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304)

비단무역권

도망치는 속도가 빨랐다.

이대로라면 놓칠 수도 있었다.

시온을 포식자로 인지하고 도망치기에 있는 힘을 다 쓰는 중이었다.

대형인 몸의 크기 탓에 도망치는 정도인데도 주변이 흔들리고 난리가 났다.

‘놓치면 너무 아깝지.’

땅이 갈라지고 온갖 돌과 나무가 날라왔지만 시온이 타고 있는 말도 같은 영수마인지라 이런 장애물은 알아서 잘 피한다.

황제가 우승 상품으로 걸었을 만큼의 혈통 있는 말이다.

이 정도는 쉬웠다.

그리고 땅이 그만큼 뒤집히는 만큼 포레스트 웜의 속도가 느려졌다.

반면에 적마는 전혀 기세가 늘어지지 않았다.

뒤집히는 양이 더욱 많아졌는데도 적마는 날아오는 나무 덩이들을 피하며 속도를 더 올렸다.

“놓치면 안 된다...”

휙휙!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더 빨라지고 날아오는 건 훨씬 위협적으로 변했다.

‘한 대라도 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그 모습을 봤는지 웜이 발악하듯 속도를 높였지만 별로 높아지진 않았다.

전부 따라잡아 시온이 웜에게 들러붙었다.

아까와 같이하기 위해서 등면을 타고 올라갔다.

마지막 발악인지 이리저리 요동을 쳐대는 것을 기어코 떨어지지 않고 더듬더듬 올라갔다.

똑같은 위치에 선 시온은 비슷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가 약점이었지.”

아까 전엔 무심결에 공격했다면 이젠 이 위치가 어떤 효과를 알고 있는지 잘 알았다.

거기를 내려쳤다.

전 녀석보다도 깊고 정확하게 메이스가 박혔다.

아까보다도 반응이 확 올라왔다.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내려앉았다.

요란하게 먼지가 풀풀 나고 시온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마리 대형 육식영수를 모두 잡아낸 것이다.

몬스터보다 값을 더 쳐주는 영수인지라 짙은 마나가 느껴졌다.

이런 것은 하나라도 버릴 데가 없었다.

하다못해 피 한 방울도 여기저기에서 사 갈 것이다.

웜 계열의 피는 병자의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해서 치료계열 마법사에게 인기가 많았다.

“잘했다. 녀석아.”

적마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온은 영수마를 몇 번 쓰다듬었다.

주인이 있는 영수마에게는 주인에게 인정받아 쓰다듬어지는 것이 최고의 포상이었다.

혈통이 좋을수록 충성심이 깊었다.

제국의 수도급 마상창대회의 상품답게 영수마 역시 날이 갈수록 전보다 뛰어나고 충성심이 높아지는 게 보였다.

얼마 뒤 코르도바와 에슬린, 그리고 비단 상인 몇이 말을 타고 왔다.

“맙소사. 괜찮으십니까? 주변이 완전히 난리가 났습니다.”

“이게 제국을 흔들고 유비드 가문을 격파한 시온 니벨룽이구나!”

“웜을 단독으로 잡아내다니!!”

코르도바는 안위를 물었고 비단 상인들, 베네 조합에선 연신 감탄을 내 뱉었다.

대형급이 이런 부가적인 효과가 있었다.

사실 기사들이 더 까다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기사 보다는 이런 대형 영수를 잡아낸 것이 더 돋보여 보이는 것이다.

“상태가 전부 너무 훌륭합니다. 이것도 단번에 죽이신 건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에슬린이 시온에게 물었다.

“이 위치가 약점이더군요.”

에슬린은 놀랐다.

웜의 약점은 마탑도 정확히 알고 있는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개체 수도 그렇게 많이 발견되는 편이 아니었다.

어떤 틈새를 타고 이렇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덩치 덕에 크게 인명과 작물 피해를 주곤 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몰랐지.”

에슬린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시온도 좋았을 것이다.

어차피 흐름에 맡기다 보면 마법적인 힘이 찾아내는 거였으니까.

고로 이 일은 다시 비밀로 들어가야 했다.

“운?”

“!!!”

믿지는 않는 표정이었지만 이게 적당한 대답이었다.

사실 진짜이기도 했다.

막상 올라가서 내리찍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욕을 퍼부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에슬린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시온 백작님.”

“그나마 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서 마탑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게 에슬린 님뿐인지라 이 두 사체의 관리가 가능합니까?”

“당연한 말씀입니다. 제가 부탁하고 싶습니다.”

웜을 직접 본 것은 에슬린도 몇 년이고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것도 멀찌감치 봐야 했다.

직접 다룰 수 있고 보관 문제로 중요 부위는 직접 해체할 기회도 받을 수 있을 거였다.

에슬린도 뼛속까지 마법사였다.

그저 속으로 시온을 따라오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고 그때 그 결정을 한 자신을 칭찬했다.

“시온 백작님 감사드립니다. 제 일행을 이렇게 구해주시다니. 그리고 그 용력과 무예 담력은 저를 너무나 벅차오르게 하는군요.”

누군가 다가왔다.

시온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처음에 구조요청을 한 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말하는 형식을 보니 뼛속까지 귀족인 것 같았다.

아까는 없었던 노란 바탕의 여러 개의 금화 상자가 바둑처럼 놓여 있는 가문 문장을 달고 온 것을 보니 느낌이 딱 왔다.

‘아까 신분을 속이고 있었군.’

문장을 보아하니 베네 조합의 핵심 귀족이었다.

로마노는 베네 조합의 공화국의 선출권을 가진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다.

시온은 무슨 말을 할지 잠깐 생각했다.

“고맙다. 구스타 백작으로서 오랫동안 거래해왔던 상단의 위험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여기에 도달해있었지.”

그는 시온의 답변을 듣고는 감동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안 그래도 그때 단칼에 부하들의 만류를 제치고 이곳을 돕기로 한 것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이렇게 두 번이나 크게 호감을 산 상황이었다.

“전 에졸리노 로마노입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해드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전 이 상단의 반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짐작대로였지만 시온은 모르는 척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로마노 가문의 장자였군. 나는 시온 니벨룽 백작이다. 움드의 상속자로 결정이 났고 그곳을 구원하기 위해 유비드 가문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구스타를 넘겨받았다. 구스타의 백작이기도 하지.”

시온의 정식 소개에 그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저는 시온 백작님과 비단 거래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음?’

하지만 지분이 반이라는 것은 다른 자들의 의견의 합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상인들은 거의 공화국 출신의 사람들이고 그곳의 귀족은 다른 곳보다 독점적인 체제가 약했다.

도시국가인지라 영토는 거의 백작급에서 좀 커봐야 공작급 정도다.

자유도라고 하면 마탑보다도 분위기가 풀려 있었다.

그러나 꼭 그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지역보다도 암살자가 활발히 활동하는 곳이 공화국들이었다.

그래서 일이 미뤄지는 경우도 많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잦았다.

“너무 놀라운 소식이고 이렇게 든든한 얘기가 아닐 수 없군. 하지만 그대가 내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다른 자들도 표를 주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여드리지요.”

“그렇군. 믿을 만한 사람이군.”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명성에 걸맞은 무력을 보여준 터라 시온의 칭찬은 귀했다.

그리고 에졸리노는 시온이 돈이 되고 그보다 신뢰가 높은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상인 귀족 가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들은 일반 귀족 가문의 멸시를 받곤 했다.

왜냐면 뿌리로 올라가 보면 다른 귀족 가문과 다르게 이들은 높은 귀족에게 자금을 대주고 제일 낮은 귀족 작위인 명목상 남작이나 자작 정도를 영지가 주어지지 않음에도 돈으로 산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 보는 법을 철저하게 배웠다.

다른 귀족과 달리 영지가 없는 이들은 상단이라는 것을 끝도 없이 관리해 나가야 했다.

어떤 귀족이 가치가 높은지 세 살 때부터 가문을 계승받을 때까지 끝도 없이 교육과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 교육은 대부분의 귀족자제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인지라 거지생활을 일부러 시켜 생존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졸리노의 가문인 로마노 가문은 그런 바닥 경험을 다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런 에졸리노가 시온을 봤을 때 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살아생전 이렇게 후광이 보이는 자는 본 적이 없다.’

첫 만남부터 느낌이 왔지만, 신뢰를 지킬 수 있는지에 여부부터 그 실력에 증명까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ㆍㆍㆍ

시온은 에슬린에게 웜의 운반을 맡기고 그대로 코르도바와 함께 첫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돌아왔다.

잔해가 많았다.

처음에 일격사했던 웜은 여전히 구경거리였다.

시온이 오자 그곳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다들 시온을 알아본 것이다.

어떻게 잊어버릴까!

그들은 시온이 웜의 위로 올라가 일격에 죽인 모습을 평생 기억할 거였다.

그 정도로 대단히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베네 조합에 고용된 용병들도 모두 투구를 벗고 시온을 향해 예를 취할 정도였다.

명성이 높고 고귀한 기사는 어딜 가나 큰 존경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시온이 명성을 잘 쌓아왔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베네 조합의 의원 가문의 대리인 나 에졸리노 로마노가 긴급회의를 제안합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가 그렇게 소리쳤다.

시온도 긴장이 됐다.

말이야 믿으라 했지만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안 되면 영지를 발전시키는 계획에 차질이 있었다.

적어도 로마노 가문은 시온을 따라올 것이지만 비단 무역의 일부분 가지고는 만족이 되질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람과 비단의 물자를 관리하던 자들이 부리는 하인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들의 주인에게 에졸리노의 의사를 전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쁜 작업을 중단하고 바로 시온쪽으로 몰려왔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두건을 쓴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문장을 달고 있었다. 빨간색의 사다리 문장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여기에 시온 백작에게 보답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의 황제를 모시는 자입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제국과 반대의 길을 걸어왔죠.”

그랬다. 그의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도움받은 것은 도움받은 거다.

하지만 시온과 비단 거래를 열게 된다면 제국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게 됐다.

여러 곳의 물타기를 해서 수익을 보는 상인 귀족 가문들은 균형을 잡는 노력을 최우선시했다.

“그건 너무 짐승 같은 발언이 아닙니까! 돌프 어르신!”

에졸리노가 짐승 같다는 단어에 집중하며 말했다.

옛말에 짐승도 은혜를 갚는다는 뜻.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였다.

그런데 효과가 썩 있어 보이진 않았다.

상인들답게 손익계산을 하는 것인지 정적이 찾아왔다.

“짐승이지, 그러나 우리는 금화를 버는 짐승이다. 말조심하거라 로마노 가문의 젊은 아이야.”

“그렇다면 나를 적으로 두겠다는 건가?”

시온이 지켜보다가 한마디를 했다.

그 말은 의외로 파장이 컸다.

유비드 가문을 본격적으로 흡수한 시온이 해당 가문을 적으로 선포한다면 압박이 상상 이상일 수도 있었다.

“시온 백작님의 용맹함과 고결함은 익히 들어왔고 이렇게 다시 한 번 증명이 됐습니다. 그러니 그런 짓을 하실 거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돌프가 그렇게 되돌려줬다.

시온은 그에게서 구렁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졸리노가 빠르게 말했다.

“나는 시온 백작에게 무조건 거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가문에 빚진 자들은 모두 나를 따라야 할 것이야. 시온 백작님도 한마디 하시죠.”

‘뭐라고 할까.’

시온은 공격적으로 할지 아니면 돌려서 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선 공격적으로 하는 게 맞아 보였다.

어차피 시온은 명예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명예는 승리에 따라서 오는 것, 패배자에겐 주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시온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겼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따라왔던 것이지 인제 와서 그것을 추구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한번 시험해 봐라. 내가 그 명예를 지킬지 아니면 상관없이 행동할지 말이다.”

시온의 기세는 장난 아니었다.

물론 시온이 일부러 그렇게 거칠게 한 것이었다.

그래야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곳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할 때가 많았다.

현대보다 금수가 많았던 거다.

그리고 상황은 봐야 하겠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져 갔다.

속닥거리며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그러면서 하나둘, 에졸리노에게 걸어왔다.

무려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에졸리노에게 걸어온 것이다.

이곳이 공화국의 전통적인 투표였다.

갈렸을 때 가장 강력한 사람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모두 마음이 모였군요. 그러면 공화국의 전통에 따라서 베네 조합은 시온 백작과의 비단 거래를 지속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끄응. 황제가 검을 제대로 골랐군.”

돌프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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