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304)

유비드 가문

낡고 부서진 성벽이 하루하루 완성되어 가는 모습은 시온도 놀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앤드류의 비술은 대단했다.

그리고 적의 사절단이 왔을 즘에는 원래의 거성의 이점을 다시 갖췄다.

전략적으로 보자면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추측이 되면 서로가 입을 피해를 생각해서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기 마련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의 엉망 정도와 파괴의 정도를 잘 알고 보고까지 받은 이들은 거만하게 움드령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비비기까지 했다.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이 영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이곳의 기술적 수준을 생각해보면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누가 봐도 신이 관여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이들은 받았다.

“이건 대체... 내가 알고 있던 거성이 아니다만, 어떻게 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고받기로는 안 유비드 공께서 성벽을 전부 파괴했다고....”

“파괴한 것이 저렇단 말이냐? 보고한 녀석을 불러라.”

동생을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온 유비드 가문의 둘째인 아프달 유비드의 얼굴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곧 그곳에 온 자는 그때 도주하는 데 성공한 지오프리였다. 그는 오자마자 벌벌 떨면서 머리를 박고는 아프달 유비드에게 말했다.

“저는 신께 맹세코 거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안 유비드 공은 움드령을 바치기 위해 승리를 위해 철저하게 부쉈습니다. 강과 접경해 있는 후면을 제외한 오른쪽과 왼쪽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럼 저것은 무어냐.”

“개인적은 소견입니다만,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진의 상속자로 새로운 움드령의 영주인 시온 니벨룽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서 모두 시온 니벨룽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어수선하게 의견이 나누어졌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지금 시온 니벨룽이란 이름은 제국에 드높습니다. 소문엔 블랙파이어 가문의 숨겨진 서자라는 얘기도 있고 네로빙거 가문의 서자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조심하자는 의견은 작아져 갔다. 

어차피 저런 성벽을 만드는 데 힘을 다 썼으리라는 것과 기존의 습성, 즉 움드령에 협박을 일삼았던 오랫동안 굳어진 것들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시온 백작님. 유비드 가문의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온 자는 아프달 유비드 라고 합니다.”

시온은 온전히 이곳의 인물과 가문과 세력의 흐름을 코르도바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유비드 가문의 둘째입니다.”

“성격이 어떻지?”

“오만하고 포악합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집요하게 합니다. 아마도...”

“대충 알았다. 가볼까.”

“응하실 겁니까???”

“못할 게 있나.”

코르도바는 시온을 보면서 대단한 기사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누가 저렇게 대범하게 움직일 것인가. 

그렇기에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뛰어난 사람을 찾아냈다는 것에 기뻐했다.

‘저곳에서 내가 죽는다 해도 시온 백작님을 지키리라.’

유비드 가문의 인질을 받아내는 협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관습을 무시하고 있었다. 

데려온 보병이 기준보다 많았다.

중간에 벌어져 있는 적과 아군이 구별되는 애매한 지점에서 시온이 꾸린 보병대가 나란히 섰다.

시온의 가문인 니벨룽 가문의 깃발인 반지 세 개가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상대 역시 별과 전략가 하나가 그려져 있는 유비드 가문의 깃발을 마주 나부꼈다.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놀라고 있는 도중이었다. 시온이 내보낸 보병대의 무장 상태와 건강과 사기는 한눈에 봐도 압도당할 정도로 높았다.

-무슨 가문인가?

-니벨룽이라 합니다.

-처음 들어 보는군.

-새로운 영주는 코르도바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구나.

-대규모 작업을 했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상태의 강군이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지? 저 성안에 숨겨놓은 병력이 가득하다고밖에는....

유비드 측의 귀족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온이 등장했다. 

롱기우스의 갑주와 적마를 타고 들어오는 이들의 머릿속에 상상 이상으로 시온에 대한 인상이 남았다.

제국에서 이름이 드높은 기사 귀족다운 등장이었다. 물론 시온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긴장 중이었다.

‘이번 일에 돈이 엄청나게 달려 있다.’

이제 성벽을 제대로 돌렸을 뿐이지 갈 길이 아주 멀었다. 

시온이 봤을 때 이곳의 세력이 다섯 개가 넘는다는 것을 봤을 때 더욱 덧붙여 방어력을 올려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망루, 방앗간, 치료 시설, 거주지, 밀 생산도 올려야 했다.

‘고렘도 늘려야지. 거기에 마나를 대줄 마법사도 더 고용해야 하고.’

ㆍㆍㆍ

“동생을 그냥 넘겨주면 당분간 이곳을 내버려두겠다.”

동생을 그냥 내놓으라며 아프달 유비드가 그렇게 말했다. 코르도바가 미리 언질 준 대로 아프달은 시온에게 오만하게 나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먹일 정도로 이곳이 힘든 상황이었단 거군.’

성벽을 이 정도로 만들어놨으면 함부로 시비를 걸 처지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하고 최소한 자기들이 병력과 물자가 많다 하나 동등한 의논이 이뤄져야 했다.

그런데 안 유비드도 그냥 달라고 하고 그때 사로잡은 귀족들을 거저 달라고 하니 평소에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득을 따져봐도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나도 한 번 떠봐?’

잠시 이들과 손을 잡고 이 지역에 세력 하나라도 줄여 놓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시온은 한 번 거꾸로 똑같은 느낌으로 요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쪽의 할 말이 끝났으면 나도 내 조건을 보여주겠다.”

시온이 코르도바에게 손짓을 했고 안면이 있던 둘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종이 하나를 넘겼다.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온이 제시한 몸값은 드래곤 상회에서 빌린 금액의 반절이었다.

단순한 안의 몸값만 제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딸려 있는 귀족들 심지어 포로로 잡힌 보병들 하나하나의 목에 엄청난 금화를 걸어 놓은 것이다.

“듣자하니 출신이 변변치 않다더니만 이렇게 사람이 꽉 막힌 자인 줄을 몰랐다.”

아프달이 시온의 요구가 어처구니가 없다 생각했는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건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여기 있는 병력 가지고는 절대로 공성전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하려면 여기서 시온을 갑자기 공격해야 하는 평생 가야 할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어떻게 진 브린 전 백작을 괴롭혔는지 알겠군. 나에겐 소용없는 짓이다. 황제께서는 나에게 이곳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거기엔 네들의 요구를 들어줄 자비 따윈 없다.”

시온은 이렇게 나름 현대인의 지식을 십분 활용했다. 

황제는 무슨 시온은 지금 당장 드래곤 상회에 갚아야 할 금화가 급했다. 하지만 이렇게 황제가 이랬으니 협상 안 해줄 거라고 암시를 준 것이다.

아프달 유비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유비드 측의 귀족들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급하게 아프달과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코르도바는 세상 참기 힘든 즐거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만 보았던 그런 장면이 지금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안과 귀족들과 간부의 몸값만 받겠다.”

겨우 내린 결론은 아까보다는 나았다. 이렇게 되면 많은 병사의 값을 받을 수가 없다. 노예로 만들어 팔아야 하거나 아니면 처형해야 했다.

처형해 버리면 영지민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시온은 거기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강짜를 부려보자. 마음을 먹고는 바로 아프달에게 말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다. 이 안건은 병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아니면 동생을 돌려받을 수 없다.”

“이런 개 같은 제국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머리를 빳빳이 세우느냐? 너 같은 놈을 우리 유비드 가문이 무서워할 것 같으냐? 동생 놈은 가문의 명예를 지킬 것이다. 더러운 녀석이 지금 여기가 네 성벽 안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한 번 욕이 터지자 봇물 터지듯 아프달이 연신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코르도바가 급하게 말했다.

“아프달 유비드!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시오! 여기서 시온 백작님을 공격하는 어리석고 불명예스러운....”

“불명예? 내 앞에서 명예를 논하다니 그 명예는 더러운 제국의 개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아, 큰일 났네. 큰일 났다.’

아주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보니 이제 좋은 얘기로 넘어가는 것은 글러 버린 듯했다.

이렇게 되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해졌다. 

성안에서 싸워야 하는데 이렇게 돌출된 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게 되면 유리하게 각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여기서...?’

시온은 여기서 아프달을 공격해 사로잡을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흥분하는 것을 보니 시온이 생각했던 대금을 치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흉악해진 분위기가 돌고 양측의 귀족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러면서도 눈을 부라리고 있었는데 시온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마치 돌덩이처럼 있자 아프달이 화가 나다 못해 허리에 있는 검의 손잡이를 잡아 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시온이 번개같이 달려들자 역시나 기사로서의 맹훈련을 받았던 아프달도 지지 않고 반격하려고 했다.

놀랍게도 못 뽑게 하려고 했는데 무예의 수준이 높은지 검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망할 놈-”

그러나 역시나 거기까지다. 행동각인마법이 전보다, 정교해진 시온의 움직임은 무기가 없어도 격투와 레슬링까지 최상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시온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그의 안면에 주먹이 꽂혔다. 코뼈가 앞니가 박살이 났다. 손에 들고 있던 무기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래도 가닥이 있는지 어찌어찌 신음을 내며 두 다리로 지탱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주군을 지켜라!!!”

“아프달 공을!!!”

양쪽의 무기가 동시에 뽑히고 시온을 향해 은밀한 마법이 퍼부어졌다. 마비계열 마법이었고 미리 준비해 놓았는지 시온이 반응하기도 전에 떨어졌다.

롱기우스의 갑주에 있는 대마법방어진이 간단하게 무효로 만들었다.

시온은 한 손에 아프달의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손에 메이스를 든 채로 눈이 방울만큼 커져 있는 마법사를 향해 뛰었다.

이어서 마법사의 머리에 메이스가 내려찍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마법사라면 제일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시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깨지고 힘을 잃는 마법사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을 때쯤 속성 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들이 마법에 실패해 날려보지도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집중에 실패했군.’

마법 실패는 언제나 마법사의 양날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주군을 지켜라!!! 빨리!!”

이미 안쪽에서 칼부림이 일어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아프달 쪽의 기사들이 시온을 향해 뛰어들었다.

코르도바도 교전 중이었기에 시온은 순식간에 세 명의 기사에게 둘러싸였다.

에두스, 타이번, 산 이 세 명 모두 장비도 완벽했으며 실력이 출중했다. 

중요한 협상에 데려온 자들인 만큼 하나같이 강해서 이들이 한 번에 덤비게 되면 혹시 몰랐다.

시온도 거의 앤드류 마법에 집중하고 있을 뿐 딱히 다른 방법은 없었고 안면이 결딴난 아프달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던 세 명 중 산이 시온을 향해 먼저 내달렸다.

“으어어어!!”

“???”

힘찬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시온이 아프달을 그의 검 방향에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억지로 검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퍽!

그의 안면에 시온의 메이스가 작렬했다. 좋은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자세도 타이밍도 시온의 장비도 고급이어서 한 번에 끝이 나버렸다.

나머지 들도 시온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시온이 아프달을 내세워 메이스를 연속으로 휘두르자 갈비뼈를 내준 타이번이 꽤 먼 거리로 우겨져 나갔다.

마지막 에두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시온의 움직임에 과도하게 반응하듯이 거리를 벌렸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사이에 아프달을 포함한 대부분 귀족이 모두 사로잡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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