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타(2)
시온이 이곳을 지휘하던 핵심 기사의 머리를 박살 내자 그림 같이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리는 전과 비슷했지만, 이번엔 더욱더 대립을 세웠던 만큼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시온은 곧 금화가 쌓여있는 수송 수레들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중에 상자 몇 개는 종이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전부 금화를 빌리거나 식량에 대한 대금을 치르겠다는 그런 종이들이었다.
‘대금 종이는 나중에 쓸 수 있겠군.’
금화 상자만 해도 상당한 양이었다.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 근처 호수에다가 다 부어버렸다. 나중에 찾으면 그만이었다.
ㆍㆍㆍ
이번 시온의 두 번째 급습은 결정타나 다름이 없었다. 전세가 뒤집혀서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명치를 한 번 더 때린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정도로 결과만 놓고 보자면 첫 유격전만큼은 못했지만, 효과는 그에 못지않았다.
공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식량인데 그것을 다 잃은 부대에 기아가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군세의 모든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하며 심지어 먹을 것이 급한 나머지 말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정말 뒤를 보지 않는 선택이 이어지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군마는 잡아먹지 않는 편인데 당장에 올 식량을 기다리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얼딘 유비드가 군마를 잡아먹으라 지시를 했다.
이렇게 되면 후퇴도 없이 정말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시온이 이번에 벌인 결과는 얼딘의 뒷목을 잡게 하는 것이었다.
‘하필 걸려도 누리 경이 이끄는 부대가 걸리다니.’
라힘이 근심에 잠겨 신음할 정도의 아찔함이었다.
도대체 분리해 놓은 부대만 열두 개가 됐는데 하필 누리 경이 이끄는 부대가 걸린단 말인가.
전부 누리 경을 안전하게 보내려는 조치였는데 기가 막히게 빼 먹힌 게 되었다.
“시온...니벨룽.... 이 전쟁은 어리석었다. 그자는 도련님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괴물이야. 아니, 유비드 가문으로는 불가능했다. 그의 힘을 파악하고 더욱더 큰 세력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그는 시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인물 중에서는 단연히 톱이었다.
기사로서 뛰어나면 외골수인 면이 강해서 전술적으로 덜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시온 한테는 단 하나의 결점도 찾을 수 없던 것이다.
오히려 대전략가라는 칭호를 그에게 줘버려야 할 지도 모를 정도로 이번 전투 패배의 명함은 짙어지고 있었고 어두워졌다.
이미 지금 벌어진 일이 퍼지게 된다면 이곳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될 정도였으며 시온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게 분명한 유격전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이것은 생사가 달려있었다. 그는 심호흡하며 얼딘의 막사로 들어갔다.
얼딘 유비드는 이미 넋을 놓고 허공을 보고 있었다.
누리 경이 이끄는 부대가 중요했던 이유는 가장 많은 금덩어리를 싣고 가고 있던 것도 있지만 유비드 가문의 재산을 탕진할 각오를 하고서 써댄 차용증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많은 식량이 급히 필요했기에 그랬고 시간도 아슬아슬했다.
귀족의 관습이라는 것, 특히 영주의 관습은 더욱더 엄격한 면이 있어서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니면 증서가 없이는 절대로 뭔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필 준비한 그것들을 다 뺏겼으니 사람만 보냈다고 해서 다른 영주들이 식량을 팔 리가 없었다.
즉 시기를 놓쳐버리게 된 거였다.
전마를 잡아먹는 최악의 선택지를 했지만, 그것으로 번 시간보다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얻을 방법이 없었다.
딱 하나가 남았지만 그랬다가는 유비드 가문이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될 것인지라 절대로 지시할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후퇴를....내리셔야 합니다.”
“나보고 여기서 도망가라는 건가? 라힘 너는 미친 건가?”
“그래도 뒤를 보셔야 합니다. 멸시야 참으면 기회가 오지만 여기서 시온 니벨룽에게 당하신다면 그 기회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겁니다.”
시온의 이름을 듣자 얼딘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허공에 손을 내젓다가 검을 뽑아서 여기저기 휘둘렀다.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제 움드령을 확보한다 해도 시온의 대한 악몽을 평생 꿔야 할 것은 틀림없었다.
“후퇴? 그런 건 없다.”
“그러면 모두 죽습니다.”
얼딘이 광기에 차서는 라힘에게 말했다.
“아니, 우리는 공성전을 포기한다. 전군 시온 니벨룽을 찾아라. 식량이 떨어지더라도 그 녀석을 잡아서 죽인다면 내 병사들이 모두 굶어 죽는다 해도 난 어쨌든 이긴 것이겠지.”
말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 이곳의 전쟁이라는 것은 왕이라는 기물을 잡아내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십 년간은 복구해야 할 피해이기는 하나 결국 움드령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시온이라는 떠오르는 별을 떨어트리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시온 니벨룽을 못 찾게 되면 마지막 기회조차도...’
라힘이 마른 침을 삼켰다. 정말 치욕 중의 치욕 정도가 아니라 가문이 멸망할 수도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었다.
라힘은 여전히 반대의 의견을 올렸지만, 전권을 가지고 있는 얼딘이 밀어붙이자 결국 이 명령대로 유비드 측의 군세가 움직였다.
ㆍㆍㆍ
휴식을 취하며 누적된 피로를 풀던 시온과 일행은 곧 변해버린 흐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공성전을 포기했다고?’
정말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공성전 말고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저희 편입니다.”
어레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에슬린은 더욱 긴장해서 시온에게 말했다.
“표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저희가 너무 성과를 낸 게 원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유리하다고 해도 전쟁은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가 없다. 에슬린이 마법사다운 냉철한 의견을 보냈다.
시온도 그게 맞아 보였다. 과연 유비드 가문답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자신을 찾는 것으로 정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은 가만히 있자. 좀 더 지켜보자고.”
시온은 아직도 그 큰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래곤 나이트의 도착과 합세해 이들을 여기서 섬멸시키는 구도는 포기하기 힘든 거였다.
그 이후를 생각해보면 단숨에 움드령을 정상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빚을 해결하고 오히려 재정을 풍족하게, 거꾸로 유비드 가문을 잡아먹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심상치 않게 흘렀다. 시온이 있는 구릉지 쪽으로 굉장한 수의 군세가 모였다.
알아낸 것은 아닌데, 공성전을 아예 포기하고 모든 구릉지를 감싸고 있는 데다가 운이 나쁘게도 많이 모인 군세의 흐름에 시온이 숨어 있는 자리가 섞여 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빠져야 합니다.”
“발각되질 않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있으면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언 듯 보고 오니 먹을 게 부족해 유비드 측의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한 며칠만 버티면...”
시온도 그게 옳다고 봤다. 먹을 게 떨어져서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무리 단위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진짜 아껴두었던 전마도 다 잡아먹고 풀이란 풀은 다 뽑아서 끓여 먹고 있었다.
그나마 저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호수를 통해 물고기를 얻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이제야 성과가 눈에 보일 정도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온도 이곳에 더 있자는 명령을 내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처음 움직인 것이 맞았는지 결국 발각이 되고 말았다.
소수도 아니고 무리가 모여있는데 사람을 앞세워 구석구석 찾는 것을 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본적으론 마법을 쓰곤 있었지만, 결국엔 위치가 완전히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진작에 움직이거나 돌파를 해야 했는데 오히려 곤란해졌다.
“시온 니벨룽을 찾아냈다고? 신이시여. 그곳을 포위해라!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 임무에 실패하는 자는 모두 목을 매겠다.”
얼딘이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시온이 있던 구릉지로 모든 군세가 모여들고 있었다.
그 흐름은 무지막지해서 시온도 얼굴이 굳을 정도였다.
‘침착하자. 할 수 있다. 옛말에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잖아.’
시온은 감각과 모두 마나를 끌어 올렸다. 문제는 방향을 정하는 일이었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골라야 하는 시간이 적었기에 시온은 감을 믿었다.
시온이 방향을 정하고 돌파하기 위해 무리로 밀어붙였다. 다행인 점은 시온의 무리가 잃어버린 체력보다 굶주려 있는 유비드 가문 측이 너무 허약했다는 점이다.
숫자는 많았는데 그야말로 순간 학살이 일어나며 돌파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이 가득했다. 이 정도로는 떨쳐내기가 쉽지가 않고 명령을 받은 무리가 모두 이곳에 집결되면 이 승부는 끝이 날 거였다.
그리고 시온을 향해 전류의 창이 떨어졌다. 시온은 민첩하게 적마를 내달려 피했다. 잔여 마법은 모두 롱기우스의 갑주의 대마법방어진이 막아냈다.
물론 각종 마법이 시온의 일행으로 떨어졌지만 모두 정예 중의 정예였기에 갑옷들이 이 정도 마법은 다 막아낼 수 있었다.
명령이 있었기 때문인지 시온을 향해 기사들이 몰려왔다.
“시온 니벨룽!!! 결투다!!!”
“멍청아, 결투는 무슨 어차피 우리는 여기서 시온 백작을 못 잡아내면 모두 목 매인다. 그냥 공격해!”
적의 기사들은 말이 없었다. 시온이 적마를 몰고가서 그대로 한 녀석의 몸통을 메이스로 찍었다.
“끄아아악!!”
시원하게 날아가며 무리 속으로 처박히면서 추가적인 피해를 줬다.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시온도 내려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시온은 인정사정 안 봐주고 전력을 다하는 데다가 은밀하게 마법까지 이용해 기사 대여섯 명을 죽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얼딘과 라힘이 입을 벌리고 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한 개인이 저 정도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증거가 바로 여기 있는 거였다.
‘실패할...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
라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둘러싸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죽어가는 것은 이들이 전부 굶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이 소리는.”
얼딘이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많은 보병이 돌진하고 있던 것이다.
코르도바가 공성전이 풀리자마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바로 따라붙은 거였다.
보병을 다시 진을 짜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주의를 시온쪽에다가 둔 탓에 뒤쪽을 보지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뒤에 병력이 충돌하자마자 파도가 치듯이 유비드의 군세가 무너졌다. 보병의 돌격이 아니라 기병의 돌격 정도로 느껴질 정도에 흔들림이었다.
그만큼 많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저건 또 뭐지???”
이들은 무리 안으로 들어오는 강철 고렘을 보고는 또 경악해버리고 말았다. 시온이 숨겨 두었던 고렘을 급하다고 판단한 코르도바가 끌고 왔다.
시온이 멀리 있기에 전투 프레임을 짜지 못해서 간단한 돌리기나 들어서 던지는 수준 밖에는 못했지만, 혼란의 도가니를 더해주기에는 충분했다.
“도..도련님! 저를 따라 도망치셔야 합니다!”
라힘이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끼고 느닷없이 소리쳤다. 얼딘이 바로 무시했다.
“무조건 시온 백작을 죽여라!! 공격해!!”
그 황금 시간마저도 흘러버리고 저 끝에서 시온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드래곤 나이트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