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상회
“생각보다 적이 많이 생겼습니다.”
피에르가 시온에게 말했다. 움드령을 회복시키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보병이었다. 어디를 가게 되나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여겨 지면 건드리지 않는 법이었다.
시온의 움드령은 이미 큰 손실이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여기를 시온에게 맡긴 벨리사르는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술 말에서 내가 그랬지. 하나의 개인이 진형을 깨트릴 수 있다고.’
팽팽한 진형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꼬리에 꼬리를 밟아 묘한 균형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 이곳의 룰이었다. 시온은 거기에 변수를 줄 수 있는 요소는 한 명의 강력한 기사라고 주장한 셈이었다.
게다가 적이라는 것은 외부에도 있지만, 내부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기 마련이었다.
튀어나오는 송곳니를 치려는 것은 현대나 이곳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자금을 빌리기 위해 상단을 두 곳 들렸지만 두 곳에서 모두 손을 들었다.
버건디 공작가가 압박을 넣고 있는 것이었다.
버건디 공작가는 그간 시온과 번번이 맞서게 되었는데 마상창대회에서 우승과 명예를 뺏긴 것과 이번의 움드령을 놓친 것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다.
‘이렇게 방해하겠다 이건가.’
대공작가답게 버건디 가문은 수도에서 황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급의 세력이었다.
두 군데가 아예 응하지도 않아 이렇게 되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굳이 벌써 부터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열 받을 만 했다.
버건디 공작가가 움드령을 노린 시간이 움드 백작이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나서부터일 터이니 적어도 삼 년은 기다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나.’
시온은 호른 백작을 통해 자금을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라레테저닛 왕가의 돈줄을 받아먹는 것이다.
“흠, 그러면 이렇게 된 거 호른 백작과 얘기를 해봐야겠군.”
굳이 여기서 자존심을 깎아가며 매달리는 것보다 다른 세력의 금액을 써버리고 말지 라는 생각을 했다.
호른 백작이야 전부터 간절했는데 아무래도 제국의 백작으로서 입장이 있어 먼저 이곳에서 건수를 만들 계획이었었다.
“피에르 그렇게 호른 백작에게 전해줘라.”
“알겠습니다. 시온 백작님.”
제국의 손님에게 제공되는 거울 정원을 피에르가 달려나갔다. 그런데 시온도 피에르도 몰랐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만큼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정보원이 많은 장소도 없을 것이었다.
시온이 내뱉은 말들을 숨어 있던 여러 명의 하인이 엿듣고는 자신의 비밀 고용주들에게 시온이 말한 바를 건넸다.
“버건디 공작인가, 시온 백작인가.”
“이대로 라레테저닛에게 내주실 겁니까?”
“빌어먹을 미치겠군.”
시온의 생각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면 이들은 사실 고민 중이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동맹이자 실세인 버건디 가문은 여전히 이들이 추구해야 할 자들이었지만 시온이 수도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이곳의 흐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빨리하셔야 합니다! 호른 녀석이 시온 경을 채가기 전에 저희가 나서야 합니다.”
“그 녀석이 좋아 죽는 꼴을 볼 수가 없군. 하지만 시온 백작이 과연 움드령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움드령의 문제는 오랫동안 얽혀있었던지라 유명했다. 이들이 가지는 고민은 시온이 갚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의 여부였다.
만약에 시온이 움드령의 분쟁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드래곤 상회는 엄청난 적자가 나버린다.
다른 곳과 다르게 선출로 뽑히는 상회의 특성상 그의 목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
“움직일 채비를 해라.”
“설마?”
“큰 이득에는 큰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이제 새로운 바람을 잡아볼 때가 되긴 했다.”
육십이 넘은 남자는 금의 흐름을 이해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드래곤 상회의 협회장인 버만은 시온에게서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느낀 것이다.
수도에서 순위권을 다투는 드래곤 상회의 움직임은 단순히 금화를 빌려주고 말고 정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가 움직일 때는 반드시 금의 흐름에서 변동이 왔고 동맹이 바뀌었다.
그의 업무용 책상에는 움드령과 시온에 관한 각종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온은 버건디 가문의 견제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얘기였지만 시온의 생각만큼 이들이 시온을 곤란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시온이라는 난데없이 등장한 인물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거울 정원에서 호른 백작을 기다리던 시온의 앞에 새로운 자들이 채비를 갖추고 몰려온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음?”
시온은 호른 백작인 줄 알고 있었지만, 줄줄이 들어오는 긴장된 사람들은 시온이 처음에 요청했던 일 순위인 드래곤 상회였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상회도 몰려오고 있었다. 북쪽 해상을 쥐고 있다는 한자조합측의 사람도 왔다.
즉 거절했던 세 곳에서 두 곳이 마음을 바꾸고 시온에게 온 것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좋아할 게 아니야. 뭔가 나를 맥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시온은 여전히 긴장을 놓고 있지 않았다. 백작위를 받았지만 아직은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않은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저는 버만이라고 합니다. 드래곤 상회의 의장입니다. 시온 백작님이 필요하신 금액은 제가 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욕설이 나고 난동이 살짝 있는 듯했다.
먼저 들어온 드래곤 상회에서 한자조합의 사람을 막고 있었기에 기회를 놓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한자조합쪽에서 난리를 친 것이었다.
시온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이들의 태도가 돌변했으니 거기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따지고 있을 만한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원리 원칙보다는 그저 빠르게 서로 합을 볼 수 있다면 나름 좋다고 여겼다.
“흠. 내가 얼마나 필요한지는 알고는 있나?”
“많이 필요하시겠지요. 움드령은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저쪽의 의견도 듣고는 싶다만.”
“만약에 제 대금을 받으시면 첫 자금은 아무런 이자 없이 빌려드리겠습니다. 제 드래곤 상회에서만 가능한 일이지요.”
버만이 여유로운 얼굴로 시온에게 말했다. 드래곤 상회가 시온을 잡기 위해 누가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초기 자금을 그냥 내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조건으로 대량의 금화를 빌릴 수 있는 가문은 수도에서 아무도 없었다.
ㆍㆍㆍ
지금까지 헷갈리게 했던 사죄의 의미와 한자조합에 대한 어떤 보이지 않는 경쟁 때문에 시온은 드래곤 상회라는 굉장한 자금력을 가진 새로운 동맹을 얻게 되었다.
호른 백작은 상당히 낙담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일단은 장기간 영지를 비워놓았다 생각이 됐는지 그는 시온에게 조만간 만날 것을 약속을 잡고 그렇게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시온은 생각보다 많이 불어난 일행을 데리고 하사를 받은 르만 남작령으로 향했다.
시온도 듣기만 했지 이제야 처음 제대로 보는 것이었다.
위치적으로 보자면 움드령과 떨어져 있었는데 원래 중세란 곳이 이런 식으로 영지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를 가기 위해 움직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제국의 수도에서 나왔을 때 상상도 하기 힘든 많은 것들을 얻었다.
그리고 대범할 수도 있는 대량의 금화와 시온 자신의 남작령에 보급할 수 있는 식량을 싫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가져갈 수만 있다면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따로 드래곤 상회를 이용한다면 거기에 대한 이용료가 상당히 붙어서 손해가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온을 노리는 움직임도 있었다. 르만 남작령의 주위는 전쟁이 보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로 자링 가문의 펜부르크를 서로 차지하려는 내전이 영향을 줬고 두 번째로 라레테저닛이 도시 공격을 감행했을 때 생긴 난민과 도망병들, 용병들이 어떤 군집을 이룬 것이었다.
시온이 수도로 가면서 괴레를 박살 내고 간 영향도 컸다. 어떤 균형이 무너지자마자 이쪽에서 도적단이 버섯처럼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시온이 가지고 오는 금화 상자들을 노리고 있었다.
“옵니다. 보고받은 대로 인원이 얼마 없습니다. 이러면 해야죠. 한 번만 하면 평생 먹고 삽니다.”
“아무리 대단한 기사라고 해도 저렇게 무방비하게 오다니. 어쩌면 명예롭다고 봐야 되나.”
“하지만 절대로 시온 경을 사로잡으려고는 하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금화만 가지고 튀는 거다.”
괴레가 어떻게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괴레의 부하들이 상당히 거두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움직이고 나서 시온이 노을이 지고 있는 시점에 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르만 남작령으로 가는 길목을 대범하게 막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시온도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확인했다. 여러모로 시온도 긴장이 될 수밖엔 없었다.
‘기마기술을 테스트해볼 기회로군.’
그러면서도 자신감은 잃진 않았다. 하지만 이 금화를 전부 잃게 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된다.
시간을 얼마나 날려야 할지도 모르고 아마 움드령에 확실히 준비해 가려고 했던 행동들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 된다.
그 점 때문에 시온도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엔 없었다.
‘바로 할까?’
붉은 영수마가 싸움의 냄새를 맡았는지 기세를 크게 잡고 있었다.
시온은 두 자루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저번의 가이언 경에게서 빼앗은 롱기우스의 갑주까지 잘 착용 중이었다.
“시온 백작님. 어떻게 전술을 하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에슬린이 시온에게 빠르게 조언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시온의 말이 쏜살같이 뛰어 같다.
“???”
‘아씨. 영수마가 아무래도 단단히 흥분했나 본데.’
영수마를 다루는 승마술을 기사수도회에서 얻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맡기겠습니다!”
“예???”
이미 시온의 모습은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기에 에슬린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금화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온에게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찍히는 꼴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바로바로 대응하는 앤드류의 각인마법은 곧바로 시온의 움직임을 제국마상창술로 고정했다.
도적들도 얼마나 황당한지 입만 벙긋벙긋 거리다가 완전히 혼란상태가 되어가다가 겨우겨우 대응 진을 짜고 있었는데 거기에 시온이 그대로 들어갔다.
쫘르르르륵
시온은 뭔가 기괴한 소리와 비명이 얽히면서 자신의 손이 무거워져 가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수마와 함께 진형 자체를 뚫어버린 것이었다.
“허.”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버린 충격적인 현장을 확인했다.
무거워진 이유가 바로 자신이 들고 있는 거대한 랜스에 다양한 머리들이 꿰여 있었다.
게다가 무슨 자신이 지나온 곳이 바다가 갈라진 듯이 찢어져 있었고 영수마가 얼마나 과격하게 들어갔는지 부딪힌 것만으로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여기저기 함몰이 되거나 부서진 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전혀 지치지 않은 듯이 영수마가 자신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다시 진형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시온의 몸도 다시 각인 마법이 발동해 어떤 특정한 점에 랜스를 고정했다.
다시 한 번 지나갔을 때는 시온도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래서 기사들이 마상창술을 가장 우선시하는군.’
마상창대회만 하다가 이런 식의 정규보병이 아닌 도적 정도의 훈련 강도가 떨어지는 보병을 때려보니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피 보라를 몰아쳤을 때 구석에서 거대한 불꽃의 정령이 시온을 향해 내달렸다.
“?”
‘자니아의 불꽃 정령? 그냥 도적단이 아니었군.’
불덩이가 시온을 향해 빠른 속도로 좁혀 떨어졌다.
거대한 굉음이 나면서 시온이 불덩이에 휩싸였다.
도적들이 잠시 안도하고 살았다며 신을 찾았지만, 그 불꽃 속에서 다시 시온과 적마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돌격이었다.
시온의 롱기우스의 갑주의 대마법방어진을 뚫기에는 너무나 화력이 낮았다. 영수마 자체도 마법 저항이 있어서 털이 꽤 탔을 수준 밖에는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