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304)

단계 건너뛰기(2)

“놀랍네요. 살아생전 당신 같이 다방면에 능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아티에 가문의 연회는 당연히 마법사만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시온이 이 가문을 고른 이유는 아티에 가문이 마법사 가문이기 때문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즉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다양한 신분이 모이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것이 기본 형태인데 여기에 현 황제 가문인 블랙파이어 가문의 혈족인 아만다가 여기에 있었다.

이왕 여기에서 만났으니 그녀와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야 했으나 시온은 딱히 수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황제의 혈족인 만큼 그녀 역시 백작위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값을 생각해보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하는 순간들이 쉬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지 않았다. 그녀와 조금 친밀해질수록 다른 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주제를 좀 바꿔볼까.’

시온은 그녀가 좋아할 만한 주제를 생각해봤다. 아만다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었기에 주제의 내용을 잘 골라야 했다.

‘마법, 전략, 아니면 황궁과 관련된 것들.’

“골든 평원에서의 전투에 대해 궁금하십니까? 아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물어보더군요. 아는 대로 얘기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아만다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가 가장 원했던 주제가 바로 이거였다.

‘예상이 맞았군. 아까부터 다른 사람들이 골든 평원에서의 일을 물어보더라니.’

시온은 자기의 이름이 거의 전쟁에서의 결과에서 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결투에 대한 것보다는 전략가로서의 이미지가 잘 퍼진 것이었다.

‘마법사들이라 그런가?’

그녀는 여자지만 동시에 백작이기도 해서인지 시온에게 다양한 전술적인 상황과 그런 판단을 내렸던 이유에 관해서 물어봤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이야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탰다.

“혹시 제가 받을 남작령과 교류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기회만 된다면 아만다 님을 통해서 많은 거래를 트고 싶습니다.”

“음······.”

그녀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온이 말하는 바는 더 깊은 거래를 뜻하는 것이었고 수도의 상황은 항상 빡빡하기에 기존에 있던 자를 쳐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될까?’

“그래요. 좀 이른 얘기이긴 하지만 유망한 자와 교류한다는 것은 저에게도 좋을 테니까요.”

이번 모임에서 두 개의 무역 거래를 따낸 것이 됐다. 이러면 남작령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됐다.

‘뻔하지. 작위 자체가 아무리 받기 힘들어도 받아봤자 남작이니···. 이런 게 중요한 법이지.’

괜히 남작령이 아닐 것이었다. 인구가 한계가 있기에 남작령인 것일 터이고 그 이유는 보통 금화와 관련이 깊었다.

시온 같은 경우에는 더욱 위험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문이 새로 세우는 경우 당사자만 없으면 남작령이 붕 뜨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아만다 님? 여기 이 건장하신 기사님을 소개해주시겠어요?”

누군가가 한 명 더 왔다. 시온은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티에 가문의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아까 봤던 기욤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녀는 아만다에게 시온을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시온은 도망갈 순간을 잃어버렸다.

‘피곤한데.’

이런 것은 익숙하지 않아 대화 주제에도 한계가 있는 시온은 슬슬 도망갈 기회만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의 기사가 느닷없이 일어나 시온을 향해 걸어왔다. 뭔가 따지듯이 오고 있기에 시온은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했다.

“시온 니벨룽, 당신의 명성은 수도에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정체는 마법사도 영주도 아닌 기사지요. 블랙 기사단의 가이언 경, 휀트 루지엥을 쓰러트렸다고 들었습니다. 결투를 신청합니다.”

“?”

느닷없는 결투 신청이었지만 나름대로 속내가 있었다. 남자는 버번 공작의 둘째 아들이었고 뛰어난 기사였다. 

버번가 역시 마법사 가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가끔 아버지의 의도에 맞지 않게 성장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굉장히 무례하군요. 얀 버번. 시온 경에게 대체 무슨 실례신가요? 시온 경은 여기에 초대가 되었을 뿐인데요.”

사실 얀은 오랫동안 아만다와 얘기해고 친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그만 폭발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즉 그저 이 일을 벌이고 아만다 앞에서 시온을 때려눕힌 뒤 멀어지게 하고 싶었다.

거기에 대한 빌미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전부 핑계를 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확실히 시온은 수도에서 좋은 먹잇감처럼 보였다. 남방지역에서 명예를 쌓아봐야 수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다들 만만하게 보는 것이 있었다.

블랙 기사단의 가이언이 통 크게 덤빈 것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녀가 알아서 막아줄 것 같긴 한데, 눈도 많고 그냥 지나갈까.’

또는 아만다 블랙파이어와 무역 계획을 잡았는데 괜히 취소될 수도 있었다. 별로 원해 보이지는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 두 여자는 귀찮았다. 아만다까지는 좋았는데 아티에 가문의 여자가 오니 대화의 주제가 확 지루해진 것이다.

“좋습니다. 나는 시온 니벨룽입니다.”

-오오??? 둘이 붙는다

-시온 경하고 얀 경이 결투를 한다고?

-얀이 제대로 질투했군

사실 다른 자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까고 있었다.

이곳에 놀련 온 귀족들은 최고의 재미있는 사건이 터진 것이라 모든 귀족이 시온과 얀의 결투를 보러 나올 정도였다.

푸르스 해협과 맞닿아 있는 탓에 대충 밖으로 나온 곳은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무척이나 좋은 곳이었다.

시온과 얀은 서로의 대치 자세가 되었다. 무기와 갑주 모두 여기서 주는 기본적인 것이라 어떤 마법도 없는 그런 무구들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여전히 앤드류의 메모라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발각되지를 않았다.

아마 시온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평생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투구가 내려가고 첫 번째 일격이 교환됐다.

시온의 메이스는 여지없이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게 했다. 확실히 시온에게 덤벼든 이유는 있었다.

‘가이언 보다는 강하군.’

마법사 가문 출신인데도 실력이 가이언 보다 높았다. 두 번째 일격에서 시온은 그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믿기지 않아.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네가 대체 어떻게 벨저 공의 기술을?!!”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격이 연달아 이어졌지만 모두 시온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벨저 공의 무기술의 특징이었다. 그것을 완전히 각인하고 마법으로 꺼내는 시온은 아마 가르쳐준 벨저보다도 더 능숙할지도 몰랐다.

얀의 무기가 날아가고 그의 머리 위에 메이스가 멈췄다.

‘제어가 좀 나아졌군. 마나가 늘어난 탓인가.’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다.”

주위는 싸늘할 정도로 넋을 놓고 있었다. 기사의 결투라면 정기적으로 봤을 정도로 이력이 난 자들이 바로 수도의 귀족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입을 벌리고 볼 정도로 시온의 솜씨는 가히 추정할 수가 없었던 정도였다.

그리고 그 넋을 놓고 보고 있는 무리 중에는 아만다 블랙파이어도 있었다. 

시온의 자신을 뜨겁게 보는 그녀를 보면서 적어도 무역 안건이 취소되지는 않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맙···. 맙소사. 내 머리가 깨지지 않았다니??”

투구를 내린 얀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그는 방금 죽음의 경계를 본 것이었다.

“전쟁터였으면 너는 죽었다.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명성을 뛰어넘는 실력이었다니···. 벨저 공과는···.”

“그 얘기는 여기서 하지 말아 줘야겠습니다.”

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온이 이어서 말했다. 이대로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가 한 번 더 빛을 보는 것이었다.

“얀 경. 당신은 나에게 목숨 빚을 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의 이행을 요구합니다.”

“?!”

명예만 추구하는 기사라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갔겠지만 시온은 아니었다.

시온은 동시에 마법사였고 얼마 전에 한번에 거대한 단계로 들어간 마법사였다.

그리고 얀과 따로 이야기해서 대략 목숨값으로 받을 것을 결정했다.

“정말 그게 필요하십니까? 제 가문이 염력 마법 쪽으로 일가견이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전도유망하신 경께서 이런 쪽으로 틀어야 할 필요를······.”

“그걸로 주십시오.”

시온은 그의 가문에서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대신할 수 있을 만한 상위 마법서의 진본을 요구한 것이었다.

ㆍㆍㆍ

아만다 블랙파이어 덕분인지 얀과의 결투 덕분인지 시온의 이름은 아주 수도를 한 번 강타했다.

안 그래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오자마자 벌인 일들 덕에 한 번 더 이름이 높아졌다.

그래서 시온은 아만다의 아버지인 벨리사르 블랙파이어에게 초청을 받게 되었다.

블랙파이어 가문이 가진 저택답게 안은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뜻밖에 벨리사르는 안쪽에 있지 않고 바로 앞에 이어져 있는 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드래곤이 조각된 갑주는 그가 블랙파이어 가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는 고심 중이었다. 앞에 있는 것은 여러 개의 말이 언덕과 지형을 타고 쌓여 있었다.

‘전술 지도와, 전술 말이군.’

시온은 그가 전술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벨리사르 블랙파이어는 유명한 기사이자 사령관이었다. 보통은 지휘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온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이어서 시온에게 말했다.

“벨저에게 얘기는 들었다. 자네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벨저와 친한 모양이었고 벨저가 시온에 대해서 이것저것 얘기한 모양이었다. 

시온은 전술 판을 봤다. 언덕 진을 들어가려는 것이 골든 평원이랑 비슷했다. 하지만 진형 자체는 거꾸로였다.

‘뭘 원하는 걸까? 기사로서의 대답일까, 마법사로서의 대답일까, 아니면 전술적인 대답을 원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사람들이 마법사나 전술가라고 치켜세워주고는 있었지만 사실 시온이 그때 한 것이라고는 가만히 있다고 결투로 받아버린 정도였다.

마법을 미리 설치해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어떤 자라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에라 모르겠다.’

“이게 저라면.”

시온은 아무 나이트 하나를 쥐고는 그냥 마법사 무리에 돌진시켰다.

“?”

“저는 이렇게 돌파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이렇게 이쪽 진형이 망가지겠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돌진해서 다 죽이고 있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고 병력을 다 돌릴 것이니까.

“그다음에 남은 부대를 총 돌격시키면 여기가 격파되겠죠.”

엄숙하고 진지했던 그가 어이없고 놀란 표정으로 시온을 봤다.

누가 이런 방법을 모를까,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이 돌진하는 나이트 하나가 그것을 만들어야 했다.

“자네라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뜻인가?”

시온이 빙긋 웃었다.

“물론입니다. 물론 저 같으면 이런 진형을 잡지도 않았겠죠.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돌진해야 하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보병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한참이고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말했다.

“원하는 게 있나? 좋은 답변이었다. 벨저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무식하구나. 그런데도 명쾌한 것이 있어.”

“당연히 있습니다. 혹시 고렘과 관련된 재료와 마법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