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304)

르만 남작령(2)

르만 남작령의 귀족들은 모두 시온에게 한 가지의 선택지를 요구받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저지른 발언이지만 상당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만큼 황제의 가문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랭스 대신전에서의 작위 수여는 시온이 신이 인정한 이곳의 권리자라는 것을 뜻했다. 

이어진 황제의 직접 수여는 시온이 블랙파이어 가문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저는 절대로 반역에 의사가 없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좀 더 압박을 줘보는 게 좋으려나.’

물론 시온은 이들을 모두 끝장을 낼 생각은 없었다.

하라면 못할 것도 없었고 이곳 사람이라면 의외로 선호도가 높은 선택지였다.

다만 시온은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하루 사이 내몰린 귀족들은 르만 남작령에 관련된 모든 직위를 시온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한 사죄서가 쌓여갔다.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도 있었지만, 이곳 중세에선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직위 반납에 이어지는 긴 사죄는 완전히 새로운 영주에게 복종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항상 주먹이 옳은 건 아니다. 다음엔 침착하게 생각하자 이번엔 잘 풀린 것 같다.’

그 정도로 시온이 내린 결정은 성급한 편이었다. 결과가 매우 좋았지만 말이다.

시온의 집무실 밖에는 어제 무례를 벌였었던 귀족들과 귀족의 가족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시온이 용서란 답변을 하지 않았기에 계속 간청하면서 내리게 될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기존의 귀족들을 전부 없애버린다면 이곳의 기반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새로 기반을 만들어야 하기에 시스템을 갖추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이들을 휘어잡는 편에서 끝을 내고 움드령으로 가는 것이 좋았다.

마음속으론 용서를 이미 다 했다.

다만 르만을 꽉 잡던 귀족 세력에게 이곳의 영주가 누구인지 그에 반하면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르만의 모든 권력은 여기에 있다.’

이들이 반납한 서류에 적힌 직위들은 하나하나 강한 권리가 담겨있다. 이 모든 권리가 영주인 시온에게 돌아왔다. 다시 분배해주기만 하면 됐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직위를 분리하고 있을 때 거성 밖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르만 남작령의 영주민들이 반기를 들고 몰려든 것이었다. 시민들이 성난 이유는 두 개였다.

하나는 적이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르만의 귀족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르만의 귀족이 거성 안으로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오해를 살만했다.

“무슨 일이지?”

“시온 백작님. 나가보셔야겠습니다! 지금 영지민이 두 패로 갈라져서 팽팽합니다!”

밖으로 나가 보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지민 모두가 한뜻은 아니었다. 이미 두 부류로 크게 갈라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반대하는 쪽은 좀 더 젊은 층의 사람들이었다. 당연했다. 시온의 기사로서의 명성과 수도에서의 활약은 여기까지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시온의 실력이 과장됐을 거라는 억측은 도적 포로를 들여왔을 때 자연스럽게 증명한 셈이기에 시온의 지지층도 반감만큼이나 삽시간에 커졌다.

‘단순히 권력을 빼앗았다고 해서 도시를 완전히 다스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마음 까지 단숨에 잡아야 했다. 원래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 주는 것이 바로 유서 깊은 가문이 가지는 힘이었다.

이름도 높고 동맹도 많고 대놓고 보복할 수도 있기에 이러한 무리를 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시온의 니벨룽 가문은 그러한 힘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러니 이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모두 조용히 해라.”

시온이 등장하자 그 성난 인파가 갑자기 조용해져 갔다.

수많은 소문을 몰고 다니는 시온의 등장은 르만령의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윽고 시온의 일행들도 급하게 뛰어와서 옆에 섰다.

“기사들을 시켜 앞 열을 베어버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피에르가 모여든 군중을 노려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 짓은 시온 경의 명예에 어울리지 않소.”

“저는 의견들의 중간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제 감옥에 가둔 모어를 데려와 처형한다면 이들이 물러날 것 같습니다.”

어레이가 반대하고, 에슬린이 시온에게 조언했다. 확실히 마법사답게 실리를 보자면 에슬린의 의견이 좋아 보였다.

시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이 많은 군중이 그렇게 참을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시온이 직접 나서서 하나씩 베어 넘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영지민인데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늦게 온 카롤리나는 시온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도적들을 치료하느라 안색이 좋지 않았다.

“기존 귀족들을 데려와 보는 게 어떨까요?”

곧 세 명 모두가 카롤리나에게 반대했다.

시온에게 겨우 제압당한 자들이었고 아직 처우를 어떻게 할지 정하지도 않은 상황인데 그들을 여기에 부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시온이 서류와 사죄서라는 것으로 기존 귀족들의 권력을 다 가져왔지만,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지금에서 이들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그것으로 하자.”

가장 위험한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되기도 한다. 안 풀리면 뭐 어떻게 되겠는가. 

시온은 카롤리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 대기하고 있는 귀족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다들 시온의 대범한 선택에 놀랐다. 그리고 기존 귀족들이 시온의 옆으로 불려 와 주르륵 섰다.

인파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그 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시온도 만약에 상황을 위해 앤드류의 마법을 슬슬 가동하고 있는 상황,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 노년의 귀족 하나가 소리쳤다.

“시온 영주님에게 대체 무슨 추태인가!!!”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마흔쯤 되는 귀족이 뭔가를 말하려고 나와서 한마디를 했다.

“부당한...”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옆에 있던 귀족이 발을 걸어서 넘어뜨려서 말을 잇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바로 달려들어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아래로 끌고가 버렸다.

이제는 앞다투어 시온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시온 영주님은 황제와 신과 제국이 선택한 정당한 르만 영지의 주인이시다. 르만의 영주민과 귀족들은 자비로운 시온 영주님의 말을 따라야 한다!”

시온은 사람들의 분위기가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자들이 시온이 르만 령의 정당한 주인임에 동의하고 있었고 심지어 이들의 가족들도 시온을 추앙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분노한 자들도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수군거렸다.

이렇게 되면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니 관습에 따라 영주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앞줄에 있는 자들이 시온에게 무릎을 꿇자 도미노가 일어나듯이 수천 명의 인파가 점점 시온에게 무릎을 꿇어갔다.

‘영주민의 마음을 이렇게 쉽게 얻는군. 이런 쪽에는 카롤리나가 은근히 재능이 있는지도.’

아무래도 치료의 계파답게 조금 민중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시온은 이제 위나 아래나 르만령에 관련된 자들 모두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일이 잘 풀려서 보복 없이 용서까지 해준 것이 됐다. 관대한 신임 영주라는 명성까지 챙긴 것이다.

ㆍㆍㆍ

이렇게 빠르게 르만령을 정리한 것은 귀족 사회에서도 따로 배우고 싶을 정도의 장악 속도였다.

알게 모르게 기사가 아닌 백작으로서의 명성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젠 준비해온 것들을 한 번에 풀고 정리할 시간이었다.

시온은 드래곤 상회에서 빌린 자금으로 식량과 보병을 꾸릴 수 있을 만한 무기와 장비를 근처에서 사기 시작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보병을 르만 남작령에서 징집을 해야 했다.

영지전 때문에 이미 강제 법이 한번 동원됐었기에 징병의 숫자가 한계가 있었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렇지. 움드령에 댈 만한 보병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이끌 것이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모든 르만의 귀족은 시온에게 제압이 되었기에 반대의 의견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징병 말고 모집에 사람들이 자원할지...”

의무를 치른 자들이기에 징병으로 데려갈 수 있는 자들은 적었다. 그러니 자원하는 자들을 받아야 했는데 거기에 얼마나 지원할지는 미지수였다.

‘이건 고민할 것도 없이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

시온은 망설임 없이 르만령에 그러한 명령을 내렸다. 바로 징집령과 더불어 자원 모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광장에 바로 결정된 정책이 걸렸다. 그리고 영지민의 반 이상이 이 정책에 반감을 품었다.

‘아무래도 어렵나? 정 안된다면 금화를 아끼지 말고 더 풀어야겠군.’

시온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곤 징병 외에 자원은 좀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둘째 날에 반응이 바로 왔다. 

애초에 영지민의 반은 시온의 파였고 그쪽에서는 시온의 명령을 따라 충실히 이행하겠다 하며 자원을 시작한 것이었다.

문제는 셋째 날이었는데 여기서 뜨거운 반응이 이어져 오후가 끝날쯤에는 오히려 골라서 떨쳐내야 할 정도의 인원이 모여 버렸다.

‘뭐지?’

시온은 그런 보고를 받고선 의문을 가졌지만, 자세한 부분까진 알 수가 없었다. 

시온의 명성을 흠모한 젊은 층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몰래 지원해 버리는 유행이 돈 것이다.

시온 역시 아무것도 없었던 기사였다. 그런 시온이 백작까지 순식간에 출세한 이야기는 많은 사랑과 추앙을 받았다.

명성이 여기서 힘을 발휘한 거였다.

모든 르만 귀족은 넋을 놓고 시온을 보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준비할 수 있는 군수물자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로 시험을 쳐서 떨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시온은 최대한 침착하고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속으로는 아주 기뻤다. 

이렇게 되면 준비했던 모든 일이 하나도 빠짐없이 딱딱 맞아 돌아간 게 된다.

며칠이 더 지나고 이 모집엔 이곳을 돌고 있던 용병들도 뛰어들었다. 용병들의 몸값은 비싼 편이다. 그런데 그냥 보병으로 들어오겠다고 난리를 치는 상황인 거였다.

모두 시온의 전설 같은 명성에 취해 자기도 시온의 아래에서 출세하겠다는 그런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질이 좋은 보병대가 만들어지고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돈이 들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남을 정도였다. 

여기에 새로운 바람도 하나 더 불었다. 

시온이 사로잡은 도적은 한 명도 처형하지 않고 모두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트렸다.

이들에게서 소문이 돈 것이었다. 시온이 기존의 귀족들과 처형 건에 대해서 대립을 세웠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은 시온과 카롤리나를 신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카롤리나가 아예 여신처럼 받들어 져서 카롤리나가 한마디만 하면 아주 까무러칠 정도의 충성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예 병사가 생긴 것이었다. 이러한 노예병은 동방에서 전문적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인 충성심을 갖게 하려고 최소 십오 년은 철저히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그것과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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