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유격(1)
유격전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맞춰서 싸우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유연한 대신에 한 번만 실수해도 목숨을 내놔야 했다.
‘나는 아마 살겠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만약 시온이 판단을 조금이라도 잘못 하게 된다면 데리고 있는 기사들, 에슬린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온은 요즘 들어 자신의 무력에 대해 자신이 좀 붙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결할지는 모르지만, 정신만 꽉 잡고 앤드류 각인 마법만 제대로 운용하고 있어도 이것이 살아갈 길을 만들어 줄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시온을 긴장하게 했다.
“많군.”
아예 작정하고 왔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규모, 그 정도의 병력이 모여들려 하고 있었다.
유비드 가문의 여력이 이제야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다만 지금 저 병력을 이끄는 자가 유비드 가문의 가주 일지 아닌지였다.
“아무래도 보고 대로 그의 아들인 얼딘이 총사령관인 듯합니다.”
전략가로 이름이 높은 그가 여기에 오면 안 그래도 불리한데 더욱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지금 군사를 이끌고 동생을 해방하겠다며 온 얼딘 유비드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전술의 귀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유비드 가문의 깃발만 봐도 괜히 별 하나와 그것을 보고 있는 전략가라는 그림이 붙은 게 아니었다.
초기 유비드 가문을 개창한 살라딘 유비드는 제국에 깊은 상처를 남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의 후손들이 관련된 철저한 교육을 받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서품 마법사 에슬린이 긴장과 흥분이 넘치는 얼굴로 시온에게 말했다. 그랬다. 이러한 방식의 전투는 빨리하면 할수록 좋았다.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심리가 불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에슬린, 어레이, 알란, 볼브, 클락이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첫 공격으로 적절할 것인가.
가장 크게 봐야 하는 것은 식량이 쌓인 곳이고 두 번째는 이들을 움직이는 귀족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취약한 부대인 마법사들이다.
당연히 공성전이란 것을 제대로 생각한 대로 해내기 위해선 마법사 부대가 거의 전부라고 봐야 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마법이 스며 들은 공성탄이 공성전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을 정도로 영향을 줬다.
그리고 한 가지 의견이 더 있었다. 끼지는 못했지만 시온의 종자인 필립스가 한 곳을 가리킨 것이다.
“저도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해라.”
“전 이 지점이 추가적인 식량 수송이 올 것 같습니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다면 많은 물자를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너무 가능성이 없습니다.”
에슬린이 바로 끼어들었고 서로 다른 방향을 다투던 알란은 웬일로 의견이 맞는 모양이었다.
‘해볼 만하지 않나?’
어쨌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조금이라도 자리를 잡아갈수록 불리해진다.
그러니 당면해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가장 세게 칠 수 있는 곳이 좋은 것이다.
“필립스의 의견대로 하겠다. 우리는 모두 이 지점으로 간다.”
전부 다 반대를 했다. 그 지점 말고도 들어올 방향은 많았고 그쪽은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다.
고로 잘못되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는 데다가 지금 노리자고 한 곳이 보여주는 틈도 금세 닫혀버리게 되어 시온이 이끄는 유격대가 고립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유비드 가문의 군세가 전부 흔들리게 된다.”
이 한마디와 시온이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이 기사들의 의견을 단번에 하나로 모이게 했다.
신에게 비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해당 장소로 조용히 움직였다.
‘흠, 아닐 수도 있나?’
조금 난감해지고 있었다. 막상 자신 있게 왔는데 마주하는 적이 아예 없었던 거다.
중요한 것을 지키려면 아무래도 레인저들을 꼭 놓기 마련인데 어째 날을 세우고 가고 있는데 느껴지는 건 없었다.
이곳 사람보다 몇 배나 뛰어난 마나에 대한 기감은 근처에 누가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직감 같은 것을 주기도 했다.
둘 중의 하나였다. 완전히 잘못 짚었든지 아니면 레인저의 수준이 상상 이상이든지 말이다.
후자일 가능도 높았다. 유비드 가문이었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해당 지점에 도착할 때마다 필립스의 얼굴에서 생기가 쭉쭉 빠졌다.
종자 주제에 함부로 이런 일이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면서 남몰래 자책까지 했다. 설마 시온이 채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꿈에 그리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해당 장소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텅 빈 숲 속 구릉지였다.
사이로 난 길에 오가는 것은 새뿐이었다.
“필립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시온 백작님의 명성에 누가 될지도 모르는 행동을.”
알란이 상당히 화가 났는지 그렇게 쏘아붙였다. 알란 뿐만이 아니라 에슬린도 불편했고 전부 다 그런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죄송합니다. 순간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필립스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무리에 사과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유격전이란 것이 첫 단추가 중요하다 보니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온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조용히 해라.”
시온이 한 마디를 꺼내자 정적이 찾아올 정도로 다들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시온이 무슨 말을 할지 바짝 귀를 기울였다.
“온다. 많은 인간과 말이군.”
“?!!”
“!!!”
다들 시온이 무슨 소리를 하나 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저쪽 끝에서 수많은 말이 무언가를 끄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맙소사.’
에슬린은 뒤늦게 마나의 규모를 파악해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규모의 병력과 수송물자가 몰려오고 있던 것이었다.
“뭔가 일이 있긴 있나 보군. 레인저가 몇 없다. 그러면 대형 설치 마법의 준비를 하지.”
시온이 저번에 습득한 환영미로진이라는 큰 등급의 마법을 쓸 계획이었다. 연습한 대로 빠르게 기사 몇이 나누어서 자리를 은밀히 옮겼다.
한참이 흐르고 상황을 모르는 수송의 앞머리가 앞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온은 설치 마법석이 잘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식량에 탄에...끝도 없군.’
이 두 개만 노려도 크게 휘청이게 할 수 있는데 무슨 물자란 물자가 다 모이고 있었다. 시온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강하게 때릴 수 있다는 것만이 지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온은 수도에서부터 꾸준히 연습해 왔던 환영미로마법진을 열었다.
시온의 가운데에 정교한 문양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면서 은밀하게 다른 곳과 연결이 되어갔다.
시온이 하려는 것은 미로가 아닌 환영과 안개, 이 두 가지를 집중하려고 했다. 특히 안개의 비율을 높였다.
안개가 순식간에 자욱해졌다. 얼마 전에 우기가 있었기에 이상하다고는 여겼지만, 이곳을 지나가야 하는 명령을 받은 부대들은 계속해서 지나갔다.
마나가 굉장히 많이 빠졌지만 시온은 다른 건 몰라도 마나의 양이 다른 마법사에 비해 한참은 많았다.
그러니 이제 이 마법진을 유지해야 할 오르도를 대기시키고 시온과 기사들은 이제 돌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선두에 섰던 시온이 안개를 헤치고 바로 앞에서 부하들에게 화를 내는 기사에게 돌진했다.
“이 멍청한 새끼들!!! 니들이 이렇게 굼벵이처럼 갈 때마다 도련님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아나? 너희 목숨 몇 개를 던져 줘도 공자님 목숨 하나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알아라. 빨리 움직여라!”
그는 일장연설 중이었는데 시온은 그의 몸통을 향해 랜스를 겨눴다.
“???”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시온과 기사의 무리가 랜스 차징에 성공을 했다. 순식간에 병력 한 무더기로 들어왔다.
다른 기사들은 돌파력이 약해서 적의 무리를 뚫진 못해 바로 말에서 내려 전투에 들어갔다.
유일하게 돌파해낸 것은 시온이었다. 방금 연설 중이던 기사가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절명 상태였다. 그 외에 긴 랜스에 여러 명이 꽂혀 있었다.
보통 랜스 차징 같은 것이 멈추게 되는 것은 상대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여러 명을 꿰어 버리게 되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놓아 버리거나 멈춰야 했다.
하지만 시온은 롱기우스의 갑주에 걸린 특수 마법과 푸른 액으로 얻은 근력으로 끄떡없이 이러한 일을 해낸 것이었다.
“후우.”
온몸에 피가 끼얹어질 만큼 강렬한 돌격이었고, 부하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확인한 시온이 다시 방향을 바꿔 재돌진했다.
그렇게 두 번을 하자 매달린 적들 때문에 돌진이 안되는 상태가 되어서 바로 시온이 한복판에서 랜스를 던져 버렸다.
바로 메이스를 꺼내고 적마에서 내렸다.
그나마 이곳을 맡은 자들이 훈련은 대단했는지 방금 떠들던 이곳을 지휘하는 기사를 죽였는데도 용케 진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시온이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자 메이스가 머리를 보병의 머리를 깨고 다녔다.
한 번에 머리가 결딴나고 몸통을 맞아도 다른 녀석에게 날아가 추가적인 부상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안에 있는 자들의 공포심은 극한까지 차올랐다. 안 그래도 자기들 위에 군림하던 기사가 한 번에 찍혀서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아무리 훈련이 잘되어 있어도 이어지는 건 혼란밖에는 없었다.
물론 가운데가 당해버리자 위든 아래든 자기들이 기습을 당했다는 것을 곧장 알아챘다.
그런데 안개도 문제고 거기에 섞여 있는 환영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다급한 나머지 가운데에서는 도망치려고 하고, 다른 자들은 들어오려고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자꾸 여기저기서 함성이 돌면서 말을 탄 기사들이 배회하는 게 보이자 자기들끼리 끼어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자충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자 이 대규모 수송대를 이끄는 머스티 경은 아군을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한 녀석들!! 후퇴하지 마라! 전열을 갖춰! 길을 비켜!! 적하고 맞서 싸워라!!!”
호랑이 같은 호통과 기민한 지혜를 갖추고 있는 굉장히 유능한 상위기사인 머스티가 결국엔 아군을 베어버리고 벼락같이 가운데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온을 발견했다.
“네놈이냐!!!!!”
다만 지혜가 넘친다 해도 역시나 기사란 것이다.
몰래 공격하면 좋을 것을 굳이 그 큰 목소리로 위치를 알리는 바람에 시온은 머스티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유리하게 각을 바꿔냈다.
그리고 전력으로 달려 들어온 그와 일격이 교환됐다. 머스티의 안면에 메이스가 직격으로 들어가 얼굴이 찌그러졌다.
“끄아악. 끄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 못했다가 세 걸음 더 걷고는 제자리에 엎어졌다.
이곳의 최고 지휘관이 당해버린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사실 시온은 몰랐다. 그냥 기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적은 그것을 보고는 빠르게 그 위 라인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다른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이었지만 안 좋게도 머스티가 당해버렸다는 얘기가 수송하는 보병들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자가 시온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롱기우스의 갑주를 입은 기사는 이제 유비드 가문에서 유명했던 거다.
목표지의 백작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두 부류 에게 다른 정보를 줬다. 기사들에게는 절호의 찬스를, 보병들에게는 공포를 말이다.
그런 와중에 에슬린의 대마법이 준비가 됐는지 화염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 일의 목표는 그냥 간단했다. 수송물자를 다 파괴하고 최대한 줄 수 있는 피해를 준 뒤에 다시 은신하는 거였다.
숨 막히는 듯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시온 측이나 유비드 가문 측이나 몇 가지 선택지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세는 기울고 목표에 다가섰지만 시온도 아직은 결과물을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