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타(1)
골든 평원에서 제국을 놀라게 했던 것만큼이나 지금 벌이고 있는 시온의 유격전은 또 다른 전설이 되고 있었다.
‘포위가 정말로 헐거워졌다.’
이제 시온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느 정도냐면 어디를 가자고 해도 뭔가 다 이유가 있고 위험에 비하자면 얻을 게 컸다.
“흠.”
필립스가 골라낸 위치는 아마도 여러 개의 수송부대가 딱 한 번 겹칠까 말까 하는 그런 순간이었던 거다.
긴장의 순간이 풀리고 필립스는 다른 자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왔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가?”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가 있나?”
“내가 정말로 잘못했네. 사과를 받아다오. 필립스. 빚을 졌다. 나중에 갚지.”
에슬린은 필립스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가 뭔지가 정말로 궁금한 모양이었고 험악한 분위기로 몰고 갔었던 알란은 종자 신분인 필립스에게 엄숙하게 사과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서임해줘야겠군.’
종자로서 오 년을 채우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바로 기사 서임을 줄 만했다.
“필립스 이 일이 끝나면 기사 서임을 내려주겠다.”
“!!!!!!!”
기사들 모두 시온의 발언에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다들 그럴 만한 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부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다름 아닌 시온 니벨룽의 서임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름을 날릴 게 되는 그 정도의 기회였다.
작전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리해졌다고 해서 이러한 기습이 끝이 나는 건 아니었다.
약해진 곳을 더욱더 쳐야 했고 계속해서 방해해야 했다. 그러니 두 번째로 중요해지는 요소는 유지력이었다.
체력, 식량, 각종 부상과 소모한 마나에 대한 회복 같은 것 말이다. 한번 벌집을 건드리면 벌에 쫓기기 마련 이러한 것들을 마음 놓고 회복하기란 어려우니 관리를 잘해야 했다.
물론 시온은 푸른 액을 통해 소모한 마나를 거진 회복했다. 그리고 푸른 액으로 만들어 낸 육체는 최근 회복속도도 높아져서 어지간한 피로는 하루 안이면 완전히 회복해냈다.
시온이 연달아 이어서 버린 결투는 몸이 멀쩡하다고 해도 육체에 각종 피로가 붙기 마련이었는데 이러한 이유는 시온에겐 예외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자인 에슬린도 나름대로 비법이 있는지 가져온 수상한 액체를 연신 먹어댔다.
시온은 그것이 마나를 회복하는 종류임을 언 듯 알아봤다. 그러나 소모하는 마나 보다는 이곳의 회복수단은 많이 효율이 높지 않았다.
‘에슬린의 대마법은 마나를 거덜을 내지. 사실 나한테 액은 남았고. 에슬린의 활약이 여전히 크게 돌 것인데.’
시온은 진지하게 푸른 액을 약간 섞어서 내줄 것을 고민했다가 이내 머리에서 지웠다.
몇 가지 비밀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원칙을 이미 세웠다. 현대인으로서의 그런 자각을 남에게 노출하지 않겠다는 것 말이다.
‘아니야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시온은 전의 전투에서 욕심을 부렸다가 갑자기 바뀐 전투의 흐름에 기사를 잃어버릴 뻔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기사의 반밖에는 남아 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공격해도 될 것 같군.”
이제는 공격해야 할 지점을 그렇게 무리하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저 안전하게 괴롭히기만 하면 됐다.
시온이 짚은 곳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냥 적의 작은 창고였다. 안에 있는 것은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그런 것 말이다.
대충 이렇게 각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동 중에 어레이가 누군가를 잡아왔다.
“유비드 가문의 밀정입니다. 시온 백작님. 이건 확인하셔야 합니다.”
시온은 또 이상하게 일이 흘러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번에 공격할 지점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적이 방어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즉 안전한 만큼 얻을 것도 없는 그런 장소에 가서 여전히 시온이 이끄는 정예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그 경로로 밀사를 보내기로 한 유비드 가문의 허를 찌른 게 된 것이었다.
워낙에 시온에 대한 공포가 차오른 바람에 가장 오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밀정을 보냈던 거다.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시온 백작님을 보아라.”
어레이와 클락이 남자를 끌고 와서 목에 칼을 대고는 명령했다.
그는 이미 흘린 땀만으로도 충분히 탈수가 올 수도 있을 만한 착각을 줄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짜일까 진짜일까.’
유비드 가문을 개창한 살라딘 유비드는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후손들도 그런 의지와 지혜 비전서들을 배워 지금까지 주변의 세력을 골탕을 많이 먹이고 움드령 같이 약한 곳은 지독하게 가로채는 경우가 많은 그런 짓을 진득하게 했던 가문이었다.
코르도바는 이 같은 사실을 자세히 시온에게 알려 주었다.
“시...시온 백작! 맙소사 진짜였다니.”
“이게 진짜인가?”
시온은 그가 들고 가던 전서를 읽고는 그에게 보여줬다.
전서는 유비드 가문이 잃어버린 식량 때문에 엄청난 가격을 치르고 식량을 들여온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그건.”
그의 얼굴이 복잡하게 변했다. 마치 무언가 수를 계산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아. 한 번 해볼까.’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머리를 굴리고 있구나. 이렇게 전서가 있는데도 말이지. 그러면 네가 하는 짓이 뭔지 알겠다. 여기 있는 네 이름을 보니 너는 지오프리로군. 그래 지오프리. 너는 지금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 맞나? 이 장소는 거짓된 장소지.”
“저를 살려주신다고 약속해주신다면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당연히 진실을 말하면 살려주겠다. 하지만 아니라면 여기서 죽어야겠지.”
“그 내용은 사실입니다. 일이 꼬였지만 저는 시온 백작을 속이기 위해 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는군. 이 녀석을 죽여라.”
시온이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하자 어레이가 진짜냐고 눈짓을 줬다. 시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바로 질질 끌어서 무릎을 꿇렸다.
“목을 내밀어라. 시온 백작님의 명령대로 너를 참수하겠다.”
그리고 그 검이 올라가서 내려쳐 지려고 하는데 그의 입이 소리를 쳤다.
“시온 경!!! 나 지오프리는 경에게 몸값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문은 부유합니다.”
“그건 의미가 없다. 나에게 거짓말을 했기에 죽이려는 거다.”
“그 밀정 내용은 진짜입니다. 시온 경의 공격에 저희 측은 모든 식량을 잃었습니다. 액수를 보면 아시다시피 저희도 뒤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금액을 치를 것이라면 진작에 내 요구를 들어주는 게 낫지 않았나?”
그 정도로 급히 식량을 가져오기 위해 물겠다고 작정한 금액은 이미 시온이 내걸었던 몸값들을 훨씬 넘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좋다. 그러면 넌 이미 유비드 측을 배신한 거로군.”
“?!!”
“이 사실을 바로 너희 측에 보내겠다.”
“그랬다가는 제 가족이,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겠다. 이 전서 안에 있는 것 말고 말이야. 그게 마음에 들면 보내지 않으마.”
그렇게 해서 시온은 이들이 움직이게 될 지점을 한 번 더 정확히 급습했다.
ㆍㆍㆍ
‘이번엔 제대로군.’
이번 기습은 만만아 보이진 않았다. 다만 이번 기습이 성공하게 된다면 이들은 곧바로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후퇴밖에는 할 수가 없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공성전을 하겠는가. 그때가 바로 시온이 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코르도바와 에슬린이 만들어 놓은 전략적인 그림이었고, 시온은 여기에 드래곤 나이트를 불렀다.
이것들이 다 맞아떨어져서 이곳에서 유비드 가문의 거대한 군세를 전멸시키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도 중요했다.
저번의 승리로 병력 차가 세 배 이상은 나는데 판도가 뒤집혀 버린 것은 확실하고 이제 얼마나 적을 섬멸할 수 있는지가 지금의 관건이었다.
유비드 측이 조금 더 버티느냐, 아니면 버티지 못하느냐가 지금 결정된다고 봐야 했다.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견이 조금 갈렸지만 시온도 애초에 버거운 규모라 해도 해야 한다고 마음을 아예 먹은 상태였다. 그러니 다른 의견은 처음부터 들어오진 않았다.
시온이 투구를 내리고 다시 돌진이 시작됐다. 하지만 저번과 같은 휘청일 정도의 돌진은 아니었다.
시온도 들어가다 막힐 정도였다. 난전이 바로 이어졌기에 시온도 곧바로 적마에서 내려 메이스를 휘둘렀다.
요번엔 마법적 지원 없이 기사만으로 해결을 봐야 했다.
그나마 이렇게 자신 있게 승부를 걸 수 있었던 이유는 운 좋게 포로로 잡은 지오프리의 군사정보 덕이었다.
시온이 끼친 피해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얼딘이 이번엔 무조건 갈라져서 물자를 옮기라고 지시한 덕에 가장 중요한 물자인 금화 덩어리의 방어력이 약해진 거였다.
하나로 뭉쳐있었다면 마법 지원 없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인데 이렇게 기사들만으로 강행한 이유는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
시온의 메이스가 여전히 날뛰었다. 보병의 머리를 부수고 이리저리 벨저에게 받은 무기술을 마음껏 펼쳤다.
멀쩡했던 롱기우스의 갑주가 순식간에 물감이 칠해질 정도로 시온의 공격은 격렬했다. 단숨에 적의 라인이 무너질 정도였다.
어차피 도망치면 뒤에서 죽여버리겠다는 기사들의 협박이 있는데도 뒤로 물러서서 시온에게 달려들지 못할 정도로 겁을 먹었다.
“도망치지 마라!!! 뒤를 밟으면 베어버리겠다!! 겁쟁이 자식들!!!”
“거기 기사, 결투를 받아라. 나와라.”
시온이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는 기사에게 말하자 지금까지 떠밀리고 있던 병사들이 빨리 나가라는 눈치를 보냈다.
그런데 그는 얼굴이 벌게졌지만 절대로 시온에게 나오질 않았다. 무서웠던 거다.
한편 시온의 기사들은 어째 앞에서부터 막힌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이번에 유비드 측이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막아내는 것이다. 시온이 라인을 밀어버린 것은 그러한 각오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실력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위험했다. 이 전세라는 것은 시온이 이긴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데려온 기사들이 정예라 해도 더욱더 결정적인 것이 있어야 이 금화 더미 수송수레들을 차지하거나 부숴버릴 수 있는 법이었다.
‘제길, 저 녀석을 빨리 잡아야 하는데 이 녀석들이 너무 소극적이라, 잡아낼 길이 나오는 것보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지금까지는 자기를 못 죽여서 안달인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거꾸로 처박혀서 나오질 않고 중간에서 지휘만 하니 이것도 골치 아픈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아껴둔 마나를 여기서 써야겠다.’
유격전의 지속적인 전투가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나를 더 아껴야 하는 게 맞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하면 여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둥근 원만 유지하며 자기한테 달려들지 않는 각을 이용해서 무력 폭풍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급하고 위험해서 약식으로 했고 그렇기에 위력의 등급이 낮은 무력 폭풍이 좁은 범위로 은밀히 날아갔다.
염력 자기장의 구체인데 이것의 원리는 블랙홀과 비슷했다. 그곳으로 쇳덩이를 빨아들이는 거다.
“마...마법?!!!! 마법사라고???”
너무나 당황해서 놀랐을 땐 이미 덩어리가 던져진 상황이었고 전열이 그쪽으로 휘말리듯 우겨졌다.
시온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내달려서 나오지 않던 기사의 머리를 메이스로 내려쳤다.
메이스가 깊숙이 들어가다가 나왔고 이미 절명한 이곳의 지휘 기사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가 시온이 만든 구를 향해 질질 끌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