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304)

뜻밖의 이득(4)

‘내 감이 맞는다면 이 모든 것은 다 미리 헤아려 둔 것이었겠군.’

호른 백작은 자기를 기다리게 한 것이나 여기에 저 두 명의 젊은 마탑의 인재를 들여보낸 것이나 이 두 가지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내가 어디까지 쳐줄 수 있는지 보겠다는 건가.’

호른 백작의 얼굴이 각오가 새겨지고 있었다. 그것을 놓칠 에슬린이 아니었고 카롤리나가 아니었다.

높은 인간을 푸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호른 백작의 얼굴에 웃음 외에 다른 빛이 뜬다는 것은 보통 볼 수가 없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호른 백작님의 저런 얼굴은 처음 보는데. 시온 때문이겠지?’

카롤리나는 이쯤 되자 시온에게 느끼는 감정이 점차 커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뛰기 시작한 심장인데, 이젠 완전히 쿵쾅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 전체가 그리고 그 유명한 호른 백작 조차도 시온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시온이 남긴 전쟁에서 보여준 강렬한 결투와 용인술은 이미 수도든지 마탑이든지 대화 중에서 가장 쳐주는 것들이었다.

시온은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 다들 앉으시지요. 초이 간단한 디저트를 가져와라.”

“예, 주인님. 이미 준비했습니다.”

“?!”

“?”

“?”

세 명은 곧바로 초이란 자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른 백작은 경험으로 나머지 둘은 그냥 마나를 느낀 것이다.

‘마법사가 노예라고?’

그리고 그 극진한 태도를 보아 엄청난 충성심이 느껴지는 하나하나의 정성 들인 자세들이었다. 

이런 노예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마법사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을 주장하는지는 말해봐야 골이 아플 정도였다.

노예로 긴한 자들이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런 마법사 노예들도 자기가 얼마나 가치고 높은지 알고 있어 이런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물며 저런 공손한 자세는 오랫동안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문한 건가?’

호른 백작은 보통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흔한 생각을 떠올렸지만 그러기에는 마법사 노예는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명예로 잡아냈다는 생각이 들자 짧게 마음속 깊이 느끼는 바가 있었다. 

-마법사지?

-그렇지. 어리석은 녀석이군. 마법사로서 저런 치욕적인 자세를 보이다니.

에슬린과 카롤리나가 생각을 잠시 속삭였다.

“자 말해봅시다. 용건들이 뭡니까? 사실 따로 생각해 둔 것은 없어서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라. 하지만 나도 준비해 둔 바가 있지. 저 어린 것들은 아직 세상을 몰라.’

“제가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호른 백작이 시온과 다른 두 명을 보면서 허락을 구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해버리고 싶었지만, 외교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사려 깊게 들어가야 하는 면이 있었다.

에슬린은 당연히 싫다는 뜻을 겉으로 드러냈지만, 별생각이 없던 시온은 그렇게 하라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럼 시온 경께서 허락을 하셨으니....”

시온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 두 명이 싫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호른 백작이 박수를 두 번 쳤다.

뒤에서 상당히 아름다운 여자가 뭔가로 둘러싸인 무언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히 무거운지 끙끙거렸다. 그리고 그게 시온의 앞에 공손히 놓았다. 

시온은 무거운 물건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게 뭡니까?”

“직접 보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시온은 베르토 렌이 하던 짓을 호른 백작이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째 이런 쪽으로 익숙한 자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을 사기 위해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안겨주는 것 같았다.

“메이스?”

시온은 상자를 열어 보고는 놀랐다. 안에는 가치가 아주 높아 보이는 메이스가 들어 있었다.

“시온 경의 전쟁터에서의 결투는 이미 몇 번이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시온 경의 주 무기가 메이스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야 했다. 시온은 그것을 바로 잡고 들어보았다. 

‘가볍군. 그리고 묵직해.’

솔직히 이 두 가지의 생각이 같이 들었다. 

전쟁터에서 같이 활발히 적의 머리를 깨부수고 다니던 메이스는 사실 다른 기사의 것이었다.

그것도 좋은 장비인 것은 맞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딱 봐도 재질이 완전히 다른 것인 것 같았다.

“이거 설마 미스릴입니까?”

“안목이 좋으시군요. 미스릴로 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제가 나름대로 제대로 준비해 본 것입니다. 거기에 각종 보조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오히려 경에겐 주 마법은 방해될 것 같아서.”

너무 컸다. 미스릴 자체도 희귀했는데 마법까지 걸려 있는 것은 따로 비용을 들여야 했다. 

이 정도라면 아예 처음부터 각을 잡고 제작을 했다고 봐야 했다. 

무기에 걸린 마법들은 좋은 무기일수록 보조마법이 훨씬 좋았다. 

제대로 된 속성마법을 걸어봐야 기사의 성장과 무기 자체에 먹혀버리는 것이 컸다.

“사겠습니다. 얼마입니까.”

시온의 눈에서 색다른 빛이 돌았다. 이 정도라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허허, 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 사람은 신뢰로 보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귀한 사람과는 더욱 그렇게 합니다.”

‘설마 이것도 주겠다는 건가?’

시온은 요새 이런 일을 몇 번 겪긴 했지만 확실하게는 왜 이들이 이러는지는 잘 몰랐다. 

다만 거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면 준비해야 하니 일단은 받는 것이 맞았다. 

현대인이라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걸 여러 가지 참고해 봐도 남을 게 더 많아 보였다.

“고맙습니다. 호른 백작님. 이 메이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헤드 브레이커라고 불립니다.”

고대어 중 하나였다. 시온은 메이스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온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두 명의 마법사는 안달이 났다. 유독 에슬린은 숨이 거칠어짐을 느꼈다. 

‘호른 백작이 실수할 리는 없으니, 내가 너무 어리석고 물었구나.’

에슬린은 시온의 존재감을 더욱 강하고 깊게 느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흐르는 마나는 이미 마법사로서 중위급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법의 경지만으로 봐도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것이 고작 보조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니 시온의 기사로서의 무기술을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마법사로서 부러운 점도 많았다. 마법사는 준비하지 않으면 기사에게 전투에서 유리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장비와 위기 상황에 돌진할 수 있는 용기는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시온에게는 그러한 불리함이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았다. 

오면 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 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반대라고 보자면···.

‘메이지 슬레이어.’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했다. 

마탑의 어르신들이 고지식한 편인데 굳이 근처에 있던 자신들을 보낸 이유가 이제야 확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자를 놓치면 대전쟁에서 놓을 수 있는 수가 극도로 불리해진다.’

‘생각해. 생각해내라고. 멍청아!’

너무 구경하듯이 넋을 놓고 이곳에 왔다는 생각에 자기가 한심하고 눈물이 났다. 

그것이 질투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더 구석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시온 님. 이번 작위 수여 때 제가 같이 갈 수 있겠습니까?”

“?”

시온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왜 따라오려고 합니까?”

“수도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저만큼 수도에 친구가 많은 사람은 없답니다. 분명히 제가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

“이제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직 미숙한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마리 님의 승인만 있으면 얼마든지 동행하겠습니다.”

호른의 눈빛이 변했다. 한 걸음 내디뎠음을 느낀 것이다. 

시온이 여기서 거부하게 된다면 미리 수도에 가서 우연히 본 것처럼 연기할 생각이었지만 승인만 받아내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링 가문은 라레테저닛에게 빚이 있지, 그 빚을 여기서 쓰라고 해야겠군.’

호른은 이 정도라면 그 빚을 없애버릴 정도의 기회라고 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시온이 마음에 들었고 얘기하면 할수록 이자와 함께라면 더 큰 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도 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마법사들 그중에서도 뛰어난 외모가 빛나는 카롤리나가 이 일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시온은 그제야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시온이 지금까지 봤던 여자 중에 그나마 가장 반반했던 여자가 도팽 가문의 루시였는데 그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자기를 뜨겁게 노려보니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한을 졌나? 그런 일이 없었는데. 따로 초이에게 알아보라고 해야겠군.’

초이가 마법사이니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관련된 의문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 서야 옆에 있던 에슬린이란 자도 눈에 들어왔다. 

시온도 그의 마나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에슬린이 시온을 눈치챈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시온의 마나의 느낌과 맞물리는 마나를 감지하는 도구에 힘입어서였지만 시온은 그런 것이 요구되지 않았다. 

“실례를 많이 끼친 것 같습니다.”

“?”

사실 무시한 일도 있고 뭉텅이 자리를 잡는 게 관습적인 것도 아니라서 시온이 먼저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에슬린이 먼저 그렇게 말을 했다.

“저도 그 일정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수도에는 저도 친구가 많고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건 장담 드립니다. 마법사이시니 잘 아실 겁니다. 마법사는 마법사들끼리만 얘기가 돕니다.”

오만한 답변이었지만 시온은 에슬린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마법사들은 은근히 폐쇄적인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승인만 있으시다면 전 상관없습니다.”

마리 자링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두루 얽히는 조건이 둘에게 제안되어 졌다.

‘상당히 금화와 인재가 깨지겠군. 하지만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메이지 슬레이어라. 만약 이대로 놓친다면 어떤 문책을 받을지 감도 오지 않는군.’

더불어 호른 백작도 한 방 먹은 얼굴이었다.

‘후. 시온 니벨룽, 저런 얼굴을 하고선 최대한 경쟁시키겠다 이거구나. 그래 이래야지, 그래야 더욱 가치가 있지.’

시온은 이들의 얼굴이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 하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감이 오질 않네. 하여튼 귀족 놈들은 어렵다니까. 머리를 한번 깨줘야 말을 잘 듣는데.’

시온은 벌써 피에르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다. 시온은 이 피에르 녀석이 부르면 바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서신을 삼백 통을 보낸 것이다. 

죽기 싫으면 적당히 보내라고 한 이유로 바로 끊겼지만, 백작급 동맹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든든한 보험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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