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304)

결정타(3)

“시온 니벨룽 대체 몇 수 앞을 본 것인가.”

드래곤 나이트의 단장인 디아스가 감탄의 숨을 내쉬었다. 

마흔이 넘으며 여섯 차례의 공방전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만들어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디아스 비바르는 지금까지의 돌진 중에서 가장 완벽한 각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원인이 많은 병력에 둘러싸여 있는 자 때문이란 걸 알아차렸다.

‘시온 니벨룽, 저자가 제국에 반기를 들게 되면, 아니겠지. 하지만 여기서 더 성장하게 된다면....이곳에서....’

누구 보다 뛰어난 기사로서 드래곤 나이트의 최연소 단장을 단 디아스 비바르는 시온이 자기의 젊은 시절을 능가한다는 것을, 아니 제국 역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뛰어난 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오히려 이곳에서 처리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디아스 단장?”

“랜스 차징을 준비해라. 바로 돌격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벨리사르를 존경하는 디아스는 벨리사르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었다. 

곧바로 제국의 최정예라 불리는 드래곤 나이트가 랜스 차징의 포지션을 만들었다.

드래곤 나이트의 여러 부대가 전부 온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이들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실 이곳에 온 것도 억지인 터라 단장이 일부만 데려왔다. 

전원이 특유의 갑옷을 입고 있는데 대마법을 반사하기까지 하는 갑주들이었다. 즉 공격하면 역으로 전선이 엉켜버리게 된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방어의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드래곤 나이트 급의 기사들에게 랜스 차징을 당하게 되면 바로 무너져버릴 가능성이 컸다.

“시온 백작에게 집중해라!!”

라힘이 간곡하게 병사를 버리고 후퇴 준비를 할 것을 조언했으나 이미 잃을 대로 잃어버린 탓에 얼딘은 여전히 시온에게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간이 더 넉넉했다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측면에 드래곤 나이트가 달려오고 있고 후면을 코르도바가 보병대를 밀고 오고 있기에 거의 가능성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명령이 내려졌지만, 오히려 시온의 주위에 경계선이 그어진 듯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시온이 만들어낸 식량 기아의 덕이었다. 배가 고픈 탓에 유비드 측의 보병과 기사들은 명령을 오랫동안 유지할 체력이 전혀 없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이제야 맞아 떨어지는구나.’

시온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여러 가지의 성공적인 결과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보자면 이렇게까지 빨리 될 줄도 몰랐고 드래곤 나이트를 이런 시기와 순간에 불러오게 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이어서 땅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대규모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걸맞게 시온의 생각하는 치명적인 공격이 이루어졌다.

공격하는 자나 엉켜있는 자나 당하는 자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일격이었다.

‘끝났다.’

시온은 드래곤 나이트의 일격이 제대로 들어왔을 때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건 처음 그렸던 그림과 딱 들어맞았다. 포로를 생각하지 않는 섬멸전.

아예 여기서 유비드 가문의 전력을 회생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그림이었다.

‘이젠 망설일 필요가 없지!’

시온은 수비적이었던 자세에서 공격적인 자세로 바꾸어 적에게 뛰어들었다.

ㆍㆍㆍ

“네가 얼딘 유비드로군.”

“시온!!”

“너는 내 포로다.”

시온은 유비드 측의 귀족들을 줄줄이 받아냈다. 하나하나가 다 돈 덩어리들이었다. 특히 얼딘을 생포한 게 컸다.

‘드래곤 나이트가 제대로만 해준다면, 유비드 가문은 이제 일어나지 못하겠지.’

많은 자가 도망을 갔다. 이렇게 줄줄 샌 병사를 시온이 일일이 처리하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았다. 드래곤 나이트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어디까지 해결해 줄지는 모르지만 시온이 벨리사르의 호의를 지금 써버린 것은 이런 추격전에 쓰기 위해서였다.

‘세 명의 자식과 유비드 가문을 섬기는 귀족들, 그리고 이제 전투에서 이겼으니 중간에 가로챈 증서들까지 쓸 수 있겠군.’

금화로 따지자면 이제 계산이 안 될 정도였다. 

처음엔 단순히 빚을 가장 빨리 갚기 위해 벌였던 일들인데 하다 보니 전부 다 사로잡은 데다가 끝도 없이 이득을 키워낸 것이다.

드래곤 상회에서 빌린 금액의 열 배 정도를 얻어낸 것 같았다. 물론 유비드 가문이 당장에 이 금액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시온은 약간 자신이 있었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결국에 모든 귀족의 목표는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그 가문이 가지게 될 작위와 땅들과 금화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세 명을 시온이 다 가지고 있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적자들을 말이다. 

장자는 보통 계승을 해야 하기에 다른 자식보다 집중적인 교육과 정치적 훈련을 받게 된다.

냉정히 표현해서 거기에 드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다른 요소와 다르게 시간이라는 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장자를 살리기 위해 다른 자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어쨌든 그 모든 선택지는 자식이 남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시온이 모든 유비드 가문의 자식을 전투를 통해 포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직 이러한 전투의 성과들이 퍼지진 않았지만, 퍼지게 된다면 시온의 이름은 다시 한 번 제국을 흔들 예정이었다.

시온은 자신을 향해 연신 소리를 치는 얼딘을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이제는 드래곤 기사단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벨리사르는 특별히 드래곤나이트의 단장이 지휘하는 자들을 보냈고 이들은 그 이름값을 했다.

거의 다 섬멸해버린 것이다. 이윽고 대화는 별로 하지 못했지만 블랙나이트의 단장인 디아스와 안면을 익히고 보냈다.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부대답게 일정에 빡빡했다. 그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잠시 이탈한 것이었다.

나머지 정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전리품과 관련된 것도 있고 보수해야 할 것들과 치료받아야 할 자들을 포함해 정말로 많은 후속적인 일들이 있었다.

시온은 코르도바를 불러 모두 다 맡겼다. 부담을 느낄 법한데 그런 일은 없어 보였다. 

한 십오 년을 유비드 가문에 괴롭힘을 당한 모양이어서 이 같은 일들을 오히려 의욕적으로 하고 싶어 했다.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자마자 십 여분을 백작님에 대한 찬사를 할 정도니 시온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머지 일들을 맡기고 시온은 오랜만에 아무런 생각 없이 휴식을 취했다.

며칠 뒤 에슬린이 나름 받아낼 수 있는 금액을 조사했다. 그 액수가 심각하게 컸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를 받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까지는 받지는 못하겠지요. 그런데 시온 백작님이 결정하신 몸값을 적용해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시온도 이렇게 큰 금액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어차피 이겼으니 톡톡히 받아 낼까 해서 대충 잡아놨다. 

그런데 조정을 살짝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액수가 높았다.

“너무 많나?”

“전쟁을 열었으니 이 요구를 치를 자금은 없을 겁니다.”

유비드 가문의 부유함은 널리 알려졌지만, 지금은 충격이 커도 너무 컸다. 그때 에슬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받아낼 수 있지요.”

“그게 뭡니까?”

“바로 영지로 받는 것입니다.”

“!!!”

시온도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듣고 보니 영지를 요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온이 부르는 대로 말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단순히 금화로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거다.

“주지 않으면요?”

“줘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 글쎄요. 이 건은 좀 길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협상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법.”

“그게 누구입니까? 누가 여기에 적임자 같습니까?”

에슬린의 눈동자가 시온을 향했다. 시온이 직접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온은 유비드 가문의 가주이자 이들의 아버지인 카밀에게 전령을 보냈다.

카밀은 이 전령을 받자마자 응하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 물론 시온의 영지로 그가 직접 오는 것이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원래라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시온이 말한 대로 할 수밖엔 없었다.

무려 대를 이을 자식을 다 잡고 있으니 시온이 만에 하나 이들을 모두 참수해버린다면 유비드 가문은 여기서 대가 끊기게 될 터였다.

ㆍㆍㆍ

그 날은 움드령에게는 축복으로 기억될 날이었고 유비드 가문에서는 영원히 불명예로 남게 될 그런 날이었다. 

유비드 가문의 가주인 카밀 유비드가 몇 명의 가신만 대동한 체 시온을 찾은 것은 그들의 세력을 생각해보자면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유세를 떠는 것도 군세가 있어야 가능한 일 시온에게 제대로 잃어버린 터라 오히려 다른 세력에게 다 뺏기지 않으려면 시온이 넘기겠다고 하는 보병 포로까지 싹 긁어와야 했다.

카밀 유비드는 평생 살면서 이렇게 큰 패배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는 망해 가는 유비드 가문을 다시 여기까지 끌고 올라올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자였다.

만약에 시온이 카밀 유비드를 상대로 공성전을 펼쳤더라면 승패가 이렇게 심하게 기울어지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의 습성상 자식 관리 역시 하나의 실력으로 치부되기에 그의 자식들이 죄다 날려 버린 것은 그의 실패이기도 했다.

시온은 세 명의 형제인 안, 아프달, 얼딘을 데려왔다. 세 명의 형제도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욕했다.

안은 자신이 성벽을 부쉈는데 그 유리함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두 형을 증오했다.

아프달은 당연히 멍청하게 포로로 잡혔던 안을 비난하고 장남인 얼딘의 무능력함을 욕했다.

얼딘은 얼딘대로 너희 때문에 자신이 무리한 것이라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따로따로 봤을 땐 우애가 깊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물론 그러한 면이 있었으니 이들이 서로를 구하기 위해 군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자가 시온도 아직 익숙지 않은 집무실로 들어왔다.

카밀 유비드는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지닌 자였다.

숱하게 사람을 제거해본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뭐하겠는가, 이제는 그냥 팔과 다리가 잘린 군세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노와 공포가 섞인 감정 속에 있던 카밀은 시온을 보자마자 이길 수가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숱한 적을 가늠하고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골라내는 능력이 있었다. 유비드 가문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술 적인 철저한 교육과 경험으로 얻은 통찰이 시온의 어떤 거대함을 눈치챈 것이다.

이러한 통찰의 마법이 담겨 있는 그의 선조인 살라딘이 남긴 유물인 황금 주사위가 흔들거렸다.

흔들거린다는 것은 최고의 불길한 징조였다. 즉 시온이 운명을 거스르고 있는 자라는 뜻.

이 황금 주사위는 엄격한 일인 전승으로 이루어져서 그 인계는 마지막 순간에만 전해졌다.

즉 카밀의 아들들도 그 정체를 몰랐다. 물론 카밀도 나이가 먹기 전까지, 가문을 이어받기 전까진 몰랐던 것이 바로 이 황금 주사위였다.

‘운명이 나를 버렸구나. 내가 이 자를 먼저 볼 수만 있었더라면 이러한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미 다 엎질러졌다.’

카밀의 눈에 시온은 거대한 거인처럼 보였다. 황금 주사위가 가져오는 두 번째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인, 거대한 마나의 근원지, 그리고... 푸른 태양.

이것들이 만들어 내는 순간적인 환상은 이미 카밀 유비드를 지레 겁먹게 할 정도였다.

현 황제를 비춘다 해도 저만한 환영이 나타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온갖 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러한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시온은 그가 덜덜 떨면서 침을 흘리고 있자 그의 아들들에게 말했다.

“혹시 머리가 아프신가?”

“아..아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명석하신...이런 모욕은..”

“그만.”

시온이 말하자 물이라도 한 바가지 처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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