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창대회
“에릭?”
“시온! 날 아직도 기억해 주고 있다니!”
건장한 남자가 반갑게 시온을 안았다.
‘음, 성격 아직도 여전하구나.’
시온이 초기에 수련 마법사 자격을 받기 위해 애를 썼을 때 만났었던 종자였던 에릭이었다.
에릭에게는 나름대로 빚도 있었고 그의 금화 덕에 초기 장비를 구매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에릭이 시온에게 던져준 작은 호의들이 구르다 못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시온에게도 나름 뜻깊은 사람이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에릭을 본 것이었다.
“수도에 있었다니!”
“이번에 작위 수여를 받아.”
“역시나 내가 생각한 자가 맞았군. 여동생은 이름이 다른 자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왠지 자네일 것 같았거든.”
“그런가? 여동생은?”
“잘 지내고 있어. 그런데 결국 성공했구나! 분가라! 대단한 업적이지! 나는 그때 배울 때도 자네가 기사로서 대단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고맙군.”
“덕분에 나도 기사도 되고 나름 이름도 날리고 있어.”
“기사가 됐나? 그럼 에릭 경이로군.”
“그렇지. 자네가 알려준 레슬링 기술, 격투 기술로 수도에 있는 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사도 됐지.”
놀라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온은 어느 정도 예감하고이던 바가 있었다. 시온이 알려줬던 격투기와 레슬링 기술은 현대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효율적이었고 당연히 에릭과 잘 맞았다.
에릭 자체도 힘이 상당한 데다가 나름대로 감각이 뛰어나서 이곳의 대회 우승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시온은 예감했던 바가 있었다.
“시온 남작이라. 내가 거기에 검을 바쳐도 되나?”
“환영하지. 온다면 대우를 잘 해주겠어.”
“고맙군. 이번에 맺은 일만 잘 끝나면 자네한테 갈게. 그리고 자네의 업적에 내 목숨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허, 벌써 죽으려고 해? 나는 이기는 승부밖에는 하질 않아.”
“그렇지, 그렇지. 외견은 기사이나 역시 속은 마법사지. 한치도 변하지 않았어. 변한 것은 자네가 쌓아올린 기회지.”
“고맙다.”
“그런데 내가 자네한테 부탁 하나 할 것이 있어. 그리고 이건 자네한테도 나쁘지 않은 기회야.”
“뭐지?”
“마상 대회가 한창인 거 아나?”
수도에 대회가 한두 개 열리는 것이 아니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자주 열리는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온이 수도에 왔을 때도 이미 하나의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마상창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마상창대회? 거기에 참가하고 있었나?”
“맞았어. 그런데 내 손을 봐.”
그의 엄지가 부러져 있었다. 치료 중인지 무언가를 두르고 있다.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마상창 쪽에는 실력이 부족함을 느껴서 이번에 기권할 생각이야. 그런데 거기에 자네가 참가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대리 결투는 언제나 합법이었고 기사의 대리 결투는 몇 개의 조건이 있어야 했지만 이런 식의 부상이라면 무조건 합법이었다.
‘할까?’
시온은 현재 앤드류의 새로운 마법서를 탐독 중이었고 그리고 이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이유도 충분했다.
“어떤가?”
하지만 시온에게 있어서도 쉬운 결정은 되지는 않는 일이었다. 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시온이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메이스였지 마상창이 아니었다.
지게 되거나 다치면 공개적인 실망으로 이어져 지금 누리고 있는 명성을 일부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다쳤을 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잠시 깊게 고민해보던 시온이 말했다.
“마상창 가르쳐줄 수 있나?”
“???? 모르는가?”
“알긴 아는데 한 번 지도 부탁하지.”
“아니, 아니 그렇게 빨리 해결될 일이 아니야. 내가 듣기에는 골든 평원에서 대단한 전공이 있었다 해서 당연히 능숙한 줄 알았어.”
“해보지.”
다음 경기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그에게서 배운 다음 넉넉해진 마나에 마상창 기술을 넣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에릭은 시온에게서 그때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벅찬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기사다. 분명히 처음엔 어색했는데 하루만 지났다 하면 바로 완벽해져 있구나. 이 정도라면······. 혹시 모르겠어.’
행동각인마법을 모르는 에릭으로서는 천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승부를 장담하지는 못했다.
수도에서 열리는 대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기사들이 참가하기 마련이었다.
밥만 먹고 몇 년 동안 그것만 하고 올라오는 자도 수두룩했고 이번 상대로 나온 자는 그런 자 중 하나였다.
ㆍㆍㆍ
마상창 시합은 유래가 깊었다. 어느 정도 깊은지는 시온도 몰랐다. 하여튼 횟수로만 따져도 제국이 있기 전부터 있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규칙은 상당히 간단했는데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결이 이어지고 그렇게 올라간 자들은 양쪽 끝에서 말을 타고 대기하고 있다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랜스로 찌르게 된다.
시온은 투구를 내렸다.
엄청난 환호성 소리가 들렸는데 신기하게도 시온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상대는 버건디 대공작의 아들이었다. 몇 번째 아들인지는 몰라도 시온은 그를 보자마자 대단한 인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체격, 기술, 용기 모두 기준 이상이군.’
과연 어지간하면 들이박는 에릭이 손가락의 부상으로 기권을 생각했을 정도의 기사였다.
‘잘하면 질 수도 있나? 예상보다 더 강한데.’
워낙 긴장을 자주 하는 시온이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긴장이 좀 되는 상대였다.
벨저한테서 마상창 기술을 받았다면 좀 확실했겠지만 아무래도 에릭의 마상창 기술은 급이 떨어질 수밖에는 없었다.
아무리 시온이 완전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얻을 것이 꽤 있었다.
버건디 대공작의 아들이 황제에게 인사를 했다. 그랬다. 이 경기는 현재 황제가 보고 있었다. 블랙파이어 가문의 현 계승자가 보고 있던 것이었다.
‘벨리사르 공도 있겠군.’
아마 아만다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많은 블랙파이어 가문의 혈족이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시온도 황제 쪽으로 인사를 했다.
-시온 경이다!!!!
-미친 시온 경이야!!!! 이런 경기를 볼 수 있다니!!!
-신이시여 이 매치를 볼 수 있다니
시온의 명성은 이미 버건디 대공작의 아들을 능가한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외치는 시온의 이름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번에 괴레의 공개 처형 덕에 시온의 명성이 확 퍼진 탓에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디 대가문에 속해 있는 자도 아닌, 그야말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가문의 출생이라는 시온의 신분은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방향을 잡아야 하는군.’
그냥 돌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름의 고도의 심리가 들어가는 경기였다.
보통의 말만 타도 한 번 출발하면 방향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돌진하는 입장에서는 미묘한 선택지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랜스차징의 실력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최소로 하고 자신은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거친 경기에 사망하는 사건도 있어서 다른 것은 기본적인 것이 주어진다.
다만 갑옷은 물리 방어에는 최고의 방어력을 부여해주는 것이 제공되고 말은 영수 말이 아닌 보통 말을 준다는 것이다.
‘승부는 한순간.’
시온은 말이 앞으로 달리고 점차 공기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앤드류의 마법이 격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그 마법적인 힘이 시온의 폭넓은 마나를 마음껏 써가면서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향 자체는 시온이 정해야 했다.
‘살짝 위로하자.’
그리고 몸이 그 방향에 맞춰 최고의 자세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에릭이 펼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보다도 급이 높은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시온은 손에 묵직한 것이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쇳덩이가 밀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버건디 대공작의 아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마도 내가 말을 계속 타고 있으니 이긴 것 같군.’
그 정도로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시온이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가슴을 찍혀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기사가 눈에 보였다.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무용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바로바로 소리를 질렀을 자들이 순간 말을 잊을 정도로 깔끔한 랜스차징이었다.
그 뒤로 경기장이 얼마나 시끄러워졌는지 시온도 우레같은 함성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몸은 앤드류의 마법이 보조해서인지 말에서 무사히 내렸고 그대로 투구를 벗었다.
“괜찮았나?”
“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어!”
에릭이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리고 에릭과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필립스가 빠르게 뛰어와서 말했다.
“황제께서 보고 싶다고 합니다!”
“황제께서?”
“예!”
가기 전에 시온은 자신에게 데려오는 영수 말 한 마리를 받았다. 영수 말은 보통의 말과 훨씬 달랐다.
영리하고 더 빠르고 더 강력했다. 특히 이번 상품에 있던 이 말은 그 영수 말 중에 급이 더 좋은 것이었다.
갈기가 사자처럼 나 있고 붉은 말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치가 대단한 영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시온에게 넘어왔다.
“다만, 주의하실 것이 있는데 이 말은 주인을 가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한 번 주인을 결정하게 되면 평생 충성을 하는 그런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이 말은 제가 일단은 데리고 있다가 따로 만나서······.”
붉은 말을 데려온 자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영수 말이 시온을 보더니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쓰다듬어 달라는 동작을 보였다.
“?!”
“!!!”
오랫동안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한순간에 그 충성을 받아낸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가 특히 놀라는 것을 보니 여기에 관련된 지식이 없는 시온도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 일이 자주 없나?”
“없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처음 봅니다. 있을 수도 있다고는 항상 생각은 했는데······.”
“나는 황제님을 봬야 해서 일단은 그 계획대로 하지. 자네가 데리고 있게. 나는 나중에 받지.”
“알겠습니다. 시온 경.”
말을 다루는 기사의 눈빛에서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줄줄 흘렀다. 시온이 경기장의 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올라가기 전에 그 앞에 놀랍게도 아만다 블랙파이어가 있었다.
“잘 봤어요. 그 무용.”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아버지가 잠시 한마디 하실 거에요. 나쁘진 않을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먼저 걸어갔다. 그리고 좀 더 올라가자 벨리사르 블랙파이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그 진형을 혼자서 돌파할 그 기사로구먼.”
벨리사르는 흡족하다는 얼굴이었고 흥분에 젖은 목소리였다. 마치 진귀한 보석을 눈앞에 둔 것과 같은 것과 같았다.
그가 빠르게 시온에게 속삭였다.
“바로 앞에 형님이 있을 것이야. 그러나 나는 자네에게 조금 도움을 주고자 하네.”
“그게 뭐지요?”
“현재 분쟁 중인 백작령이 하나 있어. 그리고 그 일은 해결하기 어렵지. 그 백작은 지금 병마가 깊어 곧 사망할 거라네. 이미 흘러 흘러간 작위이기 때문에 상속받을 자가 없어. 그래서 제국으로 다시 귀속될 작위야. 이 정도면 눈치껏 알아들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