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위한 준비
전투의 말미라는 것은 적이 가지고 있는 형세가 무너져서 틀림없이 이기리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해도 한 가지를 더 정해야 했다.
망설이지 않고 밀어붙여 적의 피해를 최대한 늘리게 할 것인지 아닌지다.
이유는 간단한데 죽은 자들을 늘이게 해서 상대의 다음번 여력을 없애 버리려는 거다.
이곳이 복잡하게 갈라지고 얽혀있는 곳이라는 점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면 이러한 선택은 언제나 나쁘지 않았다.
‘내가 돈을 많이 빌리지 않았다면 말이지.’
이곳의 문제를 가문의 힘 없이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드래곤 상회에서 아주 많은 양의 금화를 빌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즘은 일대일에는 나름 자신이 붙었다. 하지만 백작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잘한다고 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레인 경.”
“말씀하십시오. 시온 백작님.”
“모든 기사, 마법사, 보병에게 전해 두세요. 할 수 있는 대로 사로잡으라고 말입니다.”
“?!”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러한 방법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기사로서 이러한 큰 싸움이 접어들고 있을 때 몸값을 노리고 이러한 것을 숨기지 않고 사냥하는 것은 명예에 어긋났다.
“결정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온 경은 항상 좋은 판단을 내리시니까요.”
지금까지 언제 틀린 적이 있던가 어레이는 시온이 깊은 수 싸움을 끝내고 내린 게 아닌가, 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돈이 급했었던 것이었지만.
이러한 시온의 명령이 보병과 기사들, 마법사들에게 내려지자 다들 시온을 굳게 믿기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유지했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그런 욕구보다 시온의 명령이 더 우선시 되고 있었다.
‘빨리 내리길 잘했다.’
시온은 점차 사로잡아 포로로 만들어 적의 도주를 억누르는 과정이 단번에 늘어났다. 미리 생각했던 것보다 더 포로를 얻고 있었다.
“아니 대체 뭘 보고 이런 결단을 내리신 겁니까?”
잡을 수 있는 포로보다 더 많은 포로를 얻어 나가자 그러한 시기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에슬린은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 너무 모양 빠지니까.’
빚 때문이라는 정말로 간단한 이유가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대충 둘러대고 말하자.
“기사 하나를 처리했는데 꽤 중요한 자인 것 같더군요.”
“과연. 기사끼리의 결투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에슬린이 시온이 밝힌 대답이 마음에 깊게 다가왔는지 간단히 적을 것을 꺼내서 메모라이즈를 했다.
이쯤 되자 공격을 막고 있던 움드령의 보병이 시온의 깃발을 알아보고선 이같이 하나로 이어지는 흐름에 같이 참가하여 포로를 확보하는 것을 도왔다.
때문에, 더 많은 포로가 생기고 있었다.
게다가 내리던 비가 뚝 그쳐서 비 때문에 잡아내지 못할 자들도 잡아냈다.
‘금화가 계속 들어오는구나.’
아무리 보병이라고 해도 이렇게 여러 이익관계로 갈라져 있는 지역에서는 보병의 수가 곧 어떤 세력이 보일 수 있는 전반적인 책략을 짤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에 다른 곳과 달리 보병의 몸값을 치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온 니벨룽 백작님이십니까?”
“그렇다. 너는 누구지?”
“처음 뵙겠습니다. 황제께서 인정하시고 제국이 인정했으며 신께서 인정했으며 정의롭고 명예로운 기사이자 노련한 마법사인 시온 니벨룽 백작님을 뵙습니다. 저는 이곳의 대장인 코르도바라고 합니다.”
굳건한 얼굴 생김새를 가진 자였다. 태양 아래에서 훈련과 전투의 준비를 맨날 하는지 잘 타 있었고 단련된 근육과 신체는 기사로서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을 그나마 버티게 한 것이 바로 이 자 때문이로군.’
시온은 단번에 코르도바의 실력과 능력을 알아봤다.
남작령처럼 한 번 일을 치러야 할지 걱정했는데 생각과 달리 이곳을 조절하고 있는 자는 올바르다 못해 기사의 본보기로 보일 정도의 군인이었다.
눈빛에는 시온이 달성한 업적에 대해 받들고 공경한다는 느낌이 물씬 흘렀다.
“지금까지 움드령을 보호하다니 훌륭하다. 정식으로 나를 소개하지. 황제께서는 이곳을 나에게 맡기시고 큰 기대를 걸으셨다. 그러니 전 영주와 같은 충성과 맹약을 부탁한다.”
이 짓도 이제 눈칫밥이 상당했기에 기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답변이 크게 좋은 결과가 되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코르도바의 얼굴에 흥분과 벅참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바로 검을 뽑아 맨바닥에 박아 서원맹세를 했다.
더할 나위 없이 극진하게 그의 뒤에 있던 수많은 기사도 모두 검을 뽑아 빗물로 젖은 땅에 차례차례 서원 맹세를 했다.
‘확실하군.’
코르도바는 이곳을 버티게 한 사람답게 부하 기사들을 꽉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대들의 맹세를 잘 받았다. 나 역시 관습에 따라 목숨과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하겠다.”
틈틈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엿봐 익혀둔 단어였다. 지금 되어 가는 과정에 알맞았다.
줄지어져 있는 포로를 보고 있는데 기사들이 몇 명의 다른 복장을 한 자들을 줄줄이 데려왔다.
‘설마?’
시온은 벌써 미소가 나오려고 했다. 복장이 다르다는 것은 이곳의 특성상 귀족이라는 것이고 지휘관이라는 것이고 몸값을 치를 여력이 있는 기사란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신이시여. 우리가 지다니. 너는 누구지?”
억지로 무릎이 꿇린 남자가 대장 중 하나인 듯 그렇게 말했다. 시온이 바로 대답했다.
“움드령의 백작인 시온 니벨룽이다.”
“!!!”
“?!!”
“맙소사.”
포로들의 눈동자가 시온을 향했다. 이곳에 새로 자리를 받은 자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몇 개월 동안 나눠서 들었다.
시온에 대한 이름은 여러 번이고 철저하게 유능한 자다 아니다, 란 주제로 논하고 다퉜다.
그자를 여기서 보게 됐으니 아무래도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머릿속에 다퉜던 일들이 빠르게 정리되고 꺼졌다.
‘그 소문은 하나도 과장 없는 진짜였다.’
포로로 끌려온 귀족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전투를 이끈 시온의 존재에 벌벌 떨었다.
시온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고 꼼짝없이 목이 매달릴 것 같아서였다.
“코르도바 경. 이 자들을 정리해서 안으로 끌고 가라.”
“예. 영주님.”
‘이게 얼마짜리들이냐. 하하. 다 도망간 줄 알았더니 돈뭉치들이 이렇게 가득하게 들어왔군.’
ㆍㆍㆍ
‘생각보다 더 막장이네.’
어째 아무런 기반이 없는 자신에게 백작위라는 거창한 것을 줬는가 했더니 움드령의 상태가 어지간히 좋지 않은 것이 눈에 보였다.
“준비해 오길 잘했다.”
시온이 봤을 때 위치가 나쁘지 않았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평지를 가졌다던가 강줄기의 은혜와 덕택을 잘 보고 있었다.
그런데 쑥 나온 듯이 혼자서 제국의 영지에서 불거진 것 같이 나와 있어 사실상 현대로 따지자면 독도 같은 곳이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끊임없이 이어진 각 세력의 맹렬한 약탈 덕에 거의 다 제 기능을 하고 있지를 않았다.
‘이렇게 되면 코르도바란 녀석이 굉장한 명장이라는 얘기가 되는군.’
아직 그의 실력이 틀림없이 대단할 거라는 것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딱히 이곳이 버틸 만한 이유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성벽도 이번 공성전으로 거의 깨져서 여기저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벽도 보수해야 하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지민과 움드령의 모든 병력이 시온을 기쁘다 못해 구세주를 본 것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지민과 코르도바를 비롯한 모든 군 관련자들은 시온이 보여줬던 어마 무지한 돌진을 기억하고 전율하고 있었다.
어떤 기사가 그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인가. 전쟁의 명수라는 시온의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것밖에는 되지를 않았다.
‘준비는 진짜 잘 해왔단 말이지.’
시온은 움드령 전영주가 임종 직전이라기에 그곳을 향해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안도를 느끼고 있었다.
카롤리나라는 치료계파에서 다른 서품 마법사보다 훨씬 뛰어난 치료계 마법사를 데려왔고, 에슬린이라는 여러 방면에 지식이 많은 또 다른 서품 마법사도 데려왔다.
아직 정신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시온과 함께 이 어려운 고비를 넘겨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속성 마법이 주가 아닌 다양한 마법사들, 특히 마나 보유가 많은 자를 위주로 고용했다.
오히려 지금은 이런 자들이 더 도움될 것 같았다. 원래라면 속성 마법사가 무조건 중요했지만 결국 이 속성 마법사들이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속성 마법사보다 잔재주가 있는 마법사들이 이런 망해가는 영지엔 더 도움이 되는 법이지.’
오면서 고렘까지 나름대로 준비를 착착 해뒀다. 질 좋은 마석도 잘 가져와서 영지의 많은 부분을 강철 고렘을 잘 굴려서 해결을 볼 작정이었다.
성벽부터 해야겠고 각종 실험은 더 해봐야 하겠지만, 제대로만 가동되면 이 정도 문제는 해결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진 드 브린 영주님의 상태는 어떠신가.”
“못 알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시온 백작님. 다만...”
“알고 있다.”
이곳을 지켜왔던 자에게 상속을 이어받게 되니 할 수 있으면 직접 보고 승인받는 것이 관습적으로는 제일 좋았다.
이미 황제가 결정한 사항이라 거부한다 해도 움드령의 상속자는 시온이 확정이었다.
진 드 브린은 정말 임종 직전이었다. 어쩌면 그가 눈을 이대로 뜨지 못하고 가는 것이 더 높아 보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상처는 깊었고 숨은 희박했으며 나이도 여든이 넘어 보였다.
시온은 이곳의 관례대로 임종 직전의 손짓을 했다.
‘이곳을 내가 극복해보겠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 직전이지만 뭔가 어떤 강렬한 기분이 들었는지 진 드 브린이 눈을 번쩍 떴다.
“영주님!!! 깨어나셨습니까!!”
“공..공성전은...”
“시온 니벨룽 공이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공께서 격파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제 부름을 들어주셨군요. 당신이 바로 신의 사자이군요.”
“?”
하지만 시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의 아들!! 신의...아들!! 감사합니다! 제 기도에 응해 주시다니.....”
“영주님!!”
거기에 있는 움드령의 모든 귀족이 시온을 바라봤다. 미신이 만연한 곳인 만큼 이것만큼 확실한 상속은 없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귀족들이라 하나로 뭉쳐있었지만 시온을 신의 사자, 아들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더욱더 강력한 단결을 보일 수 있었다.
진 드 브린이 결국엔 더는 눈을 뜨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서 시온은 이곳의 움드령을 상속받게 되었다.
“코르도바.”
“예, 영주님.”
“이곳에 대한 상황을 좀 알아야겠는데. 그리고 포로들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기꺼이 명령을 듣겠습니다.”
ㆍㆍㆍ
‘역시 비에 강하군.’
과연 블랙파이어 가문의 창고에서 나온 물건답게 강철계면서 녹이 슬지 않고 슬 가능성이 없었다.
죄다 특수 재질로 도배 되어 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더럽게 비싼 녀석이었다.
그때 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떡칠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덧붙어 있는 것이 어지간히 많았다.
어쨌든 이런 우기에는 성벽 작업이 엄청나게 느려지고 거의 진행이 안 될뿐더러 많은 자원이 들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비가 계속 강해져서 악천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적의 세력이 오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시온이 잡고 있는 포로들, 특히 귀족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언제나 몰려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즉 성벽 보수를 빨리해야 했다. 몸값을 받아낸다는 것은 방어와 수비의 힘이 갖춰졌을 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좀 더 비싼 값을 부를 수 있었고 어떻게 흐름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유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