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위
‘기사수도회에 괜히 강짜를 부렸다가는 기사수도회 전체가 나에게 달려들 수도 있지.’
지금이야 친절한 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광신적인 성격이 있었다. 그러니 작은 거 하나라도 잘못 걸렸다가는 전체와 싸워야 했다.
“저는 제국마상창교본술을 얻고 싶습니다. 잠시만 보고 돌려드리겠습니다.”
“허허, 아무리 시온 경이라 해도 저희의 규칙을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시온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결투를 신청해 버리는 것과 속이는 것. 입단을 하고 잠시 교본을 본 뒤 정해진 시간이 오기 전에 취소할 수도 있었다.
작위를 받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백작위를 받게 되면 당연히 단원으로서의 자격이 취소되고 다시 입단을 해야 했다.
기사로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백작으로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었다.
시온의 이마가 좁혀졌다. 한 가지를 결정 내려야 했다.
“나이트템플러에게 명예결투를 신청합니다. 서로의 조건을 걸고 합시다. 제가 지면 그쪽이 원하는 데로 입단하겠습니다. 제가 이기면 교본술을 저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합시다.”
물론 불같이 화를 내고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있었다.
속이는 것이든 이렇게 정면돌파하는 것이든 기회는 한 번이기 때문에 잘 풀리지 않으면 다른 자를 선생으로 구할 생각이었다.
“젊은이다운, 패기로군. 그렇게 합시다. 나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오. 경은 소문대로 호쾌한 면이 있군!”
일이 상당히 잘 풀려 버렸다.
이왕이면 교본술을 구하다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가장 적당하고 기본기가 완벽한 교본술은 기사수도회의 것이니 이곳에서 얻어내야 하는 가치는 넘치고 넘쳐 흘렀다.
ㆍㆍㆍ
공개적으로 벌이기보다는 기사수도회의 습성상 조용한 곳에서 몇 명이 참관하는 가운데 결투를 치르기로 했다.
기사수도회 정면에서 도전한 것이기에 시온이 버거워할 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면 비밀을 지키겠다고 여기서 여러 명한테 공격당할 수도 있겠지.’
원래 이곳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상시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렇게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온의 상대로 걸어 나오는 것은 얘기를 나눴던 단테 경이었다.
‘이겼군.’
시온은 바로 승리를 자신했다. 단테 경은 이곳의 특성상 강해서 부단장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점을 인정을 받아서 부단장을 한 것이었다.
요즘 수도를 뜨겁게 달구는 시온과 결투를 하기 위해서 나이트템플러 부단장 단테가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
그의 밑에는 괴물 같은 기사들이 수두룩했고 시온은 그들과의 격전을 예상해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도중이었지만 이러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깡!깡!깡!
“허억, 헉.헉.헉. 잠깐!!!”
그리고 결투가 시작된 지 시온이 일부러 살살 해줬음에도 일분을 버티지 못하고 단테가 소리를 쳤다.
기량의 차이가 너무 나서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땀을 줄줄 흘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온을 보던 그는 항복의 의사표시를 했다.
시온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정중히 인사를 하는 관습을 잊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다른 문제 없이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 항상 좋다고 생각했다.
시온은 단테에게서 직접 제국마상창교본술을 받아냈다. 아주 오래된 양장본으로 몇 번이고 수정에 수정을 거친 가치가 깊은 물건이었다.
‘메이스교본술보다 질이 좋군.’
몇 장을 보지도 않았지만 시온은 바로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메이스는 어쩔 수 없는 비주류 무기였다.
하지만 마상창 기술은 기사들이 필수로 익혀야 하는 기술인만큼 교본술도 급이 더 좋았다.
“부탁이네. 대전에 대해서는 말해도 좋지만, 이것을 내가 내줬다는 말은 자제해주게.”
“노력해보겠습니다.”
“시온 경의 명예라면 암, 해주겠지. 만약 잘 지켜준다면 내가 한 번은 더 도와줄 테니.”
아무리 기사수도회라고 해도 구성원은 사람인지라 욕심도 부리고 그 욕심에 발이 묶여서 이렇게 다른 약속도 잡아주고는 했다.
시온의 대답이 애매해지자마자 또 다른 약속을 하나 걸어준 것이었다. 시온은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곳에서 나왔다.
‘당분간은 이것과 무력 폭풍을 연습해야겠군.’
무력 폭풍을 익히는 데에는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각인마법과는 달리 진짜배기 마법을 익히는 데에는 별수 없이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했다.
ㆍㆍㆍ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드디어 작위를 받는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수도에서도 큰 행사로 성스러운 신전에서 치러졌다.
랭스 대신전은 제국의 수도보다도 역사가 깊은 신전이었다.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신전은 고대에서부터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작위 수여가 가장 높은 가치가 있었다.
다른 데서 어설프게 받으면 전통성 때문에 시비를 받기 쉬웠는데 여기에서 받으면 그러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 받으면 신과 제국이라는 거대한 틀이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인정이 따라붙고는 했다.
그래서 새로운 황제가 대관식을 할 때는 항상 이곳에서 대관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시온도 작위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설마, 여기서 해줄 줄은 몰랐다.’
랭스 대신전 말고도 사실 다른 신전도 있는 편이라서 꼭 여기가 걸릴 이유는 없었는데 누가 봐도 황제가 시온에게 기회를 제대로 주고자 이곳에서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백작위에 대한 사실은 몇 명만 알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은 몰라서 이번에 백작위가 시온에게 내려지게 되면 까무러치게 놀랄 예정이었다.
랭스 대신전의 내부는 시온이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하고 신기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 구경 온 자들은 대부분 귀족과 유명한 상인들이었다.
애초에 작위 자체가 이런 식으로 다른 자들에게 이 사람이 이제부터는 정당한 귀족이다, 라고 알려주는 것이 크기 때문에 항상 이런 식으로 벌어지긴 했지만, 요번엔 그 규모가 아무래도 더 컸다.
수천 명의 시선이 시온에게 몰렸다.
시온의 소문은 무성하게 자란 데다가 이곳에 오자마자 벌인 여러 건의 결투와 사건들은 모두의 심장을 흥분하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기사수도회에서의 단테 경과의 결투도 어딘가에서 소문이 나서 시온이 도장 깨기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새롭게 나고 있었다.
예전에 고대에 있었던 기사의 관습으로 지금은 사장되었지만 정말로 뛰어난 기사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긴장되는군.’
시온은 애써 무심해 보려고 했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황제가 백작을 줄 지도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지 않는다면 일이 틀어진 것이고 아무리 기대했다고 해도 황제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과연 어떨까. 만약 받지 못한다고 해도 나쁘진 않았지. 어차피 내 실력을 증명했으니 나를 불러 이런저런 일에 쓰고 싶을 터. 그것을 이용해서.’
디드리히 블랙파이어의 목소리가 시온의 상념과 이곳을 깔린 고요한 정적을 깼다.
“시온 니벨룽에게 움드 백작위와 르만 남작위을 내린다. 신께서 그것을 인정할 것이며 이 정당한 권리는 너와 너의 자손에게 대대로 내려질 것이다.”
시온은 그 소리를 듣고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남작이 되기만 해도 분가로서 성공한 것이었는데 백작위는 오히려 분가가 아닌 니벨룽 가문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수준이었다.
움드 백작이라. 시온은 그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온만 생소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시온이 남작위만 받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다른 작위도 걸려 있는 것을 안 것이었다.
우레와 같은 찬사와 박수가 이어졌다. 이것으로 예전에 세웠던 첫 번째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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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드 백작령은 제국의 최전방에 있는 백작령으로 그곳에 얽혀있는 세력은 무려 다섯 개였다.
아주 골치 아플 대로 아픈 지역이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시온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도 했다.
‘많은 게 필요하군. 일단 르만 남작령에도 가봐야 하고.’
받은 영지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마리가 신경을 쓴 작위이기에 벤이 가지고 있는 남작령 중에서는 가장 좋은 남작령이었다.
나름의 세수도 되고 인구도 됐다. 시온은 일단 백작이 되었다는 기쁨도 컸지만, 독을 제거해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시온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
‘분쟁 지역이라는 말은 그 다른 장소도 분쟁영역에 속해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차라리 안정적인 곳보다 이런 곳을 받는 것이 위험한 만큼 기회도 많다고 볼 수 있었다.
잘만 처리하면 다른 백작령 남작령도 시온이 챙겨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앤드류의 두 번째 마법이었다.
‘운이 좋았다. 이것을 이 시기에 발견할 수 있다니.’
시온이 해석에 집중하고 있는 고렘마공학행동각인술 마법서는 사실 이곳에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마법이었다.
고렘에게 명령을 내려 어떤 일을 지치지 않게 수행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앤드류가 써놓은 서적 내용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대신 하급의 고렘으로는 발동도 안되는 고급 마법이었고 여기에 드는 기본 마나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직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만약 이것을 발동하고 난다면 시온도 일주일 이상은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요양해야 할 정도다.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급이면 분명히 돌아갈 것 같은데.’
벨리사르 블랙파이어에게 받은 고급 고렘이라면 가동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실패하면, 생각하기도 싫네. 성공한다면 바로 영지의 생산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이십사 시간 동안 일을 시킬 수 있는데 농노제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율을 보일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다만 여기에 마나를 불어넣어 줄 마법사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이 마법사가 조종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고렘이 의사를 가지고 있는 건지 이게 헷갈린단 말이지.’
당연히 시온은 고렘이 의사를 가지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고렘의 통제권을 완전히 쥐고 있는 게 된다.
이건 큰 요인이었다. 고렘의 조종을 맡겨야 한다면 시온이 할 때도 있겠지만, 마법사를 고용해야 할 것인데 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
‘한 명 있구나.’
현재 펜부르크에 재정을 담당하라고 맡겨놓은 초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단계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기에 초이를 집중적으로 키워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축하합니다. 시온 백작님.”
“이대로 끝낼 수 없지요. 연회를 여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때 인맥과 동맹을 맺을 사람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백작님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저의 검은 백작님의 자식과 자식에게 대대로 내려갈 것입니다.”
“축하해. 나도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합류하겠어.”
시온은 쏟아지는 일행의 인사를 받고는 있었으나 머릿속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