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304)

영지전(7)

전선에서 이런 주력 기사가 빠지는 것은 전술적으로 옳지 않았다. 괜히 이런 중책이 맡겨져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아무래도 개인의 출세가 이 기사들에게는 더 중요시되기 마련이었다.

즉 여러 가지 의무가 이들에게 부여되어 있었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딱 하나밖에는 없었다. 시온을 반드시 자신이 제압해야 한다는 욕구 말이었다.

‘미친것들.’

시온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오는 기사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기대하고 있던 바였다.

이들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라이트닝 댄스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설치 마법이 함정으로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추측으로 위치를 잡았기에 이들을 유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범위가 좁아야 위력이 더 강해지기에 또 이런 조건도 채워야 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시온은 무리 없이 계획이 잘 작동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정뿐만이 아니었다.

“마인트다! 내 검을 받아라.”

“마인트 경. 내가 먼저 하지 않기로 했소! 레오니아요!”

“내가 해야 하는 게 맞다. 다들 물러서. 아길레 경과 가장 친분이 있던 나 볼브가 하는 것이 정당하다.”

자기 종자들 부하들이 죽고 있는 와중에도 일대일을 고집하느라 싸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대일이라니 할 수 있다면 일대일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기사라는 것이다.

시온 같았으면 바로 세 명이 함께 달려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이라면 그렇게 공격했을 것이고 그것이 맞았다. 다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선호되지 않을 뿐이지. 시온은 당연히 전자였다. 

그러기에 함정을 팠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세 명이 같이 덤비는 것이 어떤가.”

시온이 그렇게 소리쳤다. 전장의 소리라는 것은 더럽게 시끄럽다. 철 소리, 화살 소리, 폭발 소리, 악 지르는 고함, 불타는 들판 그러나 용케도 시온의 발언만 골라내서 듣는다.

그러나 이 발언에 셋은 솔깃했다. 정말로 시온이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태도가 너무나 거리낌 없었고 메이스를 잡은 자세가 완벽한 나머지 전장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그러한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순간 그렇게 하겠다고 마인트와 볼브는 서로의 눈을 한 번 확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솟구쳤음에도 이들은 겨우겨우 욕망을 참았다. 자기들이 누구인데 상황이 불리하다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선택하십시오. 경. 경이라면 명예로운 행동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연속으로 우리와 결투를 하십시오.”

그렇게 했다가는 시온은 두 명도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 시온의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는 엄연히 마나를 기반으로 해서 돌아가는 행동각인술이었다. 

즉 시간의 제한이 있다는 뜻이었다.

셋을 상대할 시간을 생각해보면 기습이 아니라면 도저히 맞아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다. 시온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

“뭣?”

시온이 갑자기 기사가 해서는 안 되는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비겁한 행동을 하자 세 명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시온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기대하던 시온의 모습과는 다른 천박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왜 여기까지 고생을 하면서 올라왔는데 그 목표를 놓치는 것도 말 못할 실패나 다를 바 없었다.

셋이 미친 듯이 따라오자 시온은 완벽히 이들을 라이트닝 댄스의 한가운데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더불어 여기에는 아라크네의 거미줄까지 걸어놨다. 

여러 속성을 다룰 수 있는 시온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단계를 보는 성장이 느린 만큼 마나가 다른 마법사보다 많아서 이런 짓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서 유일하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나에 대한 기감이 좋은 것, 그런 것들 덕분에 이런 여러 가지 마법을 멀티로 쓸 수 있었다.

단지 이렇게 여러 가지를 쓰게 된다면 아무래도 한 가지 위력을 극대화할 수는 없었다. 즉 라이트닝 댄스의 위력이나 아라크네의 거미줄의 높은 위력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섞어 쓰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보고 있었다. 기사 세 명 모두가 마법 저항 무구를 착용하고 있는 탓에 최고 마법을 적중시켜봐야 역으로 제압당할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섞어서 시너지를 보는 편이 낫다는 것이 시온의 판단이었다. 

이 셋이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모든 마법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 무슨? 마법사? 어떤 빌어먹을 녀석이 여기에 개입하는 것인가. 마법사란 족속답구나!!”

이들은 시온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시온 밖에는 범인인 없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마법사를 찾는 것이었다. 그들의 갑옷의 마법이 활성화되어 저항하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것이 주위에 흐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몸을 붙잡는데 그것의 원인이 시온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설치 마법의 장점 덕에 이들은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설치 마법은 그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어렵지 그 안에서는 펄 같은 위력이 있었다.

“이런 어떤 개새끼야.”

“당장 풀어라. 해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고통으로 죽이겠다.”

그러나 그 당사자가 시온인데 시온이 그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이들을 여기에 끌고 온 것이니까. 

하나의 마법이라면 이들이 이 설치 마법의 공간을 어렵지 않게 벗어났겠지만 두 가지가 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두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탓에 이들이 이 거친 공격마법을 벗어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탁월함은 어느 정도는 증명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일반 종자 급이었어도 이렇게 반응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이들이 정신없이 탈출하기 위해 버둥거리는 방향에 시온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을 이 안에 가두고 공격한다면 아무리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도 세 명 모두 잡아낼 확신이 있었다.

그런 정신 없는 와중에 탈출로에 시온이 등장하자 이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제야 시온에게 속았단 것을 알았던 것이었다.

“설마 일부로???”

“바로 맞았다.”

“이런 더러운 녀석일 줄이야!! 이 사실이 공표되고 싶으냐?”

“마음대로 해. 네가 여기서 살아날 수 있다면 말이야.”

시온이 메이스를 부여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앤드류의 메모라이즈에 각인된 동작들로 단번에 치명상을 노리기 위한 움직임이 완벽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힘들게 고생해온 그들과 달리 시온의 체력은 완전히 보존되어 있었고 심지어 지형조차도 유리했다. 시온은 위까지 점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 시온에 펼치는 몇 가지 완벽한 동작만 보고도 이들은 시온의 메이스 술이 소문대로라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세 명 모두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대항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합심하지 않으면 여기서 끝이 날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불리해도 너무 불리했다. 제대로 된 합공을 하기도 전에 시온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 너무나도 빠르고 강력한 공격에 마인트의 가슴 보호대가 맞아서 우그러졌다.

맞은 부분이 깨져서 그런지 그를 보호하던 마법 무구도 동시에 약해져 버렸다. 그에게서 빈틈이 벌어지자 라이트닝 마법이 떨어졌다.

마인트가 잠깐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자 남은 둘은 갑자기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제는 둘이 덤벼도 승산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생각이 갈렸는지 한 명은 시온에게 달려들었고 다른 한 명은 등을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달려든 쪽은 레오니아였다. 레오니아는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비하자면 시온을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 제대로 붙었다면 크게 당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세 명함께 공격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시온의 준비자세에서 일대일로는 이길 수 없겠다는 무언가를 본 탓이었다.

깡!

레오니아의 투구가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격을 교환한 것은 스무 번 정도였지만 버티지를 못하고 레오니아는 머리에 공격을 내주고 말았다.

‘정상적으로 붙었다면 어려웠다.’

그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등을 돌렸던 볼브는 벌써 저쪽까지 빠져나가 설치 마법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 모양새를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워낙 안개가 듬성듬성 껴있어 제대로 된 교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자리를 옮기는 시온과 세 명의 기사를 인지하고는 있었다. 

교전이 시작된 것 같더니 두 명이 사라지고 한 명이 도망치고 있는 광경을 확인한 것이다.

“볼브 경??”

“도망치고 있는 건가?”

“!!”

그리고 병사들은 시온이 증기가 걷어지는 곳에서 시온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하였다. 

누가 봐도 시온이 기사 둘을 결투로 처리한 것으로 보였고 볼브는 거기에 지려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결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 알 사람은 볼브밖에는 없었다. 어쨌든 시온이 그곳에서 승리해서 나오자 한창 전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무리가 공황에 빠져 버렸다.

그렇지만 정예병답게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시온은 메이스로 몇 명을 더 처리하다가 뒤로 슬쩍 빠졌다. 슬슬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어레이가 턱이 빠질 듯한 얼굴로 시온을 반겼다.

“맙···. 맙소사. 시온 경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

시온이 어레이를 보면서 투구를 올렸다. 

“대체 무슨 뜻입니까?”

“안 그래도 지금 지원군을 꾸리던 차입니다. 시온 경이 마인트, 레오니아, 볼브 한데 둘러싸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거 일부로 한 겁니다. 그리고 볼브는 도망쳤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쫓아가기에는 제가 부족해서 일단은 이렇게 왔습니다.”

“아···. 아니, 그게.”

어레이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가 와서 어레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라울 경까지 처리했다고?”

시온이 그 말에 오히려 반문했다.

“그곳에서 전투한 자는 두 명입니다.”

“아니 그곳으로 움직이기 전에 처음 만난 상대를 일격에 쓰러트렸다고.”

시온은 그제야 잊혀 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시작할 때 이름을 말하면서 결투를 신청하려고 했던 기사가 있었다.

“저는 어쨌든 체력이 다해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부탁합니다.”

시온은 어레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시온의 체력은 이 이상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건했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마나는 바닥이었다. 

이곳에서의 회전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이 나는 법이 없었다. 서로 치열하게 붙는다면 이삼일은 꼬박 걸려서 전투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선봉에 섰던 자들이 끝까지 선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열과 교대를 해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다른 병과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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