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
비가 오기 전에 망자들을 모아서 보내주는 대책이 빨랐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원래라면 병이 크게 일어나 이곳이 마비될 정도로 역병이 돌았을 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 성능이 올라간 강철 고렘의 작업 속도는 모두의 상식을 깰 정도였다.
게다가 구스타와 움드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도 대충은 만들었다.
비가 끊기고 다시 맑은 날이 이어졌다.
‘비단 상인을 만나야 한다.’
시온은 이제 적극적으로 금화를 받고 이들의 안전과 거래를 도우며 구스타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려야 했다.
사실 아직 구스타령을 가보지를 못했다.
그 정도로 전후의 뒤를 정리하는 일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구스타는 움드의 세 배 규모에 가까운 도시였다.
중요한 세수를 담당할 만한 이유가 있는 곳이었다.
“저 사람이 시온 백작....”
분위기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유비드 가문에 복종했는데 인제 와서 새로운 자가 왔으니 따르라면 따르겠지만 그리 반갑진 않았다.
그리고 남작 세 명이 바로 앞에 있었다.
구스타 백작위에 맹세한 하위 남작들이었다.
그것을 챙겼으니 이들이 따라오게 된 거였다.
“시온 백작님. 먼 길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벨라 오마, 라고 합니다.”
“백작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토마스, 벨라, 굴리모 이 세 명이 시온의 첫 봉신들이었다.
그중에 굴리모는 성인도 되지 않은 남작이었다.
‘하이거가 생각이 나는군.’
미성년자 영주도 은근히 많은 것이 이곳이다.
이들은 봉신이니 이제 매달마다 각자의 남작령에서 나온 세수에서 일정량을 바치게 된다.
“반갑다. 나는 시온 니벨룽이다. 모두 의무를 다해주기를 바란다. 나 역시 의무로 답하겠다.”
의례적인 대화였다.
시온은 이들에게서 뭔가 뜬금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기사로서 이름이 높으시다니 이렇게 가볍게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내 명령 때문에 바쁘니까 말이지.”
모두 길을 만들거나 거주지를 늘리는 현장에 들어갔다.
시온이 이곳에 온 것은 그래서 인원이 별로 없었다.
물론 노림수도 있었다.
만약 딴 맘을 먹는다면 이렇게 일부러 달려들 만한 기회를 줬다가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유비드 가문을 섬겼으니 쉽게 자신을 따를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들이 준비가 철저했다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인사를 마친 둘이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구스타에 관련된 정보를 보고 있는 도중 굴리모가 들어왔다.
“시온 백작님.”
“그래. 굴리모 남작. 무슨 일이지?”
굴리모는 시온이 나이가 어린 대도 제대로 대우를 해주는 시온에게 감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굴리모는 나머지 두 명의 남작들에게 제대로 무시를 당하고 있었던 거다.
나이가 어리고 차이가 나니 당연했다.
단지 굴리모에게 바라는 건 그저 동의하고 여기에 참가할 만한 자를 지원해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저는 백작님을 존경합니다.”
“?”
“시온 백작님의 명성에 대해선 예전부터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고맙군.”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무슨 소리지?”
“시온 백작님이 용맹하다는 것은 익히 들은 바였으나 이렇게 과감하게 이곳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적은 인원만 데리고 말이지요.”
어리지만 굴리모의 말은 일리가 있다.
보병대 천명 정도는 데려와서 이곳에 겁을 주고 제압을 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는 거다.
안 그래도 모든 가신이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시온은 구스타와 움드를 잇는 길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고 싶었다.
전염병을 막은 것은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전쟁이라는 것을 한 것이다.
그리고 움드 자체가 십오 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은 탓에 기반 시설이 거의 파괴되어 제대로 된 영지답게 굴러가고 있지 않았다.
정말 지어야 할 게 산더미였고 그 산더미 같은 건설에 따라오는 금화도 더 필요했다.
시온은 이 어린 남작을 착각에 빠트릴 필요가 있었다.
‘어린 영주들은 하나같이 기사에 대한 환상이 강하지. 그렇다면 적어도 얘는 내 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겠고.’
무슨 말을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단어들을 정리했다.
“나 하나를 위해 보병대를 쓰는 것보다는 움드와 이제 나의 영지민이 된 구스타의 영지민들을 위해 내 보병대를 쓰는 것이 맞는다고 봤다.”
“!!!!”
이 어린 남작의 얼굴을 보니 시온의 생각이 잘 맞은 모양이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기에 데려오면 그 많은 인력을 놀리게 되는 것인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무역 망과 거래 기반을 위한 운송 시키는 길을 열어야 했고 어떻게 보자면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크기도 했지만 두 지역의 영주민들과도 관련이 깊었다.
“그러니 그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면 나는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래서 유격대를 직접 이끄셨군요!!! 그 일은 전설이 될 겁니다.”
굴리모가 흥분하자 시온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실전 전투력을 가진 기사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황제가 아주 괘씸한 짓을 한 것이고, 내가 아니었으면 대체 누가 그 유비드 가문의 군세를 막았을 것인가.’
“아, 고맙다.”
“그렇기에 지금 나가야 합니다!! 다손 경!! 얼른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한 명의 굳건해 보이는 마흔의 남자가 들어왔다.
마법방어진이 잘 걸쳐 있는 쇠사슬 갑옷으로 무장한 자는 시온을 보자마자 예를 갖췄다.
“다손 헤토 라고 합니다. 백작 님을 모시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토마스와 벨라 두 남작이 지금 이곳에 기사를 끌고 오고 있습니다.”
‘됐군.’
시온은 자신의 계략이 어느 정도 먹혔다고 생각했다.
물론 얼마나 좋은 기사를 데려올지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시온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기사와 보병들이라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기회로 두 남작을 제압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리스크를 지면서 가장 간단하게 세 남작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최소 두 명은 반란죄이니 영구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었고 상황만 받쳐주면 그냥 그들의 작위를 반납받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딴 맘 품고 있다가 군세를 만들면 그게 더 골치 아프지.’
이제는 영지를 관리해야 했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보병의 충돌도 관리해야 했다.
모두가 사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다손 경, 자네는 나를 도와 임무를 지금부터 받는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는 이곳의 비밀통로를 알고 있습니다.”
다손이 시온에게 급하다는 듯이 말했다.
“비밀통로? 필요 없다.”
“....?”
“자네와 나는 지금부터 두 명의 반란자를 잡는다.”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이대로 반격한다.”
시온이 말을 마치고 근처에 두었던 갑옷을 입었다.
그 사이에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진짜로 기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시온이 먼저 재빠르게 움직였으나 비밀통로와는 달랐다.
그냥 빠르게 직선으로 내려가고 있던 거다.
다손과 굴리모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서 기사 둘을 만났다.
“신의 응징을....묻..”
아무리 딴 맘 품고 온 자들이라 해도 시온은 이제 이곳의 영주이고 다른 남작들의 영주다.
그러니 공격하기 전에 이런 격식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시온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여기서부터 최선을 다했을 거다.
앤드류의 행동각인마법이 시온의 몸을 돌았다.
‘간만이라 펄펄 끓는군.’
그때의 전투가 있었던 후 몸은 꽤 쉰 상태였다.
시온의 메이스가 공격 전에 선전포고를 하는 기사의 머리통을 날렸다.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앞에 있던 자가 날아갔다.
이어서 다른 자도 곧 공격을 당해 뒤로 퉁겨졌다.
다손은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말하는 도중에 공격하다니 실전에 실전을 겪은 진짜로구나.’
두 명을 처리하고 밖으로 바로 나가자 중무장한 기사들이 주위에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을 쭉 둘러보고는 시온은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되면 이들 역시 즉흥적인 계획이었다는 얘기가 됐다.
할까 말까 하다가 혈혈단신으로 오자 마음을 바꾸고 기사를 끌고 온 거다.
“시온 백작을 상처입히기만 해도 땅을 내주겠다!!”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명예로운 자는 없는가, 유비드 가문이 영원히 그대를 기억할 것이다!!”
한참 전만 해도 새로운 충성과 명예와 의무를 웃는 얼굴로 얘기하던 두 명의 남작인 토마스와 벨라가 보였다.
‘이게 이곳의 특징이지.’
현대보다도 끈끈하면서도 어쩌면 더 관계가 불안했다.
약간의 틈만 있어도 이렇게 칼을 휘둘러 그자가 가진 것을 다 차지하려고 하는 거다.
그리고 시온의 몸이 벌써 공중으로 뛰었다.
사실 뭔가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앤드류 마법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들 두 명의 남작이 약속하는 금은보화와 여자 그리고 땅에 대한 설명 때문에 관심이 그쪽으로 흩어져 있었다.
‘나라면 더 일찍 했을 거야.’
상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그들 사이에 메이스가 떨어졌다.
어깨를 맞은 자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급의 기사가 아니었지만 허망하게 전투불능이 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자가 시온을 향해 워해머를 내리 찍었다.
키가 이미터가 넘는 덩치였는데 순간 시온이 쓰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급의 기사였다.
게다가 워해머에 무슨 전격 마법을 달아놨는지 뇌전을 일으켰다.
당연히 뇌전 마법은 롱기우스의 갑주를 뚫지 못했다.
시온은 그의 공격을 겨우 피하고 바로 그의 다리에 약식 염력 마법을 던져놨다.
작은 구가 그의 자세를 흩트리자마자 시온은 그의 정강이를 메이스로 후려쳐 부러뜨렸다.
“아아아악!!”
‘이 녀석은 정말로 물건인데.’
그 와중에 반격까지 하는 것을 거리를 벌리다가 시온이 조금 전의 마법에 같이 흔들린 자들을 계속해서 내리쳤다.
헤드 브레이커라는 메이스의 이름답게 이번엔 투구째로 절명하는 자들이 여러 명 생겼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에 이들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온갖 마법이 다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들의 무구에 달린 마법들이다.
화염계, 전격계, 바람계, 얼음계 모든 것이 뒤엉켰다.
실제 전투엔 이런 마법 무구를 달고 아는 자는 거의 없다.
그만큼 방어적인 무구를 가져오고 각자의 전열을 유지하는데 제일 중요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 지라 각자 통일 하지 못하고 가져온 것이다.
시온의 롱기우스 갑주가 순간 방어력을 다 소진할 정도였고 시온은 그때부터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결론은 자기들끼리 자멸하고 있었다.
‘너무 급했군, 급했어. 그 정도로 급조한 녀석들이란 거지.’
화염 마법 덕분에 주위에 불이 붙어 안 그래도 난장판인 이곳 주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당황한 두 명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여러 마법이 날아다니는 곳은 현재 마나 폭주로 여러 개의 무구가 주위의 마나를 마음껏 빨아다가 난사하는 상황인지라 위험했다.
하지만 시온은 지금이 적기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토마스가 사신을 본 듯이 다급하게 광기 있는 소리를 냈다.
시온은 그의 얼굴에 주먹질했다.
이가 다 박살이 나고 토마스가 기절해 퍼졌다.
옆에 있던 발라가 시온을 향해 마법이 담긴 반지를 가동하려고 했다.
마나의 기감이 뛰어난 시온에게 있어선 발동조차 하기 어려운 거리였다.
간단하게 손이 부러지고 시온의 메이스에 맞아 벽으로 퉁겨져 나가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백..백작님!”
그제야 보병이 달려왔다.
이들은 누구의 편일까? 그러나 얼굴과 당황한 것을 보니 보병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내용인 듯했다.
남작들의 단독 행동으로 추측됐다.
시온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도시에 있는 보병들을 죄다 벌하는 것도 크게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들을 모두 잡아넣어라. 그리고 빨리 불도 끄고.”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보병들이 호들갑을 내며 하나둘씩 끌고 가기 시작했다.
토마스의 머리를 잡고 질질 끌고 나머지 한 명인 벨라를 따라붙은 다손에게 제압하라고 말했다.
제압할 것도 없이 이미 행동불능상태였다.
‘이렇게 둘을 다 사로잡았군. 그리고 죄도 생겼고 말이야.’
“굴리모, 이번에 너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상을 따로 내려주겠다.”
“영..영광입니다! 시온 백작님!”
‘굴리모는 잘 키워야지.’
미리 있을 싹도 잡은 데다가 시온은 이 둘의 남작위를 회수할 생각이었다.
물론 법이 조금 까다로웠기에 이 부분은 따로 상황을 봐야겠지만 한 명의 작위는 분명 뺏을 수 있을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