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304)

금박의 정수(1)

“협정서 이득의 일부를 시온에게 넘겨주잔 말이냐?”

나쁘지 않은 얘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와 펜부르크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에 있는 귀족들이 협정의 내용을 어림잡았을 때 그것이 다 이뤄지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반만 된다고 해도 성공이라고 보고 있었다. 기간도 넉넉하게 잡아 한 달 정도로 보고 있었다. 

시온을 보낸 것은 압박을 넣기 위해서였지 이것을 이루라고 보낸 것은 아니었다.

자링 가문과 오리엔 가문의 서로를 이기기 위해 벌였던 긴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됐었다. 

그 정도로 골이 깊었다. 과거를 돌아봐도 이렇게 압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시온 경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닙니까.

-지금 시온 경을 원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른 자가 구미 돋는 제시를 하기 전에 먼저 앞질러야 합니다.

곧 귀족들이 시끌시끌해졌다. 영지전 때보다 더 시끄러웠다. 그 정도로 시온이 남긴 이번 전장에서의 인상은 깊었다. 

여기에 협상 건까지 더해지니 이제 반대하던 귀족의 의견 자체가 깡그리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의 문제의 흐름이 바뀌어 버렸다.

대체 시온에게 어느 정도를 내줘야 하는가, 주제부터가 그런 것이었다. 

축제를 계획하자는 자가 곧 세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 축제를 준비하는 인원이...

-왜 그 주최자를 네가 하려고 하는 거지? 마리 님 이것 역시 전공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일은 저희 렌 가문이 하는 것이 항상 옳다고 봤습니다만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내 이름을 달고 당신의 사람을 쓰면 되는 것이지.

-그건 안 될 말이오.

마리 자링의 머리가 갑자기 아파졌다. 

시온의 개선식과 관련된 축제를 하는 것이 옳다고 받아들이자 그 책임자의 직위를 서로가 맡으려고 경쟁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이런 하나하나가 큰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책임자의 자리만 차지하게 되면 시온과 친밀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무엇을 하실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자링 가문의 수석 마법사인 안두르가 시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큰 눈이 시온을 보며 조심스럽게 침을 다셨다.

어떻게 보면 욕심이었다. 마법사들의 모든 요구 사항은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그런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시온 역시 마탑에서 인정을 받은 엄연한 마법사였고 그렇기에 모든 것은 비밀의 영역에 남았다. 특히 시온 같은 경우는 더욱더 다른 자들과 달랐다.

작위를 수여 받을 것이라 정해진 자들은 마법사보다 한층 더 깊은 힘과 자격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마법사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힘과 마음대로 이루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들은 마탑이 가진 힘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탑의 이런 답답한 사슬들은 진짜 실력자들에게 한해서 오히려 더 유리하고 더 좋게 봐주는 장치로 변한다.

“내가 그것을 답할 의무는 없다만.”

시온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법사와 다른 교육과 기술을 쌓는 데에만 시간을 쏟은 기사는 그것을 그냥 관심 두지 않고 대강 넘길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달랐다. 

시온은 시작했을 때의 신분이 마법사다. 시온에게 있어서는 너무 들여다보이는 수였던 것이었다. 

시온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급하게 변해버리자 안두르의 얼굴빛이 단번에 굳어버렸다. 

‘큰 실수를 했다. 오리엔에서의 협상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어. 이 자는 완전히 다 꿰뚫어 보고 있다.’

“결례를 끼쳤습니다. 주제넘은 말을 꺼낸 것 같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 그 정도로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시온 님이 정당하게 마법사 패를 얻으셨다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이렇게 깜빡깜빡하곤 한답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이번에 금박의 정수를 만들기 위해 큰 규모로 짜고 있었다. 

작업들을 연습할 방법을 미리 정해두고 헤아리던 중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들어가게 되면 안 됐다. 그것은 현대인으로서의 자신을 깨닫고 나서 한 번도 바꿔본 적이 없는 시온의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러면 거기에 재료를 모아 주시오.”

“물론입니다. 어차피 싸울 일도 없으니 엮인 자들에게서 재료를 다시 받아내겠습니다.”

“값은 돌아가서 치를 테니 말을 전해두도록 하십시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두르의 잔머리가 다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을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값을 상당 부분 부담할 자들을 모아봐야겠군.’

그렇다면 시온에게 저지른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펜부르크로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고 자링 가문을 대표로 파견됐던 무리는 모두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은 바로 시온의 존재였다.

오리엔 가문에서 시온을 따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던 기사들도 막상 옮기고 나니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항상 흡족한 상태였다.

이런 기분은 더욱더 높은 상태로 나아가 단단한 충성심이라는 모습을 만들어 갔다. 

오리엔 영지에서의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을 생각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시온이라는 하나의 존재에 검을 바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만족감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시온에 대한 충성심은 시온과 관련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상하관계 그 순서가 형성됨을 의미했다.

-난 인정 못 하겠다. 개새끼야.

-네가 인정을 하든 말든 시온 경의 메이스를 받아 본 건 나다. 너희는 내 뒤에서 겁쟁이처럼 움츠러들었을 뿐이다.

-부상의 정도라면 내가 올라서는 것이 맞지. 나는 경의 일격에서 살아남았다.

시온이 정수 제작에 들어가고 그 주위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기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결투밖에는 없지. 검을 들어라.

-멍청한 녀석. 그러니까 너는 올라갈 수 없는 거다. 시온 경에게 먼저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것이 기사 된 자로서 본분이 아니냐.

-알란 말이 맞다. 클락 너는 아무래도 자격이 없군. 그러니까 경의 공격을 받아보는 영광을 맛보지 못했지.

-개새끼가. 나를 모욕 한 건가? 뽑아라. 이건 시온 경의 명예와는 관련이 없는 다른 의미의 것이다.

한가로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불이 붙자 평생 사람 죽이는 법만 연구한 자들답게 주변의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댔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오리엔 가문에서 시온으로 검을 바꿨을 때 받게 될 손해에 대한 걱정은 예전에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들의 막사에 어딘지 익숙한 인물 하나가 걸어들어왔다. 

멋들어진 수염은 깔끔하게 잘려있었고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가 아문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는 남자였다.

“볼브?”

“자네가 왜 여길.”

“우리를 데려가려는 거라면 소용없는 짓이라고 미리 말해두지. 우리는 이미 시온 경에게 검을 바쳤다.”

시온에게 붙잡혀 피에르와 함께 포로로 굴러다니던 볼브 경이었던 것이다.

“시온 경을 한 번 볼 수 있겠나?”

“어림도 없다. 시온 경에게 중요치 않은 일들은 제한되어 있다. 목적을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볼브.”

볼브는 얼마 전까지 오리엔 가문을 모시며 같이 자링 가문을 파괴할 것을 맹세하던 자들이 전부 단숨에 변해버렸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개선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적대하는 기세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친분이 있던 알란까지 그럴 정도니 다른 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후우. 알란, 예전 일을 생각해서 시온 경에게 나를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주게.”

다른 기사들의 눈이 알란을 향했다. 알란의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온 경께선 안에서 중요한 일을 수행 중이시다. 예전의 추억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시온 경에 대한 충성심이 더 중요하다. 이해해 주길 바라네. 오랜 친구.”

작은 틈도 없다는 것이 느껴진 볼브는 이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네. 그러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지.”

“.......”

“나도 경에게 검을 바치려고 왔네.”

“?!”

다른 자들의 얼굴에서 놀라움이 묻어 나갔다. 

자기들보다 더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던 볼브가 모든 것을 버리고 시온에게 오는 것은 좀 더 어려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볼브는 부인도 있었다.

“부인은?”

“아는 자에게 맡겨놨지. 남자라면 선택해야 할 때는 과감히 선택해야 하는 법.”

“?”

“이제 내 속내를 너희에게 말했네. 이제 시온 경을 볼 수 있겠는가?”

놀라운 건 놀라운 거지만 기사들은 볼브의 존재가 그다지 반갑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볼브가 높은 직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가문의 배경도 가지고 있었지만, 실력도 좋았다. 

-저 간사한 녀석이 시온 님에게 해가 될 것이야.

-나도 동의하네. 이대로 쫓아 보내도 되지 않겠는가?

지금도 상하관계 정리를 못 한 기사들은 여기에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절대 아무도 받지 않으시겠다는 명이 있으셨다. 그러니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무리를 움직이는 힘과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시온 밖에는 없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다른 귀족도 있었고 어레이 급의 기사들도 있었지만, 이들부터가 시온의 말이 없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자들이었다.

약간의 내용을 들은 볼브는 되려 흥분했다.

‘완전히 장악했구나. 그때 그 전쟁터에서 내가 두려워하고 도망갔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었군.’

이어서 자기 자신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럼 기다리지.”

다들 매우 차가운 태도였지만 관여치 않고 볼브는 한쪽에 어설프게 자리를 잡았다. 시온이 나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심산이었다.

조금이라도 인상 깊은 행동을 해야 했다. 그런 생각들로 볼브의 머릿속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시온이 나오지 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출발해야 할 날은 벌써 삼일이나 지났다. 시온이 금박의 정수 제작에 들어갔다는 것을 모르는 다른 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기다리고만 있었다.

“아직도인가?”

“예. 오늘까지 더 이곳에 머무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직 잠깐의 얘기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종자인 필립스뿐이었다. 사실 필립스도 정확히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시온이 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 말을 죽어도 지킬 생각이었다. 

어쨌든 볼브는 기이한 자세로 사흘 동안 서 있다. 이마에 땀이 얼마나 나는지 그는 한눈에 봐도 안쓰러운 처지로 보였다.

‘반드시 버텨 낸다. 반드시. 반드시 해낸다. 시온 경께 받아들여지고 말겠다.’

그의 남다른 각오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갔다.

“엇????”

“?!”

“무슨 일이지??”

그때였다. 시온이 제작에 들어간 장소에서 황금색의 광택이 가득해지는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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