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304)

강도 기사(1)

‘빨리 왔어야 했는데, 시온 경에게 가는 길에 늦장 부렸던 놈들은 직위해제다.’

피에르는 호른을 보자마자 확 긴장돼서 호흡이 빨라졌다. 그러면서 시온의 반응이 어떤지 보기 위해 눈을 돌렸다. 

호른 백작이 여기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몰랐다. 호른 백작과는 아는 사이였다. 가끔 모임이나 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

꽤 친분이 있는 사이지만은 그것이 시온을 두고 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명히 나를 자빠트릴 거란 말이지.’

그 정도로 세 치 혀가 능한 녀석이었다.

“그러면 고작 그것 때문에 이 기사들을 데리고 왔다고?”

시온이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이 정도의 기사들이라면 너무 많았다. 전쟁터에서 봤던 비슷할 정도였다. 아니 얼굴이 기억나는 자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사들의 행동은 아주 굳어서 뻣뻣하게 서 있었다. 누가 보면 석상인 줄 알 정도로 뻣뻣했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기들의 주인인 피에르의 저자세도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는 시온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봤던 전장을 돌파하던 시온에 대한 기억의 흔적은 악몽처럼 아직도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이 그때의 일 때문에 아직도 밤잠을 설치는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만 가지고 있는 비밀이지만 만약 피에르가 여기서 시온을 치라고 명령한다고 해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애초에 이길 것이라는 희망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걸 말하거나 비슷한 것을 취하는 자가 없기에 아무도 다른 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편이었지만 하여튼 그런 것들이 이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절대로 아닙니다. 신에게 맹세할 수 있습니다.”

“맹세를 몇 번을 해.”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피에르의 얼굴이 초 단위의 시간이 흐를수록 격하게 불쌍해지고 있었다.

호른 백작이 넋이 나간 듯 이 벌어진 일에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피에르가 어떤 자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정도의 줏대 없이 굽혔던 흔적은 정말로 살면서 처음 봤다. 

오리엔의 장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갖은 막된 짓을 하던 인간이었다. 

“저는 매번 진실한 맹세를 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간절하고 절실한 얼굴을 보다가 시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면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다 죽어가던 녀석이 느닷없이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러나 피에르의 요구는 뭔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았다.

“뭘?”

“이 기병대로 경을 수도까지 보호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

감정이 북받쳐서 한다는 소리가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 칼을 들고 서로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는데 이 기병들을 데리고 가면 잠이나 제대로 오겠는가.

시온은 단번에 거절했다.

“왜입니까!”

“?”

“정말로 맹세한 자들입니다. 지금 즉시 서원맹세를 하겠습니다!!! 너희들! 빨리해!”

피에르가 그렇게 소리치자마자 안 그래도 시온의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기사들이 동작을 아주 빠르게 맹세를 하려고 했다.

“그만!”

시온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그림 같이 수백의 기병이 멈췄다. 나름 장대한 장면이 펼쳐졌다. 

아주 이상한 이유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왜입니까!”

“가볍게 갈 거다. 그쪽이 마음이 편하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피에르의 몸과 얼굴, 태도와 행동이 철저히 어긋난 것처럼 움직였다.

그가 누리고 자 한 바는 시온을 보필하듯이 수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피에르는 시온에게 이 일을 인정받기 위해서 많은 내용을 헤아려 보고 익숙할 때까지 반복했었다. 

시온이 하고자 하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그의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러웠다.

“알···. 알겠습니다!”

“그래. 알면 됐다.”

“거기에 저도 낄 수 있는 겁니까? 저를 끼워주십시오!” 

“영지는 어떻게 하고.”

“그 일은 시온 님을 따라가는 거에 비하지 못합니다.”

“?”

주위가 어수선하게 소란이 일었다. 그 정도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발언이었다.

시온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했다. 피에르의 목울대에 침이 넘어갔다.

“너 그때 머리 다쳤었나?”

“절대 아닙니다. 그때의 저는 잊어주십시오.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기뻐하며 일어났다. 

호른 백작과 눈을 마주친 피에르는 승리의 미소를 띄웠다.

ㆍㆍㆍ

수도로 가는 길은 위험하다면 위험했다. 

원래 이 중세란 곳은 안전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봐야 했다. 

제국이라는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각종 집단이 판을 치고 남작이든 백작이든 제국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가문을 위해 철저하게 움직였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는 길은 어떤 경우에도 쉽다고 할 수가 없었다. 

명성 있는 귀족이 그곳에 움직여야 할 때는 많은 용병과 보병을 거느리며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컸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 위험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시온의 행동은 그래서 많은 자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아직 귀족이 아닌 기사라는 거지.

-참된 기사라면 저래야지. 명예롭군.

물론 편안한 것은 시온뿐 이었고 대부분은 죽을 맛이었다. 

시온을 따라오는 피에르, 호른 백작, 에슬린, 카롤리나 이 넷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서품 마법사인 둘은 상당한 개인적인 힘을 가졌지만, 나머지 둘은 단신, 거느리는 자 한 명만 뿐인지라 힘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들의 가치는 수도에 도착해야 빛이 날 것이었다.

이곳을 무사히 갈 수 있는 것은 방랑자 신의 가호가 있어야 했다. 무사히 갈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각기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가문들이나 작은 가문들을 생각해보면 꽤 위험천만한 여정이었다.

“시온 니벨룽?”

“규모를 줄였답니다. 듣자하니 기사로서 거추장스럽다 해서 명예롭게 약간의 소수의 인원만 데려간다고.”

“푸하하. 명예? 그런 것을 어이다 써먹어.”

“거기에 특급 정보입니다. 호른 백작에 피에르 오리엔, 서품 마법사인 에슬린, 카롤리나가 따라간다고···.”

그가 먹고 있던 것을 모두 뿜었다. 그의 허벅지에 있던 여자가 깜짝 놀라 나뒹굴었다. 

그러나 남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방금 들은 정보는 그의 모든 감각을 단번에 일깨워줄 만큼 사나울 정도로 그 정도 급의 내용 들이었다.

“정말이냐? 너 그거 어디서 들었나. 거짓말하면 그만큼 손가락을 부러뜨린다.”

“이번에 고문한 녀석이 다 불었습니다.”

이들의 솜씨는 인정이 없고 모질었다. 그것은 대부분 강도 기사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도적은 그나마 나쁜 방향으로 빠져버린 용병이나 병사들이 그 안을 이루고 있지만, 강도 기사들은 그 구성원 중 가장 중심이 바로 기사였다.

괴레는 바로 이 지역에서 아주 굉장한 강도 기사였다. 괴레가 이끄는 자들은 보통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세가 약한 남작들에게는 역으로 정기적으로 금화까지 받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바로 해당 남작령에 가서 온갖 해를 끼치는데 잘 잡히지도 않고 전투 자체에 능해서 그냥 금화를 줘버리고 얽힌 것을 처리해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들의 깃발의 문양은 섬뜩한 해골 뼈다귀가 창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 문장만 봐도 주변의 자들은 아주 오금을 지릴 정도였다. 

보기만 섬뜩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람답지 않은 모진 구석이 있었다.

“시온 니벨룽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대박인데, 역시 그 기사를 따라오는 자들이 몸이 더 비싸니 이건 대체 무슨 경우지? 푸하하하하. 내가 꿈을 아주 잘 꿨어.”

“두목, 하지만 시온 니벨룽의 명성은 엄청납니다. 듣자하니 휀트 경도 격파했다고 합니다. 오리엔 측의 기사들 두세 명을 농락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멍청한 놈. 그런 소문을 모두 믿으면 안 되지. 뛰어난 기사이기는 하나 소문에는 항상 거품이 끼어있는 법. 난 항상 그걸 증명해왔지.”

괴레가 자신의 해골 술잔들을 자랑했다. 이 해골 숫자들의 주인은 제법 유명한 기사들이었다. 

그는 이렇게 결투해서 이긴 자들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강도 기사를 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가 있으니 다른 녀석들하고 같이 갈까.”

게다가 이런 머리도 있었다. 정당한 방법보다는 조금이라도 비겁한 방법을 찾는 자였다.

ㆍㆍㆍ

“시온 경!!”

“나도 눈이 있습니다.”

어레이가 급하게 소리를 쳤다. 시온의 일행을 둘러쌀 수 있을 만큼 많은 수의 무리가 숨어 있었다.

다들 바짝 얼었다. 숫자가 모자라면 아무래도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저건, 마브리드의 도적단 이군요.”

에슬린이 시온의 옆으로 와서 말했다. 그는 마법사답게 위기 상황임에도 여전히 차분했다. 

해골 깃발을 알아본 것이었다.

“마브리드?”

“모르십니까? 현상금이 아주 높은 강도 기사입니다.”

“흠.”

시온은 방금 알았다. 그리고 주위를 보았다. 그의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기감엔 여러 가지의 마나의 흔적들이 잡혔다. 

‘이 정도면 가능하지 않으려나.’

시온은 강해진 자신을 믿었다. 그동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대한 단련과 여러 가지 훈련을 반복한 것이었다.

거기다 최근에 얻은 몸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굳이 마나를 알아차리지 않아도 상대가 대략 직감이 될 정도였다.

‘또 있군. 계속 오고 있는 건가.’

완전히 주위가 에워싸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온을 따라온 자들에게도 많은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녀석들! 무조건 시온 경을 보호해라. 시온 경. 저희와 함께 빠져나가시죠.”

피에르가 바로 여기에 대한 생각을 내놓았다. 따라온 기사를 던져 버리고 자신과 함께 빠져나가는 뜻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은 많은 압박을 준다. 볼브, 알란, 클락 등 다섯 명의 기사는 서원맹세를 떠올렸다.

-이번엔 제대로 보여야 한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해도 여기서 증명을 해야 앞으로 시온 경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

-시온 경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을 거다. 저런 추잡한 녀석. 하지만 어떻게 하면 시온 경에게 더 감동을 줄 수 있지?

-제기랄 운도 없지,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지만 이런 식의 죽음도 괜찮지 않아? 시온 경은 앞으로 전설이 될 텐데, 내 이름도 같이 남지 않겠느냐고.

이들은 차례차례 결정을 내리고는 시온의 앞으로 왔다.

“등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선봉을 저에게.”

“목숨을 이미 걸었습니다.”

다들 아주 비장한 각오로 한마디씩을 했다. 그 일의 모습이 호른 백작을 충격에 빠트렸다.

‘어떻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기사들에게 이런 명예로운 희생이 내려질 수 있는가. 이렇게나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이런 것은 외교에 뜻을 두고 있는 호른 백작이 꿈에서 그리는 그런 급이었다. 

말로만 목숨을 건다고 맹세한다고 하지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말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맹훈련을 한 기사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어 악독하게 검사해보는 영주도 있었다. 호른도 그런 유형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벌어지는 이 세 명의 결단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시온의 얼굴이 호른 백작의 눈에 어른거렸다.

“너희들 여기서 죽을 건가?”

“경이 원하신다면 목숨을!”

“선봉을!”

“선봉은 내 거다. 모두 날 따라라. 뒤에 후미 도적이 있으니 여기서 저 녀석들을 격파한다.”

시온도 몸이 근질거렸다. 

나름 멋있게 말했지만 사실 본인도 결과를 정확히 헤아릴 순 없었다. 

다만 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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