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득(1)
시온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수많은 사람의 물결 사이를 지나면서 뭔가에 제대로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마리가 이렇게 말하라고 시킨 건가?’
하지만 시온의 속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시온뿐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사람 사이에서 정신 차리기 어려운 것은 다른 자들도 그랬다.
-대단한 자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차분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역시 내 예측이 맞았어. 내 촉이 좋단 말이지. 시온은 더 올라간다.
기사나 마법사나 가장 큰 덕목으로 치는 것은 바로 침착함이었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차분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그런 복잡한 것을 풀어볼 줄 아는 그런 종류의 힘, 그런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 정도로 서로 죽이고 박는 싸움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 이 두 신분은 이런 것들을 갖춰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성격으로 봤다.
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뜨겁게 뻗치는 욕망의 근처에서 맛보는 흥분도 장난이 아닌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은 많은 자에게 깊게 새겨지고 있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중에선 두드러질 정도로 혼자 깊게 고민하는 자가 있었으니 베르토 렌이었다.
‘대체 왜지? 왜? 왜 시온 경의 표정이······. 내 인상이 좋질 않았나? 무언가 분명히 실수했다. 실수했어. 실수했다.’
그는 이곳의 반응이 대단하면 대단한 만큼 세차게 밀려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은 그만큼 실패해선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만큼 많은 금화가 들었다. 그리고 주위에 자랑도 했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많이 빌렸다.
단 한 명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즉 시온을 위해서 많은 부담을 진 것이었다.
“어디 미흡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시온이 들릴만한 목소리로 불렀건만 반응이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르토는 다르게 오해했다.
‘일부로 대답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역시 첫 번째 계획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베르토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온이 좋아할 만한 것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선물, 선물을···. 뭐로···.’
‘평범한 것은 안돼. 좀 더 시온 경에게 필요한···.’
ㆍㆍㆍ
이번 축제는 시온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러면서도 펜부르크의 갈라져 있던 귀족들의 세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도 했다.
시온이라는 중심적인 얘기로 돌고 도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베르토 렌은 시온의 앞에다 다른 것과 확연히 다른 작은 상자를 시온에게 밀어 넣었다.
시온은 단번에 그 안에 있는 것이 고농도의 마나가 뭉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자는 쉽사리 다른 마나를 뒤져서 찾아낼 수 있는 마법 장비에 걸리지 않을 그런 다른 것과 달라 보이는 그런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시온을 속일 수는 없었다.
시온이 이곳에서 딱 하나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마나를 찾아내는 뛰어난 느낌이었다.
금박의 정수를 거두어들였지만, 여전히 마나의 대해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시온의 눈에는 색다른 빛이 어렸다.
‘이걸 나한테 내놓은 것을 보니 팔려고 하는 건가? 이런 물건이라면 바로 사야지. 얼마를 원할까.’
시온은 렌 가문을 잘 알고 있었다. 렌 가문은 상인 길드를 가지고 있는 굳센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상인 귀족이었다.
당연히 렌 가문과 얽혀 있는 자들을 과거 경매장에서 여러 번 봤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점은 만만치 않은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내놓는 것이 얼마일지 시온은 쉽사리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앞에 있는 베르토 렌은 그가 봤던 렌 가문 사람 중에 가장 판단력이 빠르고 똑똑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크게 부를까.’
시온은 얼마를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의 겉에 드러나 있는 모습은 매우 밝았다.
“어렵사리 구한 물건입니다. 가문 내에서도 오랫동안 임자가 없어서 그냥 가지고만 있던 것이기도 합니다.”
“열어봐도 됩니까?”
“열어보시라고 가져온 겁니다.”
시온은 바로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푸른색의 정수가 빛을 내고 있었다.
‘성공이다!!’
베르토는 그 광경에서도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 없어 보이던 시온의 얼굴에서 흥미로워하는 눈빛을 읽은 것이다.
“굉장한 물건이군요.”
“인어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수입니다. 당연히 구하기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안두르가 팔라고 했을 때 절대 넘기지 않았습니다. 언젠간 쓸 때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가지고······.”
“드리겠습니다.”
“?”
시온이 가격을 제시하기 전에 뜸을 들이던 잠깐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베르토 렌이 빠르게 말을 붙였다.
그는 잔뜩 흥분해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듭니다.”
“감사하군요. 시온 경에게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제 이름은 베르토 렌입니다.”
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온에게 자연스럽게 악수를 부탁했다. 시온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뭔 땀을 이렇게 흘렸어.’
시온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그의 손이 땀으로 미끈거리자 의문을 가졌으나 풀 수가 없었다.
“그냥 가져도 되는 겁니까?”
“예. 이번 전설적인 승리의 기념으로 제가 챙겨드리는 것입니다.”
베르토는 시온과 친분을 쌓았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는 미소를 지었다.
ㆍㆍㆍ
“수도에서 절 부른단 말입니까?”
시온은 마리에게 그 말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시온이라고 해서 수도에서 하는 수여가 가치가 높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실 준비한 것도 없는데 생각할 틈도 없이 그리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뭔가 누군가 나한테 수작을 부리는 건가.’
“그래. 그래서 이번에 준비한 것은 어땠나?”
“개선 말입니까?”
“준비를 많이 했지.”
마리는 시온에게 바람직한 한마디를 듣고 싶은 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좋았습니다.”
“그렇지? 다들 네 승리에 흥분해 전쟁의 피로를 단숨에 잊었다.”
긴장되긴 했지만 시온이라고 해서 나쁜 경험일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떤 기사든 마법사든 귀족이든 간에 자신의 이름으로 열리게 되는 이러한 일은 거의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저한테 원하시는 거 있습니까?”
하지만 시온은 그 점에 대해서 마리에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이해관계가 확실한 유형이다.
“있지.”
“그게 뭡니까?”
“무사히 다녀오면 된다.”
“?”
시온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꼴이 뭔가 나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정을 좀 앞당겨야 할 것 같군요.”
시온이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들도 썩 좋지 않은 얼굴이 되었다.
지금 축제는 한창이었다. 그런데 시온이 이것을 즐기지 않고 일정을 앞당긴다는 것은 무언가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온 경이 수도에서 만날 만한 인물이 누가 있지?
-네로빙거 가문과 깊게 연결된 것은 이제 사실인 것 같군.
아무래도 마리를 포함한 모두가 시온이 이미 좋은 제안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기 시작했다.
불길했던 그 예감이 맞은 것이다. 방금까지 좋았던 감정은 다 없어져 버린 마리는 그녀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져서 시온을 은연중 흘겨보았다.
옆에 있던 귀족 하나가 그녀에게 귓속말을 하나 건넸다.
-베르토가 정수를 잘 건넸답니다. 만족한 것 같은 얼굴을 보였다더군요.
-정말인가?
-예. 베르토 녀석이 사람 다루는 건 귀신 같은 녀석이지 않습니까.
시온이 한참 이곳에서 자유 기사로 활동했을 때 베르토 렌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이유가 있었다.
베르토 렌은 그 정도로 활발한 방랑상인, 그런 길드와 도시동맹의 한 톱니바퀴를 자랑하는 상계에서 형성된 풍부한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자였다.
ㆍㆍㆍ
“주인님. 굉장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시온은 오랜만에 자신의 노예 초이를 보았다. 초이는 마법사 노예였고 그런 고위 노예답게 셈을 잘하고 각종 서류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박이 난 모양이군.’
시온은 펜부르크의 식량을 대량으로 사들인 그런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일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 처리할 그 순간을 잡아낼 기회가 없던 시온은 일의 나머지를 초이에게 맡겨 놓았다.
가진 재산의 처분을 맡기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이에게 걸려 있는 제약의 못이 있기에 그랬다.
하지만 과거 초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믿어줬다며 감동을 했다.
‘그래도 도망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겠지.’
제약의 못을 해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일도 아니고 얼마든지 시온의 금화를 들고 튀어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래 잘했다. 이득이 났으면 다행이지.”
시온은 그냥 제때 팔아서 이득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재수 없으면 모든 돈을 다 잃었을 판인데 안 잃은 것이 어디인가.
“헤헤. 시온 님. 시온 주인님이 오실 때까지 정말 닳고 닳도록 기다렸습니다.”
초이가 진짜로 기쁜지 그런 의미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온은 거기에 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무언가 자기가 한 행동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런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너 설마? 얼마 수익 못 낸 것이냐?”
하지만 시온은 그 반대에 찍어보기로 했다. 거꾸로일 수도 있는 법이다.
방금까지 만면에 만족감이 넘쳐 흐르던 초이의 얼굴이 급히 딱딱히 굳어 시온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경. 이쪽으로 오십시오.”
시온은 그를 따라 펜부르크 거성과 가까운 거리를 따라갔다. 그 와중에 많은 자가 시온을 알아봤다.
시온은 익숙지 않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을 하면서 초이를 따라 마지막 길의 모퉁이로 꺾었다.
이곳은 곧바로 펜부르크 광장과 이어진 곳이었고 펜부르크 내에서 가장 큰 값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왜 여기에 오라고 한 것이냐?”
“시온님. 여기에 있는 모든 건물의 반이 전부 주인님의 것입니다.”
“? 무슨 소리야. 그만한 금화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경의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 영광에 욕심이 너무 앞선 나머지 계속 사고팔고 하는 짓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주인님께 제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이 노예는 아주 기쁩니다.”
시온이 식량을 약간 먼저 앞질러서 독차지한 양이 있기는 했고 그것이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현대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그런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극단적인 수익이 나버린 것이었다.
‘분명히 다른 귀족한테 얘기가 돌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내가 무슨 성스러운 기사인 줄 아는 것을.’
“하여튼 잘했다. 정말 잘했다.”
금화가 많으면 일단은 좋은 것이다. 작위를 받게 되면 영지에 쏟아부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