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웜
토마스의 주장에 따르면 주동자는 벨라였다.
아주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
토마스는 눈물범벅이었고 그리고 얼굴이 박살 나서 발음이 새고 있었지만 시온의 다리를 잡고 빌었다.
“저는 처음엔 반대했습니다!!”
어쨌든 작위를 뺏는 것은 조금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그런데 토마스가 증언을 해준다면 쉽게 될 것 같았다.
따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줄줄 불고 있었고 증언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넘쳐 흘러 보였다.
“벨라가 저지른 것을 네가 증언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백작님. 저를 용서만 해주신다면!”
하기야 이 녀석들의 작위를 모두 뺏는 것은 이곳의 분위기상 또 다른 빌미를 가져올 수 있었다.
아직 유비드 가문과 전투했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에 회복해야 하는 시기다.
그러니 이 녀석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쁠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네가 벨라가 이 모든 일을 꾸몄다고 발표해라. 그리고 거기에 대한 것을 신에게 그리고 많은 자에게 공표하고 제국에서 재판이 열리면 증언까지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를 용서해주신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덜 맞았군. 나에게 요구를 하다니. 너는 분명히 나에게 검을 들어 내 목을 취하려고 했다.”
사실 엄격하게 보자면 시온의 함정이었다.
물론 시온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그런 함정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나버렸기에 시온은 정말 이들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여기서 토마스를 처형해도 분위기를 해할지언정 시온을 손가락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비를!! 신께서 이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신은 내 편이다. 네 편이 아니다. 그러니 너는 내가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내가 너의 신이다. 알겠나?”
“앗..아..”
“그 정도로 나를 모셔야지 내가 너를 살려둘 마음이 있다.”
그는 정말로 고민 중인 모양이었다.
시온은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는 정말로 시온을 신처럼 모실 것인지 고민 중이었던 거다.
“싫은가? 그러면 여기서 메이스 맛을 봐야겠군.”
시온의 메이스는 아직 피도 다 닦지 않아서 공포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그는 시온을 신처럼 받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온 황제님!!”
“?”
“앗, 죄송합니다.”
“나를 물 먹이려 하다니. 내 충성심은 확고하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시면...”
‘정말 이 자식은 피곤한 녀석이구나.’
“자 이제부터는 이 계약대로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영주의 모든 권리는 세수에서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지민들에게 뜯은 세수 일부를 다시 바친다고 하지만 그 영주가 따로 챙기는 양은 어마 무지했다.
그것의 구십 프로를 바치라고 조건을 내건 거였다.
거의 최소한의 생활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쳐야 하는 금액이었다.
“단, 여기엔 영주민들에게 세수를 올릴 만한 권리도 내가 다 갖겠다.”
사실상 최소한의 권리만 남겨두고 다 가져간다는 뜻이었다.
어설프게 이렇게 뜯어갔다간 영지민들을 착취해서 괜히 시온의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그의 눈이 부들부들 떨렸다.
“선택해라.”
이걸 받아들였다가는 명목상의 남작일 뿐이지 사실 영지의 주인은 시온이라고 봐야 했다.
“하..하겠습니다.”
“좋다. 한 번 믿어보지. 두 번째는 내가 직접 너를 결딴을 내줄 것이니 기대할 만하다.”
너무 놀랐는지 그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사실 그런 귀찮은 짓을 하는 것은 시온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위협을 해둬야 두 번째가 잘 막아 질 터였다.
‘솎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남작령 두 개가 다 들어왔군.’
벨라의 재판이 끝나는 데로 시온은 그의 남작 작위를 회수해서 가질 것이고 이렇게 비밀 협정을 맺어 토마스의 카사라 남작령의 모든 세입을 얻는다면 재정은 기존보다 훨씬 늘어나고 안정적으로 변한다.
ㆍㆍㆍ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난 구스타의 민심은 오히려 시온편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때 그 싸움이 비열한 것이었다는 것은 영지민도 알 정도였고 그 싸움이 바깥에서 이루어진 탓에 시온의 무용을 영지민들이 잘 구경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 덕택에 명성이 다시 한 번 작용을 한 탓에 민심이 올라온 것이다.
구스타령의 충성심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뒤늦게 시온의 일을 안 많은 자가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귀찮은 일이 있었다.
어쨌든 이런 일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시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스타령이 유비드 가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비단의 거래 때문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조금씩 들어오는 이 상품은 제국이나 각종 귀족에게 고가의 가격으로 팔렸다.
특히 마탑 쪽에서 이 비단을 좋아했다.
이러한 비단을 운영하는 상단과 구스타 백작 작위를 가지고 있는 자가 전통적으로 거래했었다.
사실 굳이 구스타 말고도 다른 백작들과 거래를 할 수도 있지만, 구스타 백작과 지속해서 거래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했던 것이 반복되어 이곳에서 해야지 운이 좋다는 미신적인 관습을 가지고 있던 거다.
중세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그래서 전염병의 위험도 없애고, 길도 다듬고 구스타에 와서 미리 남작들을 휘어잡기 위해 이런 계략을 짠 것도 전부 이 비단 거래와 관련이 있었다.
“뭐라고?”
“그것이, 시온 백작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지금 저희 베네 조합에서 논의에 있습니다.”
비단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상단인 베네 조합은 길드로 이루어져 있고 이 방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보낸 화려하게 치장한 자가 말하는 바는 거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였다.
“왜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래서 논의에 있습니다.”
“베네 조합은 오랫동안 구스타 백작과 거래를 해왔지, 구스타는 이제 유비드 가문이 아니라 내 것이니, 이제 나와 거래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맞습니다. 그러나 시온 백작님께서 제국의 사람이라 말이지요.”
유비드 가문은 아니드 왕국에 속해있었다.
제국에 속해있다고 논의가 들어갔다니 그건 또 여기 식대로 보자면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잡아야 한다. 그래서 구스타를 고른 건데.’
만약 비단 무역을 놓쳐야 했다면 차라리 다른 영지를 달라고 했을 거다.
“아직 논의 중이라 했지?”
“그렇습니다. 저희 어르신들이 결정할 일인지라...”
그렇게 그를 보냈다.
대책을 찾아봐야 했다.
뭔가 매력적인 무언가를 줄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작업에 몰두하는 에슬린과 코르도바를 불렀다.
시간이 있으니 이들의 의견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에슬린, 코르도바가 도착했다.
간단한 논의를 시작하려는데 그때 그 베네 조합의 남자가 시온을 다시 찾아왔다.
“..시온 백작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급한 전서가 왔습니다. 지금 몬스터한테 공격을 당하고 있다 합니다.”
“몬스터?”
“영수급 몬스터인 포레스트웜이라고 합니다. 것도 두 마리 나요.”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걸 도와줘서 호감을 사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빨리 이것을 처리해야 했다.
만약에 웜이 두 마리 나타났다는 것도 심상치 않아 이쪽으로 비단 거래를 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베네 조합이 구스타에 와서 쓰는 돈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렇게 흘러가게 둘 수 없었다.
“코르도바, 에슬린 바로 가지.”
“기사들을 합류시키겠습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다. 그런 사람을 보내고 여기 있는 기사 몇 명만 데리고 바로 간다.”
에슬린은 그 와중에 이 일을 가지고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 시온이 바로 결정을 내려 버렸다.
그 모습에 남자가 크게 감동을 했다.
어떻게 보자면 그냥 얻어가는 일 정도였다.
시온은 빠르게 해당 장소를 향해 속도를 냈다.
ㆍㆍㆍ
도착했을 땐 이미 피해가 난 상황이었다.
포레스트 웜은 거대 몬스터로 분류되었다.
가끔 이렇게 비단 상단을 공격했다.
몬스터 영수인지라 육식도 좋아하고 비단 자체를 먹는 것도 좋아했다.
원래라면 자체적으로 해결을 봤겠지만 두 마리인 게 문제인 듯했고 덩치도 기존 녀석보다 더 거대했다.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웜 같은 것이 정확히 어떻게 출몰하는지는 모르지만, 차원의 틈새가 가끔 이렇게 연결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살려줘!!!”
“상단 물건을 버려라!”
이미 웜은 한 차례 뛰어들어 고용된 용병을 이리저리 잡수는 상황이었다.
‘너무 큰데?’
급하게 오기는 왔는데 시온의 생각보다 컸다.
솔직히 위험했다.
두 마리였으니까.
코르도바가 바로 시온에게 조언했다.
“시온 백작님. 절대로 달려드시면 안 됩니다. 이번 일의 중요함은 알고 있으나 기사들을 모두 데려와야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슬린도 끼어들었다.
“오래된 웜입니다. 물론 마법적 재료의 가치가 큰 녀석이죠. 이 정도라면 마탑에서도 탐을 내겠지만 이런 웜들은 마법에도 저항력이 강해서...”
긴 설명이 이어지는 것이 섣불리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즉 물리적인 것으로 해결을 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그런가.’
솔직히 너무 크다 보니 시온도 슬쩍 이 의견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달려드는 것은 포기하고 상황을 좀 볼까 했는데 웜 하나가 시온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에슬린이 빠르게 불의 소용돌이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없었기에 약식에 불과했다.
바로 웜이 뚫었는데 더 자극을 받았는지 땅이 요동을 쳤다.
코르도바가 투구를 써서 시온 대신에 공격을 받으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적마가 기가 막히게 사선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온의 지금까지 행동상 이러한 적수를 놓칠 리가 없다는 것이 영수의 뜻이었다.
‘이 망할 녀석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이미 제지하기는 그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앤드류의 마법이 가동되고 있었기에 시온의 의지가 있든지 말든지 각이 나오면 몸이 절로 움직였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적마가 웜의 사선으로 빗겨 쳤고 거기에 시온이 들고 있던 랜스를 던져버렸다.
시온의 강력한 힘이 실린 랜스가 웜의 눈을 뚫었다.
얼마나 깊숙이 박혀 들어가는지 끝까지 들어가버렸다.
“오우.”
그 아슬아슬함에 놀랐다.
이어서 몸이 절로 적마를 벗어나서 웜의 몸통에 탔다.
타자마자 웜의 몸에 있는 줄기들이 점점 자라나더니 흉측한 것이 되어서 잡아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임은 그것을 능가해서 그대로 직진을 하듯 내달렸다.
움직이는 웜의 등줄기를 타고 가는 기행을 한 거였다.
그리고 도착한 것은 웜의 머리 위였다.
단숨에 내리쳤다.
뭔가 미동이 없는 것 같아서 욕을 했다.
이 정도로 공격이 안 먹힐 줄은 몰랐던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부르르 떨던 웜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격사였다.
이렇게 하나를 단번에 처리하자 다른 웜 하나가 놀라서 시온에게 달려드려다가 눈치를 봤다.
영수급인지라 지능이 있었고 영리했다.
즉 상대가 단순히 먹이가 아닌 포식자라는 걸 알아차린 거였다.
‘생각보다 쉬운데?’
막상 처리하고 나니 덩치에 괜히 겁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저 녀석도 놓칠 수 없었다.
‘팔면 다 돈이다.’
돈 말고도 마탑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았으니 이것들을 이용해서 일거양득의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휘파람을 불어 적마를 불렀다.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것을 타고 다시 달려들자 웜이 땅에 처박아 지진을 일으키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니 저것이!”
두 개를 모두 가지겠다는 부푼 생각이 있었는데 웜이 도망을 치자 시온이 미친 듯이 추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