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304)

움드 백작령

아무리 골라도 이번에 편성하는 보병대에 들어오고자 하는 지원자는 너무나 많았다.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지간하면 크기를 최대한 키워 움드령으로 보병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일이 잘 풀리긴 했다. 

하지만 르만령도 이 정도의 문제가 있었는데 움드령은 이것보다 더한 문제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거기에 데려가는 보병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단 말이지.’

드래곤 상회에서 빌린 금화는 상당한 양이었다. 다만 이 모두의 지원자를 편성하기엔 부족했다.

즉 더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될수록 위험도 커진다.

보병을 빚으로 굴려놓고선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움드령을 회복시키는 데에 무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얻은 모든 것을 다 토해낼 확률도 커진다는 거다.

‘할까, 말까.’

욕심을 부려 드래곤 상회의 협회장인 버만에게 전서를 보낼지 보내지 말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시온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전서가 날아간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버만은 시온이 보낸 전서의 내용 때문에 드래곤 상회의 긴급회의를 다시 한 번 열게 되었다.

“시온 백작이 자금을 더 빌리겠다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버만이 다른 의장들에게 말했다. 물론 버만이 가장 높은 협회장이긴 했지만 드래곤 상회는 한 명의 것이 아닌 여섯 명의 동의가 있어야 결정이 가능한 조직이었다.

첫 번째의 흐름은 버만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다른 자의 의견을 모아야 했다.

여섯 명의 귀족들은 각기 드래곤 상회에서 중요한 무역을 하나씩 맡고 있다. 그만큼 모두가 능력이 출중한 귀족상인들이었다.

“무조건 반대입니다. 우리가 시온에게 이미 건넨 금화만 해도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드래곤 상회가 이자를 받지 않는다니 세상 사람이 웃을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뭔가를 말하기에는 현재 내는 수익이 가장 적으니 저는 무효표로 하겠습니다.”

금발 머리에 냉철하고 각진 남자가 그렇게 거부 의사를 말하고 나서 무효를 던져 버렸다.

“움드령과 시온 백작이라, 이 둘의 운명 점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군요. 저 역시 포기하겠습니다.”

두 번째 무효표가 바로 이어졌다. 이것은 정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여섯 명은 드래곤 상회의 각 세력을 담당하지만, 또한 경쟁 관계이기도 했다. 가끔 하나의 결정을 내기 위해 몇 날 며칠이고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시작 한지 얼마나 됐다고 두 명이 함께 무효표를 던진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다들 너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군요. 저는 시온 백작을 믿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백작이 될 것으로 생각한 자가 있었습니까? 저는 시온 경에게 한 표를 드리지요.”

이어서 줄줄이 시온에게 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반대는 없었고 반대의 의사를 띄웠지만 기권해버린 자가 두 명 나머지 네 명이 시온에게 재투자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었다.

버만은 오랜만에 이들이 내놓은 시원한 의견에 놀라면서 이 같은 일을 빠르게 승인했다.

“그러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온 백작이 원하는 것보다 더 밀어 넣겠습니다. 그 지분과 이익은 저를 포함한 찬성하신 네 명으로 구성하도록 하죠. 동의하시겠습니까?”

이미 시온이라는 장기말에 흐름을 맡겨버린 버만이 더욱더 큰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수를 던졌다. 뜻밖에도 네 명이 모두 거부하지 않고 승인을 했다.

시온이 생각한 자금보다 두 배가 더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시온은 어떤 전서가 올지 마음을 졸였다. 마침내 전서가 왔고 시온은 그 내용을 보고선 깜짝 놀랐다.

“파격적인 조건을 다시 한 번 해주겠다는 건가?”

시온이 부탁한 금화보다 더 많은 금화를 약속했다. 그런 버만의 내용이었다. 그 이자 역시 기간이 넉넉했고 낮았다.

이렇게 되면 망설일 것도 없었다. 최대한 모든 자원을 싹 끌어다가 보병을 만들고 식량을 대며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질 좋은 보병을 만들고 보병대를 데리고 움드령으로 들어가게 되면 르만령 쪽이 텅 비어 약탈에 노출되게 된다. 

하지만 시온이 이 근처 도적들을 모두 노예로 만든 상황인지라 당분간은 상당한 평화가 약속되어 있었다.

처음에 해결한 일 덕택에 시너지가 나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잘 됐다. 노예들까지 무장시킬 수 있는 무구를 만들어 놔라.”

물론 바로 줄 것은 아니었다. 하는 것을 봐서 하나씩 재무장을 시킬 생각이었다. 이제는 중간에 자금이 모자를 수도 있다는 걱정이 없었기에 이러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시온이 내린 정책과 자금에 의해 움드령으로 데려갈 보병들이 기간보다 빠르게 만들어졌다.

ㆍㆍㆍ

시온은 많은 보병을 만들었다. 이어 르만령의 세수와 권력의 충성도 맹세시켰다. 마지막으로 그곳의 관리자로 피에르를 뒀다.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시온은 피에르가 자신에게 붙은 뒤로는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어레이랑 피에르랑 누구를 여기에 둘지 고민을 했는데 피에르가 대리인으로 적절해 보였다. 

아무래도 기사보다는 기존의 관리를 해본 경험이 있는 피에르가 나을 것 같았다.

당분간 움드령이 진정되기 전에는 여기서 세수를 잘 뽑아야 했다. 움드령에 들어갈 금화를 챙겨야 했기에 관리의 실력과 광적인 충성심 이 두 개가 가장 중요했다.

또한, 마리가 돌변해서 르만을 압박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고유 세력을 동원할 수 있는 피에르가 적임이라고 봤다.

‘내가 녀석을 잘 파악했다면 말이지.’

피에르를 대리인으로 세운 것에 대한 결과는 뒤늦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온은 그렇게 피에르에게 르만령을 맡겼다. 피에르는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벅찬 모양이었다.

그리고 보병들을 데리고 긴 거리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움드령은 먼 거리에 있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선 많은 가문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황제가 시온을 위해 이미 특례를 마련해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제국의 최전선에 있는 움드령에 생각보다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자금이 넉넉한 탓에 식량도 넉넉했고 시온의 명성과 황제의 특례 덕에 정말 평탄하게 온 것이었다.

시온도 운이 좋다고는 생각을 했다. 비가 한번 제대로 내린 것 말고는 날씨도 괜찮았다.

하지만 움드령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그다지 좋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움드령을 시온에게 내렸을 때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시온이 완전히 준비해가겠다고 곧장 이곳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문제가 더 나빠져 있었다.

움드령의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공성전을 당하고 있는 움드령의 모습이었다.

다시 시작된 우기 탓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큰일 났는데.’

시온은 보고를 받았다. 직접 보기도 했다. 여러모로 지금 상황이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병을 잘 챙겨오기는 했지만 움드령을 빼앗기게 되면 그것을 탈환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이 보병들로는 성을 지키는 것이라면 모를까 성을 빼앗기게 되면 되찾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상당히 단순해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저기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향이 문제인데.’

상대의 숫자가 많았기에 절대 길게 싸우면 안 되고 한 번에 무너뜨려야 했다. 그러니 방향도 방향인데 상대가 착각하게 하여야 했다.

“왼쪽으로 보내라. 시간이 급하다. 전진시켜.”

그리고 시온은 기사들과 같이 가운데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것이 잘 먹힐지는 몰랐지만, 가운데만 가면 쓸 수 있는 마법이 하나 있었다.

시온의 보병이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적 진형에서 뿔 나팔이 터지고 난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군대를 본 적의 군세는 심하게 우그러지듯이 진형이 쭈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그러한 움직임을 지켜보며 슬슬 적마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시온 백작님께 목숨을 바칩니다.”

“영광을!”

기사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시온과 박자를 맞춰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따라온다고 따라왔지만 시온의 적마는 영수마이기에 너무나 빨라서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이 한 무리의 가운데에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랜스를 쥔 손이 한 번씩 저항을 맞을 때마다 누군가가 박살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 까진가.’

돌진을 전부 해내지 못하고 워낙 인간이 많아서 중간 쪽에서 멈췄다. 이렇게 되면 바로 내려서 싸우는 게 맞았기에 랜스를 떨어트리고 메이스를 꺼내고선 뛰어내렸다.

영수마도 이리저리 날뛰며 적을 때려눕히기 시작했고 시온도 메이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해 머리를 깨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중앙의 군세가 흐트러졌다. 이리저리 난리가 난다. 시온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은 앤드류의 각인마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두개골이 빠개지는 소리가 났다. 적어도 잘 못 맞은 녀석도 좋은 결말은 없었다.

그러한 난잡함 속에서 시온이 보낸 보병대도 적의 왼쪽에 충돌하게 되었다.

출세의 의지와 좋은 장비들로 무장한 시온의 보병들은 왼쪽을 순간 휘청이게 할 정도의 돌파력을 보여줬다.

벨리사르 블랙파이어가 봤으면 감탄을 했을 만한 그야말로 제대로 된 연속 돌격이었다.

진형이 두 번이나 흐트러진 데다가 시온이 가운데에서 벌이는 짓이 엄청나서 상대의 명령체계를 공포심이 앞서고 있었다.

“이자들은 대체!!! 어떤 자식들이 다된 먹이를 낚아채려고 하는 것이지???”

적들의 수장도 시온의 정체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만큼 움드령 자체가 여러 세력에 노출되었기에 갑작스러운 돌격엔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더욱더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칵스! 어디 있나 칵스!”

“예, 여기 있습니다.”

“어서 저 녀석을 막아라!!”

키가 이미터를 넘는 엄청난 거구의 남자가 명령을 받고는 시온을 향해 달렸다. 그의 기세는 대단했고 시온과도 덩치 차이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그레이트 소드가 시온을 향해 내리쳤다. 시온은 정말로 간단하게 그것을 피하고서는 그의 투구에 메이스를 후려쳤다.

단숨에 머리가 함몰되고 박살이 났다. 선체로 절명해버린 것이었다. 칵스의 명성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한 죽음이었다.

시온은 그제야 자기가 기사급 하나를 결딴을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에 치명타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온몸에 피 칠갑이 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이었고, 시온의 체력은 여전히 넘쳐 흘렀다. 

선조의 유물에서 쌓아올린 육체는 이 정도로는 체력이 다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는 다가오는 자가 오질 않자 시온이 재빨리 환영미로진 마법을 펼쳤다. 우기가 있어 작은 곳이라도 설치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안개가 올라가자 중앙이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칵스?????”

칵스의 허망한 죽음을 보고 있던 그는 해당 지점에서 안개가 올라오자 갑작스러운 공포가 밀려왔다.

“명령을 주십시오!!!”

다급하게 명령을 요구했는데 이미 요구를 들어줄 사람이 거품을 물고 있었다. 아직도 병사가 많았다. 하지만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 보였다.

왼쪽에 있는 시온의 보병대가 완전히 측면을 밀어버리고 학살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대응하지 못하고 그냥 도망만 갔다. 그냥 쫓아가서 검만 휘두르면 되는 그 정도의 유리한 상황이 된 탓이었다.

대승이었다. 시온의 공격은 누가 봤다면 마치 한참을 기다렸다가 돌진한 것과 같은 착각을 줄 정도의 노련함이 담겨 있었다.

사실은 우연히 온 것이었지만 이곳의 세력들에게는 모두 그렇게 각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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