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304)

뜻밖의 이득(3)

“그러면 뽑기로 하자.”

대강의 얘기를 들어본 시온은 그렇게 말했다. 누구 하나를 고른다는 것이 상당히 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얼굴에 드러난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아주 간절해 보였다. 

심지어 다툼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서도 자기들끼리의 탈락자와 당선자를 추리기 위한 견제가 불처럼 사나웠다.

이유도 서로가 다 그럴싸했다. 

“?!”

“뽑기라 하심은···!”

“말 그대로지 지금 축제의 마지막이니 행상 한 명 불러서 그것을 뽑아봐라.”

현대나 이곳이나 상품을 걸고 간단한 장사를 하는 행상 인은 꼭 있었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사가 보통과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걸고 선발되기 위해 하는 것은 그저 결투뿐이었다.

가장 만만하게 거기에 대해서 내어지는 생각들은 보통은 마상창 시합이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기한이 닥쳐와 있다면 바로 간이 결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뽑기라니.

다들 상상도 못 한 방법이었던 것이었다. 

가끔 명예를 위해 죽음을 고르기도 하는 기사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저질스러운 방법을 관습적으로 못하게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실제로 있었다.

미묘한 정적의 흐름이 잠시 있었다. 이들의 눈이 서로를 본 순간 볼브가 제일 먼저 말했다.

“공평하고 훌륭한 식견이십니다.”

“?”

“?!”

-당했다.

-저 자식 진짜. 

-기억났네. 옛날부터 저런 식이었지.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그 중요한 임무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알란이 아차 싶었는지 반사적으로 말하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 그러면 그건 알란이 하고 나머지도 동의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행운의 여신에게 이 중대한 일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뒤이어 말이 쏟아지는 것을 보곤 시온은 알란을 바로 보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알란이 데리고 온 남자는 시온을 보자마자 크게 감동해서 입을 벌렸다.

“시...시온 님! 시온 님 맞으십니까?!”

“맞다. 내가 시온 니벨룽이다.”

“시온 님을 직접 뵈다니 이런 영광이 있을 줄이야.”

남자는 신기한 모양이었다. 시온은 그를 보다가 말했다.

“잠시 장사 도구 좀 빌리겠다. 내 기사들에게 할 일이 있어서.”

“물론입니다! 그냥 가지셔도 됩니다! 시온 경이 아니었다면 도시가 이렇게 기쁠 일이 없었을 겁니다.”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되지.’

시온은 경계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았다. 이곳은 순식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었다.

“아니다. 빌리기만 하겠다. 그리고 그 대가는 치르지.”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역시 시온 경인가.

-저런 분을 따라야 가슴이 뛰는 법이지. 오리엔에서 옮긴 것을 한 점 후회하지 않는다.

-기사로서 배워야 할 점이 많아.

그러면서 이들은 점점 더 시온이 데려갈 인원에 들어가고 싶어 속이 탔다. 수도에서 벌어질 일을 곁에서 보고 싶었다.

“자 하나씩 뽑아라.”

시온이 말을 하자 하나씩 뭔가를 가져갔다. 

다들 눈을 굴리며 바싹 긴장을 한다. 공개는 일관되게 한 번에 하기로 했으니 뽑은 기사는 기다려야 했다.

다들 자기가 든 것을 움켜쥐고 뚫어질 듯이 쳐다봤다. 간절한 것이다. 

어떤 자는 갑자기 손을 모으고 짧게 기도를 하는 자도 있었다. 

볼브는 얼굴이 벌게져서 누가 보면 원한이 있는 자라도 만난 줄 알 것 같았다. 

쪽지를 그 정도의 기세로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그럼 확인해라.”

시온이 데려갈 숫자만큼 따로 흔적을 남겨놓았다. 

“안돼!!!”

바로 비명이 터졌다. 

“좋았어!”

“여신 님의 가호가!”

소리를 높이며 기뻐하는 자도 같이 있었다. 고개를 떨군 자를 보다가 시온이 생각했다.

‘나 같으면 따로 여기에 남아서 있는 시간도 잘 보낼 것 같은데.’

따라가면 재미있는 일을 겪어 보기야 하겠지만, 여기에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남은 시간을 기사로서 몸값을 단단히 받고 용병으로 한몫 챙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여기야?”

“확실하다.”

“여기에 시온 니벨룽이 있단 말이지.”

마법사의 특징이 고루 묻어 있는 자들은 시온을 만나기 위해 먼 거리에서 임무를 맡고 온 마탑 소속의 귀족들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너무 휘둘리는 경우가 많아. 이번 일도 그런 일 중에 하나겠지.”

“시온 니벨룽에 대한 얘기가 소문이라는 뜻?”

“그렇지. 내가 그런 녀석을 한두 번 본 줄을 알아. 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겠지.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작품일 확률이 높고.”

“에슬린 넌 너무 의심이 많아.”

“의심?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에슬린이라 불린 자는 젊은 나이인데도 마탑에서 높은 서품을 가지고 있는 중상위 마법사였다. 

나이를 생각해보면 차후 마탑의 끝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그런 흐름이 짙게 보이는 자였다.

옆에 있는 여자인 카롤리나 역시 같은 급의 서품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여 마법사다. 

둘은 마법사 가문에서도 유명한 가문의 힘까지 쏟아 부어져 나이에 비해 막대한 마나를 쥔 그런 부류였다. 

에슬린과 카롤리나가 이곳 먼 펜부르크까지 온 것은 다름 아닌 시온 때문이었다.

그들이 받은 임무는 뜻밖에 간단했다. 바로 시온의 실력이 소문대로인지를 알아보고 그것이 맞는다면 마탑으로 끌어들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신기한 인물을 만나러 온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에슬린은 어느새 시온에 대한 생각이 차츰차츰 바뀌었다.

‘나랑 비슷한 나이의 인간이 이 정도로 사람들을 흔들고 있다고?’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 지원과 그에 걸맞은 재능, 그리고 노력,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진 적이 없는 그도 고작 해봐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마탑의 중위 서품이었다. 

중위 서품만 해도 어딜 가서 우러름당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진짜 궁금해.”

그 콧대 높기로 유명한 카롤리나가 시온을 볼 생각에 눈에 생기가 돌았다. 

카롤리나는 한때 미모로 라레테저닛의 자제에게 구애를 받은 적도 있었다.

라레테저닛의 자제를 거절할 만한 여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 그를 거절할 만큼 카롤리나는 마법에 푹 빠져 있었고 남자에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이런 카롤리나가 시온을 끌리는 듯이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보자마자 실망할 테니까 두고 보라고.”

이 둘이 시온을 만난 것은 뜻밖의 상황이었다. 

감정이 복받친 기사와 결과에 의지가 꺾인 기사들이 매우 분명하게 갈리는 그런 일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시온이 누구인지 순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시온의 외모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기 때문이었다.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기사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한 가지 그들의 장비가 밝게 빛을 내며 시온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방대한 마나.’

‘엄청난 마나야.’

시온이 이번에 얻은 마나는 단번에 단계를 올릴 정도의 마나였다. 

시온에게 있는 다중 자질 덕에 단계를 올리는 데에 더욱 많은 마나가 필요해 이들이 봤을 땐 언 듯 그들 이상의 마나를 보유한 것으로 보였다.

에슬린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정수를 대체 몇 개를 먹어댄 거지? 아니 그게 가능한가? 그러면 누가 그것을?’

에슬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정도로 시온의 수준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시온은 마나만 쓸어담은 것이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나 마법서는 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많은 마나를 보유한 마법사가 그 정도 급의 정수를 차지하고 먹어 쌓아올릴 수 있는 마법사가 다른 부분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저러면서도 기사로서의 수준은 이미 괴물이로군. 그야말로 미친놈이야. 미친놈이군. 미친놈이야.’

에슬린의 의심이 빠르게 걷어져 나가고 있었다. 에슬린은 마법뿐이 아니라 많은 용병과 기사들과 알고 있었다. 

시온의 자세나 몸,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기사들의 저런 행동만으로도 이미 시온의 기사로서의 수준뿐만이 아니라 장악력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 자식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데.’ 

대충 봐도 시온이 뭔가를 정하고 그에 벗어난 기사들이 깊게 탄식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야 할 행동이 바로 정리가 된 에슬린이 시온에게 말했다.

“시온 니벨룽 님. 처음 뵙겠습니다. 마탑에서 온 에슬린 이라고 합니다.”

“마탑?”

“소식이 이미 갔다고 들었는데요.”

‘까먹고 있었다.’

시온은 정말로 까먹고 있었다. 마탑에서 누군가 온다고 해서 그냥 알았다고만 한 형편이었다. 

볼브, 알란, 클락은 단번에 이 마법사들이 높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법사나 기사나 비슷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좋은 가문을 등지고 있는 어린 사람을 조심해야 했다.

유독 마법사가 그런 부분이 심했다. 정식적인 서품 인장을 달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그런가. 그럼 안쪽으로 가시지요.”

시온이 그렇게 말하고는 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갔다.

에슬린은 시온에게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시온의 첫인상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롤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안쪽에는 익숙지 않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굉장히 잘 빼입은 수려한 사내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카롤리나를 알아봤다.

“카롤리나 님?”

“엇, 호른 백작님. 여긴 웬일로.”

“그 용무를 가진 분께서 지금 오셨군요.”

그가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백작이 이제 남작위를 수여 받을 예정인 시온을 찾아 직접 온 것은 가히 귀족의 관습을 무시한 주위가 알게 되면 그 잘못을 세차게 손가락질받을 정도의 그 정도의 일이었다.

에슬린은 이제 시온의 가치에 대해 굳게 믿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실수를 책망할 수준이었다. 

‘호른 백작이 여기에 왜 있지. 라레테저닛이 손을 뻗었나. 머뭇거린 내 실수로군. 제길.’

그러나 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가장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은 시온이었다. 

높은 서품의 마탑의 마법사들을 까먹고 있다가 무시한 형편이었고 라레테저닛에서 온 사람을 한참 기다리게 한 것도 실수였다.

그 사람이 백작인 줄은 전혀 몰랐다.

“얼굴 보기가 참 힘듭니다. 시온 경.”

‘젊고, 굳세고, 곧은 심지가 느껴진다. 이 남자를 황제에게 뺏기기라도 한다면······. 대 규모 침공이 이어질 수도.’

호른 백작은 두려움 없어 보이는 시온에게서 얼굴에서 느낄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중세라는 곳은 아무래도 이렇게 저마다 따로따로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황제가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많은 왕국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곤 했다. 라레테저닛 가문은 그 왕가 중 하나였다. 

시온도 예전에 인연이 있었다. 

라레테저닛은 어느 왕가와 그렇다시피 현 황제와는 사이가 영 좋지를 않았다. 

감이 좋기로 유명한 외교관인 호른 백작이 시온을 보기 위해 이렇게 먼 거리를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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