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득(2)
시온은 책상에 쌓여 있는 여러 계약이 얽힌 문서들을 봤다.
‘이게 모두 초이가 만들어 낸 금화라니.’
초이는 영리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시온의 승리를 전제로 내세우고선 이 같은 일을 진행한 것이었다.
‘강한 믿음이 없다면 힘든 결정들이었겠지.’
시온은 그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좋지 않은 만남이었는데도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에게 굳게 믿는 의지와 그에 걸맞은 가치를 되돌려 준 것이다.
서명을 미친 듯이 하면서 시온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하나같이 건물들이었다. 펜부르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것도 있었다.
경매장이나 각종 길드나 제국관리소 같은 공용 건물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에 재능이 있었다니. 근데 대체 왜 마법사를 한 것이지?’
“초이.”
“예,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초이가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시온이 말하자마자 번개처럼 뛰어왔다.
“대체 왜 마법사를 한 거냐? 보아하니 이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이런 쪽에 감각이 있는 줄은 잘 몰랐습니다. 그보다 마법에는 그것을 넘는 어떤 목마름이 있지요. 주인님도 잘 아실 겁니다.”
그랬다. 마법사의 인생 목표는 의외로 간단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전부인 자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자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시온은 너무나 운이 좋은 것이었다.
시온이 쌓아올린 마나의 양은 시온이 가지고 있던 편법과 운이 없었더라면 십오 년이 걸릴 지도 모를 엄청난 양의 마나였다.
“주인님, 그러고 보니 그새 다음 단계에 진입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알았나?”
“사실 저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안으로 들어오실 때 많은 마법사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래?”
“지금 마법사 관리소에서도 온통 주인님 얘기뿐입니다. 주인님과 전쟁을 같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마법사는 펜부르크에선 벌써 등급이 내려갔습니다.”
“진짜냐?”
“예.”
“그러면 내가 데리고 있던 애들은.”
“아마 혜택이 있을 겁니다.”
시온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들한테 따로 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사실 그 언덕 전을 결딴낸 것은 운이 많이 따르긴 했지만 시온이 다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강 마지막 계약 종이를 들어내고 나서 시온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영지전을 하기 전이 잠시 생각났다. 그때는 영지전을 하지 않을지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안고 한 결과 말도 안 되는 이득을 얻어냈다. 단순히 개인적인 성장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은 더 심했다.
‘수도라. 그 전에 더 강해져야겠지.’
수도는 그만큼 욕망의 도시였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한 곳이었다.
시온은 아직도 수도에서 자신의 수여식을 허락한 이유를 잘 몰랐다. 아마 벨저 공이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어림잡을 뿐이었다.
“이것은??? 인어의 눈물이 아닙니까?”
“아나?”
“유명합니다. 이런 가치 높은 정수를..... 오리엔에서 강탈하신 겁니까?”
“아니 베르토가 줬다.”
“!!! 그 작자가!”
“베르토를 아나?”
“예. 그런데 베르토가 주인님에게 이런 것을 줬습니까? 거래하셨습니까?”
“아니, 그냥 선물이라던데.”
“허.”
“왜?”
“베르토는 황제나 왕들의 가문에게 접선할 때 빼고는 그냥 선물로 주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내가 그자들이랑 비슷하다는 것이냐?”
“아마도 그렇게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긴 하겠군. 나는 황제나 왕이 아니니 그냥 줄 리가 없고.’
그나저나 시온은 빨리 이것을 거두어 들어야 했다.
“밖에 잘 지키고 있어라. 나는 지금 이것을 받아들일 생각이야.”
시온이 초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이런 일은 방해받으면 안 됐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일을 치르곤 했다.
초이는 그 말에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님을 완벽하게 모시겠습니다.”
“아니 됐다. 그런데 이번 일 끝내고 너 그냥 자유가 될래? 네가 벌어다 준 금화가 네 몸값을 한참을 넘은 것 같은데.”
노예라는 것은 사실 꽤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보통은 노예도 자신의 자유를 살 수 있었다.
주인의 허락이 있다면 말이다. 만약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몇십 년이고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바다 건너로 가면 그런 풍습이 아주 심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인님.”
“아니, 음.”
“더 좋은 노예가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알았다. 알았다. 만약에 마음이 바뀌면 나한테 얘기하도록.”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인어의 눈물은 재료도 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그것의 결정체였다. 그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설마 금박의 정수급 정수를 이렇게 간단하게 얻어내다니.’
금박의 정수 재료를 모으기 위해 애쓰던 시간이 생각이 났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었다.
시온은 곧장 인어의 정수를 입에 넣었다. 시원하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몰아쳤다. 만약 마법사가 먹지 않으면 여기에서 끝날 일이었다.
시온은 마나 수련법을 움직이는 데에 온 힘을 모았다. 곧 이 서늘함이 세차게 맥박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푸른 액을 장기간 거듭 먹은 결과 신체가 점차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몸이 좋아지는 정도였지만 시온은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든 반사 신경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고 자질이 나빴던 뿌리들이 하나씩 다른 것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금박의 정수로 마나를 쌓아올렸을 때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마나를 얻은 것이다.
시온은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의 마나를 얻을 수 있다고 어림잡고 있었다.
또한,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시온의 근력도 나날이 밀집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근육이 비대해지지 않고 적정선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빽빽하게 강대해지고 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시온이 완전히 눈치채지 못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경험하고는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온이 있던 곳이 물바다가 되었다. 반은 얼어버리고 반은 물보라가 쳤다. 그 가운데에 시온이 있었다.
“후우, 빨리 끝났네.”
시온은 자신에게서 흔들리는 마나를 느끼며 혀를 찼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지. 이런 경우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마법사가 항상 정수를 먹는다고 해서 항상 마나를 얻고 많이 얻는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자질이었고 마나 수련법이었다.
“금박의 정수보다 마나를 더 얻었다.”
금박의 정수로 마나를 쌓아올렸을 때도 엄청난 마나를 느꼈는데 지금은 그것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박의 정수보다 인어의 눈물 결정체가 높은 급은 아니었다.
‘정수 먹는 건 잠시 쉬어야겠군.’
이러면 부작용이 올 수도 있었다.
“주인님. 헉.”
“아무래도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다.”
초이의 머릿속에는 강한 충동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었다. 이 사람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만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분.’
초이는 그 경지를 보고 싶었고 이 사람이 세상을 흔드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었다.
ㆍㆍㆍ
‘하... 저 새끼가 은근히 꿀을 빤단 말이야.’
오리엔 가문의 기사였다가 시온에게로 전향한 기사인 알란이 필립스를 보고는 이를 갈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요새 필립스가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필립스는 시온의 수발을 잘 들고 있었고 그렇기에 종자인데도 이름이 펜부르크에 널리 알려졌다.
시온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 종자도 유명한 경우였다.
그보다 알란이 더욱 열 받아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온이 작위를 받기 위해 제국 수도로 가는 것이 확실해진 상황에 그곳에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연히 지금 기사를 포함해 마법사들 모두 온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시온과 함께 갈 사람에 뽑히는 것이었다.
여기에 종자는 포함되지 않으니 필립스는 시온을 따라서 무조건 갈 것이 확실한 것이다.
“나도 종자가 되고 싶은데.”
“?”
“?!”
알란이 느닷없이 말한 단어는 근처의 보병들을 놀라게 했다.
종자의 목표는 기사가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알란은 기사로서도 이름이 제법 있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가 종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 놀랄 만도 했다.
“하, 필립스 이 녀석. 부럽군.”
알란이 여기까지 말하자 보병 몇은 바로 알란의 기분을 이해해 버렸다. 그 정도로 보병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 필립스였다.
시온과 가깝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펜부르크는 그걸 제일 가치 있게 쳐줬다.
괜히 꿍해 있는 알란의 방향으로 여덟 명의 기사들이 차례차례 걸어왔다. 이들은 다들 무거운 심정이었다.
“뭡니까?”
다들 서로를 한 번 노려보더니 그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가 모두 시온 경을 따라갈 수 없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결정해둬야 합니다.”
“시온 경께서 결정하시는 거 아닌가?”
“멍청한 녀석. 이런 사소한 일까지 경에게 맡긴다면 어떻게 전쟁터에서 선봉을 맡기겠는가. 숫자 추리는 정도는 우리가 정리해서 가야지!”
듣고 보니 그랬다.
행동 하나하나 똑바로 해도 시온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와중에 다 큰 기사들이 이런 것도 결정하지 못해 시온에게 묻는다면 다시 씻기 어려운 인상을 남길지도 몰랐다.
“그 전에 볼브 경을 제외하는 것을 원합니다.”
“미친 새끼가.”
“볼브는 제외될 만하지. 시온 경을 등지고 도망치지 않았나.”
“나는 시온 경의 공격을 받아본 자들이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닥쳐. 개새끼들. 너희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는 나다. 시온 경을 가장 잘 보필할 수 있는 자는 그래서 나다.”
볼브가 너무 열이 돋은 나머지 얼굴이 빨개져서 괴성을 질렀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바닥을 구른 자들이 어디서 우선권을 주장하나?”
“뭐라고? 기사답지 않게 바로 항복한 자들이 뭐가 자랑이라고 검 한 번 안 들은 것을 자랑으로 여겨?”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가 시온님에게 받아들여졌을 것 같나???”
모욕을 받은 클락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누구 할 것 없이 검을 뽑았다.
“나는 경을 위해서 마지막을 내줄 수 있다!”
“지랄하지 마. 너의 그 이상한 성격으로 수도에서 말썽을 일으켜 시온 경을 곤란케 하려고 수도에 친척이 있는 내가 가는 것이 맞지!”
얼마나 소리가 큰지 시온이 우연히 지나가다 오게 되었다.
“너희 뭐 하고 있나?”
여덟 명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전쟁터에 돌진하면 돌진했지 이런 순간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