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304)

르만 남작령

시온은 바로 마법에도 상당한 방어력을 얻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떻게 보면 예전에는 이 정도로 대마법에 강력하지는 않았다.

롱기우스의 갑주를 얻기 전이었다면 적어도 꽤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예전과 달라진 점이 바로 이러한 대인 공격이었다.

아무리 일대일이 쌔다고는 해도 일일이 메이스로 끝을 내기에는 여러 가지 함정과 계략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는 그 문제가 해소가 된 것 같았다.

세 번째 돌격을 하자 우르르 무너지듯이 이들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시온이 바로 영수마에게 말했다.

“워워, 저런 자는 밟으면 안 된다. 잘했다.”

시온도 말을 알아들을지 긴가민가했지만 놀랍게도 영수마가 알아들었고 기쁜지 승리의 소리를 내질렀다. 마치 늑대의 울음소리 같았다.

‘이게 늑대야 말이야 사자야.’

알 수가 없는 녀석인데 확실한 건 말보다 순간 돌진력은 한수 위라는 것이었다.

시온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 많은 자들이 도망갈 의지조차도 없다는 듯이 모두 무릎을 꿇고 무기를 버리고 있었다.

어차피 도망가봐야 시온에게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자를 제가 추려보겠습니다.”

에슬린이 그렇게 말했고 몇 명은 이들을 모두 죽이자고 했다. 

기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고 사실 마법사들도 방금 죽을 뻔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다들 여기에서 끝장을 보자는 의견이 강했다.

“안 된다. 모두 남작령으로 끌고간다.”

“부상을 입은 자들은..”

“카롤리나 님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다는 안 되겠지만 되는 대로 부탁드립니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망설이던 카롤리나가 빠르게 그러겠다고 답했다.

서품 치료계파 마법사의 위세를 생각하면 이런 도적단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었지만 시온이 부탁하자 그냥 바로 들어준 것이었다.

다들 수군거렸지만 시온의 생각이 확실해서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자는 없었다.

‘이게 다 노예인데 그냥 죽이면 안 되지.’

노예 하나도 상당한 금화가 들었고 현재 움드령의 특성상 많은 성벽이 파괴되어 있을 것인데 거기에 바로 투입한다고 하면 큰 이득이나 다름이 없었다.

빠르게 승부를 낸 탓에 사망자도 부상자도 적은 편이어서 진짜로 사지 멀쩡한 포로를 상당히 많이 얻은 것이다.

ㆍㆍㆍ

르만 남작령은 벤 자링이 가지고 있던 남작령 중에서 가장 알짜배기 남작령이었다. 세수도 괜찮고 인구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것이 시온에게 넘어온 것은 운이라는 요소가 어쩔 수 없이 작용한 것이었다.

마리 자링이 시온을 황제에게 뺏길 가봐 어떻게 보자면 그 불안한 마음에 시온에게 크게 남작령을 안겨준 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반은 맞았다.

시온은 마리와 잘 지낼 생각이었다. 어쨌든 르만 남작령은 생각보다 시온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곳은 여전히 벤 남작을 추종하던 하위 귀족들이 꽉 잡고 있었다.

이러니 어떻게 보면 적의 핵심이었던 시온이 새로운 영주로 등장한다는 것이 반갑지도 않았을뿐더러 시온이 데려온 많은 수의 도적단은 순간 도적단이 습격한 것과 같은 착각을 르만 도시에 줬다.

“?!!!”

“왜 그렇지?”

“모..모두 포로입니다!!”

피에르가 빠르게 가서 소리를 질렀다.

“이런 머저리 같은 녀석들 지금 어디 안전에서 시온 백작님을 이런 식으로 두는 건가? 너희는 모두 목이 매달리고 싶은 것이냐? 오리엔에서 이런 짓을 했다가는 나에게 모두 톡톡히 대가를 받았을 것인데.”

피에르의 등장은 이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줬다. 피에르는 벤 남작의 강력한 동맹이었기에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난리가 일어났다. 어찌어찌 시온이 관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게 첫 도시구나.’

움드령은 갑자기 얻은 것이니 실제로 시온이 처음 가지게 된 도시는 바로 르만 남작령이다.

펜부르크에 비하자면 작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남작 수준은 아닌 규모가 있는 남작령이었다.

어떻게 보면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시온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애초에 처음 니벨룽 가문을 벗어났을 때 다짐했던 목표가 바로 이런 남작령이었다.

평생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목표였는데 생각보다도 빠르게 달성했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확실히 벤이 다스리던 곳이라 여기를 휘어잡으려면 뭔가가 더 있어야겠군.’

그러나 시온을 더 당황하게 한 것은 시온 대신에 이곳을 대리로 다스리고 있던 즉 벤 남작을 따르던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명백하게도 시온을 무시했다. 

당연히 신임 영주를 맞이했어야 했는데 성 밖은 도적단이 날뛰니 위험해서 숨어 있었다고 해도 거성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없다는 것은 시온을 영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개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오히려 욕을 퍼붓는 것은 피에르였다. 조용히 하라고 따로 일러줘야 할 정도로 피에르의 얼굴이 끝까지 붉어졌다.

사실 시온의 기사들도 난동을 부릴 기세로 흉악한 기운을 풍겼다. 시온이 지나가는 여자 하인을 불렀다.

“귀족들은 어디갔지?”

“시...시온 백작님.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아무런 잘못이.”

“묻는 말에 대답해라. 그러면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시온 경의 명예는 이미 수도를 격동시키고 왔다.”

옆에서 알란 경이 소리를 쳤다.

“지금 오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만 들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남작님....아니..백작님.”

“알았다.”

시온은 새로운 거성을 봤다. 벤이 관리를 잘했는지 거성이 나쁘지 않았다.

‘여기 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 데. 그나저나 여기부터 온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로군.’

시온은 처음에 움드령과 르만령을 선택해야 했을 때 완전히 준비를 하고 움드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르만령으로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여기와서 확인을 해보니 서신에는 아첨을 하던 것들이 막상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었다.

만약 움드령을 바로 갔다가는 이곳에 있는 세수가 어떻게 착복이 되고 여기 있는 자원을 여기의 영주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쓸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자 귀족들이 거만하게 왔다. 이들은 오히려 시온을 약간 바람맞혔다는 생각에 키득거리기도 했다.

‘르만령의 많은 권력이 이들한테 있군. 이들한테서 완전히 가져와야지. 여기 있는 자원을 쓸 수 있다는 거지.’

어떻게 보면 벤 남작이 그 정도로 잘 관리해왔다고 볼 수도 있었다. 영지전에서 그렇게 참패하지만 않았더라도 뒤로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실력이 있었다.

‘이 녀석들은 벤이 나한테 펜부르크를 주겠다며 빌었던 것을 알까?’

아마 모를 것이었다. 어쨌든 귀족들의 인사가 시작됐다. 성의가 없었지만 그 정도로 머리가 없진 않았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시온 경, 아니 남작, 아니, 백작님. 저는 모어 라노 라고 합니다.”

라노 가문은 현재 벤 남작을 대신해서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가문이었다. 그만큼 벤 남작에 대한 충성도 강했다.

“반갑군.”

시온이 그렇게 말을 하자 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우리에게 숙일 수밖에 없지 이런 식의 속삭임을 나눴다.

시온이 침착하게 말하자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저 많은 도적은 대체?”

“오면서 나와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있었고 나에게 항복했지.”

시온의 일행은 누가 봐도 숫자가 적었고 아무리 시온이라고 해도 저 엄청나게 많은 자를 사로잡았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도적단을 매수해서 마치 여기서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시온이 조작한 것이라고 또다시 속삭 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아주 여기서 큰 피해를 준 도적놈들입니다. 제국법에 따라서 모두 처형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원도 많으니 내일 모두 처형해 버리겠습니다.”

“음? 안된다. 이들은 내 노예로 남길 것이야.”

“반대합니다. 이들은 모두 여기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영주 님이라고 해도 모두 처형하는 것이 맞습니다.”

매수한 것이 맞다고 착각한 르만 남작령의 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시온에게 반대의 의사를 내뱉었다.

‘아니, 어째 여기는 맨날 뭐만 있으면 처형을 하자고.’

시온이 봤을 땐 활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활용을 하는 것이 맞았다. 그게 현대인이었다.

게다가 이 숫자라면 금화가 상당히 드는 숫자였다. 일만 시켜도 생산력이 팍 증가할 것이었고.

또 문제가 많이 있었다. 지금 영주는 시온인데 어째 많은 권력이 귀족들에게 있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지.’

시온은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들에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슬슬 화가 나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도 이것은 냉정하게 행동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여기에 있을 시간을 고려해보면 확실하게 권력을 완전히 받아내고 떠나야 하는 게 맞았다.

나중에 어설프게 이 녀석들을 내버려뒀다가 움드령에서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했을 시 거기서 르만령에서 머리 아픈 짓을 하면 가장 중요한, 황제도 지켜보고 있을 그런 전투에서 패배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말로 할까. 주먹으로 할까.’

시온은 어지간하면 말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말로 하면 좀 낫겠지만, 시간이 걸리고 주먹으로 하면 반대로 역효과가 나서 바로 또 내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었다.

내전을 치를 시간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시온의 이마가 좁혀졌다.

“주먹으로 하자.”

“무슨?”

시온이 모어 라노의 얼굴을 갈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수준 딱 한 대였는데 시온의 힘이 보통이 아닌지라 단번에 얼굴이 박살이 나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털썩.

“...끄으으.....윽.”

바로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었는지 모어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귀족들 삼십 명이 말문을 잇지 못했다.

짧고도 강렬한 정적이 이어졌다.

“무례한 녀석이군. 나 시온 니벨룽은 너희의 영주이자 랭스 대신전에서 황제의 수여를 받은 자이다. 그러니 나에게 대항하는 것은 황제께 반역하는 것이니 너희는 모두 사형에 처하겠다. 참수를 당할 것인지 아니면 목이 멜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게 해주지.”

“????”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온의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단번에 혼란을 넘어 경악해 가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온도 이게 잘 먹힐지 아닐지를 두근거리며 봤다.

“그...그것은 말도 안 되는 폭정입니다!!”

“저희에게 그만한 죄가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 당황해서 혀를 물면서 다급히 튀어나와서 시온에게 말했다.

“그러면 나에게 칼을 들겠는가? 그럼 전쟁이군.”

“그...그것은!!”

“여기서 나에게 덤비겠는가? 자 검을 받아서 나에게 결투를 청해라.”

이들 모두의 얼굴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일 정도였다.

에슬린은 그 모습을 보고 또다시 시온에게서 크게 배웠다는 얼굴이 되고 있었다.

시온의 발언은 엄청나게 효과적이었다. 단숨에 방금 지목을 당한 자가 검을 들려고 하다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시온에게 검을 올렸다.

“저...저는 시온 백작님께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서약을....”

시온이 발로 쳐버렸다. 그 자도 맞고는 이리 저리 뒹굴 거리며 자빠졌다.

“또 없나? 선택을 해라. 나에게 결투를 하든지 아니면 처형당할 방법을 골라라.”

시온의 기세는 단순히 강한 정도가 아니라 이들의 조금 전의 모습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해버렸다.

그리고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간청이 시작됐다. 단번에 모든 권력을 다 빼앗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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