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 건너뛰기(1)
제국의 수도에 있는 경매소만 여덟 개였는데 시온은 그중에 하나를 빌려 들어갔다.
과연 수도에 있는 제작소답게 하나하나 따질 것도 없이 시온이 썼던 어떤 것보다 급이 좋았다.
‘이 정도라면 공정초, 공상초의 결합을 볼 수 있겠는데.’
푸른 액을 장기간 먹으면서 정수제작 기술도 풍부해진 마나처럼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재료를 날릴 수 있다는 우려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부터는 큰 폭으로 올라간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정신만 바짝 차리고 약간의 운만 있다면 두 개를 결합한 정수를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앗? 시온 경 아니십니까?”
“날 압니까?”
“소문에 마법사이시기도 하시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정말이셨군요.”
“그렇습니다. 자 보시지요.”
“와···.”
기사가 들고 있는 마법사 패라 이것만으로도 가치가 깊었다. 그런데 시온의 목적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수 제작은 이 길만 오 년은 걸어야 제작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를 통해 배정받은 제작대는 그야말로 삼박자가 완전히 갖춰진 곳이었다.
뛰어나고, 비밀유지가 완벽하고, 다양한 기본 재료가 넘쳐 흘렀다. 아마 세 번째가 다른 곳과는 다른 점일 것이었다.
“연습해볼까 아니면 바로 들어갈까.”
잃어버릴 우려가 있을까 봐 기본 재료로 연습해보는 방법이 있지만, 이 방법을 쓰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연습한다고 해서 정수가 항상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즉 될 것 같다는 감이 중요했다.
따라서 점점 더 높은 등급의 정수를 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심하면 미신을 잔뜩 믿는 마법사가 흔했다.
시온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유독 믿는 게 있다면 왠지 될 것 같다는 현대인으로서의 그런 직감 정도다.
하나씩 재료를 꺼내고 투명하고 맑은 우윳빛을 보다가 시온이 마음을 먹었다.
“바로 가보자.”
정수 제작 중 이렇게 두 개를 다루는 것은 거의 감이라는 것이 많이 작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도구를 잘 골라야 했다. 정수 제작에 쓰이는 도구는 흔히 이런 약초를 잘게 만드는 부분이 중요하므로 이것을 분리해낼 수 있는 마법 전기를 뿌릴 수 있는 막대기를 잘 골라야 했다.
현재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전부 다 장단점이 있고 최고의 도구들이었다. 다만 어떤 것이 이 마나 약초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운이었다.
‘산화에 강한 것과 불활성에 강한 것, 속도가 빨라 두 개를 섞은 것.’
누군가에게 정식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므로 용도로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시온은 이 셋 중 세 번째 것을 골랐다.
“나라면 민감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겠지.”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 공정초 공상초는 서로 다른 느낌이 강했고 시온은 이것들을 맞춰가는 데 성공했다.
대 여섯 시간이 훌쩍 흐르고 시온은 진주 같은 색을 뿌리는 공진단 정수를 만들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하는데 주위에 바람의 기운이 흐르듯 산들바람이 불었다.
모두 깊은 마나를 담고 있는 거였다.
‘성공이다. 그것도 너무나 깔끔하게 만들었어.’
시온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정수를 먹었다.
정수는 만들어지고 바로 쌓아 올려야 가장 효과가 좋았다. 사실 몇 가지 일이 밀려 있긴 했지만 시온에겐 이 일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방대한 마나가 시온이 있는 장소로 빨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마나였다.
거의 제국 제작소에 있는 모든 양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아니 이건???”
“누군가 굉장한 정수를 흡수하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일순 난리가 나서 그 폭풍의 중심을 찾았다. 시온이 있는 장소는 뜻밖에 깔끔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난리와 다르게 시온의 근처에는 산들바람이 부는 정도였다.
시온은 단숨에 두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패도 새로 받아야겠군.’
시온이 가지고 있는 마법사는 하급 패였다. 이제는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신체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수를 쌓아올리는 효율은 장난이 아니로군. 선조 님께 감사를 드려야지.’
“괜···. 괜찮으십니까?! 시온 님!”
“안에 있는 게 시온 경인가?”
“그 정수의 주인이 시온 경이었다고?!”
밖으로 나가자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미안하게 됐습니다. 시기가 좋은 것 같아서 저질렀습니다.”
-맙소사 도대체 단계가 어디란 것이지????
-말도 안 되는 마나가 아닌가, 이 근처에 있는 마나를 다 빨아버린 것 같은데 방금 얼마를 가져간 거야
-이건 사건이다. 마법을 쓰는 기사가 역사적으로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주위가 미친 듯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시온도 왜 그런지는 알고는 있었다. 마법사에게 마나라는 것은 그야말로 전부였다.
기사들은 기술을 단련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곤 했지만, 마법사가 마법 기술을 미친 듯이 연마하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는 없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상황이 너무 까마득할 경우에만 그랬다.
높은 단계로 가서 새로 배우는 것이 항상 아래의 마법사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경,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엇?!!!”
“음??”
시온의 기사들이 나란히 인사를 하고 가장 먼저 바뀐 모습을 발견한 것은 에슬린이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단번에 오 단계로 뛰어넘었다.’
‘아니 이건 불가능해. 아니 가능한가?’
“시온 님. 대체 어떻게 그 광대한 마나를 얻으신 겁니까??”
“에슬린 님. 알아보셨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
“공정초를 이용해 정수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쌓아 올리고 오는 길입니다.”
에슬린의 입이 벌어졌다. 전부 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것을 제조했다는 것부터 그리고 성공했다고 해도 공정초 가지고는 절대로 이 정도의 마나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긴 하지.’
“시온 님, 이제야 오셨습니까.”
“아, 피에르 수고했다.”
확실히 피에르와 호른 백작 덕에 현상금을 더 잘 받고 이곳에서 좀 더 유리한 인맥과 좀 틀 수 있었다.
드래곤 경비 대장 델리의 권한은 시온이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켜도 친분으로 눈을 감아줄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뭔 일 있나?”
“있습니다. 호른 백작과 제가 약속했지요? 수도에 친구가 많다고요.”
“그랬지. 그래서 델리 경도 알고 좋았다. 상당히 굵직한 사람이더군.”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이번에 열리게 될 다양한 모임의 초청을 하기 위한 하인들이 잔뜩 있습니다.”
피에르를 따라서 간 곳의 창문을 흘깃 본 시온은 깜짝 놀랐다. 줄을 서 있던 것이었다.
그중에 거드름을 피우는 자도 있는 것으로 봐서 남작이나 백작도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수도였다. 수도에서의 인맥을 갖추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했다.
이곳은 끼리끼리 모여 형세를 갖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니 시온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임 같은 초청을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건 이것대로 귀찮은 일이군.’
하지만 이제 남작이 되면 다스려야 할 것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이렇게 수도의 사람과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시온은 많은 자를 만났는데 모두 다 초청을 하는 바람에 세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둘의 도움을 받은 결과 세 군데로 나눌 수 있었다.
‘시기를 보아하니 이 중의 한 곳만 갈 수 있군.’
그리고 호른 백작과 피에르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에른 가문은 기사 가문이었고 이곳엔 기사단의 단장과 유명한 기사들이 참석하는 곳이었다.
버건디 가문은 복합적으로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아티에 가문이 있었다. 마법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래 봐야 세 곳 다 공작 가문들이었고 버건디 가문은 대공작 인지라 어딜 가나 인맥 트기는 좋았다.
‘아티에로 할까.’
시온은 아티에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지금 단숨에 단계를 뛰어넘은 탓에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이 같은 결정은 다른 가문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자연히 다른 두 가문과 멀어지는 것이었다.
만약에 아티에 가문의 모임에서 적당한 도움을 받거나 무역 건을 따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다른 두 가문의 견제까지 받게 되어 시온이 받게 될 남작령이 힘들 수도 있었다.
받는 것도 힘들지만 그만큼 그것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시온이 적절한 건을 따내지 못한다면 금방 여러 곳에서 시온의 작위를 노리고 달려들 것이었다.
“아티에로 가지.”
“저는 버건디를 추천합니다.”
“저도 버건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아티에로 결정했다.”
아티에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보냈다. 하지만 시온이 수도에 와본 결과 벌써 두 차례나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둘 다 잘 끝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롱기우스의 갑주가 언제 수리가 끝나려나.’
시온은 오자마자 이 갑주를 입기 위해 제국 대장장이 길드에 맡겼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는 그곳은 시온의 마음에 들었다.
어떤 갑주는 그냥 착용하기만 해도 그 사람에 맞춰서 줄어들거나 늘어나기도 했지만 롱기우스의 갑주는 그런 쪽은 아니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수리를 맡겨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은 갑주를 차지한다고 해도 수도에 갈 일이 없으면 썩히는 경우도 많았다.
아티에 가문이 초청은 했지만, 그곳에서 시온을 정성껏 대할지는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마냥 편한 곳이 아니라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곳일 수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온 님이 맞으십니까? 저희 가문의 모임을 선택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티에 가문의 삼남인 기욤입니다.”
무려 가문의 자제가 중간에 맞이한 것이다.
아직 작위를 받지 않았기에 영지를 소유한 귀족이 아닌데도 아들이 직접 나오는 것은 최고의 대접 중 하나였다.
“반갑습니다. 시온 니벨룽이라 합니다. 가문의 이름에 대해선 들어본 적은 없으실 겁니다.”
“예, 죄송하지만 니벨룽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시온 경이 벌였던 골든 평원 전쟁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마법사들은 단순히 마법만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마법사가 의무적으로 전술과 전략에 대한 것을 공부하고 수련했다.
수도 다운 규모의 건물과 복합적인 저택이었다. 촌놈이 잘못 봤다가는 거성으로 볼 수 있는 규모였다.
푸르스 해협과 맞닿아 있는 땅과 건물의 가격이 상상 초월할 정도일 거니까 아티에 가문의 위세는 호른 백작이 설명한 대로였다.
“설마?? 시온 경 아니십니까?”
“진짜인가? 그 골든 평원의 전략가!”
“대체 무슨 마나지? 저 나이에 저런 마나와 기사로서의 명성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시온은 귀따가울 정도로 자신을 향해 떠드는 수백 명의 귀족무리를 곧 만날 수 있었다.
아티에 가문의 삼남인 기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온을 안내해갔다.
‘아티에 가문으로 온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군. 이 정도라면 무역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는데.’
“시온 남작님.”
“아직은 남작은 아닙니다.”
“하하. 겸손하시군요. 모두가 남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영예로 시작하게 되시겠지요. 황제께서 직접 내리실 예정인지라, 그래서 그런데 경과의 거래를 트고 싶습니다. 분명히 대화할 수 있고 금전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구석이 있을 겁니다.”
“아 그거 좋습니다.”
‘무역이 성립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