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조각(1)
앤드류의 고렘마공학 마법서의 별책을 훑어본 시온은 어느 정도 한 가지 결론이 났다.
‘마나가 거덜 나는 것은 변함이 없군.’
원래 고렘을 가동하는 것은 시전자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별책에 나와 있는 부분에서 가장 들어오는 것이 역시 마나의 소모였다.
명령을 알아서 이행하게끔 만든다고 해도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한 것이었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생각해냈을 그런 기계 같은 개념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여간 이 사람 마법은 어딘가 다 문제가 조금씩 있구나.’
고대의 마법사 중에서도 상당히 괴짜였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마법을 만들었음에도 실용성이 없었다.
그건 지금의 시온을 만든 행동각인마법에서도 그랬다.
가끔은 한참이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쓸모가 있지만 대체 누가 그 근육에 가해지는 압박을 버틸 수 있을까.
많은 마나와 끊임없이 변하는 마나의 빠른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도 보조할 수 있는 도구가 없으면 한두 번이면 모를까 계속 쓰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선조가 남겨준 유물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꿨을 일이지.’
시온은 푸른 액을 만들어내는 이 유물의 정체가 무엇일지 가끔은 궁금했지만 알 방도는 없었다.
현대인답게 주어진 거에서 최대한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 마법도 나름대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시온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로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데려가야 할 자들이 있었다.
기사로서의 명성을 많이 얻은 탓에 달라붙는 기사는 많았지만, 마법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분쟁이 심한 지역이니 인재를 받아들이는 데에 다른 곳보다 어려우니 여기서 구해 가는 쪽이 무조건 좋았다.
‘분명히 다른 자의 마나로도 고렘을 가동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머리에 맴도는 수준의 정보이지만 시온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ㆍㆍㆍ
“마법사를 구하신다고요?”
시온이 가장 물어보기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서품 마법사인 에슬린이 좋았다.
데려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각자의 목표가 있으니 아마 동행은 이번까지일 것이었다.
그러니 에슬린의 인맥을 통해서 이곳에서 마법사를 구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편했다.
‘왜 나에게 구해달라는 것일까? 나와 카롤리나는 여기서 받지 않고 끊겠다는 건가.’
시온은 이제 움드 백작이었다. 어려운 영지라는 소문이 가득하기는 하나 백작은 백작이었다.
백작은 관련된 하위 작위들의 영주였고 또한 그들에게서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이었다.
금화를 아무리 벌어봐야 상인이었고 기사가 아무리 잘해봐야 서임을 바치는 대상이 달라질 뿐이었다.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가 마탑에 소속되는 이유의 가장 큰 이유가 마탑이 가지고 있는 비어 있는 영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나이에 비해 좋은 서품을 가졌다고 해도 에슬린이나 카롤리나가 영지를 받으려면 한참은 더 높은 서품을 받아야 했다.
고로 시온은 이 젊고 유망한 마법사들을 십 년에서 이십 년을 앞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떤 마법사를 원하십니까? 소개는 드릴 수 있습니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마법사는 고급인력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수도라고 해도 시온과 생사를 같이할 마법사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직접 구해볼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기에 시온이 구할 수 있는 자는 난이도가 있는 편이었다.
‘어차피 고급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필요 없다. 나는 마나를 대용해 줄 마법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
시온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고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물론 전투에 능하고 다양한 의료나 여러 방면의 쓸모가 있는 마법사들이 많이 필요했지만, 당장엔 움드 영지에서 그만한 수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야, 그냥 없던 거로 해도 됩니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에슬린은 더욱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직접 한 번 보는 것이 제일 낫지. 용병소에 가야겠군.’
제국용병소냐 아니면 마법관리소냐 한 군데만 가야 했다.
이들의 경쟁은 오래됐는데 언제부터인지 한 곳을 이용하면 다른 곳을 이용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제국 용병소는 값이 싸고 계약에 따라서 그때그때 해결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마법관리소는 그 반대였다.
값이 비싼 대신 의무를 지키려 하는 게 많았다.
다만 그 꼭대기의 명령권자는 마탑이 있기에 아무래도 애매한 부분에서는 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한 군데를 정하면 그곳에서 무조건 써야 하니까 지금 잘 골라야 하긴 하는데. 확실히 좋은 자는 다 빼간 상황이로군.’
제국 자체에서도 소모하는 것이 있고 다양한 영지전이나 국지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이곳의 사정을 참고해도 여러 개의 영지전이 동시에 일어난 시기인 게 지금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었다.
‘마법 관리소로 가자.’
시온은 발걸음을 이곳으로 잡았다. 값은 둘째치고 시온이 필요한 자는 몸값이 낮으면서 마나가 풍부한 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유 용병이면 마나 수련에 관심을 덜 가질 수밖에는 없었다.
시온도 잠시 그런 위치에 있어 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설마?! 시온 경? 아니 백작님?”
요즘 걸어 다니기만 해도 알아보는 자가 많았다.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랭스 대신전에서 작위를 받고 나서는 그 뒤부터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긴장도 하고 당황하는 일도 많았을 것이지만 이제는 긴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법사를 볼까 하네.”
사람들이 수군거릴 정도의 많은 관심이 일어났다.
딱 봐도 시온이 움드령에서 함께할 자를 구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시온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대부분은 시온이 이곳에서 사람을 구할 것이라고는 일도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블랙파이어 가문과 연이 있는 시온이라면 당연히 사람을 다 구해놨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소동이 일어났다. 이미 계약이 된 마법사들은 이런 기회를 놓쳤다면서 속으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기다리시면 사람을 하나씩 보내겠습니다. 대화해 보시면 됩니다.”
“알겠네.”
그가 그렇게 나가고 나서 들어온 자는 바짝 긴장한 남자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시온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존...존경합니다. 시온 백작님.”
‘나쁘지 않아. 예상이 맞았군.’
시온은 보조 도구가 필요가 없었다. 누가 어느 정도의 마나를 가졌는지는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었다.
마나량이 나쁘지 않았다.
시온의 기준은 어떤 특수한 마법과 계파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저 마나를 많이 잘 가지고 있는 자를 뽑는 것이었다.
“저는....”
“계약하지.”
“?!”
시온이 다음번 사람을 불렀다. 이번엔 꽝이었다. 고급 마법을 배우고 할 줄 알았지만 마나의 양이 기준보다 낮았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에서 시온은 비슷한 느낌을 확 받았다.
‘다중 속성.’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난 자는 오르도라는 자였다. 그는 지금까지 온갖 계약을 맺는데 실패했는지 상당히 자신이 없어 보였다.
“시온 경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아닐 거지만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이 많아도 저를 써주신다면 몸과 열의를 다해 시온 경을 모시겠습니다.”
‘일단 마나는 많다. 그런데 어떤 것 하나 잘 가다듬은 건 없어 보이는군.’
시온이 턱을 괴고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역시인가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이 자만 얻을 수 있는 확신이 있다면 처음부터 장소도 고민하지 않았을 그런 자였다.
‘후후후. 그런데 이 자는 왜 이렇게 애매해진 것이지?’
일단 그를 무조건 계약맹세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온은 미소를 지었다. 자리가 급해 보이는 자이니 거절할 이유가 보이질 않았다.
“속성을 여러 개 다루는군.”
“?!!”
놀란 모양이었다. 이윽고 주위를 둘러봤다. 보조 도구를 사용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몇 개를 다룰 수 있지?”
“세 개입니다. 그런데 시온 경께서는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이런 것을 말하게 되면 가능성이 더 낮아져서...”
“무슨 마법을 다루지? 솔직하게 얘기해 주게. 나도 여러 개의 속성을 가진 자다.”
속성마법일까, 아니면 치료나 제작일까, 시온은 제작에 염두를 두고 있었다.
어차피 어떤 계파를 따르고 있다고 해도 중요한 건 마나여서 상관은 없었지만 듣고는 싶었다.
“정말이십니까? 맙소사. 그러고 보니 시온 경께선, 소문이 맞았군요!!!”
“나는 마법사이기도 하네.”
“고렘을 다룹니다.”
“정말인가?”
그는 시온의 표정에 오히려 의아한 모양이었다. 고렘을 다루는 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영주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고렘을 다룰 줄 압니다. 그리고 혹여나 저에게 실망하실까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다루는 고렘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제가 이것저것을 많이 실험하는 골치 아픈 성격인지라...”
“한 번 보지.”
고렘 마법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조금 쓸만하려면 고렘의 재질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중간해서는 쓸 때가 거의 없었다. 역시나 시온이 확인해본 바로는 거의 초급에서 중급도 안 되는 고렘이었다.
간단했다. 실력문제를 집어넣기에는 이자에겐 그냥 금화가 너무 없던 것이다.
“흠.”
오르도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 정도로 다급한 모양이었다.
“시온 백작님! 어떻게서든 백작님의 움드령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만 주신다면!! 보수를 나중에 주셔도 좋습니다!!”
“혹시 고렘에 관해서 많은 것을 테스트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러면 뭐를 했지? 나도 고렘에 관심이 많고 다중속성의 마법사네 우리는 공통점이 있어 솔직히 말해주게.”
시온이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자신의 속에 있는 것까지 보여줄 만한 상태가 되어 시온에게 답했다.
“고렘을 여러 개를 다룰 수 있을까 해서.... 그러나 그게 제가 다른 자들과 다른 점입니다!!”
시온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한 사내의 등장이었다.
어느 정도 시연 하는 모습을 본 시온은 바로 알아차렸다. 앤드류의 별책과 본 책을 이어줄 수 있는 하나의 변칙방법을 말이다.
‘오르도가 연구한 것을 적용하면 내 마나를 들지 않고 다른 자의 마나로 내 고렘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지.’
이렇게 되면 처음에 구상했던 조각이 바로 딱딱 맞게 된다. 앤드류의 고렘마공학의 가장 큰 문제는 시전자를 마나를 죄다 소모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남의 마나를 쓰게 한다면 시온은 고렘에 매달릴 필요가 없이 다른 자들에게 맡기고 하던 일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반드시 계약맹세를 하고 싶습니다!!”
시온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안 오르도가 절절하게 시온에게 매달렸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온이 어떻게든 계약맹세를 하게끔 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바로 하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조건이 있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그 네가 연구했던 것이 나에게 매우 가치가 있을 것 같아. 좀 더 말하자면 마법사로서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그것을 나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어떤가?”
‘거절한다면 좀 골치가 아프겠군. 얼마만큼 채워줘야 하려나.’
“저를 이해해주시는 영주 님을 만나다니!! 신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는 이미 시온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해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울음을 쏟아내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