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전(3)
“아길레 경이 당했습니다!”
아길레가 당했다는 소식은 이곳의 약탈해 전력을 약화하려 했던 지휘관 바티무스의 입을 벌리게 할 만한 내용이었다.
아길레는 여기서 당해서는 안 됐다. 그럴 전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당했다고 하니 바티무스는 미쳐 날뛸 입장이었다.
“대체 왜!!”
“결투하다가 그만···.”
그렇게 허망하게 당했다고? 아길레는 이미 영지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귀중한 경험자였다. 회전을 겪은 전공이 있던 것이다.
“상대가 누구냐?!”
“시온 니벨룽이라 합니다.”
“그게 누구지?”
바티무스는 정말로 시온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시온이 펜부르크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해도 최근에 불과했다. 그러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자는 시온의 이름을 안 모양이었다.
“난투전의 우승자입니다.”
“난투전의 우승자라고?”
“예. 아마도.”
“그게 전부야?”
“아닙니다. 소문엔 마리 자링이 비밀리에 영입해왔다는 자라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엄청난 돈을 주고 계약을 했다고요.”
“빌어먹을. 니벨룽 가문이란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녀석은 있나?”
조용했다. 시온이라는 이름도 처음 듣는 편인데 니벨룽 가문은 더욱 생소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바티무스의 얼굴이 다급해져 갔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정보가 모자란다는 말인가. 회전에서 이긴 자는 영광과 유산을 만들 것이고 진 자는 반란죄로 가진 것을 다 빼앗길 예정이었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자는?”
기사 몇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 정도로 어려운 결과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격노할 문책이 기다리고 있는데 쉽게 얘기할 사람은 없었다.
“거의 전멸했습니다. 복귀하지 않고 탈영한 병사도 많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가 있는 힘껏 테이블을 내려쳤다. 테이블이 흔들흔들하다가 겨우 진정이 됐다.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는 것은 그만큼 감정이 조절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길레 경이 이끄는 약탈 분대는 그가 이끄는 약탈 부대 중에서도 가장 큰 분대였다. 그게 전멸했다는 것은 실책 중의 실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심스러운 그의 성격상 퇴로를 확보한 상황이었고 그에 대한 훈련도 철저했는데 어째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단 말인가.
“좀 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얘기해다오.”
헛기침을 한 기사 하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시온 니벨룽이 아길레 경을 너무 빨리 결투에서 승리한 바람에 사기가 너무 꺾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집요하게 추격해 작살을 냈다고···.”
얘기가 길어지고 있었으나 결과는 하나였다. 모두 다 시온 니벨룽 이라는 자와 관련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가 각인된 것이다.
게다가 바티무스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누가 그런 결과를 냈는지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팽팽하게 돌고 있었다.
ㆍㆍㆍ
약탈 부대를 잃은 것에 바티무스가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을 무렵 시온 역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냉정한 분석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아마 이대로 물러서진 않겠지.’
보통 이러한 전초전은 계속해서 몇 주 단위로 이어진다. 한번 깨진 상대는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진짜 술래잡기였다. 이런 술래잡기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앞에 있을 회전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름 대규모의 병력이 집결하고 움직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그 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일들은 심할 수도 있었고 지루한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펜부르크에서 본대가 출발한다고 합니다. 방향은 이곳이고요.”
어레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미 시온 경의 전공에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길레를 쓰러트려서?”
“그렇죠.”
이쯤 되자 시온은 아길레가 제법 명성이 있는 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아쉬울 뿐이었다.
‘몸값이 대단했을 건데.’
하지만 그래도 전공이 남았다. 이런 전공이 차곡차곡 쌓이고 회전의 결과가 분명해지면 그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클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한쪽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전공자의 기여에 따라서 재분배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세력을 일군 벤 남작 정도라면 시온도 단단히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표현하고는 있진 않았지만 내심 약간의 기대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레이가 비밀리에 넘겨준 기사수도회 발급의 제국 메이스 교분술의 내용이 수준급이었다는 것이 이번에 증명된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좀 더 좋은 교본술을 구할 수만 있다면 메모라이즈 작업을 통해 쉽게 높은 전투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시온은 어레이와의 대강의 대화를 정리하고 주변을 훑었다. 예비 진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금이나마 방어할 수 있게끔 여러 가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저쪽 끝에서 몇 명이 말을 타고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시온은 그들이 오드밀과 헨슨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약탈 대를 박살을 내자마자 그 소식을 어레이가 다른 자들에게 전서를 붙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헨슨과 오드밀은 감탄하면서도 시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직접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휘가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것을 시온에게 넘기고 지휘를 받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결정한 내용이 숨어 있는 상황이었다.
말에서 내리자마자 시온 쪽으로 부리나케 온 헨슨과 오드밀은 불타버린 폐허를 보면서 침을 삼켰다. 야간의 치열한 충돌이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기사로서의 맹훈련을 했다곤 해도 실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시온을 보면서 감탄할 뿐이다.
“저한테 지휘권을 통일하겠단 말인가요?”
두 명이 그렇게 말하자 시온이 의아스럽게 대답을 했다. 어레이는 턱이 빠지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저 고집스러운 놈들이.’
“그렇습니다. 저희의 결과는 아무래도 지지부진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확실한 승리를 하셨으니 조금이나마 전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걸 요청합니다.”
오드밀이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사실 말이야 길었지만 시온에게 분대 명령권을 다 내주겠다는 뜻이었다. 시온이 완전히 지휘관으로 올라가 달라는 뜻이었다.
명목상 어레이가 지휘는 하고 있기에 아주 무례한 얘기였지만 놀랍게도 어레이는 이러한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시온이 보여줬던 그 날 밤의 충돌은 놀라운 구석이 있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와 승리가 있었다.
“흠..”
기사들의 지휘권이라는 것은 사실 이렇게 쉽게 주고받고 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것도 분쟁이 생기면 서로 칼을 들고 바로 결투를 걸 정도다.
그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라서 시온도 너무 뜻밖이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받아서 나쁠 건 없지. 어차피 소규모 전투는 거의 끝난 것 같으니까.’
시온의 생각엔 그 전투에서 너무 크게 맥인 탓에 각자의 본대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딱히 대단한 전투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적당한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시온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특별한 징후가 발견되면 그때 통일된 전략을 내놓겠습니다. 그때까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지금처럼 행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ㆍㆍㆍ
시온은 정말로 이번 기회에 마상술을 아주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전이라는 것이 말을 타고 술래잡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온이 말을 타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상창술에 대한 것도 감이 오고 있었다.
‘부족한 것은 메모라이즈 하면 되고.’
“시온 경! 저기 적이 있습니다!”
시온은 이러한 형태의 술래잡기를 이미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전투라는 것도 상대가 싸울 의사가 있거나 반드시 다퉈야 할 것이 있을 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똑같이 말을 타고 다니는데 그 간격을 좁히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시온도 약오르는 일이었지만 사실 상대 입장에서는 아주 미칠듯한 일이었다. 이들은 사실 약탈전에 대한 것을 거의 수행하고 있지 않았다.
시온에 대한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적들의 전략이었다.
그러니 시온이 아무리 쫓아가려고 해도 상대가 응할 생각이 없으니 그냥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온은 여전히 경계심을 낮추고 있진 않았다.
“너무 깊다.”
시온은 적당히 연습했으면 그만이었다. 공도 이미 세웠는데 괜히 이런 전공에 목을 맬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냥 안전하게만 시간이 흘러가면 되는 것이었다.
ㆍㆍㆍ
시온이 본대와 합류 비슷하게 한 것은 이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양쪽의 군대가 골든 평원에 흐르는 강을 기준으로 복잡하게 흘렀다.
복잡하게 흘렀다 함은 사실 이 전에도 심리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었다. 아무래도 자리를 잡기까지는 술래잡기의 연장선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과정의 애매한 결착 단계에서 진형을 잡게 된다. 진형이라는 것이 잡히면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된다. 회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곳의 전투라는 것이 딱히 형태가 잡혀있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정석적으로 잡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진형 잡힘의 이유는 역시 평원지대라는 지형의 간편함 때문일 것이었다. 그나마 시온의 본대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형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시온 덕택이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무서운 측면이 있다. 워낙에 엔클리 경의 갑옷이 눈에 뜨이는 면이 있어서 시온의 분대는 벤 남작의 쪽에서 매우 유명했다.
덕분에 싸움을 피하려는 벤 남작의 부대 덕에 약간의 언덕 지형에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시온은 아래에 보이는 광경에 솔직히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많다. 엄청나게 많아.’
인간이 많았다. 아군도 많았는데 적도 많았다. 저 중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나면 태반이 죽어있을 것이었다. 이러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벤 남작의 부대에 이어서 오리엔 영주의 대규모 부대가 속속히 도착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리엔 영주는 이번 기회에 펜부르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보이는군. 딱 봐도 지휘 계통이 엉망이로군.’
벤 남작과 오리엔 영주의 부대는 전혀 융합되고 있지 않았다. 이런 것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언덕 지형인지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유발할 수만 있다면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겠는데···.’
이곳의 특성상 현대인처럼 정상적으로 전략을 짤 것 같지 않았다. 현대인이라면 언덕에 자리 잡은 보병을 공격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곳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