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의 은신처(2)
그리고 문 하나에 도착했다. 정말로 비밀스러운 길이 있었다. 시온은 눈짓으로 여기냐고 말했다.
“예, 바로 열면 애들이 있을 겁니다. 전부 제 직속 부하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어댔다. 누가 보면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지새운 뒤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나 때문인가?’
시온은 그제야 괴레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떼어보니 겨우겨우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기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시온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들 비슷한 의미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놀라서 다급한 것을 넘어 아주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온의 메이스가 한 녀석의 머리에 박혔다. 묵직한 느낌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나름대로 이름이 있을 터인데도 뜻밖에 갑자기 들이친 것이라 본래 실력의 십 분의 일도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전투 상황에서 가장 좋게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런 갑작스럽게 밀어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꺾여 있는 자들인데 일이 이렇게 되어가니 너무나 쉽게 문제가 풀렸다.
머리가 깨진 도적 간부 녀석이 다리가 풀렸는지 주르륵 흘러나갈 때 약간 늦은 박자를 타듯이 외마디 소리가 한 번씩 따라왔다.
바로 네다섯이 죽어 버리자 나머지는 무기를 버리고 손을 올려 버렸다.
싸늘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흘렀다.
“살려만 주십시오.”
바닥에 강제로 엎드려진 이들이 그런 식으로 한마디씩을 했다. 아무래도 단숨에 끝을 낸 것 같았다.
악명 높던 괴레의 세력이 순식간에 끝이 난 것이었다.
“너희가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잠깐, 두목????”
그제 서야 이들의 모든 의문이 풀린 모양이었다. 어떻게 비밀 문을 타고 들어왔나 했더니 괴레가 안내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 생각에는 여전히 이곳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잡아냈다고 해서 끝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들을 이용해서 부하까지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가장 좋았다.
오히려 부하들이 이들을 구하겠다고 모두 몰려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시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부하들을 항복시켜라. 너희가 모두 사로잡혔다고 말해라. 아니면 여기서 머리를 부숴주겠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이었다.
ㆍㆍㆍ
소굴은 완전히 죄다 항복을 받아 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항복을 요구하고 두목부터 간부까지 다 당했다는 것을 알자 굽히기는커녕 눈 녹듯이 항복의 물결이 이어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요인은 바로 괴레에게 있었다.
평소에 무섭게 굴어 부하들을 다스렸는데 정작 본인이 당해버린 데다가 시온에게 다 불은 것이라 이들은 버틸 수 있을 만한 조그마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소굴 털기가 시작됐다.
재미있는 점은 시온이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바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살기 위해선 다 끄집어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전에 내가 가져와야 해.’
이들의 머릿속에 돌고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남들이 불기 전에 자기가 가져와서 시온에게 보여줘 조금이라도 목숨이 붙을 가능성을 길게 늘이는 것이다.
다들 그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시온도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조금 전까지 열기가 뜨거웠던 이곳엔 많은 물건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조각상부터, 각종 금붙이, 금화 주머니도 하나씩 나왔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무기술이 적혀 있는 책자라든지 마법서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설마 진작에 도망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아무래도 안개와 미로가 섞여 있던 그 설치 마법을 믿고 이렇게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만약 괴레가 술술 말하지 않았더라면 며칠이고 시간을 잡아먹었을 그런 급의 설치 마법이었다.
물론 그 설치 마법에 관련된 마법서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건 뭐지?”
그렇게 물건을 하나씩 보는 와중에 시온의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해골 모양의 술잔이 주르륵 늘려 있었다.
“이것은 두목이...”
이들의 간부 중 하나가 누가 말할세라 시온에게 말을 하려고 했다. 그것을 괴레가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기세로 억눌렀다.
아무리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해도 괴레가 무서워하는 것은 여전히 시온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이게 뭐지?”
하지만 시온이 끊지 않고 자꾸 재촉해서 묻자 그 두려움에 눌려 다시금 입을 열어 버렸다.
“두목이 쓰러트린 기사로 만든 술잔입니다.”
“?!”
시온은 그것을 보다가 괴레 녀석을 봤다. 그리고 그것을 부숴버렸다.
산산조각이 난 것을 빠른 호흡으로 중이던 그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다고? 미친 새끼네, 이거.”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시온이 계속해서 부쉈다. 그리고 몇 개 남지 않았다.
“죄···. 송 합니다.”
시온은 진심으로 이 녀석을 죽일지 말지 고민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시온의 눈치를 봤다.
처음에 이자를 데려가자고 하던 호른 백작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똥이 튀길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가 잠시 사라지더니 구석에 가서 무언가를 돌렸다. 그러더니 벽이 기울어졌다.
비밀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가져온 것은 마법서였다.
“예전에 그 마법사에게서 챙겨놓은 마법서입니다. 비싼 것은 알고 있는데 바로 마탑의 표적이 될까 해서 숨겨놓고 있었습니다.”
시온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잠깐 저기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시온은 기감을 놓지 않았다. 저 안에서 많은 양의 마나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그 안을 보았다.
작은 곳에 난 조그마한 무언가가 보였다.
“이거로군.”
시온은 그것을 챙겼다.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뭐지?”
“제국의 깃발입니다. 기사단이 몰려왔습니다.”
ㆍㆍㆍ
제국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국의 기사단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사 수도회의 지원과 후원을 받기에 다른 기사단보다 다들 급이 높았다.
“이미 다 끝이 나 있다?”
“예. 시온 니벨룽이 안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시온 니벨룽!!”
“진짜인가?!”
“설마 단독으로 여기에 들어온 건가?”
기사들 모두가 벅차올랐는지 어수선하게 소란이 일었다. 그만큼 시온의 이름은 이미 퍼지는 중이었다.
다만 펜부르크와 다르게 시온에 대해서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자도 많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곧 시온과 기사단의 대장인 가이언이 만났다.
가이언의 눈썹이 올라갔다.
‘보통이 아니군. 정말로 보통이 아니야. 수도에서도 이 정도 기사는 흔치가 않은데 이런 곳에서 이 정도의 인물이라니.’
시온도 이 기사단의 수준에 대해서 나름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규율도 높았고 여러 가지 기본 실력이 높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만큼 많은 인원이 오지는 않았지만 시온의 생각에 괴레를 잡기에는 모자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손해가 상당할 것이었다.
시온을 보면 볼수록 단순히 부탁한다고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괴레를 잡으러 먼 길을 왔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앞에서 놓친 것이 됐다. 이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괴레를 저희에게 양보해 줄 수 있겠습니까?”
가이언이 바로 시온에게 건넸다.
“이 녀석은 제가 잡았습니다만.”
“하지만 저 역시 황명을 받고 왔습니다. 넘겨 주신다면 그에 응하는 사례를 드리겠습니다.”
‘날강도로군.’
시온은 그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제국에는 이러한 일이 많은 것이다.
이곳은 이런 식으로 억지로 뺏는 경우가 많았다. 가이언은 어떻게 보자면 그런 당연한 원칙을 따른 것이었다.
‘만약에 이걸 거절하면 내가 곤란해지겠지.’
이것이 가이언이 노리는 바였다. 그러나 시온도 생각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줄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십 명의 기사가 시온을 주시했다.
‘아무리 시온 경이라도 설마 우리한테까지 그러겠나.’
다들 이런 식의 생각이 가득했다.
“결투하는 것입니다. 진 쪽이 괴레를 가져가는 것이 좋겠군요. 다만 전 해골 남작을 걸었으니 그쪽에서는 좀 더 다른 것을 걸으셔야겠습니다.”
시온이 정면으로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기사들이라는 것은 이런 식의 정면 도전을 피하면 더 큰 손해를 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아직은 소문뿐이었던 시온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기에 그냥 간단하게 승낙을 해버렸다.
‘잘됐군. 괴레도 얻고 시온을 쓰러트린 명성도 얻게 되겠군. 그러면 나는 남부에서도 이름이 아주 높아지겠어.’
가이언 역시 명성에 목말라 있었다. 기사단도 급이 있었고 더 높은 급에 가려면 더 많은 명성을 쌓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이런 일을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시온 경이 아주 명예로운 성격이시군요. 하기야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도 워낙에 이런 일은 애매한 것 같아서, 이 정도라면 수도에서도 받아들이겠죠.”
그가 그렇게 말해서 바로 결투가 받아들여졌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쉽게 해결될 방법도 없었다.
아무리 황명이 있다고 해도 그만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관습이라는 것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기사들 모두가 아주 흥미로운 듯이 이런저런 소리를 냈다. 시온은 그 속에서 이들과 헤어지고 일행으로 돌아왔다.
“결투 말입니까?”
“그것참, 그 불쌍한 상대는 누구입니까.”
“가이언 경? 허, 그 무쇠의 가이언이라니.”
“이름이 좀 있나?”
“당연히 있습니다. 수도에서 제법 알아주는 기사입니다.”
대부분 시온이 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를 않았다. 오히려 몇 명은 가이언이 불쌍하다는 생각조차 하고 있었다.
시온도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완전히 확신은 들지 않았다.
‘쉽게 못 이길 것 같기도 하고.’
가능성은 조금 더 크다곤 생각하는데 쉽사리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기게 된다면 가이언이 가지고 있는 물건 하나를 받기로 했다. 시온은 그의 갑옷 세트가 마음에 들었다.
가이언은 자신이 질 거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은지 당연히 승낙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날짜는 바로 잡혔다. 다음 날에 바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도적들, 기사들, 그리고 몇 명의 일행들이 둘러싼 원형의 장소에서 가이언을 마주 보게 되었다.
‘수도에서 얼마나 먹힐지 확인해 볼 좋은 기회겠지.’
시온은 옛날부터 수도 출신의 기사들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자기의 수준이 어디인지 정확히 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