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304)

수도로 가는 길(2)

‘아니 저런 연기를?!!!!’

호른 백작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너무 상대를 가볍게 본 것이었다. 

조언자의 자리는 호른 백작도 노리고 있는 그런 자리였다. 

적어도 잠깐일지도 모르지만, 수도에서 가장 시온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그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뺏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에 건 금화가 얼마인가, 그리고 그의 자존심엔 상처가 났다. 

평소에 무시하고 있던 카롤리나한테 당해버린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여튼 이젠 됐습니까?” 

시온은 어느 정도 이 상황이 잠잠해지는 것을 알고 그렇게 말했다.

“물론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훌륭한 결정 감사합니다.”

“??”

에슬린의 뺨은 부어가고 있었는데 아프지도 않은지 시온에게 진지하게 말을 했다.

사실 에슬린도 결과만 좋으면 얼마든지 얻어맞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시온이 가지는 가치와 위치라는 것은 너무나 잠재적인 가능성과 위협을 줬다. 

‘아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 어떻게든 지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작업을 해놔야.’

더할 나위 없는 결과라고 한다면 시온을 마탑쪽으로 불러들이는 것일 것이다. 

마음 같아선 마음껏 지금 많은 부분을 걸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힘은 에슬린에겐 없었다.

그렇게 있던 시온은 어레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핵심 인원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이런 건 제가 원하는 그림도 아니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여기에 드는 금화는 모두 마리 님이 감당하시겠다고.”

“그럼 말해주시겠습니까?”

“크흠, 뭐 원하신다니 제가 반드시 전달해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경, 거기에 제가 들어가 있는 게 맞지요?”

“따라오실 겁니까? 불편하실 것 같은데.”

“따라가야지요. 섭섭한 말씀을.”

어레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온에게 말했다. 어쨌든 그 따라가는 사람 안에만 있으면 뭐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물론 이 얘기를 주워들은 자들은 난리가 났다. 

시온과 함께 수도로 갈 수 있다고 흥분해 있었는데 시온이 약간만 데리고 간다니 기운이 확 꺾이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들은 마치 당첨된 표를 줬다가 뺏긴 듯한 얼굴이 되더니 어떤 자들은 기절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많기에 시온이 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들기 위해서 많은 금화를 퍼부은 자가 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됐다는 것과 정작 이 모두를 두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시온과 수도를 같이 갈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같이 갈 수만 있다면 평생 남을 이야깃거리와 자랑스러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놓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든 모르든 시온은 마음을 정했다. 

어레이는 자신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급히 다리를 움직여 마리에게 보고하기 위해 뛰어갔다.

ㆍㆍㆍ

“뭐어??? 시온이 인원을 줄이겠다는 말이냐?”

“어.. 예. 그렇습니다. 시온 경이 좀 부담스럽다고도 했습니다.”

“부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사람은 아니야.”

“저도 아마 저희가 알고 있는 그런 의미로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지금까지 항상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콧잔등을 잠시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심장이 뛰고 요새 밥도 잘 먹기 힘들었다. 

그 많은 수행원은 일종의 억누르는 역할을 할 자들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시온을 노리는 자들이 거기에 끼어들어 있으니 말이었다.

‘미치겠네. 그러면 괜히 허락한 건가? 이런 실책이 있나.’

그녀는 정말로 정말로 고민을 했다. 

많은 무역 이득을 주겠다고 제시한 호른 백작이나, 마법사의 배분을 높여주겠다는 두 명의 젊은 서품 마법사나.

누가 들으면 아주 거창하게 거래를 한 것 같았지만, 그녀 생각엔 전혀 아니었다. 

전통적인 왕가로서 이름이 드높은 라레테저닛이나 황제와 힘을 겨룰 수 있는 마탑의 현자들이나 고작 해봐야 백작 정도에 그치는 그녀는 어려운 선택에 놓여 있었다.

거절하면 보복할 수도 있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하는 것을 모자라 원하는 것을 더 내줬을 것인데 이것조차도 상당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각을 내줬던 게 이번 일이었다.

그만큼 시온이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조언자라는 자리를 달라고 카롤리나가 요구했습니다.”

“뭣? 이런 개썅년.”

“예?”

“얼굴 믿고 까분 건가? 더러운 년이.”

“......!”

너무나 감정이 복받쳤는지 욕을 퍼붓기 시작하는 마리를 보면서 어레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잘못했다가는 이 분노의 화살에 꽂힐 것이었다.

‘역시 시온 경인가. 마리 님도 이제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레이는 그녀의 격한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시온이 만들어가고 있는 형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까.’

그리고 이런 실력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시온이 자유 기사일 때부터 봐왔던 그는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를 맴도는 것은 여기에 대한 시기가 아닌 어떻게 하면 나는 시온 경 곁에 남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시온의 성장세가 너무 빨라서 그냥 쫓아다니기만 하는데도 따라갈 수가 없는 정도였다. 

어레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뭐 된다고 호른 백작 하나만 해도 말도 붙여보기 힘든 급의 사람인 것이다.

“그.... 진정하십시오. 제가 시온 경을 따라가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니 제가 어떻게든 두 명을 방해해보겠습니다.”

미친 듯한 속도로 욕을 퍼붓던 마리의 욕이 뚝 끊겼다.

“진짜겠지? 반드시 막아야 해. 수단 방법 가리지 마.”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으론 안 돼. 반드시 막으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온 경이 답을 좀 빨리 달라고 해서 지금···.”

“알았어. 줄이라고 해. 그러면 내가 여기서 그 애들 다 데리고 가라고 할 수 있겠어?”

어레이가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괜히 이런 유혹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자들이 여러 명 있는 데 시온의 생각에 반대라도 들었다가는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마리는 그 점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하곤 있었다. 

마음만 같아선 같이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벌려놓은 일이 많았다. 

“하. 나도 너무 가고 싶어. 나도 조언자 할 수 있는데.”

마리가 갑자기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런 식으로 입을 열었다. 어레이가 깜짝 놀랐다. 마리는 시온의 봉주다. 

당연히 절대로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되는 불문율이 있었다.

“혹여나 그런 말씀을 다른 자에게는 하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 하여튼 어레이 경. 자네만 믿고 있어. 일이 잘 풀리면 내가 꼭 챙겨줄 것이니. 반드시. 반드시. 그 세 명을 막아.”

“아아···. 노력해보겠습니다.”

ㆍㆍㆍ

데려가야 할 사람이 크게 준 시온은 그제야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올 필요가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 따라온다는 것이 살짝 이해가 되고 있진 않았다.

특히 호른 백작 같은 경우에는 마리 급의 사람이었다. 

영지는 마리 급이었고 능력을 보자면 그 이상이라고 봐도 좋았다.

라레테저닛의 외교를 맡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자가 자신을 따라오겠다니.

‘헤드 브레이커를 받아서 거절할 수도 없고.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시온은 뭔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받긴 했지만, 그에게서 받은 헤드 브레이커라는 이름의 메이스는 아주 아주 가치가 높았다.

경매장에도 나오지 않는 물건이었고 용병이 이것을 가지고 있다면 금패 이상의 존재여야 하는 것은 분명한 그 정도의 물건이었다.

“안 오셔도 됩니다만.”

“제가 수도에 친구가 정말 많습니다. 꼭 모시고 싶습니다. 제 선물이 그 정도의 부탁을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온은 그때 바짝 긴장해서 호흡을 가다듬는 호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호른이 거만하게 말을 놓지 않는 이유도 잘 몰랐다. 작위를 받아봐야 남작이었다.

그러니 한 급수가 높은데도 일일이 대접하듯이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라레테저닛의 주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온이 헤아려볼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사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목숨을 걸고 경을 보호하겠습니다.”

“경의 전설의 발돋움 대가 되겠습니다. 저를 밟고 말을 타주십시오.”

“저를 선봉에 써주십시오.”

같이 가는 기사들이 하나같이 그런 식으로 서원을 칼에 땅을 꼽고 한 번씩 하기 시작했다.

“?”

이런 거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됐다. 왜냐하면, 기사의 이 정도 급의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따라서 목숨이 위험한 지경이 다다른다면 당연히 목숨을 버려야 하는 그런 서원 급의 맹세인 것이다.

이것을 받아 내려고 가끔 별짓을 다 하고 회유를 하는 영주도 많았다. 

그런데도 함부로 하지를 않는 게 이런 식의 맹세였다. 

거의 전쟁터에서는 죽음을 각오한 선봉 돌진의 경우엔 가끔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래라.”

시온은 포기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서원 맹세가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당연히 호른 백작을 포함해 한 자리씩 잡은 세 명의 얼굴이 깜짝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직 작위도 받지 않은 기사에게 기사가 저런 식의 맹세를 한다니.

이 정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원 맹세는 라레테저닛의 왕가도 하지 못하는 그 정도의 급이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구원받은 건가?’

일단 헤아려 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였다.

그렇게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온은 낯선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잘 무장된 수백의 병력이었다. 

모두 말을 타고 있었기에 살짝 두렵게 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뭐지? 지금 나 당하는 건가?’

시온은 먼지 구름을 보고 생각했다. 다른 자들의 행동은 그 이상이었다. 최고의 자세로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병들은 원을 갖추고 공격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그런 깃발이 흔들흔들 나부끼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그 안에서 한 명의 사내가 빠르게 시온을 향해 말을 몰았다.

피에르였다.

“?”

“!!!”

“아니 저건!!”

“설마 복수하려는 건가? 저 치졸한 녀석이, 이건 제국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일!”

협정을 맺었는데 그 협정을 어기고 이런 일을 벌인다면 바로 황제와 다른 고위 귀족들의 보복을 받는다.

그렇게 다들 야단스럽게 입을 놀리고 있는 동안 피에르가 거의 가까이 와서 시온의 앞에 멈췄다. 

그리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너 뭐하냐?”

“시..시온 님. 급히 왔습니다.”

“?”

“경께서 수도로 가신다 해서. 그 일을 저도 기념할 수 있을까 해서.”

“가긴 하지. 그런데 저것들은 뭔가.”

“죄.. 죄송합니다. 이 녀석들로 배웅을 해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조금 늦어버렸습니다. 소식을 좀 늦게 들어서. 저번의 서신을 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듣고 그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자네, 피에르???”

“호른 백작? 당신이 여기에 왜?”

피에르와 호른이 알고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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