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전(1)
약탈전에 대항하기 위한 부대가 만들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 개의 기동성이 있는 기사가 선발되었다.
습격의 기본은 기동력이었다. 따라서 골든 평원에 들어와서 약탈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들 모두가 기동성이 있는 경무장 부대라는 것을 뜻했다.
그렇기에 이런 기동성을 따라잡기 위한 제압 부대는 기병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시온은 기사 가문 출신답게 말 타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여기에 대해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독립했을 때를 염두에 둬서 말 타는 법과 말을 다루는 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만 말을 타고 전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숙한 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를 응용할 생각이었다.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는 생각보다 유연한 구석이 있어서 얼마든지 말을 탄 자세에서도 메이스 동작 기억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바람이 무척 부는군.’
골든 평원으로 향하는 길은 평온하지 않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구름도 심상치 않았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속도를 내는 상황이라 바람에 저항하는 것도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시온 경! 일단 저기에서 자리를 잡고 좀 쉽시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레이 경이 이끄는 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들 체력 소모가 있었는지 쉰다는 말에 안도의 표정이 돈다.
기사로 구성된 분대는 총 세 개로 나뉘었는데 각자 어레이, 헨슨, 오드밀이 주력을 맡아 각자 추측되는 방향으로 꺾여 흩어졌다.
그중 정 가운데는 시온과 어레이였다. 골든 평원은 작은 남작령하나와 그 남작령을 중심으로 마을들이 산발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 타격을 주려는 것은 벤 남작이 반드시 영지전을 이기겠다는 각오를 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곳은 펜부르크의 곡창 지대였다. 즉 이곳을 관할하는 남작령이 작다고 해서 여기서 생산하는 식량이 적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곳은 펜부르크의 식량의 허파인 곳이다. 이곳을 공격한다는 것은 나중에 펜부르크를 차지한다고 해도 이후의 식량 수급에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곳부터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미가 숨어져 있을 수도 있었다.
‘작전상 연기를 하는 거일 수도 있지.’
미리 출발한 벤 남작의 부대는 경무장 병력일터였는데 덕분에 수가 많은 것이었다. 반면에 여기를 받아내야 하는 펜부르크 측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기사만 선발해 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전략적 함정일 수도 있었다. 시온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서 움직여! 해진다! 물건 풀고!”
“이쪽으로 깔아.”
임시 야영지가 만들어졌다. 누구보다 능숙하게 자신의 야영지를 설치하는 시온의 모습은 다른 기사의 이목을 샀다.
기사는 이런 야영지를 직접 만드는 편은 아니었다. 데리고 있는 종자들이 보통 그 역할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기사뿐이 아니라 기사가 데리고 다니는 종자도 그만큼은 있었다.
사실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시온이 거창한 사상을 가져서 자기가 머물 야영지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사냥꾼 역할을 수행했던 그런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모범을 보이는군.’
하지만 어레이 경을 포함한 다른 기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설픈 연기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온의 행동은 정말로 여러 번 하다못해 물려버린 듯한 그런 속도였기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찾아왔다. 시온은 메모라이즈를 점검하고 물과 섞은 푸른 액을 복용한 뒤 마석에 담긴 마나를 수급했다.
특히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를 점검하는 부분은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테스트가 끝나기는 했지만, 실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한 번 더 점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기사들의 말수는 많았다. 특히 젊은 기사들은 흥분해 있었다. 종자들도 이번 기회에 공을 세워 기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런 시간에는 가벼운 전략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조금 여유가 있는 자들은 자기를 따라온 종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ㆍㆍㆍ
골든 평원을 약탈한다고 해서 딱히 정해진 구역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술래잡기와 비슷한 그림이 이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아무런 방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곳은 진작에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골든 평원을 방어하는 남작의 병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파견된 세 개의 기사 분대는 남작를 구호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시온은 붉게 타오르는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불이군.”
마을 하나가 파괴된 것이었다. 거리는 상당했으나 그나마 세 개의 기사 분대 중에서는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저곳으로 돌진한 자들은 시온이 있는 분대가 확실해졌다. 간단한 장비를 챙기고 무장 기사들이 그쪽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불타버린 마을의 규모는 아직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의 최우선 목표는 마을의 복구가 아닌 벤 남작의 약탈 분대를 따라잡아 격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 머리 자체가 과감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불이 난 마을이 아닌 그들이 다음 파괴할 것으로 예상이 되는 방앗간 쪽을 향해 말을 몰았던 것이었다.
이런 곡창지대에는 방앗간이 몇 개나 있었다. 이 방앗간 자체도 나름의 군사적인 가치가 있었다. 작은 성벽처럼 쓸 수 있다.
방앗간이라는 개념이 현대인에게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중요한 사업이었고 기반 장비와 부속건물의 가치가 거대하고 매우 비쌌다.
허가 개념까지 있어서 조세권에는 반드시 방앗간 사용료가 따로 따라다녔다. 가치 높은 영지일수록 이런 좋고 거대한 방앗간과 이것의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권리가 따라다녔다.
고로 니벨룽 가문은 이런 방앗간의 급이 너무 낮았다. 시온은 그 허름했던 건물이 떠올랐다.
밤이라 그런지 불길이 거침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을 자체를 파괴했는지 방화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온과 기사들은 약탈자들의 꼬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규모가 큰 만큼 어쩔 수 없이 약탈 병력을 많이 운영했기에 이동이 느려진 것이었다. 시온의 예상대로 순수한 말을 동반한 기사들이 아니라 경무장한 경보병들이 대다수였다.
꼬리를 확인하자마자 어레이가 소리쳤다. 실질적인 지휘관은 시온이지만 그 대리권을 어레이에게 넘겼기 때문에 어레이가 지휘하는 형태였다.
물론 이러한 의사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구석이 있다면 시온이 개입할 수 있었다.
어쨌든 어레이가 이런 상황을 놓칠 리는 없었다.
이렇게 진형이 갖춰지지 않고 약탈한 물자를 수송하고 있는 진형만큼 공격에 취약한 형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대지가 진동하는 소리에 길어진 진형이 망가지고 있었다. 시온은 침을 삼켰다. 이 정도의 실전은 시온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더욱더 집중했다. 그만큼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속속히 어둠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길이 번져 나가면서 이들이 어떤 물자를 약탈하고 있는 도중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던 것이었다.
‘식량 포대, 강철 농기구, 여자.’
흔히 이 세 개가 주요한 약탈 대상이었다. 중요도도 높았고 쉽게 금화가 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량인 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강철 농기구는 바로 녹여서 부족한 군수 물자로 바꾸게 할 것이었다. 시온은 슬쩍 불길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이 약탈물에는 남자는 없었다. 시온은 드러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손 속이 꽤 독하군. 벤.’
어떻게 보자면 약탈의 기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시온은 그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문 문장이 섞여 있었다. 벤 남작의 동맹으로 들어온 오리엔 영주의 가문 기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대형을 갖춰! 빌어먹을 새끼들아! 자링 가문의 기사들이다!!”
그러나 그 명령이 전달되기에는 이 돌진은 매우 효과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온은 순식간에 다가오는 적의 대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말 위에서 하는 공격은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일격을 선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다리 힘과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상체의 근력 그리고 균형감이 중요했다. 시온은 앤드류의 메모라이즈가 가동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첫 타격이 손아귀에 전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인 것이었다.
누가 봤으면 경악할 만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시온의 첫 마상 공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더욱 놀랐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시온이 가지고 있는 메이스는 가속 마법과 중력 마법이 섞여 걸려 있는 무구이기에 그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온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붉게 변한 것을 알았다. 메이스에 맞은 녀석은 얼굴이 함몰되어 즉사한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은 저 멀리서 나뒹굴고 있는 사내를 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전문적인 기병이 아니므로 이 자리에서 말에서 내려서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
즉 하마 공격을 해야 했다. 이런 기사들은 그만큼 중무장 정도가 중기병과 달라서 일격을 넣고 이런 난전을 백병전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기에 이들, 즉 기사가 있는 것이었다. 기사는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일반 병사에 비하자면 그냥 살인 기계나 다름이 없었다.
명예를 너무나 중시하는 사상이 있어서 어이없게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서 망정이지 전투 자체는 불리한 전황도 뒤집을 수도 있는 자들이었다.
사실 지금 상황은 누가 본다면 불나방이 불에 뛰어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첫 타격이 위력적이었다고 해도 숫자가 부족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시온도 당장에 눈앞에 있는 경보병이나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의 수만 계산을 해도 여섯 명이었다. 시온은 냉정하게 이들을 분석하며 바라보았다.
“메이스!”
“중무장 상태는 아니다! 합공을 하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기사 하나라도 잡아낸다면 영주께서 한 자리 챙겨 주실 거다!”
그것이 이들의 욕망을 충분히 자극했는지 여섯 명의 경보병들이 시온을 향해 급작스럽게 뛰어들었다. 시온은 엔클리 경의 갑주를 다 털어 입고 와서 누가 봐도 기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온의 머릿속에서 앤드류의 메모라이즈가 골라낸 제국 메이스 교본술 중의 하나가 자연스럽게 맺혔다. 몸이 움직인 것은 동시였다.
한 번에 하나씩 머리가 쪼개지며 날아갔다. 안 그래도 시온의 근력이 푸른 액 덕에 대단했는데 길이 달라 부족했었던 부분이 채워지니 그 솜씨가 충격적일 정도였다.
아군이 봐도 그런데 순식간에 세 명이 절명하자 나머지 세 명은 무기를 든 자세에서 굳어버렸다. 공격의 교환이라도 이루어져야 하는 데 너무나 일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