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로 가는 길(1)
‘일행이 왜 이렇게 많지?’
시온은 자기를 따라 오는 일행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원래 기사라는 자가 공을 세워 작위를 받게 된다고 해도 눈이 부실 정도의 규모의 사람을 이끌고 수도에 찾아가 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 봤자 그저 기사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서 깊거나 유명하거나 신흥 가문을 등지고 있다면 비슷한 것을 그대로 옮겨볼 수야 있겠지만 시온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에 시온이 정도에 맞는 남작령을 받게 된다면 당장에 니벨룽 본가에서 찾아와야 할 정도로 급이 뒤집힌 거라 봐야 했다.
이 정도 급의 줄지어 가는 일이라면 현재 병의 상태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는 하이거 정도나 되어야 했다.
어레이 경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대단한 열기입니다. 시온 경. 설마 마리 님께서 이 정도 인원을 약속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요. 저도 이 정도 일 줄은.”
“수도에서 열리는 수여식은 그야말로 대단한 명예인데요. 저도 꿈에서나 한 번 맛봤을 뿐입니다.”
그랬다. 이 수여식은 강력한 가문에서 분가할 때나 가끔 나오는 수여식이었고 만약 마땅한 자가 없으면 어설프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치고 올라오는 신흥가문의 탄생을 알리는 경우라고 봐야 했다.
“저는 좀 부담스럽달까요.”
어떻게 보자면 기사다운 것은 달랑 몸 하나 종자 하나와 몇몇 자신을 따르는 기사나 용병을 데리고 가는 거였다.
‘변하지 않아. 여전히 겸손해.’
어레이는 눈을 빛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회의 밑바닥에서 올라갈 사람으로 미리 짐작했었다.
그러나 그건 잘못 계산한 것이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같이 있기만 해도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명예롭다. 명예로워.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가.’
어레이는 시온을 보고 그런 생각에 잠겼다. 물론 관계가 있는 시온은 전혀 다른 생각이었지만, 한 마디로 귀찮았다.
가는 길을 저렇게 어수선하게 가는 것이 성격상 잘 맞지를 않았다. 그냥 훌쩍 다녀오고 싶다고 할까.
어레이와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는 매서운 시선들이 있었다.
마탑의 차기 마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에슬린과 카롤리나는 여러 가지가 얽힌 듯한 얼굴로 시온과 어레이를 바라봤다.
그것은 호른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은 누구인데 시온 경과 친한 것이지?”
호른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서기 위해 마리를 구워삶는데 들었던 금화는 장난이 아니었다.
‘마리가 그렇게 시온의 가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여자면서, 뜻밖이란 말이지.’
그런데 저렇게 친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니, 저 옆에 있는 기사도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었다.
“어레이 라는 기사입니다.”
“흠. 같이 오랜 시간 지낸 그런 자인가?”
“그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시온 경의 출신이 사실은 마탑이 가지고 있는 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사의 탈을 쓴 구렁이로군. 입이 능한 자라는 거지.”
호른은 어레이의 수준을 그렇게 매겼다.
“그대만 할까요.”
에슬린이 옆에 있다가 한마디 했다. 그러면서도 어레이에 대해서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보에겐 운이 따르는 법이지.’
카롤리나도 넋을 놓고 시온을 보고 있었다.
생기있고 모험을 즐기는 편인 그녀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다 시온 때문이었다.
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시온의 이름과 시온의 이야기로 넘쳐 흐르고 있었고 그러한 것들에 취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가슴에 이상한 불꽃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불이 붙자 점차 커지더니 이제는 바라만 봐도 넋이 절로 나갔다.
물론 그런 예쁜 외모 덕에 그녀를 훔쳐보는 자는 같은 이치로 넘쳐 흘렀다.
‘내가 저 자리에서 시온 경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 역시 어레이를 부럽게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어이, 카롤리나. 또 또 그러네.”
“?”
“지금 중요한 상황인데 그렇게 넋 놓고 있을래? 지금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자링 가문에게 약속한 게 한 더미라고.”
바짝 신경이 달아오른 에슬린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마탑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약속은 졸업 예정인 마법사를 조금 더 안겨주는 것밖엔 없었다.
그 정도로 에슬린은 이번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에슬린의 금빛 눈동자가 시온에게 기울어졌다.
‘시온 니벨룽, 아마도 고대에 잊혔던 그 남자의 계보를 이을 수도 있다.’
안티 메이지.
그 이름의 무게는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만약에 에슬린이 헤아린 바가 맞는다면 시온의 존재는 앞으로 있을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존재였다.
“대답 안 해? 우리가 저 위치가 되어야 하는 거야.”
“응, 그래. 노력해야 해.”
“?”
뭔가 의미가 살짝 미묘했지만, 같이 노력을 하자는 것이니 뭐라고 말하기도 그랬다.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 시도해 봐야지.”
“? 카롤리나 뭘 한단 말이야.”
에슬린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크게 호흡하던 카롤리나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어지간히 놀랐다.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닌데 무슨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뭐해?”
한 번더 에슬린이 불렀지만 카롤리나는 거침없이 시온 쪽으로 걸어갔다.
시온과 어레이의 눈에 카롤리나가 보인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거 자체로 나름의 주변에서의 주의 깊은 시선을 받게 되었다.
워낙에 카롤리나의 외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시온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라는 궁금증이 더 크긴 했다.
“시온 님. 안녕하세요. 서품 직을 수행하고 있는 마법사 카롤리나 라고 해요.”
“아, 압니다. 그때 옆에 있으신 분 아닙니까.”
“!!! 절 기억해주신 건가요?”
“?”
시온은 잠시 고민을 했다. 사실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기억을 해줬다는 것이 정확히, 애초에 모를 순 없지 않은가.
그녀는 마탑에서 보낸 고급 인재고 그쪽의 체면을 담당하고 있는데 모르면 이상한 것이다.
“물론, 기억합니다.”
초조한 나머지 침을 삼키고 있던 카롤리나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그리고 입가가 실실 올라갔다.
참을 수 없는 갈증이 겨우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카롤리나는 받았다.
이 정도만으로도 좋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청하는 게 있습니다. 저를 조언자로 써주세요.”
마법사 하나를 조언자로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요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건너뛴 것이다.
하여튼 그녀의 발언에 다시금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유독 호른 백작은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상도덕이라고는 없는 년이군.’
아주 그냥 속으로 욕을 하고 난리가 날 정도였다.
어쨌든 시온은 이런 급한 의견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것을 아직 준비도 못 한 상황에서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건 좀, 안될 것 같습니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만족스러웠던 얼굴이 한순간에 변하게 되었다.
그녀는 심각해졌다. 이 말을 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낸 것인데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다.
애초에 그녀는 거절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여자였다. 좋은 가문, 좋은 재능, 좋은 성격에 운도 좋았다.
얼굴도 그만큼 따라오니 좋게 여기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런데 시온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시온은 현대인이었다. 낯선 자가 이런 식으로 굴었을 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게 여자고 얼굴이 반반하다면 더욱 그런 법이었다. 시온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인 것이다.
에슬린은 처음엔 무슨 일인가 하다가도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저런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녀의 요구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그녀는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걸 해주겠어? 카롤리나, 제발. 시온 경은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저 사람은 마법사이고 동시에 기사이고 그리고 가문을 새로 세우는 자란 말이야. 그게 운이겠냐고. 모든 걸 계산하고 있을 것인데.’
호른 백작이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 느닷없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저는 이제 끝이 난 건가요?”
“예?”
시온은 바로 대답을 되물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점점 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시온의 거절에 큰 실망을 맛본 것이었다.
‘왜 이러지? 이제 두 번 봤는데. 혹시 날 먹이려는 건가?’
시온은 느닷없이 우는 그녀의 행동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어떤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에슬린이 바로 뛰어왔다.
“시온 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 에슬린 님.”
“얘가 가끔 정신이 좀 왔다 갔다 할 때가 있어서요. 시온 경도 마법사이시니 아시는 바가 있을 겁니다.”
카롤리나의 이름은 나름의 끗발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서품을 받으려면 보통의 재능과 운, 실력, 후원,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얼굴 덕에 더 알려진 카롤리나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얘기는 분명 크게 돌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아하.”
그리고 에슬린의 뺨이 날아갔다.
“?!!!”
“???”
“나쁜 놈아. 시온 님 앞에서 나를 그렇게 만들면 어떻게 해.”
“????”
뺨을 맞은 에슬린도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지금 그렇게 중요하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진짜로 여러 번을 했는데도 이런 식으로 말해버리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아니.”
“여러분들, 싸우지 마십시오. 제가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두 명의 얼굴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유독 눈물을 흘리고 있던 카롤리나의 눈물이 뚝 끊겼다.
생각이 바꿨다니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바뀐 것이다.
“정....정말인가요?”
“아, 음.... 예.”
시온은 그녀의 뜨겁고도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일단은 상황을 넘기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여기에 사람도 많은데 곤란했다. 그러나 이 벌어진 일들은 어쨌든 새로운 소문을 만들고 있었다.
-카롤리나 님이 애인이었던 건가?
-저 미녀를? 라레테저닛의 자제도 유혹하지 못한 꽃이잖아.
-상황을 보니 이미 깊은 단계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미 예전부터 만났다는 얘기인가?
-그러면 저 둘이 온 것도 우연이 아니구나. 마탑에서 집중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인재잖아. 시온 경은 아무래도 마탑에서조차도 어려워하는 인물이 분명하다.
황제도 애를 먹는 것이 마탑의 수장들이었다.
마법사들이 워낙에 자기주관이 심하고 이득을 추구하는 면도 강해서 여러 번 큰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수도를 향하는 시온에게 마탑의 유명인들이 붙었다는 것은 영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