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304)

벼락같은 유격(2)

점입가경이란 말이 딱 맞았다. 

이미 이들의 대장인 머스티를 잡아내고 중앙부 파괴에 들어갔는데 이젠 어디까지 더 해낼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과연 서품 마법사다. 대마법이라는 건 엄청나군.’

에슬린을 데려온 보람이 있었다. 안개 사이로 떨어지는 작은 유성 같은 불덩어리들이 수송 물자에 떨어져서 불이 붙었다.

유격전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물자파괴다. 이것을 가장 쉽게 하는 법은 태워버리는 것이다.

물론 안에 있는 시온과 기사들도 위험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기사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평소에 보병, 용병, 상인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가 기사밖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시온도 이러한 불바다가 되어가는 과정을 마냥 구경할 만한 틈은 별로 없었다. 메이스는 멈추지 않고 보병을 공격했다.

그렇게 공간이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고 중앙에 불이 붙어 수송해야 할 식량과 공성탄이 재가 되어갈 때 여러 명의 기사가 시온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보병들은 갈수록 겁을 먹고 본능적인 뒷걸음질과 도주를 반복하는 반면에 이것을 출세할 기회로 본 유비드 가문측의 기사들이 오히려 모든 일을 내팽게 치고 시온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시온 경이다! 시온 니벨룽 결투를 청한다. 나는 파라카다.”

“나는 루갈이요. 이름을 밝히시오.”

“에팍.”

“나는....”

쏟아지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를 정도로 유비드 가문의 기사들이 만사 제치고 온 것이다.

‘내가 이름을 밝힐 것 같아?’

딱 봐도 자기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 이름을 밝혔다가는 여기서 집중공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일대일에 이제 자신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좀 많았다.

시온이 어떻게 할지 주저주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앤드류의 행동각인마법은 이미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자기를 여전히 소개하고 있는 자의 몸통에 근처에 있는 장창을 던졌다. 

이음부에 정확히 박힌 기사는 이름을 다 말하지도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러자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어차피 기사고 자시고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인정사정 안 보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었다.

여기서 이름 같은 것을 밝히고 있다가는 타 죽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기습당하든지 것도 아니면 바로 앞에 있는 상대에게 당한다.

그것을 깨닫고 시온에게 잠시도 여유를 두지 않고 내달렸다. 시온은 그 공격을 차례차례 막아냈다. 

반격하기에는 끊임없이 공격이 이어지는 탓에 몸이 아주 바빴다. 잠시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한 명의 어깨를 메이스로 박살 내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로는 한결 숨이 트이더니 오히려 시온이 이들을 압박하는 것처럼 전세가 바뀌었다. 그러다가 루갈이라고 이름을 밝혔던 자의 머리가 깨졌다.

“괴물!!!!”

“시온 니벨룽은 괴물이다!!”

살아남은 기사들은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적마가 달려와서 기사 하나를 물어뜯어 같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그 사이에 시온에게로 돌아온 기사들이 옆이나 뒤에서 상대 기사들을 포위하고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시온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아군조차도 시온이 방금 벌였던 무력에 대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시온도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났다. 급하다 보니 그만큼 앤드류 마법에 집중했던 탓이다.

어쨌든 기사들이 괜찮은지를 물어보기에 괜찮다고 손을 들어 답했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말을 못 한 것이지만 이들은 시온의 그런 모습에 전율했다.

“이대로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레이가 투구를 내리면서 소리쳤다. 이미 중앙부에 불이 완전히 붙었고 중앙부에 있던 대규모의 식량이 타고 있었다.

시온은 그 와중에도 이게 얼마쯤 될까, 라는 헛생각을 했다. 그만큼 양이 많았다. 

진짜 이 정도를 노리고 온 것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까 아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중에 가장 유비드 측을 흔들리게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빠지셔야 합니다! 에슬린 마법사가 제대로 대마법을 펼쳤습니다. 과연 마탑 다운 솜씨군요.”

대마법은 절대로 용병 출신이 배울 수 없었다. 그만큼 마탑에서도 반드시 사제관계와 엄격한 조건을 통해서 내려지는 것이었다.

“불바다가 되고 있습니다! 시온 백작님 결정을!”

다들 이제 빠지자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맞아 보였다. 시온이 봐도 그래 보였다. 그런데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명령을 내려버렸다.

“이곳을 완전히 깨부순다. 위아래로 나뉘어 공격해라. 최대한 불길을 옮겨 수송물자를 전부 파괴해라.”

“????”

이미 다 이겼는데 여기서 한 번 더? 이러한 결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시온도 잠깐 왜 이런 말을 했는지 후회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욕심이 나서 그렇게 소리친 것 같았다. 

어쨌든 말을 내뱉었으니 어쩔 수 없이 강행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시온이 아무런 말도 없자 다들 결의를 다졌는지 투구를 내렸다.

다른 누구의 명령도 아닌 시온 니벨룽의 명령이었으니 그 목숨을 바치겠다는 서원의 이행이 될 시간이었다.

방향을 나누고 바로 돌격을 했다. 시온은 아래쪽으로 갔다. 어레이가 위쪽을 맡았다.

이렇게 세 번째 사건을 시온이 열었다. 이미 이득은 극한까지 본 상황인데 여기에 한 번 더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 이번 명령의 요지였다.

대나무를 쪼개듯이 시온과 기사들이 학살을 하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시온의 판단이 맞았던 거다. 

이미 이들의 대장인 머스티 경과 다른 기사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가운데서 전멸을 해버리는 바람에 이들을 지휘할 자가 너무도 없었다.

안 그래도 도망치는 기색이 짙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도망을 칠 정도였다. 사실 상관이 없었다. 

이번 일의 목표는 그저 이곳의 수송 물자를 날리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냥 수송 물자가 아닌 대 수송물자라는 것이 이번 일이 길어지고 있는 요인이었다.

그렇게 위든 아래든 쭉쭉 밀어나가고 있었고 여전히 맴도는 환영과 안개 덕에 내부의 병사들은 그저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상황 그런데 꼭 시온이 옳았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손발이 안 맞아서 이곳이 예상과 다르게 비어있던 것이지 뒤에서 이 수송 물자를 보호할 수 있을 만한 부대가 따라붙고 있었던 거였다.

누구보다도 기감이 빠르기에 시온은 바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욕심이었다. 너무 많은데. 이렇게 되면 내 기사들도 꽤 죽을지도 모르겠어.’

아까 빠졌다면 별일이 없었을 그림이었는데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벌어지는 대규모 불길에 기습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후속 부대도 완전히 난리란 난리는 다 났다.

“뭐지? 무슨 일이냐!!!”

“시온 니벨룽의 급습이랍니다!!!”

“빌어먹을 벌써 다 타버렸잖아. 머스티 경은 대체 뭐한 거야!!!”

“이미 사망했답니다. 시온 경에게 결투를 청했다가....그만.”

“맙소사. 그 머스티 경이 그냥 죽었다고? 당장 공격해!! 시온 백작만 잡으면 끝이다!! 모두 돌진해!!”

그렇게 병사가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온도 이제 빼야겠다고 말 머리를 돌리려 했는데 아무래도 질척한 후퇴가 예상됐다.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허리가 잡힌 것이었다. 그래도 기사들이 불을 마저 옮기는 데 성공했는지 여기저기서 보고가 들어왔다.

“모두 불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병력이 구릉지에서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의 얼굴에서 죽음의 빛이 서렸다.

정말로 시온 백작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었다.

“시온 백작님을 보호해라!! 모두 맹세를 지켜라!!”

기사 한 명이 그렇게 소리치자 다들 거기에 응했다.

‘아씨.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었는데.’

시온은 한숨을 푹 쉬며 기사들에게 후퇴하자고 하며 적마에 올라탔다. 필립스와 알란은 말을 잃어버린 모양 시온은 둘 다 태웠다.

이어서 어느 정도 다 탔는지 확인하고 명령을 내린 뒤 내달리기 시작했다.

은근히 대열이 시온을 중심으로 뒤로 하나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따라잡히면 하나씩 목숨을 바치겠다는 암묵적인 기사의 관습이었다.

그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구릉지 사이에서 몰려왔다. 돌개바람이었다. 이러한 자연의 기습적인 효과도 전장에선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했다.

그것이 시온의 앞에서 몰려온 것이다. 그 바람 때문에 불길의 방향이 바뀌어 공성탄을 건드렸는지 담겨있던 마법이 폭주해서 터지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다른 들판까지 화염이 번졌다. 즉 시온을 잡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오던 보병무리의 앞이 화염의 벽이 생긴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바람이 계속해서 몰아쳤고 덕분에 그 들판을 따라서 미친 듯이 번져버렸다. 보병무리가 타죽기 시작했다.

‘음?’

시온은 그제야 눈을 겨우 뜨고는 뒤를 돌아봤는데 갑작스러운 불길의 습격으로 타 죽어가는 보병들이 한눈에 보였다.

전투를 막아준 것뿐만이 아니라 불길이 오히려 적의 사망자를 치솟게 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안전한 곳까지 왔을 때 거기엔 이미 앞쪽을 모두 파괴한 어레이와 기사들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전과입니다. 마지막 시온 님의 전술적 판단 덕에 적은 이제 식량 기아에 시달릴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말이다. 후우, 일단은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바로 이대로 빠진다.”

준비했던 대로 원거리에서 지원하던 오르도, 에슬린과 합류한 뒤 그대로 다른 곳으로 숨었다.

ㆍㆍㆍ

“뭐라고 했나.”

유비드 가문의 재상이자 참모이며 마법사인 라힘이 방금 보고를 받고는 무슨 말인지 다시 물었다.

“머스티 경이 이끄는 대 수송부대가 전멸, 머스티 경을 따르던 파라카, 루갈, 에팍 경외 기사 이십 명 모두 사망. 그 수송물자가 모두 전소하였습니다. 이후 후속 부대도 불길에 휘말려.....”

“그만, 그만, 그만해!!!!!! 다 죽었단 말이냐?”

“예...”

“상대는?”

“아직 조사 중이긴 하나 시온 니벨룽이 직접 타격대를 이끌었다고...”

“맙소사. 그자는 백작이야.”

“백작이기 전에 대단한 기사로 이름이 드높았습니다.”

“마법사이기도 하지. 그자는...”

라힘이 말을 아꼈다. 순간 그는 뒤에다 전쟁의 신인가? 라는 단어를 붙일 뻔했다.

자기 같은 지위의 사람이 이 중요한 공성전을 앞두고 그러한 말을 내뱉었다간 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거의 머리가 갑자기 아파 왔다. 

지금 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공성전을 열고 있는 얼딘 유비드에게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전쟁은 침착하게만 한다면 낙승으로 보고 있었건만.’

“라힘 어르신. 빨리 조치를 해야..”

“나도 안다. 당장에 식량을 끌어올 데가 있나?”

“이미 가득 끌고 온 식량인지라, 급히 매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가격은 폭등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공성전은 이미 시작됐고 포위하는 쪽이 식량이 먼저 떨어진다니 그런 우스운 일을 유비드 가문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전략가의 이미지가 드높은 유비드 가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딘 도련님에게 보고를...”

“내가 같이 가지.”

라힘이 그렇게 얼굴이 벌게졌다가 침착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얼딘을 찾아갔다. 이윽고 광분한 얼딘의 격노는 두세 명을 죽일 때까지 계속됐다.

얼딘은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책임자에게 죄를 물어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어지간했으면 얼딘도 그냥 넘어갔을 일이었지만 지금 벌어진 사건은 상상 초월할 만한 손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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