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단의 행방
진 등급의 웜의 내단은 값이 또 뛰는 물건이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팔기가 싫어진다.
‘내가 쓸 방법이 없나?’
괜히 값어치가 나가겠는가.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비싼 것이다.
즉 마법사들이 그 값을 치르겠다는 것은 그 값 이상의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시온은 에슬린을 불렀다.
냉동 마법과 마력 차단 마법이 겹겹이 쳐진 이 용기엔 보라색 구슬이 있었다.
그 주위엔 마나의 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왔다.
이런 현상은 다른 웜의 내단엔 없었다.
포레스트 웜의 내단답게 초록색이었고 평범했다.
“부르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작님. 안녕하세요.”
카롤리나였다.
그녀는 움드에서 치료를 도맡아 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구스타로 넘어온 모양이었다.
카롤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았어, 카롤리나. 백작님이 처리한 웜의 내단은 진급이다.”
에슬린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침을 삼켰다.
‘저것의 거래만 내가 맡을 수 있어도.’
비록 에슬린과 카롤리나가 시온의 측에서 온 힘을 다하곤 있지만, 이들의 본래 자리는 마탑이다.
진급의 대형 영수의 내단은 매물로 나오기만 하면 마탑 뿐만이 아니라 먼 동방의 세력까지도 원할 정도다.
그만큼 가치 높은 물건이었다.
‘다음 서품을 받을 때 분명히 영향이 있다.’
카롤리나가 침을 흘리다 닦았다.
치료계 마법사도 웜 계열의 고가의 내단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녀와 에슬린의 목표는 달랐다.
에슬린은 마탑으로 넘기는 것이고 그녀는 자신의 수행을 올리는 데 쓰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녀가 그 값을 치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백작님. 제가 대금을 받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안 되겠죠?”
카롤리나가 시온을 향해 물었다.
그녀도 중요하긴 했다.
“미안하지만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따로 적당한 것으로 부탁은 들어드리겠습니다.”
시온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바로 만족을 한 모양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몰랐지만 말이다.
“시온 백작님 이 물건의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은 저에게 맡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슬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그게 고민 중입니다. 분명히 이 물건을 처리하면 막대한 금액이든 인재든, 동맹이든 뭐든 크게 얻어낼 수는 있겠지요.”
시온은 일부러 말을 흐렸다.
고민이 있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정확한 가치를 어림잡아봐야 하는 시온으로선 에슬린을 띄워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시온의 술수는 정확했다.
에슬린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카롤리나는 시온의 의중을 이해하진 못해 싱글벙글했다.
다만 천재와 수재의 칭호를 왔다 갔다 하는 그는 마치 시온과 수십 수를 나누듯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를 떠보고 있다. 정말 신이 원망스럽군. 한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능력을 주다니!’
에슬린은 시온을 끌어올 수 있을 만한 수를 생각했다.
“이 내단의 가치를 알고 있는 자는 마탑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온 백작님. 다른 곳이 무엇을 제시하든 마탑 이상으로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맡기시고 마탑과 거래를 하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마탑은 이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시온의 질문은 적절했다.
다 알고 있다는 뉘앙스이기도 했다.
“다 알고 계시군요. 알겠습니다. 이 물건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 장비든 도구든 시설이든 계파의 마법이든 그 지분의 삼 분의 일을 끌어와 보겠습니다.”
에슬린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을 시온에게 준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에슬린에게는 독이었다.
시온은 이제 이 물건의 가치를 완전히 알아낸 거였다.
‘안달이 났군. 물론 에슬린과의 관계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내가 쓰는 편이 더 남을 것 같은데.’
비단 거래가 확보되고 남작들까지 제압한 뒤라 돈이 없어서 아사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슬린 님에게 예정대로 거래를 맡기지만 진급의 내단은 제가 따로 쓰겠습니다.”
“!!!”
에슬린이 낙담한 표정이었다.
‘역시 뜻대로 되는 자가 아니야. 아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한 개는 맡긴다고 하니...’
에슬린은 복잡한 생각을 숨기고 하나라도 맡아서 다행이다는 생각에 시온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
ㆍㆍㆍ
진급의 영수 내단 가치를 알았다.
이어서 어디에 써야 할지 바로 정했다.
바로 두 번째 고렘을 위한 계약이었다.
가장 가치 있는 마법인 앤드류의 비술에 투자해야 했다.
시온의 예상엔 고렘을 여러 계약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부분 마법사는 그러지 못한다.
평생 하나의 고렘을 운영했다.
고렘을 늘릴수록 기존의 고렘보다 더욱더 많은 재료가 필요했다.
특히 고렘의 정신을 구성하는 집념체가 그랬다.
‘이 정도라면 과분한 계약이겠지.’
시온이 이러한 준비를 하는 와중.
사방팔방에서 소문이 났다.
데리고 있는 마법사들 몇이 시온이 이러한 내단을 챙긴 것을 주위에 알렸기 때문이었다.
제국 수도에도 몇 명은 진급의 내단 등장을 그것을 거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라레테저닛도 그랬고, 시온과 안면이 있던 에티에 가문, 마탑쪽에서도 따로 사람을 보냈다.
모두가 시온의 물건을 따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저러나 시온은 에졸리노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
‘블랙파이어 가문에서 아만다를 보냈다고.’
당연히 황제의 가문도 시온의 진급 내단을 거래하겠다고 사람을 보냈다.
그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벨리사르의 딸인 아만다가 이곳에 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전에 해결을 봐야 했다.
‘황제도 잠재적인 적에 불과하지.’
이곳답게 좋은 것만 얻었다 하면 이렇게 낚아채려는 자들이 있다.
명분도 좋게 말이다.
그러니 시온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빠르게 이 물건으로 다음 고렘을 만드는 것이 제일 좋았다.
이미 물건이 없어졌다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시온이 마법사라는 것은 이제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마법사의 욕구를 참지 못했다.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로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이 에졸리노를 설득해서 고렘의 기체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어떻습니까?”
에졸리노가 조심스럽게 고렘을 공개했다.
시온은 약간 실망했다.
벨리사르가 준 고렘보다는 급이 낮았다.
어쩔 수 없다.
벨리사르가 준 고렘은 황제의 창고에서 나온 것이니 당연히 기체를 구성하는 재료의 질과 밀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엔 없었다.
“나쁘진 않군.”
적당한 표현이었다.
“이대로 카페 가문으로 가게 될 물건입니다.”
카페 가문은 황가 못지않게 그 순위를 다툴 정도로 유서가 깊은 대가문 중에서도 진짜배기였다.
카페 가문의 이력만 보자면 라레테저닛도 한 수 접어야 했다.
그런 곳으로 가게 될 계약 물건인 셈이다.
시온이 이것을 보여달라고 한 것은 당연히 에졸리노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가로채기.
계약 물건을 가로채 자신에게 팔라고 할 셈이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고 나서도 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죄를 물어서 시온의 영지를 공격할 수도 있다.
중세에서는 마음만 먹고자 하면 사소한 거 하나로 침공할 수도 있었다.
가문의 체급이 크면 클수록 그러한 경향이 심했다.
고렘 하나로 침공이라니,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시온이 이리저리 고렘의 몸체를 살폈다.
크기도 적당했고 재질도 비 정도에는 면역이었다.
문제는 전반적인 성능과 그 연결점이었다.
시온이 주의 깊게 살펴보자 에졸리노는 금세 눈치를 채고는 말했다.
“시온 백작님. 죄송합니다만 이 물건은 카페 가문으로 가야 할 물건입니다. 혹시 이것을 원하시는 것은.....?”
시온이 싱긋 웃었다.
“안되나?”
에졸리노는 시온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온의 미소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평소라면 절대로 한 방울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귀족 상인의 특히 로마노 가문의 전통이었다.
거래를 중간에 깨트리는 것은 목을 내놔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정도의 압박과 교육을 계속해서 받아 온 에졸리노였다.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곤 있었다.
하지만 에졸리노보다 여유가 없다.
아만다가 시시각각 오고 있는데 그 전에 기체를 받아내서 여기에 진급 내단을 써야 했다.
아만다와 벨리사르의 성격상 값을 허투루 치르진 않겠지만 시온은 고렘을 늘리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부서진 영지는 많았다.
해야 할 큰 작업은 넘쳐흘렀다.
강철 고렘 한 기를 운영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욕심이라는 게 문제다.
시온도 현대인답게 욕심에 솔직한 편이었다.
‘협박해야 하나. 아니면, 부드럽게 말로 해 봐야 되나.’
두 가지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단점도 있었다.
휘어잡겠다는 느낌으로 협박도 나쁘진 않았다.
최근엔 다 이런 식으로 해결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번은 반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길게 갈 사이 아닌가? 이 물건이 나에게 지금 필요하네. 그러니 솔직히 말하겠다. 이 고렘을 나한테 넘겨줄 수 있는가?”
시온이 그렇게 말했다.
어떠한 추가적인 제안도 없었다.
그저 정중하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실수였다.
마음이 급해서 제안을 넣는 것을 깜빡했던 거다.
에졸리노가 고민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시온은 아차 싶었다.
“카페 가문의 위세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으실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대한 계약의 이행 실패는 저희의 추가적인 금전적 손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의 긴 답변은 어쨌든 좀 힘들겠다는 느낌이었다.
“카페 가문의 문제는 내가 도맡아서 책임져주지.”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겐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졸리노는 다시 고민에 빠진 모양이었지만 이내 승낙을 했다.
“알겠습니다. 이 고렘을 시온 님에게 넘기겠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이 고렘을 제가 잊어버린 것으로 하겠습니다. 웜의 습격 때 날려버린 것으로 말이지요. 시온 백작님께서는 나중에 수색해서 얻으신 거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시온은 이 자가 마음에 들었다.
돈도 받고 리스크도 줄이겠다는 뜻.
시온이 손을 내밀자 그가 악수를 마주 잡았다.
이렇게 거래가 해결됐다.
시온은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오르도와 에슬린을 불렀다.
고렘의 예비 명령자로 오르도를 보냈었다.
그를 구스타로 부른 것은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 급의 고렘을 하나 더 계약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르도의 눈이 커졌다.
흥분이 넘쳐 흘렀지만, 그는 이 일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가능하다고 보나?”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십몇 년간 고렘을 연구해온 그가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안 했을 리는 없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극히 드물게 두 기의 고렘과 계약한 자가 가끔 있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관련 정보를 알고 있었다.
보통 고렘계열 마법사는 일인에 하나의 고렘을 조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애초에 그 숫자도 여러 이유로 적어 이런 주제로는 더욱 정보를 알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수도에서 계약을 맺지 못해 방랑하던 마법사답게 계약만 맺지 못했지 능력과 정보는 뛰어났다.
안타까운 일.
많은 영주가 고렘 마법사들을 천시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계열에 뛰어드는 마법사들이 돈이 되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거 잘됐군. 가장 큰 요인이 뭔가?”
오르도가 머리를 쥐어짜면서 시온에게 한마디 했다.
“재료입니다.”
“이거라면 가능한가?”
시온이 그의 앞에 보여준 것은 마법적 효과가 담겨 있는 용기, 그 안에 든 보라색의 진급 내단이었다.
“맙소사.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시온 백작님이 웜의 배를 갈랐을 때 진급 내단이 나왔다던데!”
“그래서?”
“해볼 만... 합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시도하려고 한다. 네 생각은?”
“후...아무리 생각해봐도 시온 백작님의 마법적 경지를 생각해봤을 때 지금 계약을 맺고 돌리시는 강철 고렘만 해도 혁명적인 수준입니다. 제가 여기에 관련해서 논문만 써도 세간에...”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파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