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전(8)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피에르였다. 그가 보낸 정예가 모두 실시간으로 사망해 가고 있는데 제정신이면 이상할 지경이었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것이야!!”
그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보낸 보병은 보통 부대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인 오리엔 영주가 각고의 노력으로 몇 년간 기른 하나하나가 가치가 높은 보병들이었다.
거기에 붙여 놓은 기사들도 하나같이 수준급이었다. 이름도 높고 명예 역시 보장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고 특히 마인트, 볼브, 레오니아 이 세 명은 오리엔 영주가 따로 아들에게 다 붙여준 이유가 있는 기사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시온에게 박살이 났다는 사실이 이제 어느 정도 그림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수치심은 그를 참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최근에 갑자기 신성같이 명성을 얻은 시온을 끌고 와서 바닥을 기게 하고 목숨을 구걸시키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한 것인데 되려 시온에게 모두 깨져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대체 무슨 일이? 그 정도로 시온이 강했단 말인가? 혹시 볼브 자식이 배신한 건가?’
피에르는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기사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강력한 자들인지 그들에게서 검을 배우고 같이 반란군을 처리했던 피에르는 알고 있었다.
“도련님! 지금이라도! 아니 지원군을 그만 보내야 합니다!”
“닥쳐!!”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합니다!!! 전선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개새끼 아버지가 오냐 오냐 해서 너를 봐주고 있었더니 내 말에 토를 달아?”
전세라는 것은 전투라는 것의 전부였다. 세력과 세력에서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숫자가 많으면 다른 세력이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숫자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게 바로 지형이었고 전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꽤 파괴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판국이었다.
시온을 잡아 오겠다는 욕심에 정예부대가 출발했고 그 부대는 순식간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온갖 함정에 노출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돌파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전력이었었다. 시온 때문에 그 정예를 이끌던 주력 기사들이 이탈했고 그 주력 기사가 결투에 패배해 전투불능이 되거나 죽음으로서 최악의 악재가 계속해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동전을 튕겼다고 보자면 여섯 번의 시도 모두 뒷면이 나온 상황이었다. 이 정도이니 아무리 강대한 부대도 쓰러지기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전투는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러려면 정예 부대는 버려야 했다. 죽은 패인 것이다. 그런데 피에르는 거기에 계속 병력을 대기 시작했다.
연합군이지만 총사령관은 지분을 고려해서 오리엔 영주의 아들인 피에르였다. 그런데 그가 그런 악수에 가까운 결정을 연속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티무스의 얼굴은 공포로 변해 시온이 있던 방향을 바라봤다.
‘피에르가 이성을 잃었다. 이 모든 일이 시온 니벨룽이 벌인 것 때문에 벌어지고 있어.’
“내 검과 투구를 가져와!”
“?”
“뭐 하고 있어. 내 검과 투구를 가져오라니까!”
“무슨 생각을?”
“겁쟁이 새끼들 내가 직접 돌파하겠다.”
피에르는 지금 시온 하나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문제는 이제 불거질 대로 불거져버렸다.
이제 병력을 뺀다고 해서 이 실책이 아버지에게 보고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책을 만회하려면 그만한 모범을 보여야 했다.
아니면 다른 형제들이 피에르를 비난하고 업신여겨 그의 계승권을 약화할 것이었다.
그때 아까 시온으로부터 등을 돌린 볼브가 사선에서 탈출해 피에르에게로 돌아왔다.
“볼브 경이 살아왔습니다!!”
바티무스의 목소리는 한 명이라도 전력을 건졌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서려 있었지만, 피에르의 얼굴은 곧바로 일그러졌다.
“돌아왔다고? 끌고 와!!!”
피에르가 그렇게 말하자 곧 볼브가 양옆에 붙잡혀서 끌려오듯이 피에르 앞에 섰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볼브는 다급하게 말했다.
“비겁한 기사인 시온 니벨룽의 술수에서 방금 벗어났습니다. 체력을 정비하고 다시 전선에 나가 명예를······.”
“비겁하다고?”
“예.”
“설명해봐.”
“그러니까. 시온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었고 그곳은 마법적인 함정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결투를 부르짖던 저희 세 명은 그런 비겁한 암수에 갇혀서···.”
“그게 여기까지 오면서 굴린 네 잔머리냐? 그렇다면 아주 머리가 나쁜 거로구나.”
“예????”
“네 차례가 되어서 죽음에 대한 겁이 난 나머지 두 동료를 배신하고 도망친 것이 아니냐고.”
피에르가 그렇게 말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피에르의 말도 아주 그럴싸했기 때문에 그 광경을 같이 본 귀족들도 그쪽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부하를 버리고 도망친 놈!”
“그곳에서 싸웠어야지!”
누군가 그렇게 소리를 쳤다. 그것 역시 맞는 얘기였다. 말이 그렇게 되자 볼브가 당황했다.
“다시 갈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이 작전이 시온의 함정이었음을···빼야 한다는 것을.”
바티무스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세가 불리한데 볼브를 추슬러 다시 전장에 보내야 하는데 이상한 얘기가 돌고 있던 것이다.
“볼브를 다시 전장으로 보내야 합니다. 여기서 분란이 일어나게 된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합니다.”
바티무스의 생각에 정예 부대의 패를 버리고 다시 전열을 하는 라인으로 볼브를 집어넣으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배신한 게 아니냐?”
“무슨 말이신지?”
“그러니까 네가 시온의 사주를 받아 그곳에서 배신하고 나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지.”
“절대로 아닙니다. 신에게 맹세코 아닙니다.”
“도망친 놈의 맹세를 믿으라고?”
“다시 증명할 기회를······.”
“그 기회를 줬다가는 내가 끝장이 나겠지. 이 녀석을 베어버려라.”
“무슨 말씀이신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배신한 것이 확실하니 끌고 가서 베어버리란 말이야.”
안 그래도 분위기가 무거웠기에 현재 피에르의 말은 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볼브의 항변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귀족들이 피에르의 의견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바티무스가 아차 하는 사이에 배신자를 처형하라는 아우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볼브가 순식간에 끌려나가 버렸다. 이렇게 되니 다음 차례는 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재빠르게 피에르의 투구와 검을 가져다줬다.
‘아직은 모르지. 내가 우리의 힘을 믿지 못한 걸지도.’
바티무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온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ㆍㆍㆍ
시온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피에르의 본대에 할 수 있는 가장 긴 사거리를 갖추고 있는 마법인 파이어 코어 마법으로 상대했다.
사실 위력 자체는 별것 없었다. 파이어 코어 쪽은 미숙했고 시온의 마법 단계는 세 번째밖에는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주위의 사람들, 특히 안두르는 눈알이 터질 것처럼 시온을 보고 있었다.
‘마법사가 본래의 신분이라더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그가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탑 출신인 그가 세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마법사는 수두룩하게 봤었다.
그런데 이런 두 방향에 두루 능한 자는 매우 유의미했다. 게다가 지금 발휘하는 것이 이미 세 명의 기사를 처리했다는 것을 목격하고 난 뒤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건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펜부르크의 명분이 걸려 있는 문제인지라 위험을 감수하고 참관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최대 명령권자는 마리 자링이었다.그녀 역시 피에르가 돌진해 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피에르가? 어째서?”
“시온 경과 얽혀 있습니다.”
“시온과? 시온은 마법사 부대에 배치받았는데?”
“그렇긴···. 한데 시온 경이 마인트, 볼브, 라울, 레오니아 이 네 명의 기사를 처리했습니다. 피에르가 격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벌써?! 어떻게?”
“그것은 나중에 들으셔도 되는 얘기입니다. 지금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제 소견에는 지금 피에르 부대에 집중해야 합니다.”
누가 봐도 긴급한 상황이었다. 그녀 역시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물론 벤 남작은 여전히 안전한 곳에 있었지만, 오리엔 영주의 아들이 사지로 보병을 죄다 쏟아 붇고 있다는 것과 그가 그 선두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여기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펜부르크를 손에 넣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전세가 유리한데도 이러한 긴장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런 순간에 결정을 못 한 그녀가 부른 사람은 시온 이었다.
“시온을 빨리 불러!!”
“예?”
“빨리 부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시온이 부름을 받고 이곳에 왔을 때 마리는 손톱을 물고 있었다. 벌써 두 번의 격전을 치른 시온은 피투성이였다. 귀족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시온을 보며 침을 삼켰다. 시온을 보자마자 마리가 손짓했다.
“어떻게 생각해?”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 해야 하는 것 말이야.”
시온은 어이가 없었다. 이 간단한 것을 묻기 위해 자기를 불렀단 말인가. 당연히 피에르를 여기서 사로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공격하면 됩니다. 피에르를 사로잡는다면 벤 남작은 끝난 겁니다. 오리엔 영주는 자기의 아들을 포기하든지 동맹군을 유지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겁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 그럼 네가 해.”
“?”
다른 자가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그런 중임이라면 제 아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만족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도 이 자링 가문을 빛낼 영광을 얻고 싶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만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에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이 서로가 나서겠다며 아우성을 쳤다.
“아니, 이것은 시온 네가 해야 해.”
시온은 그녀의 뜨거운 눈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여러 인간의 욕망 섞인 눈빛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다.
‘후, 미치겠군.’
시온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자기가 생각했던 공적은 기대 이상으로 채워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요.”
“이견이 있나? 있으면 나와서 얘기해.”
마리가 귀족들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쉽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시온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안도감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시온은 원래 자유로운 신분이었기 때문에 벤 남작의 측에도 설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이 상황이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들의 머릿속에 스쳤다.
이런 기회는 원래 기득권인 그들이 차지해야 맞는 것이지만 모두가 눈알을 굴릴 뿐 시온이 임무를 받아가는 것을 막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