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304)

계속되는 수련(2)

‘수도에 있을 때 고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은 잡고 가야 하는데.’

앞에서 움직이는 고렘을 보며 시온은 턱을 괴었다. 물론 누가 보면 이 정도 강철 고렘을 움직이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의 속내를 알고 있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시온만 알고 있는 고대의 마법이 시온이 끙끙거리고 있는 이유였다.

다른 자라면 당연히 포기했을 일들 시온은 앤드류를 믿고 있었다. 앤드류의 마법은 현세대에 사장되었지만, 그 어떤 마법사도 아닌 시온만이 그 가치를 알고 있었다.

‘계약은 잘 된 것 같은데 말이야. 왜 이리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지?’

시온은 끊임없이 고렘마공학서를 들춰보며 앞에 있는 고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일단은 가장 간단한 명령을 내렸는데 어째 영 아니었다.

돌덩이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이었다. 

그런데 돌을 부술 때도 있었고 중간에 흘려서 다시 놓기도 하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행동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시온이 이 폐기가 되었던 고대 마법서를 누구보다 정확한 해석력으로 바르게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누가 보면 시온이 조종을 하는 줄 알 것이었다. 

고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는 그리 선호되지는 않는 계파였지만 그래도 이쪽 길을 걷는 마법사가 수도라 좀 보이는 편이었다.

시온의 명성을 생각해봤을 때는 그저 신기한 취미 정도로 보이겠지만 시온의 속은 타는 중이었다.

“누굴 불러볼까?”

시온은 벡타르를 잠시 떠올렸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것은 정말로 혼자서 해결을 보는 것이 좋았다.

만약 마탑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자신을 괴롭힐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벡타르를 부르면 황제도 곧 알게 될 것인데 그때 봤던 황제의 성격상 그냥 지나갈 것 같지는 않고 당당히 요구하거나 시온을 움드령으로 보내지 않고 이곳에 장기간 묶어둘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황제에게 백작위라는 가진 게 없는 개인으로서 다시 없을 호의를 받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움드 백작령을 내린 것은 거기에 관련된 일을 해결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이지 만약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지금까지의 태도를 싹 바꾸고 움드 백작위를 회수하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막말로 작위를 받는 것도 어려웠지만 지키는 건 더 어렵다는 옛말도 있고 황제 정도라면 누명을 씌우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다.

시온은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주어서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계약 다시 해볼까?’

정말로 간단한 생각,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다시 하는 것도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일 년 정도를 재계약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앤드류의 마법을 맛보는 것은 더욱더 먼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간단한 수인식을 맺은 뒤 계약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계약진이 다른 색과 빛깔로 빛나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급의 집념체가 넘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맞는 것 같은데?!”

시온은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 고렘을 계약했을 때에는 겨우 이 단계에서 삼 단계밖에 되지는 않는 단계의 마나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딘가 부족한 집념체가 형성이 됐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강철 고렘에 스며들어있는 붉은 기운의 덩어리가 시온의 앞으로 내달리듯 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 같았다. 시온은 손가락으로 계약의 진을 가리켰고 그러자 빙빙 돌던 덩어리가 진으로 들어갔다.

시온의 마나가 출렁거리며 그쪽으로 급하고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나가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다. 새 계약은 기존의 집념체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겠지.’

이런 것은 기존의 알고 있던 고렘계약 마법서에는 없었지만 이제 시온도 오 단계에 육박하는 중위계 마법사로 얼추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단숨에 비슷한 논리를 찌를 수 있었다.

“됐다. 원래의 네가 맞나?”

시온은 새롭게 계약을 맺어 내는 데 성공했다. 

덩어리는 예전엔 붉은 기운만 돌았다면 지금은 시온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속성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마치 물감이 섞인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시온의 물음에 응하듯이 앞에서 흔들거렸다.

“후.”

시온은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앤드류의 두 번째 마법의 비밀 중 하나가 벗겨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일의 기괴함이었다.

다시 덩어리와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식을 깨는 방법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해봐야 절대로 저 간단한 것 이상의 것을 시킬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때 시온을 말리던 자들의 말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절대 수집 목적 외에는 연구하시면 안 됩니다. 소문이 아주 좋지를 않습니다. 연구하는 자를 파멸시킨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모인 쇠사슬이 걸린 폐기된 고대 마법서는 모두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이 마법을 연구했던 자는 세 명 있었습니다만 모두 아무런 성과 없이 늙어서 죽었습니다.

-시온 님. 그런 문제가 있는 마법서는 그만 보시고 제가 고렘 관련 마법서 하나를 추천해 드리지요.

그때는 다른 자의 경고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앤드류라는 이름을 확인하고서 흥분한 상태였었다. 그러니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원래 고렘 계약이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다시 몸집과 질을 키워서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시온의 눈앞에 있는 것은 마탑이 금화를 주고서라도 구경하고 싶은 장면일 것이었다.

“들어가 봐라.”

시온이 그렇게 지시를 하자 새롭고 강력한 덩어리가 다시 강철 고렘에 들어가 각인되듯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아까 하던 명령을 내렸다. 이제야 얼빠진 짓을 하지를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나가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알았다.

ㆍㆍㆍ

사실 이제야 움직이게 되고 기초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앤드류의 마법에 쓰여 있는 것처럼 조금 더 높은 단계의 명령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시온은 여기에 대해서 몇 번이고 반복을 시켜봤지만, 여전히 답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이곳을 들렀다. 드래곤들이 꽈배기처럼 얽혀 있는 제국의 지혜가 모여 있는 곳을 말이다.

“엇! 시온 백작님. 이렇게 이곳을 한 번 더 방문해주실 줄이야. 감사드립니다.”

저번에 한번 얼굴을 익혔던 마법사들이 시온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시온이 한 번 더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 그때 봤던 자로군.”

시온도 기억에 있기에 그에게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미소가 번졌다. 

시온이 자신을 기억해줬다는 것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영광입니다. 시온 백작님의 기억을 받게 되다니. 이번 연도는 아주 운수가 잘 풀릴 예정인가 봅니다.”

“응? 운수?”

“모르십니까? 아주 요새 수도에서는 경의 운명 점이 대단하다 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시온이 낮게 웃었다. 

하기야 시온도 여러 가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는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그렇군.”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시온 백작님은 실력과 철두철미한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르신 것이죠.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의 대답에 쉽사리 답할 수는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력을 하긴 했지만 많은, 정말로 많은 보조 도구가 있었고 또 여러 가지의 기회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났고 그렇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시온은 바로 말을 돌렸다.

“어쨌든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한 번 더 그곳에 들를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아, 그 마법서 말입니까?”

“그렇지. 뭔가 빼놓고 간 것 같단 말이지.”

살짝 고민이 되는 듯해 보였지만 그는 최대한 유쾌하게 시온에게 그러겠다고 답했다.

시온은 어딘가 음침하면서도 광대한 지혜의 서적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원래 꽂혀 있던 장소에 간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명도 사람이 들지 않았는지 그 마법서가 비어있던 공간이 휑하니 있었고 나머지는 그때 그 기억에서 한치의 움직임도 없었다.

“한 명도 오지 않았었나?”

“예. 애초에 이곳이 개방되는 일도 매우 드문 일입니다. 시온 백작님과 같은 취미가 있어야 하는 데다가 따로 승인이 있어야 하기도 해서..”

시온은 대강 둘러봤다가 딱히 별다른 것을 찾을 수가 없어 헛걸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수고했나. 그런데 분명히 뭔가가 빠진 것 같았는데.’

양쪽 옆을 봐도 다른 이름의 마법서가 있을 뿐이었다. 시온은 고용할 마법사도 알아봐야 했고 그 약속도 잡아 놨기에 시간을 더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든지 아니면 뒤까지 보든지 해야 했다.

‘이왕 왔으니 뒤까지 한 번 볼까.’

“이 뒤편에는 무엇이 있지?”

“똑같습니다. 다만 출입구가 다른 쪽에 있습니다.”

“볼 수 있을까?”

“음, 시온 백작님이 원하시니 해드려야지요.”

확실히 이 건물이 오래되고 고대에 지어져서 그런지 뭔가 장서 내가 미로 같은 느낌이 있었다.

새로운 열쇠를 따고 새로운 길을 가야지만 그 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온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없을 게 뻔한데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고민 도중에 결국 뒤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자리를 향해 움직였다가 비슷한 글자를 읽어내고 재빨리 그 마법서를 골라냈다.

“아니? 역시 앤드류잖아!!”

“앤드류를 참 좋아하시는군요. 백작님. 제가 따로 알아봐 드릴까요?”

그가 어떤 금전의 기회를 엿본 모양인지 시온에게 냉큼 물었다. 당연히 봐주면 좋았다.

“물론이지. 앤드류의 다른 마법서를 발견하면 자네가 놀랄 수도 있을 만큼의 금화를 주겠다.”

“그...그 정도입니까? 그렇게 원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크흠. 아니 이거 안 좋은 모습을 보였군. 내가 고대의 물건을 모으는데 많은 취미가 있어서.”

“아닙니다. 많은 높은 분들은 그만큼 많은 비밀이 있기 마련이죠. 시온 백작님은 제가 봤을 때 취미마저도 명예롭고 숭고하신 것 같습니다.”

원래 아부를 잘하는 성격인 그였지만 이것은 진짜이자 진심이었다. 더러운 욕망을 가진 자들이 수도엔 꽉 차 있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별책 같은 것이군. 왜 이것이 이 뒤에 있었고 첫 번째 것이 나에게 들어왔을 때 같이 권해주지 않은 것이지? 보아하니 이 고대 고렘 서적은 두 권이 하나인 것 같은데.”

“정말로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곳에는 처음 들어와 봅니다. 이곳에 먼지를 닦는 조수 말고는 근 십 년간 열린 적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마법서가 두 권이라는 것도 아무도 몰랐던 거지요.”

“그러면 이것을 가져가도 되는 거겠지?”

“예, 그런데 하나 말씀드릴 것이..”

시온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확 들었다.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이것을 받아내야 할지 깜깜했다. 

티를 내지 않고 받아 내려면.... 나잇대가 비슷한 아만다 블랙파이어가 공략하기 좋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것을 같이 내드리지 않은 것은 제 실수입니다. 이것이 보고가 되면 제가 매우 곤란해져서.”

“아, 상관없다. 상관없다. 절대 비밀로 하지. 자네도 비밀로 해주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