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수련(1)
시온은 곧바로 제국마상창술의 연습에 들어갔다.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기사수도회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기사수도회의 모든 진본 무기술은 다시 돌아와야 했고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원칙적으로 막아놨기에 보통은 기사수도회에 입단을 해야 했다.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는 거라면 해당 수도회 기사에게 배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시온처럼 혼자서 진본만 가지고 독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또 이런 식으로 혼자서 배우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단테가 시온의 조건을 들어보고선 바로 승낙한 것이었다.
“역시, 에릭의 마상창술은 어딘가 빠져있었던 게 맞았군.”
그런 느낌이 들긴 했는데 이렇게 제국마상창술이라는 기사수도회의 진본을 훑어보게 되니 바로 빠진 부분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 승부에서 허공에 날아갈 수도 있었던 것은 나일 수도 있다는 거였겠지.’
안 그래도 기사의 결투와 승부는 빠르게 끝나기 마련이지만 유독 마상창 승부는 그 한순간에 한순간을 압축한 것 같았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명의 패배가 결정되고 깨져버리는 것이다. 만약 시온이 날아가는 쪽이었다면 디드리히 블랙파이어를 알현하는 쪽은 버건디 대공작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군. 버건디 대공작도 움드 백작위를 노리고 있었구나.’
대공작이라고 하면 공작위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는 것인지라 거의 왕급과 엇비슷하거나 맞설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기에 왠지 움드령 같은 골치 아픈 백작위는 노리지 않을 것 같은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진 귀족이 더 욕심을 부린다고 노골적으로 움드령을 황제에게 달라고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버건디 대공작가는 나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겠구나.’
적어도 버건디 가문과 무역을 틀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됐고 오히려 간섭하려고 하거나 해를 끼치려고 할 확률이 높았다.
‘생긴 게 딱 적토마란 말이야.’
물론 이곳엔 그런 단어도 없고 현대와도 다르므로 이런 이름을 붙여도 알아볼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영수라서 생긴 것도 말보다는 사자나 늑대처럼 생겼고 갈기도 풍성하고 깊었다.
“시온 백작님.”
“왔나.”
“여기 연습하실 무구입니다.”
필립스가 여러 개의 물건을 가져왔다.
아무래도 마상창무기술을 연습하는 데에는 손상이 갈 수도 있는 진짜보다는 이렇게 막 쓸 수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역시 시온 경께서는, 아니 백작님께서는.”
“어느 쪽도 좋다. 경도 좋아, 여전히 나는 기사이거나 마법사니까. 백작은 그냥 그 길을 가는 도중에 얻어걸린 정도지.”
시온이 그렇게 말을 끝내자 필립스가 가슴이 벅찬 모양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온은 아직도 자신이 움드 백작이 됐다는 사실이 신기한 편이었다.
남작위를 받으려고 올라왔다가 백작위까지 얻어걸린 것인데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순 없었다.
“다른 기사들을 부르겠습니다.”
“잠깐만.”
시온이 나가려는 필립스를 붙잡았다.
필립스가 이런 식으로 다른 기사를 부른다는 것은 보통 기사 중 급이 되는 기사들의 수련은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이제 움드 백작인 시온이 그러한 방법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시온은 이번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할까 한다. 너하고 하면 될 것 같군.”
“예??!”
“안 되겠나?”
시온을 누구보다도 옆에서 길게 본 필립스로서는 시온이 얼마나 대단한 기사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돌파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앞에 선다는 것은 영광이기도 하지만 많은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나랑 같이해달라는 건 아니고 표적만 잘 세워놓아 봐.”
시온이 영수를 탈 준비를 하자, 적마가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원래 주인이 되지 않은 자가 영수마의 위에 올라가면 큰일이 나고 잘못하면 죽거나 크게 다칠 확률이 높았다.
‘보통 말과는 타는 게 다르구나. 영수 마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군.’
시온은 앤드류의 각인마법을 깨우며 자세를 취했다. 하나씩 그것을 새겨나갈 순서였다.
이것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이 되기에 누가 보면 그냥 기사가 평범하게 수련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앤드류의 마법에 특징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그 은밀함이 깊어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궤도에 오르듯 각 동작의 실현이 시작되었다. 한 번 지나갈 때마다 표적의 어딘가는 박살이 났다.
‘빠르다, 그래서 더 강력하군.’
그렇게 시온이 신호를 주면 필립스가 준비해둔 새로운 표적 나무토막을 올려놓고 시온이 거기를 향해 적마를 몰아 내달렸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온은 놀라고 있었다.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면 날짜보다도 여유 있게 마스터할 수 있겠군.’
평소보다 한참은 빨랐다. 원인은 잘 몰랐다.
시온도 차라리 여러 기사를 두고 하는 편이 항상 낫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혼자 하는 쪽이 빠를 때도 있다는 사실은 이제 안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원래 앤드류 마법을 각인시키는 시간보다 반이나 빠르게 제국마상창술을 습득하고야 말았다.
이건 새로운 기록이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시온은 바로 알았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순간에 랜스 한 자루만 있어도 생로를 찾아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이다.
제국마상창술은 숙련된 기사가 익히는 데에만 해도 몇 년은 꼬박 걸릴 만한 랜스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다른 기사들이 모두 원하고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는 그런 무기술 중에서도 인식이 좋은 무기술이기도 했다.
그것을 일주일도 안 걸려 메모라이즈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완전한 유도성을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기어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군.’
각을 잡으면 보름이나 한 달까지 소모해야 하는 그 과정이 이렇게나 단축되어 버린 것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시온은 이번엔 혼자서 집중반복 했던 점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단테는 수도회의 여러 간부 기사들의 어떤 보고를 받는 도중이었다. 시온이 왔다는 얘기에 그가 깜짝 놀라서 다른 자들을 물렀다.
하지만 다른 자들에게도 시온이 단테 부단장을 만나기에 자기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들었는데 그들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테 부단장에 대한 신뢰가 올라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시온이 걸어오고 있자 서로 앞다투어 가서 시온에게 인사를 하려고 아우성이 되었다.
제국의 전통적인 황태자에게 주어지는 명칭인 블랙프린스, 그런 블랙프린스에게도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시온에게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니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근처의 제국 귀족들은 그 점에 대해 매우 놀라고 있었다.
시온을 보자 단테가 약간 의아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제국마상창 술에 대한 수련은 최소 육 개월은 해야 했다.
시온이 그냥 오자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마음이 들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던 거다.
“아무리 시온 경이라고 해도 이러한 일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요, 다 익혔기에 돌려드리는 겁니다.”
“?!”
“제가 빨리 돌려드릴 수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이것의 사본을 만드신 거라면 그것은 약조하신 것과 반대가 되는 겁니다. 명예로우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저의 기대를 저버릴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
나이트 템플러 부단장 단테는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시온이 몇 번 더 설명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시온이 약속을 져버렸다고 되풀이했다.
“이렇게 저를 화나게 하는군요.”
몇 번의 실랑이가 있고 나서 시온이 약간 열이 뻗쳐서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시온은 이제 단순한 기사가 아니었다.
랭스 대신전에서의 영광스러운 작위 수여는 가장 깊고 높은 작위 수여였다. 시온은 황제와 연줄이 닿아 있는 백작이었고, 유력 가문을 개창해 낸 자인 것이다.
단테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갈등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잘못했다가는 일이 커질 수도 있는데 차라리 눈 감고 넘어가고 말지 라는 결론을 내리려는 것 같았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랭스 대신전에서 신의 축복을 받은 시온 백작의 명예는 신께서 보증하는 것이겠지요. 저의 노망난 생각이니 화를 거두십시오.”
“아니요. 저는 이렇게 못 가겠습니다. 그러니 마상창술을 앞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만족하시겠죠.”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단테의 표정이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만약 저를 속인 거라고 해도 그만한 사정이 있을 터이니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내가 사본을 하나 챙겼다고 생각하는군.’
사실 사본을 챙긴 거나 다름이 없기는 했다. 모두 메모라이즈 해버렸으니 나중에 이 기록을 기반으로 사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ㆍㆍㆍ
생각해보자면 에릭의 대리 기사로 마상창 시합을 나가서 이겼던 것은 반절 정도의 승산밖에는 없었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제국마상창술을 습득하고 나서 알 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의 고민을 해야 한단 말이지.’
그때는 어느 방향에 랜스의 점을 밀어 넣겠느냐는 것이라면 지금은 솜씨에 여유를 둬야 했다.
공식적인 시합도 아닌 이런 곳에서 크게 일을 내버리면 아무래도 입장이 곤란해진다.
가장 좋은 것은 좋게좋게 끝나서 단테의 인정도 받고 교본술을 하나 더 챙기는 일이었다.
“포퓰리오 라고 합니다. 시온 경. 굉장한 영광입니다. 경의 공격을 평생 기억하고······.”
멧돼지 같은 느낌의 기사였다. 하지만 상당히 말이 많았다. 그는 기사수도회에서도 상당한 무력을 지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랜스 차징은 옆에서 보면 간단한 돌진으로 보이지만 골라야 할 방향이 여섯 군데 정도가 된다.
투구가 내려가고 슬슬 서로의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테의 목울대에 침이 넘어갔다. 앤드류의 기억마법이 방향 하나를 정했다.
‘일단 여기를 찔렀다가는 포퓰리오가 죽을 수도 있겠군.’
한 점을 제외하고 다섯 개의 점, 자동으로 몸을 맡길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한 개의 점을 노리는 것도 가능했다.
시온은 왼쪽의 지점을 골랐고 이내 손아귀에서 무언가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시온의 동체에 순간적으로 확인된 바로는 무기와 무기의 끝이 마주 닿은 것이었다.
마상창대회의 가장 구경거리인 무기충돌이었다.
실전에서는 무기의 질이 이 순간의 생사를 갈랐겠지만, 무기의 급이 같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술, 운, 그리고 지탱할 수 있는 육체의 힘에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약간의 극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 찰나 같던 시간이 반짝하고 지나갔다.
연습용 랜스의 한쪽이 그대로 쭉 하고 박살이 나자 균형을 잃은 포퓰리오가 바닥을 굴러 버렸다.
시온이 투구를 열고는 단테에게 말했다.
“이제 확인이 됐습니까?”
누가 봐도 제국마상창기술이었다. 예전에 남아 있던 어색한 자세마저 없어져 저번보다 경지가 높아졌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을 정도의 솜씨였다.
“어어억. 대...대단한.....힘.....”
포퓰리오가 어질어질한 듯 떨리는 손을 보다가 겨우 한 마디를 토해냈다.
딱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그냥 멍이 들거나 구른 수준, 즉 정확히 점을 골라낸 것이었다.
“맞습니까?”
“그...그렇습니다. 시온 백작님. 분명히 완전히 익히셨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제국승마교본술도 빌릴 수 있겠습니까?”
“??”
“아직 영수 승마는 익숙지 않습니다.”
시온은 똑같은 이치로 그에게서 승마술을 빌렸다. 이것은 더 쉽다고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