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제안
백작 하나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분명히 단서 하나를 더 받았다. 다툼에 휘말려 있다는 이야기였다.
흘러 흘러 더는 상속자가 없을 정도로 어지간해선 해결할 수 없는 영지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원래 달콤한 것은 독이 들어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기사에게 호의가 있다고 해서 흘릴 말은 전혀 아니었다. 어떤 기사라도 이러한 제의를 받으면 넙죽 절하고 받아낼 것이었다.
영주가 된다는 것 그리고 남작이 아닌 백작급의 영주가 된다는 것은 모든 기사의 꿈이라고 봐야 했다.
“음? 왔군. 방금 일전의 솜씨를 보인 기사가 분명하군.”
“시온 니벨룽이라 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귀가 있다. 사람들이 네 이름을 불렀지.”
예외적인 규정의 인정으로 에릭의 대리기사로 시온의 출전이 결정되자마자 마사창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뜨겁게 시온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이 자가 현 황제인 디드리히 블랙파이어. 검은 용.’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한때는 블랙프린스라 불리며 무너져 가는 제국을 바로 잡았다.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반이 반기를 들었던 대반란을 진압하고 황제에 오른 남자이기도 했다.
“특이하군. 특이해. 너는 마법사로군.”
‘?’
어지간해서 시온의 본질을 마법사라고 보는 자는 거의 없었다. 첫인상에서 그런 자는 더욱 없었다.
오죽하면 에릭도 이제는 아예 완전히 기사로 볼 정도다. 황제는 신기하게도 시온의 진짜 모습을 알아낸 것이었다.
‘무엇이 걸린 것일까?’
“바다와 같은 마나로다. 단계가 그에 미치지 않는 것을 보니 속성을 여러 개 다루는군. 그러면서도 강렬하고 용맹한 무예를 펼치는 젊은 기사라.”
육십을 넘긴 금발의 강인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시온의 속내를 보겠다는 듯이 뚫어지게 바라봤다.
‘무슨 눈빛이 사람 하나 죽이겠는데.’
벡타르가 블랙파이어 가문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온에게 공상초를 그냥 퍼준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한번 걸렸다가는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하나 묻겠다.”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자네를 강하다고 보나?”
시온은 바로 고민에 빠졌다. 벨리사르 블랙파이어가 미리 알려준 것을 보니 황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헤아리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말을 잘 골라야 한다는 건가.’
‘벨리사르 공은 그 백작위를 내가 받아서 그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을 보고 싶은 것 같고, 보아하니 디드리히 황제는 여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강하다고 하던지, 약하다고 하던지 시온은 둘 다 쉽게 내릴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전연승했지만 그런 승리에 취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게 이곳의 법칙이었다.
시온은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현대인다운 결론을 내렸다. 명예도 겸손도 아닌 그 중간이었다.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바로 정적이 찾아왔다. 여전히 밖은 시끄러웠기에 그 소리만 울렸다. 시온은 자신이 제대로 답변을 한 것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었다.
‘기사답진 않았지.’
기사라고 한다면 보통은 제국과 황제를 위한 그 명예로운 대답을 해야 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이런 황제와의 만남에선 더욱더 그런 식의 답변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즉 충성심을 보는 것이다.
충성심이 있는지를 보려고 했던 거라면 시온은 백작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흠, 확실히 동생들이 널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가 있구나.”
동생들이라 하면 벨리사르, 벨저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곳을 굳은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정적이 이어지는 와중 디드리히가 다시 한 마디를 더했다. 시온은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마지막 결정이 나오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많은 벽을 단숨에 돌파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원하는 자는 많다. 많은 가문이 원하고 있지. 그리고 그 가문들은 많은 금화와 병력을 지원할 수 있지. 그런 것은 언제나 개인을 이긴다네, 젊은 기사여.”
‘안 된 건가?’
“하지만 자네를 선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예전에 내가 선망하던 그 남자를 닮았어. 오랜 기억이지.”
“그 말씀은.”
“벨리사르에게 어느 정도 들었겠지. 녀석은 마음에 드는 자에게 그렇게 항상 언질을 주지. 맞다. 시온 니벨룽 너는 그 백작위를 받게 될 것이야.”
역시 한 마디로 단숨에 수많은 벽을 넘었던 것이 맞았다. 시온은 이 작위를 노리는 수많은 경쟁자를 개인의 힘으로 제친 것이었다.
‘뜻하지는 않았었는데 여러 가지가 단숨에 풀려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됐다.’
수도에 와서 한 가지라도 만나지 못하고 그만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이런 기회는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분쟁 지역의 백작위라 독이든 사과라 해도 가장 좋은 사과인 것은 분명했다.
남작위를 받아내는 것도 기사로서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급이지만 남작에서 백작위를 받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평생 남작에서 머무는 자도 셀 수 없이 많은 것이었다. 백작이 된다면 마리가 도달하지 못한 그것에 먼저 도달한 것이 됐다.
동급의 수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ㆍㆍㆍ
“이것을 왜 필요로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이 원하시니 드려야겠지요.”
시온은 얀에게서 마법서 하나를 받았다. 마법서의 이름은 무력 폭풍이었다.
아라크네 거미줄의 한참은 상위 마법으로 염력 계열에서 이 정도만 가져도 슬슬 어딜 가도 마법으로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고맙습니다.”
“마상창 경기를 보았습니다. 과연 제가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더군요. 상대를 모르고 덤비면 옛말에 당연히 죽어야 한다 했습니다. 목숨을 건졌으니 이것을 기억해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얀이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다만 이것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문에서 알았다가는 저도 골치가 아파서. 그냥 잃어버린 거로 해두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냥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시온은 어차피 다른 자에게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이런 것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게 나았다.
그러면 한 번은 제대로 발휘해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부탁할 일입니다. 얀 경이야말로 이 일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같으니 이거 좋군요.”
“휴, 이렇게 사려 깊은 마음 까지 있으시다니 이렇게 저를 감동하게 하시는군요. 경은 정말로 제가 본 어떤 기사보다도 명예롭습니다.”
‘?’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고맙죠.”
“이번에 얻으신 그 붉은 영수 말에 대한 가치는 아십니까?”
“아니요. 하지만 그것을 받을 때 똑똑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이번 대회는 그 영수 말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필요가 없으시다면 팔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이미 저를 주인으로 결정한 것 같아서 팔기가 힘들 것 같더군요.”
“?!”
“주인으로 정했단 말입니까? 벌써?”
“저도 확인은 못 해봤습니다만 그것을 안내해 준 기사가 저보고 이미 주인이 된 것 같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런 순간을 놓치다니.”
얀은 정말로 그 순간을 놓친 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황제께서 저를 부르셔서 제대로 교감은 못 했습니다만···.”
“정말입니까?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저는 믿지는 않았습니다. 소문에 경이 백작위를 받게 될 거라고···.”
“사실입니다. 다만 힘든 분쟁지역이라고 하더군요.”
“!!!”
얀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가 서렸다.
순식간에 이뤄진 출세에 대해 질투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시온과 결투를 했고 목숨을 받은 사람이었다.
말이야 겸손할 뿐이지 시온이 얼마나 무서운 실력을 갖췄고 그에 걸맞은 인성과 품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이젠 완전히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선 점차 존경심으로 바뀌는 것은 곧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원하신다면 경에게 합류하고 싶습니다. 황제께서 맡기신 지역이라면 상당히 거친 지역일 겁니다.”
“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백작이 되면 많은 검이 필요한데 얀 경 같은 좋은 검을 거절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얀은 시온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인지 가슴이 벅찬 모양이었다. 시온은 얀의 도움을 한 번 더 받아보기로 했다.
“기사수도회에서 마상창교본술을 하나 얻고 싶은데 소개 좀 부탁합니다.”
“???”
“가능하겠습니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경은 마상창대회 우승후보를 꺾었는데요, 여기에 무슨 교본이 필요하시다는지.”
“그게 사실 에릭 경에게 대강 배워서 써본 것이라 제대로 된 마상창기술이 아닙니다.”
얀의 턱이 빠질 듯이 벌어졌다. 모두가 놀라서 말을 잊어버릴 듯한 그 솜씨가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었다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시온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곧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겠습니다. 소개야 어렵지 않은데 기사수도회에서 과연 그것을 내줄지는.”
“저도 희박하다고는 보곤 있는데 그냥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기사수도회는 꽤 여러 가지가 얽힌 단체였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기사수도회 자체가 신을 모시는 기사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탓이었다.
즉 제국을 위해서 일하고 황제의 명령도 받기는 하지만 단체가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높은 숭고한 것이 담겨 있는 조직이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단체로 갈리곤 하는데 크게 세 개의 수도회로 나뉘었다. 시온이 가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 하나인 나이트템플러였다.
“한 번은 꼭 보고 싶었소만, 경이 시온 니벨룽이었군요.”
이렇게 특이한 의미와 독립된 세력인지라 황제의 명령도 뜻이 맞지 않으면 거의 거부해버리는 일도 있는 조직이었다.
반면에 황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한 것이 만약 제국이 위험에 빠진다 하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모두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그런 조직이기도 했다.
“반갑습니다. 단테 경.”
수도자이기도 하나 조직의 구도가 다른 기사단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어서 단장과 부단장이 나눠서 일을 보고는 했다.
단테는 부단장이었다.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가도 감탄하기도 하고 여러 동작을 반복적으로 했다.
진심으로 시온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고 이 자를 당연히 기사수도회로 끌어들이고도 싶었다.
“저희 나이트템플러에 입단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특례를 적용해 경을 바로 대장으로 넣겠습니다. 경이라면 능히 그 직을 맡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기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입단이라는 기본적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래야 무기술 교본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황제나 황태자도 예외가 없어서 황태자 같은 경우는 보통 제왕 훈련을 받는 과정에 수도회에 입단해 여기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사실 대장직은 블랙 기사단에게도 제안받았었습니다.”
“블랙 기사단에게!!”
괴레의 목을 가지고 겨루었던 블랙 기사단의 대장과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그에게서 롱기우스의 갑주를 받아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직위에서 해제되고 말았는데 그 자리를 바로 시온에게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시기적으로 에릭을 만나기 전이었는데 시온은 그냥 거절했다.
기사단에 들어가서 따로 그쪽 세력을 장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독립하는 것이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