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의 유산(2)
“대단한 마법 장비인데.”
시온은 이런 마법 장비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신전은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처음 보는 신을 모시는 이상한 신전이었다.
시온은 그 이후로 근처에서 관련된 정보를 모아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곳을 알고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장비가 남아 있었겠지.’
시온은 이 신기한 재질의 마법 장비에 본격적으로 메모라이즈를 넣어 보기로 했다.
“흠. 이렇게 하는 건가.”
제국 메이스 교본에서 칠식을 최대한 자세를 잡고 내리쳤다. 이 동작을 메모라이즈 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리고 됐다.
“됐나? 된 거 같은데. 발동은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중 발동이 됐다. 몸이 저절로 식을 내리친 것이었다. 그것도 완벽하게.
“방금 이건?”
제국 메이스 교본의 식을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도하자, 마나가 소모됨과 동시에 다시 식이 발동됐다.
앞에 있던 사람 형태 나무토막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정확했다.
‘이런 식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한 자세를 메모라이즈해서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그런 마법 장비구나.’
시온은 엄청난 마법 장비를 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습과 실전은 차이가 심한 편이었다. 특히 실전에서는 연습에서 보여줬던 것의 반도 나오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완벽히 메모라이즈를 해서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할 수도 있는 장비였다. 의식적으로도 튀어나오게 할 수 있었다.
옷의 주인은 앤드류였기에 시온은 앤드류의 겉옷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앤드류라는 고대의 마법사가 전투 기술을 가지려고 만들어 낸 그런 옷인 것 같았다.
이런 마법 장비도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연약한 육체를 가진 자는 이 장비를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휘두르기만 해도 완벽한 일격을 넣기에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마법의 힘으로 자세를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해도 근육 같은 것은 그런 게 안 되는 것이다.
“제국 메이스 교본 술을 오늘부터 하나씩 각인시켜야겠군.”
시온은 그 작업을 서둘러 하기로 했다. 영지전에 앞서 준비를 빠르게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결투자를 상대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장비는 없을 것이었다.
ㆍㆍㆍ
“경의 주문대로 식량을 살 수 있는 대로 구매했습니다.”
창고 앞에서 시온에게 말하는 필립스와 초이는 시온에게 그동안 한 일에 대해서 보고하고 있었다. 시온이 구매한 식량은 창고 두 개 분이었다.
큰 창고 두 개가 식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온의 재산이 고스란히 여기에 들어가 있었다.
‘이 정도로는 이곳 물가를 좌지우지하기엔 턱도 없는 양이지.’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예상대로 식량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초이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필립스가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식량값은 오르고 있습니다. 상인 존이터가 팔라고 주문을 넣었습니다. 지금 팔아도 수익이 상당할 겁니다. 주인님과 만남을 원하는데 주선할까요?”
존이터는 이곳 상회를 다스리는 자 중 하나였다. 결국, 그의 귀에도 정보가 돈 모양이었다. 싹쓸이를 통해 반독점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존이터의 자금력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니까.
식량은 전체적으로 영지 자체에서 관리할 수 있는 식량과 일반 대중에게 풀릴 일반 식량이 존재했다. 지금 존이터가 건드는 것이 바로 후자였다. 시온도 지금 후자를 산 상황이었다.
“경. 제 생각엔 존이터를 한 번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초이와 전 의견이 같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시온이 이어서 말했다.
“내 생각엔 값이 폭등할 게 분명해. 좀 더 가지고 있겠다.”
시온은 존이터의 영향력을 생각해서 시온에게 팔라고 권유한 것이다. 존이터는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이런 것을 팔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 있을 정도의 급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펜부르크의 권력자인 마리가 뒷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전 내내 뭘 하셨습니까? 가문에서 편지가 왔는데 찾아보니 없으시더군요.”
“메이스 기술을 연습 중이었지.”
“정진에 틈이 없으시군요.”
시온은 정확히 메이스의 동작을 메모라이즈 하는 중이었다고는 대답하진 않았다. 필립스 정도면 이 메모라이즈 작업이 끝났을 때 실험해볼 수 있는 좋은 연습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ㆍㆍㆍ
정기 기사 모임회는 펜부르크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모임이었다. 시온은 필립스를 데리고 이곳의 초대장에 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흠. 첫째 형이 아이를 낳았단 말이지. 거기에 축하하기 위해 가문에 들려달라고.’
시온은 대충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 편지를 써서 답장했다.
첫째 형의 아이는 니벨룽 가문의 대를 이을 아이였다. 출석해 축하해주는 건 이곳에서 중요한 관습이었다. 시온도 싫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차별을 당해서 기분 나쁜 일이 많았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형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시온에게 있어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이번 모임은 알력 싸움이 있을 예정이었다. 어레이 경의 요청에 이곳에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마리의 권력 강화에 대해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이는 그런 곳이었다.
펜부르크의 영주를 모시는 기사들이라곤 하지만 각자 생각이 다르고 각자 처지가 다르다. 이득을 보기 위해 맹세한 기사들이라고 해도 분란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 모임은 그런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이 모여 잡담을 하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도박도 있었고 내기도 있었다.
시온이 보고 있는 방향엔 팔씨름이 한창이었다. 기사들과 안면에 있어 익숙한 자들이 많이 보였다. 어레이를 비롯한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중에 몇몇은 처음 보는 자였다.
‘어레이 경이 경계하는 자들이 저자들이군.’
붉은 머리의 헨슨과 찢어진 눈의 오드밀은 영향력이 있는 주력 기사들이었다.
마리에게 힘이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둘 다 펜부르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귀족들이었고 각기 남작령과 연결되어 있었다.
장남이 상속을 받고 차남이 기사로 영주를 모시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 중에 오드밀은 장남이어서 상속을 받는다고 들었다.
“시온 경. 저 둘이 위험 인물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저 둘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뜻이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헨슨과 오드밀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각기 자기 가문에서 병력을 이끌고 올 수 있는 기사들인 만큼 저 주력 기사들에게 속해있는 다른 기사들도 많았다.
어레이가 최근 상승했다고는 하나 모든 기사를 포옹하기에는 매력이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일단은 저 둘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영지전을 앞둔 마당에 자꾸 문제라도 생기면 정작 중요한 전투에 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증거라도 있습니까?”
“제 말에 대답도 잘 안 하고 저를 무시하는 게 심해서 대화도 별로 못했습니다. 그건 즉 마리 님에게도 반감을 품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일리가 있었다. 사람이 괜히 그냥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다.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시온은 어떻게 저 두 명을 설득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시온이 제안할 수 있는 방향은 제한적이었다. 둘의 인상을 보아하니 어지간해선 바늘도 안 들어가게 생겼다.
“둘을 유혹할 수 있을 만한 제안 같은 것은 없습니까? 단순히 제가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닌 녀석들로 보이는데요.”
“흠. 여러 가지를 맞춰볼 수야 있긴 한데. 다만 나하고 대화를 않으려고 말이어서요.”
“그럼 거시서부터 문을 열어야겠군요.”
시온의 등장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두 명의 기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곧바로 시온을 향해 걸어왔다.
시온은 두 명의 사내를 보고 얼어붙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로 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주먹다짐이 아닌 말로 잘 달래야 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도중 헨슨이 말했다.
“미리 말씀하시지 갑자기 오시니 꽤 놀랍군요. 뒤늦은 인사이지만 난투전의 우승 축하합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뜻밖의 것이었다. 먼저 와서 친해지고 싶어 하는 그런 분위기가 물씬 흘렀다.
“축하합니다. 시온 경.”
뜻이 같다는 듯 오드밀도 시온에게 말했다. 그들은 시온을 당황하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어레이를 놀라게 했다. 어레이는 그대로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둘도 사실 난투전에 참가했었습니다. 아십니까? 진작에 떨어져 버렸지만요. 하하.”
“정말 잘하시더군요. 뭔가 특이하게 싸우시던 것 같습니다. 아마 경의 무구가 특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엔 타지 인이라고 오해도 했는데 혹시 몰라서 지금이라도 사과 드립니다.”
둘이 그렇게 나오자 둘을 따르는 기사들이 나와 시온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온은 어레이에게 귓속말했다.
“걱정하신 거 맞습니까?”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허허. 저도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레이는 여전히 황당한 모양이었다. 으르렁거리던 게 고작 해봐야 이틀 전이었는데 단번에 태도가 바뀌다니.
이어지는 분위기는 적당했다. 종일 벌어지고 있는 긴장을 풀기 위한 적당한 대화와 적당한 게임 그리고 적당한 음악이 이어졌다.
시온은 헨슨과 오드밀 그리고 어레이 이렇게 둥글게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상황인지 모르겠군.’
어레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들이 이렇게 태도를 급변할 줄은 몰랐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뛰어오며 소식 하나를 전했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골든 평원으로 벤 남작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골든 평원은 남작령 하나를 끼고 있었고 지금 그 지역을 벤 남작이 점령하겠다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그곳은 식량 지대이기도 해서 뺏기면 곤란했다.
모임의 분위기는 바로 깨졌다.
‘아무래도 약탈을 하려는 거겠지.’
이것을 좋다고 해야 할지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사둔 식량이 예상보다 더 폭등할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끝이냐?”
“아닙니다. 선전 포고입니다. 부정한 악녀인 마리 자링에게 가문의 영지를 되찾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펜부르크의 대한 영지를 되찾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하이거 자링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것이었다. 마리가 하든 벤이 하든 보호자가 된 쪽이 펜부르크를 차지하게 되는 그림이었다.
“경들 죄송합니다만 저는 바로 가문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오드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문 회의를 통해서 여기에 참전할지에 대해서 결정할 작정인 듯했다.
‘아마도 참전하겠지.’
봉건제의 특성상 하지 않고 중립을 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벤 남작과 오리엔 영주와의 영지전에서 마리가 승리하게 된다면 많은 보상을 공에 따라 나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