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위(2)
시간이 흘러갈수록 시온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사실이 확정 시 되어가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연회였다.
-자네가 해!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냥 작위를 내줄 겁니까?
급하게 의견을 내봐야 딱히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뒤에 가서 번복하면 역으로 의심을 받고 당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인정할 수가 없다면 벤 남작을 빼돌려서 다시 반란하면 되긴 했다. 하지만 지게 됐을 경우는 가진 것을 다 내놓아야 한다.
-시온을 미리 제거 못 하면 우리가 질 겁니다.
-벨저까지 합세하면 거의 진다고 봐야지.
다들 그렇게 결론을 내릴 정도로 시온이 전장에서 보여준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벨저가 개입했을 때 벌어질 승산에 대해선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시온도 눈과 귀가 있다. 귀족들의 붉어진 얼굴, 당황해하는 모습, 귓속말하며 손익계산을 나누는 것을 확인했다.
‘생각을 잘해야겠는데.’
물론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벌어질 일도 생각해봐야 했다. 만약 작위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암살당할 위협이라든지, 다른 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든지 여러 가지 압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시온은 그야말로 혼자서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본가에서 약간의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영지는 남작급도 되지 않은 더 작은 영지인지라 기대할 것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짐이 되면 짐이 될 것이었다.
“영광입니다. 마리 님.”
시온에게도 시간이 부족한 것은 귀족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열매를 놓치기에는 너무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시온을 답을 하자 그곳에 있는 모든 귀족과 기사와 마법사 관련된 자들이 시온을 쳐다보았다. 전장도 전장이었지만 이것 역시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온은 마리의 앞으로 나아갔다. 마리의 표정도 의미심장했다. 간절히 가지고 싶은 것이 이제 손아귀에 좀 들어오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세운 공훈 때문에 내가 더 좋아진 모양이군. 다른 녀석이 뭔가를 하기 전에 운이 좋게도 독점한 것이 많으니까.’
원래라면 여러 공방이 있어 나뉘었어야 할 공적이긴 한데 시온이 생각해도 신기한 부분이 많았다.
시온이 그녀 앞으로 가는 동안 여러 가지의 모습이 보였다. 질시하는 자도 있었고 부러워하는 자도 있었다. 또는 어레이나 오드밀, 킬번처럼 기회의 사다리로 보는 자도 있었다.
“나 마리 자링은 이번 전쟁의 가장 큰 공을 시온 니벨룽이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것으로 남작위를 제안합니다.”
그녀가 제안한다고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서였다. 하나는 그녀가 실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명목상 하이거 자링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작위의 형식적인 최종승인은 황제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시온의 발목을 잡을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마리가 시온에게 작위를 주겠다고 한 시점에서 거의 결정이 난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랐지만 어쨌든 얻어야 할 것이었으니까.’
물론 이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ㆍㆍㆍ
마지막 연습 날이 되었다. 벨저는 시온이 배우는 속도에 더욱더 탐이 났다. 희한하게도 시온은 항상 처음 가르쳐줄 때는 느리다 못해 실수투성이이었고 원리를 설명해줘야 거나 잡아줘야 하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구나, 허허. 과연 이 녀석이 혼자서 어디까지 해나갈지 말이야. 나란 녀석이 끈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이렇게 인연을 만들고 노년의 소일거리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어떻게 보자면 무기술을 알려준 벨저 네로빙거는 시온의 스승이었다. 가타부타하고 알려줬으니 이제 자신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빼고 시온에게 그냥 넘겨버린 것이다. 거기엔 삼 년이 넘는 종자 생활도 금전적인 대가도 누군가를 봐달라는 암묵적인 부탁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갈망과 호기심이 작동한 결과였다. 그냥 내어주고 그 뒤를 한번 지켜보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충동을 벨저가 느낀 것이었다.
‘나만 해도 답답한 삶이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꼭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편했던 것이 흥미로운 인생인 것은 아니지.’
“이게 마지막 날인 것은 잘 알고 있느냐?”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선배님을 붙이게.”
“예, 선배님.”
“네놈의 스승은 되지 못해도 그 단어는 받아내야겠다. 껄껄.”
“.......”
“그 나이에 귀족 작위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고는 있는 거겠지?”
작위라고 해서 다 같은 작위도 아니었다. 제국이라는 형식이 있고 근방의 왕국이라는 형태의 나라가 있다.
또는 도시연합체의 성격을 띤 나라도 있으며 부족 정과 같이 돌아가거나 아니면 마법사들처럼 굉장히 특이한 형태로 돌아가는 형태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쳐주는 것이 역시 제국이라는 뿌리 깊은 역사에서 오는 작위였다. 사실 제국 안에서 명분을 두고 싸웠으니 몰수한 작위가 제국과 관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순전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알고는 있습니다. 사실 받을지 말지 고민 정도는 했습니다.”
“당연히 받아야지! 네놈이 걱정하는 것이 암살당할지가 아니더냐?”
“그런 말씀은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배경 없는 자가 작위를 받았으니 가진 자가 죽게 되면 그 작위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그 불쌍한 녀석이 누구인지 밝혀지면 나에게 꼭 알려주거라.”
벨저부터가 시온이 위험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가 않았다. 하지만 시온이 만에 하나라도 당할 거라는 계산을 두고 있지를 않았다.
‘알리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순 있겠지.’
괜히 창피하다고 해서 당당한 척하는 것보다는 벨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일 터지면 도와주시는 겁니다.”
답변 대신에 벨저는 시온을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마지막은 내 제자 녀석과 재대결로 하는 것으로 하지.”
“?”
시온이 거부하기도 전에 저쪽 끝에서 휀트 루지엥이 걸어 나왔다. 휀트 루지엥은 그 이후로 연회장에서 한번 봤을 뿐이었다. 것도 끝에 숨어 있는 것을 어레이가 알려줘서 얼굴만 확인했다.
‘살이 많이 빠졌군.’
시온은 휀트의 인상이 그동안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았다. 그때에는 신수도 훤하고 자신만만한 것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살이 빠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눈은 퀭하고 볼이 완전히 들어간 것이다. 휀트는 그 결투를 기점으로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살면서 이렇게 고통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랜만이군.”
시온이 말을 꺼내자 그의 초점이 시온을 향해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 눈빛은 두려움과 질시가 복잡하게 섞인 것이었다.
“........”
그때와는 다르게 휀트는 말이 없었다. 벨저는 제자를 흘깃 보고는 생각했다.
‘저런 표정을 처음 본단 말이지. 내 예상대로 거대한 벽이 되었단 거지. 네가 시온을 상대로 극복할 수 있을지는 네 노력 여하에 달렸다. 오만한 제자야.’
“하겠는가? 허허. 젊은이들의 혈기가 여기까지 뜨겁게 느껴지는군. 실력검증을 할 겸 비공식적으로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떤가?”
“뭐 어쩔 수 없죠.”
시온은 솔직히 하기는 싫었지만, 그러면서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새로 배운 이름도 정하지 않은 메이스 술을 점검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가 휀트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크흐흐. 어쩔 수가 없다라, 내가 이 지경까지 왔나.”
휀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항상 누군가의 위에서밖에 군림해본 적이 없는 그가 받아보는 최고의 대접이었다.
시온과의 일들은 모두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휀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고통을 떨쳐내는 방법은 녀석을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사실 휀트는 벨저가 시온을 따로 가르치는 동안 구석에서 이를 갈며 검술을 연마했다. 아마 살면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연습해 본 적은 없었다.
가문도 좋고 재능도 훌륭했던 그가 기사가 되기 위해 한 고생은 겨우 선택을 결정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ㆍㆍㆍ
삽시간에 얽혀든 격돌은 전과는 사뭇 달랐고 진지했다. 겉으로는 벨저 하나였지만 사실 이곳에 관전자는 몇 명 더 있었다. 마리와 귀족들의 각자의 스파이들이었다.
‘그새 성장했군.’
‘씨발.’
두세 번의 일격이 격돌하고 시온과 휀트는 서로에게 놀랐다. 휀트는 놀란 정도가 아니라 욕지거리가 나오는 수준이었다. 시온은 저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노력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각인해서 강해지는 것이니 버틸 수 있는 육체와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는 마나 감지의 재능 그리고 격돌을 소화해낼 수 있을 만한 마나가 필요할 뿐이었다.
충분히 휴식한 시온은 마나 수련에도 적극적으로 임했고 새로운 수련법으로 강탈한 질 좋은 마석으로 흡수한 마나 결집량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자연스럽게 앤드류의 행동각인마법도 효율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것을 떠나서 벨저가 전수한 메이스 술의 정교함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걸 확인하는 벨저도 지금 표정관리를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하고 붙어도 되겠다만 허허.’
물론 시온이 구사하는 것이 완벽한 메이스 술은 아니었다. 벨저의 주 무기는 아무래도 검이었다.
그것도 롱소드였다. 그러니 메이스로 쓸 수 있게끔 해도 원래의 근본이 메이스가 아니므로 그 위력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제국 메이스 교본술을 한참 웃도는 무기술인 것은 확실했다.
깡! 깡! 깡! 깡!
엄청난 소리가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누가 보는 것도 없었고 시온도 자신이 펼치는 메이스 기술에 약간 놀란 상황이었다. 이 정도로 강렬하게 펼쳐질지는 몰랐다.
‘신나는데.’
전력을 다해도 상대가 받아내 주니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시온은 육체와 격동하는 마나 사이에서의 조율을 생각하며 그 과정에 빠졌다.
스파이들은 아예 넋이 나간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시온이 전장에 있을 때보다 살벌해진 것이었다.
-애초에 전장에서 힘을 아꼈다는 것이 맞는군.
-벨저 공의 숨겨진 자식이 아닌가?
-가능성이 있지 역대 단장들이 사생아가 없었던 적은 없으니···.
그렇게 복잡한 교환이 일어나던 와중에 슬슬 휀트의 손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이런 무식한 새끼!!! 얼마나 힘이 센 거야!!’
어느 정도 결투라는 것이 위험성을 내포하곤 있지만 시온이 펼치는 공격은 거세지면 거세졌지 손 속에 여유를 두고 있지는 않았다.
‘잠깐만 나 죽는가?’
순간 휀트의 눈동자에 절망이 서렸다. 주마등이라는 것이 스친 것이다. 더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소리를 치기도 버거운 수준의 속도였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벨저가 끼어들었다. 그의 검이 시온의 메이스를 받아낸 것이다. 시온는 사실 아까부터 마나를 줄여가고 있었다.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는 이게 문제였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허. 조금 과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니야, 아니야. 못난 제자 놈이 정신이 바짝 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