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304)

남작위(1)

“난 사생아가 없네.”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인데 그렇기에 그가 시온에게 집착하는 것이었다. 벨저의 후계자의 기준은 매우 높았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가져도 되네. 어떤가.”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을 그를 아는 고위 귀족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만큼 벨저의 마음이 다급해진 탓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선택할 줄 알았던 시온이 제안을 거절한 데다가 마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꿈쩍도 않는군. 사람을 놓쳐본 적은 없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을 놓치게 되다니.’

지금까지 누구에게 업적이 밀려 숭배를 받지 못한 적이 없었던 그는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했다. 

가치가 있든 없든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 보지 못한 적은 없었는데 가장 중요한 인재의 영입에 실패할 판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시온이 좋은 대답을 할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저는 마법사가 본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잡자면 마법사 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자네의 재능은 분명히 이쪽이네. 젊은 시절의 실수와 잘못된 판단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 이 늙은이의 말을 믿겠나. 자네는 마법사가 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어.”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시온은 이 같은 오해를 따라선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벨저가 탐을 내는 재능이라는 것은 앤드류의 환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허어. 허.”

기가 막힌 듯이 벨저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통상 삼십 한차례의 회전을 겪으면서 얼마나 난제가 많았는가. 도무지 설득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공, 죄송하게 됐습니다. 먼 후배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얼마 전에 결투했던 휀트 역시 재능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부탁 하나 해도 괜찮습니까?”

“뭔가?”

“제국 메이스 교본술 말고 혹시 남으시는 교본술이 없습니까?”

“있지. 있어. 허허. 영리하구나. 영리해. 정말로 크게 될 녀석인데 내가 주는 밧줄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는 게냐.”

“충분합니다.”

“메이스라. 시간을 좀만 다오. 내 검술의 변형을 너에게 주마.”

“그냥 제국 메이스와 다른 교본이면 됩니다. 저는 제자가 될 생각이....”

“검술이라도 가져가거라.”

ㆍㆍㆍ

작은 작위라도 배경이 없는 자에게는 거의 내려지지 않았다. 작위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재산의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토지였고 그 토지의 작위를 부여받으면 그 토지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벤 남작이 항복하고 나서 이어지는 일들은 일련의 몰수 과정이었다. 상속의 권리가 박탈되든지 아니면 즉각 몰수됐다. 그리고 마리는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을 시온에게 줄 계획을 잡고 있었다.

‘벨저에게 뺏기기 전에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벨저 가문은 황제의 방계였다. 그 힘의 격차는 정식 후계자도 없는 자링 가문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손톱을 물면서 시온을 뺏길지 뺏기지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벨저 공이 시온 경과 따로 시간을 가지는 일이 많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그 늙은이가 내 에이스를 뺏어가려고. 원래라면 진즉에 갈 길을 갔어야 했지.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다고!!”

마리의 목소리가 끝에 가서는 고함 형태로 바뀌었다. 이번 전쟁의 승리가 시온 덕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포로도 시온이 만들어 낸 일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고 심지어 노예조차 시온의 행적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있는 형편이었다. 

벤 남작의 보병까지도 시온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떠드는 판이었다. 이런 판국에 시온을 잃게 된다면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이 뻔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일을 빨리 앞당겨야겠어.”

이런 벨저의 행동을 방해하는 방법은 너무 위험했다. 그러니 한 가지밖에는 남지 않았다. 선수를 치는 것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선물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ㆍㆍㆍ

시온은 벨저에게서 이렇게 쉽게 무기술을 얻을지 몰랐었다. 사실 어떤 무기든지 상관은 없었다. 그냥 메모라이즈 시키고 숙달 반복 연습만 하면 됐으니까. 

‘맞춰 준다고 하니까. 이게 웬일이지.’

지금까지 대가 없이 거래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름 여러 가지 방안을 준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흠, 이미 이룬 것이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어떤 대가가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기는 했다. 조용한 곳에서 벨저에게 교육받았던 동작을 되짚어 보면서 최상의 동작을 펼쳐보려고 노력했다. 

몇 번 하다 보니 꽤 괜찮은 자세가 나왔다. 원리는 같았다. 최상의 연습 자세에서 행동을 각인하는 것이다. 시온은 몇 가지 새로운 동작을 끝냈다.

마나를 다룰 줄 알고 마나의 흐름만 잘 감지할 수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장비가 사기적인 탓에 딱히 어려운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 장비의 신비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우연이 아니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감지해낼 수가 없는 형태의 장비인 것이다. 

고대의 물건이라 그런지 현존하는 측정마법이나 장비로 발견이 되지가 않았다. 즉 시온이 굳이 누군가에게 입을 열지 않으면 앞으로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됐나.”

시온은 벨저가 일대일로 교습했던 동작을 모두 메모라이즈 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기술적으로도 모두 어려운 기술이었다. 제국 메이스 술보다 급이 높다는 것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개의 식 하나가 고 난이도의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아무래도 시온의 실력엔 이런 과정이 숨어 있는지라 첫 과정을 기대한 벨저가 실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입단제안을 한 것이 아니었다. 시온이라면 엠페러 가드의 단장직까지 실력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러한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그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휀트 루지엥에게 걸고 있던 것보다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이 증명됐다. 시온이 그의 앞에서 하나씩 식을 시연을 했을 때 벨저는 믿기 힘든 순간을 맛보았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 대단하군. 어제와 수준이 다른 솜씨인데 어떻게 한 거지? 허허. 이 늙은이를 놀리는 거라면 그만하게나.”

“그 소리를 보니 제가 제대로 한 모양이군요.”

“제대로 했지. 아주 제대로 했지.”

대부분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돌아가서 연습했다고 해도 지나치게 빠른 속도 그러나 벨저는 그런 타입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좋아, 다음 식으로 넘어가지.”

벨저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속도라면 그가 짜놓은 모든 식을 단숨에 전수해줄 수 있을 듯했다. 예상대로라면 그가 가르쳐본 사람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배워 나가는 자로 남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벨저가 가르치는 양을 따라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벨저는 오히려 자신이 시온을 속박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온이라면 엠페러가드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ㆍㆍㆍ

시온이 벨저에게서 기술을 습득하는 일은 아무래도 비밀리에 부쳐졌다. 나름 시온도 조심했고 벨저도 철저히 조심했다. 그렇다고 해서 될 사안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온은 현재 이곳에서 가장 화두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어딜 가나 시온이 만들어 낸 그 전투에 대한 것과 결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니 어딜 가나 눈이 따라오길 마련이었다. 그런 눈을 누구보다 가진 마리는 초조함이 극에 다다라 있었다. 

끊임없이 벨저에게 시온을 빼앗겼을 일에 대한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놓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을 냈다. 공성전 끝에 항복을 받아낸 후에 벌어지는 대연회는 단순한 의미의 연회가 아니었다. 단순한 사교 모임도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단순한 축하 이상의 전공에 대해 논공행상 하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받을 것을 받아내기 위한 치열한 정치가 곧바로 뒤에 따라오는 것이었다. 

“시온 니벨룽에게 남작 위를 하사하겠어요. 그는 이번 전투에서 그만한 공을 세웠습니다. 반대하는 자 있나요? 거수하고 일어나세요.”

분위기가 바로 싸늘해진다. 특히 귀족들이 그랬다. 논공행상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사실 전공을 세운 기사가 아니었다. 

바로 보병을 대준 귀족들이 최우선의 후보가 된다. 그런데 가타부타 최고 명단에 시온의 이름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왔으니 모두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흠, 침착하자.’ 

시온은 언질 없이 마리 자링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런 것을 갑작스럽게 발표할 만한 성격이 아닌 것을 지금까지의 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몰랐다.

‘남작이라, 받을 수만 있다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남작이라는 작위는 돈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었다. 금화는 아무리 벌어도 금화로 끝이 난다. 그냥 이름 있는 상인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작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작위가 몇 개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전부였다. 그 정도로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한 방향이라고 봐도 됐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자도 더 가지기 위해서 무서운 짓을 쉽게 벌이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행운. 얼마 전에 벨저에게서 메이스를 전수한다고 기뻐했는데 그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이번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금화의 최대 배팅이었다. 시온은 그것으로 아예 정수를 싹 쓸어서 급성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행운이 얻어걸린 것이다. 

오해의 힘이었다. 

벨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마리가 강수를 둔 것이었다. 시온은 그 사이에서 그냥 운 좋게 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없나요? 불만 있는 자는 지금 말해야 할거에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불명예는 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랬다. 공성전이 끝이 나고 벤 남작의 항복이 이어진 상황에서 곧바로 이어진 연회에서 결정된 논공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비를 걸어야 했다. 

귀족들의 얼굴은 붉어지고 자신 중 하나가 가졌어야 할 그것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쉽사리 눈알만 돌릴 뿐 허투루 행동하는 자는 없었다.

‘누가 좀 해보라고.’

그러나 쉽지가 않다. 상대가 시온인 탓이었다. 시온은 충분한 명성뿐만이 아니라 벨저의 지원까지 받는 것처럼 보였다. 즉 귀족무리들도 눈이란 게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마리와 벨저가 협약이 있었군.

-벨저 공이 돕는 것이라면 황제 가문과도 연관이 있다는 뜻.

-이건 함정이다. 

대강의 결론이 이런 가닥으로 잡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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