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304)

폭풍전야(6)

시온은 생각에 잠겼다. 

‘나한테 상속됐다고.’

상속되었다는 단어는 이상하게 들린다. 하여튼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의 인맥을 다질 사람이 갑작스럽게 그렇게 됐다는 사실이 묘했다. 

결투를 못 해서 사생결단을 내야겠다고 이를 박박 갈던 에밀리온 경의 재산을 받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레이 경이 나 잘했지, 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쨌든 덕을 보긴 했어.’

그리고 마리의 의사결정에 시온이 영향력을 준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시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야는 하지만 갈등이 생기는 결정을 시온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 힘이라는 것은 다수의 의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산 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면 다른 자들도 따라 하게 된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런 흐름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마리 자링이 말했다.

“그 의견을 채택하겠어. 우리는 똑같은 방법으로 줄리아를 처형 하진 않겠다. 반대하는 사람?”

당연히 반대하는 자도 있다. 당연히 그곳에 보낸 자와 얽혀 있는 자들은 이게 무슨 황당한 결정이냐고 윽박지른다. 

순식간에 회의장이 개판이 나고 난리가 났다. 솔직히 말하면 위험하다. 이들이 벤 남작에게 편을 바꿔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지.’ 

벤 남작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들은 결국 그녀의 결정을 들을 수밖에 없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하이거 자링이 들어왔다. 하이거 자링은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다. 중요한 회의라 형식적이나마 본인이 결정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이도 어린데 볼수록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군.’

시온은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원인은 모른다. 선천적으로 체질이 약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철저하게 살펴봤지만, 독이라는 정황은 거의 잡히질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야 그냥 명줄이 짧은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결정된 의결을 형식적으로 하이거 자링이 결정을 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밖으로 나오는 거성의 길목은 어수선했다.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강경책을 내밀던 그 반대든 간에 어쨌든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영지전이었다. 영지전을 해야 했다. 병력이 소집될 것이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충돌할 것이었다. 오리엔 영주와 벤 남작의 연합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을 것이 뻔했다. 

어쩌면 이번 사절단의 살해는 벤 남작이 관여한 것이 아닌 오리엔 영주가 관여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시온은 돌아오자마자 상속분을 확인했다. 에밀리온 경의 저택과 약간의 땅은 당연히 영주에게 돌아갔다. 

‘당연한 일이지. 서약 자체엔 함정이 있지.’

서약이라는 것은 곧 후계를 염두에 두고 이어지는 것이다. 적자가 없다면 했던 서약의 원리에 따라 펜부르크로 돌아오게 된다. 즉 영주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에밀리온 경은 수도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이나 그만큼이나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독신이었다. 독신인 편이 수도회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기사 수도회라고 해서 반드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신 서약과 금욕 서약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장점이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시온은 오늘 중에 그의 저택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레이 경이 서류를 하나 내줬는데 그곳에 있는 품목 중 상당수가 시온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늦은 오후에 필립스를 불렀다. 필립스는 아까 시킨 일들에 대해서 진행을 온종일 했는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경, 경의 말대로 식량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심을 품고 팔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그런 자는 노련한 상인이지. 사실 이 정보가 상인에게 돌았을 거라고는 생각하긴 힘들다.”

아마 직감으로 알아챈 거라고 보고 있었다. 

시온은 그런 자들과 비슷한 부류였다. 시온도 직감이 나름 발달해있었다. 

이곳에서 별다른 혜택을 받은 것은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런 종류의 감각이 발달했다는 점이었다. 

“거성에선 어떻게 됐습니까?”

“비슷한 얘기지 그런데, 한가지 소득이 생겼다.”

“소득 말입니까?”

“에밀리온 경의 재산을 약간 받았다.”

“에밀리온 경 말입니까? 허어 그거 신기한 일이네요.”

“아마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니까. 재산 처분을 해버린 모양이야. 어레이 경이 밀어붙인 모양이더군. 원래 어레이 경하고 사이가 좋질 않았지 않았느냐.”

“아, 그렇지요. 한때는 좋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그 저택의 일부 목록을 받았다. 저택 자체는 아마 자링 가문에 귀속되겠지.”

가장 중요한 재산인 기사라는 신분도 반환된다. 기사라는 신분도 거의 상속이 된다. 조건을 갖춰야 하지만 상속 기사들은 무일푼에서 해야 하는 기사들과 차원이 다르게 기준이 낮았다. 

“초이에게 일을 맡기고 너는 나를 따라와라. 이왕이면 같이 가는 편이 낫겠지.”

“초이에게 말입니까? 저는 그자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자는 애초에 마법사이고 그리고 시온 경의 적이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어. 그리고 나도 마법사인데 너는 마법사에게 편견이 있나?.”

필립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랬다. 시온은 완전히 마법사였다. 그냥 주위에서 기세 좋게 착각하고 떠받들어주고 그렇다고 해서 시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필립스가 사라지고 시온은 잠시 비스듬하게 벽에 기대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보면서 몇 가지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새로 얻은 마법서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마법서와 새로 얻은 것들을 검증해야 했다. 

‘촉수 마법은 어디에 분류되는 거지?’

‘이걸 배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는 와중에 필립스가 다시 찾아왔다.

“경 맡겼습니다. 생각보다 유능한 자더군요. 계산이 빠릅니다. 마법사는 마법사인가 봅니다.”

“나도 마법사라니까.”

“알겠습니다. 경.”

필립스와 함께 에밀리온이 거주하던 저택으로 갔다. 에밀리온의 재산은 이곳에서 한 가락 하던 사람답게 꽤 있는 편이었다. 

저택 자체도 큼직했고 하인도 제법 있었다. 하인들을 바빴다. 그리고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서인지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하이에나들이다. 

영주에게 돌아가는 큰 부분을 제외하면 그나마 명분이 있는 자들에게 재산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꽤 있어서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몰려든 상황이었다.

그중에는 기사도 있었고 종자도 있었고 멀고 먼 팔촌 정도의 인간도 있어 보였다. 어쨌든 큰 몫 중 하나가 시온의 차지였다. 어레이 경이 신경 써준 덕택이었다. 

확실히 어레이 경을 밀어준 효과를 보고 있었다. 어레이 경은 제법 많은 부분을 도와주고 있었다. 

시온의 등장은 많은 자를 흥분하게 했다. 시온의 유명세도 있었고 이번 의결장에서 내렸던 결정들이 벌써 기사들에게서 돌아버린 탓이었다. 

별다른 일도 하지 않았건만 기사들에겐 시온이 매우 명예스러운 기사이고 펜부르크의 주인에게 신뢰받고 있으며 배경 없이 출세하고 있는 그런 자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였다. 다만 이들이 모르는 것은 여기엔 많은 착각과 꼼수와 그리고 편법과 행운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발요! 저는 경의 부인이라고요!”

저쪽에서 소란이 있었다. 미모의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충 알 법도 같았다. 저 여자는 대략 첩 정도로 들어와 있던 에밀리온의 여자였다. 

그러나 에밀리온의 성격상 혼인을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아무리 부르짖어봐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에밀리온이 사라진 이상에 이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이도 없어서 그런 권리를 주장할 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시온은 정원을 가로질러서 여러 가지 인물들의 선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의 홀에는 많은 물건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종 노예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예를 분류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떤 서류를 검증하고 있었다. 금고도 앞으로 나왔다. 백마나 전마, 그리고 장비들도 나와 있었다. 

‘흠. 살아서 돌아오면 어쩌려고 이렇게 빨리 처리를 한담.’

그만큼 에밀리온을 고깝게 보던 자들이 많았던 것인 모양이었다. 시온이 오자 그곳을 관리하는 사무관이 인사를 했다.

“시온 경 안녕하십니까. 명예스러운 결정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벌써?’

시온은 그의 점잖은 칭찬을 듣고서 할 말을 잃었다.

“안녕한가. 에밀리온 경의 상속분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왔네. 아무래도 지금 처리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사람을 보내기에는 좀 그렇고 해서 직접 왔네.”

“역시 그런 판단을 내리셨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런 어설픈 말이 먹힐 정도로 시온의 이미지는 아주 잘 자리 박혀 있었다. 어쨌든 필립스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가 그에게 서류를 건네줬다. 서류는 상속권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확실합니다.”

‘어레이 경이 내 욕구를 잘 안단 말이지.’

그와의 친분이 생긴 만큼 어레이는 시온이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경매장에서 구입한 물건에 대한 품목을 전부 시온에게 상속받게 한 것이었다. 

이 품목에는 희귀 재료가 섞여 있었다. 그랬다. 희귀 재료뿐만이 아니라 기사 장비도 약간 있었다. 시온은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사무관은 친절하게 빙긋 웃었다. 

“시온 경에게 드릴 물건은 이미 분류가 되어 저쪽에 놓았습니다. 저기 저 여자 하인이 건네는 것을 받으시면 됩니다.”

그는 일 처리가 신속했다. 이미 분류가 끝난 것이었다. 시온에게 인사를 한 것은 그냥 겉치레한 것뿐이었다. 실상은 이미 시온이 온다는 것을 알고 준비를 해뒀다. 조금이라도 불편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여자 하인도 가지시면 됩니다.”

뜻밖의 소리가 더 붙어 있었다. 필립스와 함께 그곳으로 움직였다. 

여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시온을 훔쳐봤다. 유명세 덕이다.

“여기 준비되어있습니다. 경.”

여자에게서 받은 물건들이 차곡차곡 필립스가 옮겼다. 시온은 대번에 상자를 열었다. 장비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희귀 재료가 여기에 있는지 중요했다. 

“경 이것 보십시오. 이 검 괜찮습니다. 전투용은 아니지만, 장식용으로 가치고 높습니다. 기사의 정신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사교장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건 필요 없다. 내가 필요한 거나 찾아.”

“무엇을?? 찾으십니까?”

“당연히 재료지. 나는 마법사란 말이야. 제작에 흥미가 있단 말이다.”

“아, 하지만 경······. 아닙니다. 어쨌든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그와 함께 뒤적거리다가 필립스가 무언가를 꺼내서 시온에게 주었다. 시온은 그것을 열어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희귀 재료는 금박의 정수에 마지막 조각이었다. 

‘이게 여기에 있었다고?’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체 에밀리온은 이 재료를 왜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일까? 뭐 상관없었다. 이제 여기에 있는 것들을 전부 받지 않아도 됐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