀리온의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나름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에밀리온 경이 기사수도회로 입적해버린다니 그 밑에 있는 자들도 무슨 소리인가 자기들끼리 쳐다볼 정도였다.

“없습니다. 되셨습니까? 명예를 원하신다면 드리지요. 그럼 전 가봐도 되겠습니까?”

시온이 그렇게 간단히 말하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이차 충격이 이어졌다. 보통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서로를 모욕했다 해서 대로에서의 칼부림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였다. 

눈치를 보는 건 오히려 에밀리온 경이 데려온 다른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귓가에 속삭였다.

“시온 경이 아무래도 중대한 임무를 수행 중인 것 같은데.”

“빌어먹을. 이런 것까지 명예롭군. 이렇게 명예를 걸고 넘어가는데도 이런 식으로 대우해준단 말인가.”

“그나저나 저 몸은 무엇을 해야 만들어지는 것이지?”

“탕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네. 자네가 보는 것보다 상상 초월의 상태일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수련을 하고 있다는 얘기밖에는 없겠군.”

같이 온 기사들은 이미 겉으로만 표현하지 않았지 시온에게 감화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절대로 이런 모욕을 참지 않았을 것인데 뜻밖에도 시온이 깊은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난 절대 승복 못 하오. 난 재결투를 청하오.”

에밀리온이 다시 그렇게 소리를 쳤다. 그런데 저쪽에서 병사들과 한 명의 기사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레이 경이었다. 중재하기 위해서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급히 뛰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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