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304)

오리엔 거성(2)

“거성은 텅 비어있습니다. 그리고 오리엔 측의 보병들은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로 빠졌습니다.”

시온은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오리엔 측의 오해와 다르게 시온은 그냥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던 것이었다.

‘뭐 나에 대한 생각이 좋지 않게 박힌다 해도 확실하게 짚고 가는 것이 좋으니까.’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걸으라고 했다. 괜히 이런 말이 구절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한 번 문제가 생기면 큰일로 번질 수도 있는 법이었다.

하물며 이런 일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장자를 가지고 거래에 임하는 것이니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면서 진행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시온의 경계와는 다르게 오리엔 측은 숨 가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보석 같은 게 좋겠습니까?”

“혹시 니벨룽 가문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나?”

조용했다. 니벨룽 가문은 정말로 작은 가문이고 영지도 너무 작은 데다가 그마저도 오지에 있어 알고 있는 사람이 없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들은 종일 초조했다. 시간은 없는데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올드르는 별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데 분명히 매운 구석이 있다는 거지.’

그는 할 수 있는 한 시온의 여러 가지 행동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시온이 뭘 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시온이 이대로 협상을 거부하고 돌아가게 된다면.”

그는 식은땀이 났다. 물론 피에르가 여기서 사라지는 것은 그가 다음 상속자가 되니 좋은 면도 있지만, 이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온 자체도 장난이 아니지만, 시온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영지까지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

그게 종일 고민한 결론이었다. 그 결론을 내고 나니 미칠 것 같았다. 시온 생각만 하면 하루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들어온 소식에 그는 긴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시온 남작님이 안으로 들어가시겠답니다.”

아직 작위 수여가 되지도 않았건만 받을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두가 시온을 남작으로 보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군.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자. 그 미친 형이 이번엔 도움이 약간 됐어.’

ㆍㆍㆍ

시온은 말로만 듣던 오리엔 영지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확인했던 대로 어떤 적대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이번 일이 틀어지지 않게 하려고 많은 준비를 한 것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피에르를 돌려받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에 더욱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곳에 다른 용무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받고 있었다. 이런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당연히 모든 보병이 이동했기에 안의 내부 인사를 일부분이었다. 반면에 시온은 많은 보병을 데리고 와서 그대로 내성을 받아냈다.

순탄했다. 이렇게 받아 내는 상황은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다. 사실 시온도 중간에서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요구를 오리엔 영주가 들어준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가 시온 니벨룽이군.”

시온은 오리엔 영주 에른스트와 마주 서게 되었다. 에른스트는 시온을 보고 자기 생각이 맞았음을 알았다. 

‘이런 아들이 하나 있었다면 내가 이 꼴은 안 났을 것을.’

“그렇습니다.”

“자네는 니벨룽 가문의 장자인가?”

“아닙니다. 저는 형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 기사로 출발한 것이군.”

“정확히는 마법사입니다. 기사는 장자인 형이 가져가야 해서요.”

“사실인가?”

시온이 마법사 패를 보여주자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기사라고 널리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자가 마법사 자격까지 가지고 있다니 희귀해도 정말로 희귀한 경우였다.

‘저런 자식이 있다면 막내라도 모든 것을 넘겨 줬을 것인데.’

에른스트의 깊은 곳에서 욕망이 솟구쳤다. 그 정도로 많은 업적이 있는 에른스트가 특히 가지지 못하고 애를 태우던 것이 바로 후계를 맡길 만한 자식이었다.

자식은 많았는데 그의 마음에 들만 한 자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시온을 보자마자 그런 욕구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온의 아버지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네 아버지가 정말로 부럽군.”

“?”

아무래도 이번 일에 대해서 나름 준비했던 시온은 일이 술술 풀리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 중요한 협상은 긴 대화를 나눠야 했고 또 양쪽 다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어느 정도 결론이 흘러나와야 했다. 

그 과정이 길어지면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벌어지게 된다. 뜻밖에 호감을 보인다는 점을 시온이 알아차린 거였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죽일 놈으론 보이진 않는군.’

ㆍㆍㆍ

잠깐의 휴식 이후 협상이 시작됐다. 시온은 이번 일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게 높게 보지는 않고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여기에 오게 된 이유도 작위를 준다고 해서 떠밀린 느낌이 컸다.

어차피 결과적으론 좋게 끝나겠지만, 항상 내용이 문제가 있는 법이다. 어디까지 받아낼 수 있는지다. 

아무리 애를 써봐야 피에르를 대체할 만한 아들이 많아 받아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었다.

‘자식이 정말로 많군.’

둘째는 안면이 있고 셋째 넷째 다섯째 계속해서 아들이 나왔다. 게다가 딸도 셋이나 있었다.

아무래도 인원이 좀 많아졌다. 시온도 나름 데리고 오긴 했지만, 수가 적은 편이었다. 

‘저 녀석이 우리를 이 꼴로 만든 자인가.’

오리엔 영주의 아들들은 시온을 보고 화를 참느라 애를 썼다. 거기엔 단순히 시온이 적이었기 때문에 가지는 것도 있지만, 막상 시온을 보고 나니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제기랄, 다 가졌어.’

솔직히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시온은 그림 같은 이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그런 인간이었다.

작위까지 받아내면 그야말로 삽시간에 귀족계에 소문이 날 것이었다. 게다가 배경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들리는 얘기에는 여러 소문이 있었다. 벨저 공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얘기부터 다른 자가 있다는 둥. 

“벨저 공과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사실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그런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시온의 뒤에 있는 자가 네로빙거 가문이라는 소문이 많이 있었다.

시온이 잠깐 뭐라고 할지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해달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검을 가르쳐 주신 선배님입니다.”

“?!”

“!!!”

모두가 놀랐다. 전 엠페러가드의 단장이 선배님이라니 기사로서 친분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나이나 명성을 생각해봐도 그렇게 친근한 단어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보통 관계가 아니군.

-네로빙거 가문이 얽혀 있는 것은 이제 확실해졌다.

방금 답변으로 다시금 이들은 가지고 있던 방법에 대한 태도를 대폭 수정했다. 아무래도 실수했다가는 정말로 오리엔 영지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그런 압박이 생긴 것이다.

“어쨌든 이번 거래엔 많은 자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결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시온은 준비해온 답변을 꺼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였다. 전장이 기울었다고 해서 다 죽는 게 아니었다. 포로가 무척이나 많이 생긴다. 그리고 기사들도 많이 잡았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피에르도 데리고 있다. 단어 그대로 많은 자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들었다. 올드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온의 말이 보통 의미로 전해지지 않았다. 

수틀리면 여기를 결딴내겠다는 의미로 본 것이다. 그리고 시온의 육체를 본 순간 모두 질려 버리고 말았다. 

기사들 자체가 몸이 대단한 편이긴 했는데 시온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기를 뽑는다면 꼼짝없이 다 죽어야 했다. 그 정도의 실력의 차이가 벽이 느껴졌다.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올드르가 재빨리 나서서 말했다. 동생 녀석들이 실수하기 전에 나선 것이다. 아무리 같은 가문에 같은 핏줄이라고 해도 성격도 각기였고 생각도 다 달랐다.

사실 발끈한 자가 있었다. 그래서 올드르한테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온이 말했다. 

“피에르를 부르겠습니다. 형제간의 재회는 일이 끝나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일 덕분에 올드르를 비롯한 귀족들은 시온이 말한 의미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생각하느라 골몰했다. 영지가 가문이 걸려 있는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실수했다. 확실하게 동생들한테 얘기를 해두는 것인데. 시발. 꼬투리를 잡아 지금 우리를 다 죽일 생각을 하고 있어.’

너무 안일하게 이 일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악몽처럼 피에르가 말했던 말이 귀에 울렸다.

‘가문을 위해서 가장 애쓰는 게 자기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을지도.’

피에르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시온에게 허락을 맡고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은 오리엔 측 사람들이 기절초풍할 만한 일이었다. 

미친 새끼로 유명한 피에르가 저렇게 공손하게 행동을 한다? 그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에게도 무례하게 대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닌 자였다.

“얼굴이..”

그 정도로 피에르는 몰골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건 내 잘못이다. 시온 경은 나에게 아주 잘 해주셨다. 아주 최고의 대우를 해주셨어. 그 점을 먼저 너희에게 말하고 싶다.”

뜻밖의 말에 오히려 시온이 피에르를 희한하게 쳐다볼 정도의 발언이었다. 

‘정신이 나간 건가?’

시온은 솔직히 약간 이쪽에 무게도 두고 있었다. 어레이부터 시작해서 많은 자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앞으로 가서 협정 중이던 종이를 가지고 와서 쭉 읽었다.

높은 배상금부터 해서, 볼모가 둘에, 강제 약혼, 오리엔 측이 가지고 있던 남작 하나를 떼어주는 파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남작 영지 하나 정도면 다시 전쟁이 불붙을 만큼 가치가 높은 내용이었다. 시온도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오리엔 가문의 장자로서 이 약정을 받아들입니다.”

“?”

“?”

“?”

그리고는 재빨리 인장을 가져다가 콱 찍어 버렸다. 이 어이없는 행동에 모두가 넋이 나가버렸다.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피에르는 분명히 계승권이 가장 높은 자인 것이다.

“너희, 불만 있나?”

“당연히 있지 미친 새끼야!”

다른 동생들이 드디어 화가 나서 터져버렸다.

“멍청한 놈들, 너희가 그래서 멍청한 거다.”

“시온 경. 여기 사인을 해주십시오.”

“좀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나?”

“전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이렇게 일이 벌어졌는데 일단은 하고 보자는 생각에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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