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304)

움드의 권리(1)

이번 고렘은 기존의 고렘보다 확실하게 달랐다.

‘전투에 능하다.’

기존의 강철 고렘과 달리 이 심연의 고렘은 복잡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단독유격, 공성전, 미끼, 주 전투.

여기에 마법까지 쓸 수 있다니.

‘무슨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마법까지 쓸 수 있다면 속임수 전투와 위험부담이 큰 곳에도 과감하게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은 쉽게 상상은 되지 않았다.

‘일단은 지금 생산 작업에 쓰려고 계약한 녀석이니까. 여기에 넣어야지.’

지금 영지에서 필요한 것은 전투가 아니라 생산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마법들이 어째 해괴하단 말이지.”

간단한 마법은 그렇다 치고 처음 보는 마법이 많았다.

촉수 계열 마법....은.

뭔가를 소환하는 건가?

그냥 하지 말자.

‘괜히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런 특이한 형태의 고렘인데다가 완전히 복속되어 노예가 되었고 기존 성능도 나쁘지 않은데 찝찝하다고 해서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녀석만 있다면 지금보다 배로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기존의 강철 고렘보다 이 심연의 고렘이 더 유용한 녀석이란 것은 말이다.

“한 번 촉수를 소환해봐라.”

촉수가 통제되지 않는 건 아니겠지.

공간이 작게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촉수 한 개가 나왔다.

“흠?”

놀랍게도 촉수도 의지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데?’

마치 이것이 주인의 명령을 위해, 또 주인을 받기 때문에 반가워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거냐?”

이렇게 되면은 이 고렘은 강철 고렘보다 의사를 나눌 수 있는 녀석이라고 봐야 했다.

사실 이런 수족이 필요했다. 사람말고 완전히 노예 이상의 단계로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시온이 말했다.

“그렇군. 앞으로 날 잘 모시겠다는 것이냐. 알았다.”

이렇게 되면 건설 작업이나 다른 노동력이 필요한 작업에서 기존의 강철 고렘 이상의 효용이 있다는 뜻이다.

말이 통하는 데다가 거리를 조절해서 촉수로 물리적인 어떤 효과를 가할 수 있다니.

‘내단을 제대로 활용한 것 같군.’

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ㆍㆍㆍ

‘금화가 더 필요하다.’

펄럭.

종이를 내려놓았다.

구스타를 확보하고 여러 대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니 돈을 벌었다 해도 금방금방 소모되었다.

영지를 얻는다는 것은 이 중세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은 단맛이 나는 만큼 그만큼의 부담을 동반한다.

미래의 수익을 위한다. 

또는 이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수행했던 일들을 원래대로 정비하는 것만 해도 큰 비용이 든다.

결국은 돈벌이가 더 필요했다.

‘내단은 써버렸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았다.

결과물을 모두 공개하면 세상이 놀랄 것이다.

그렇지만.

‘안 해야지. 이런 고렘을 분명히 탐을 낼 거니까.’

자연스럽게 소문 나는 정도로 충분했다.

과시할 필요는 없는 거다.

어디서 돈을 더 가져올까?

에슬린에게 물어볼지 어레이에게 물어볼지 코르도바에게 물어볼지 고민하다가 코르도바를 불렀다.

‘셋 다 다른 얘기를 할 거고. 지금 여력은 딱 한 명밖에는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백작님 부르셨습니까.”

시온은 솔직하게 코르도바에게 의견을 물었다.

시온의 허심탄회한 얘기에 코르도바의 눈이 커졌다.

‘백작님은 이제 시작이구나. 이 영지 하나로 끝날 사람이 아니구나. 기사 같으면서도 마법사 같은 구석이 있고 또 노련한 상인의 모습도 있다.’

“있습니다.”

“있다?”

“움드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권리를 되찾는 겁니다.”

“움드가 가지고 있는 권리?”

“움드도 예전엔 여러 무역권과 자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여러 곳에서 계속 핍박을 받아 다 뺏겨버려 마치 지금은 백작령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흠.”

시온은 코르도바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각 지역에는 고유한 권리가 부여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어 새겨진 것들이다.

어쨌든 이러한 원칙이 있다 해서 그것을 무조건 주장하는 건 아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자의 권리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이곳은 중세란 말이지.’

중세란 곳은 명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되돌려 줄 수 있는 법.

코르도바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만큼 당했던 것이 많았던 거다.

“해보시겠다면 보병대를 준비하겠습니다.”

“여유가 있나?”

이 말을 물어본 것은 시온이 보병대를 여러 작업에 투입하라고 명령을 내렸었기 때문이다.

피로가 심해지면 다음 일에 차질이 생기는 건 당연한 원리.

“있습니다. 시온 백작님의 고렘 덕분에 보병들은 여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단, 마법사들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마법사가 지쳤다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

시온은 턱을 괴고 생각을 했다.

‘하자.’

결국에 이 문제는 대담해야 한다는 거고, 맞설만한 힘이 있는데 원래 부여된 권리를 되찾지 않을 만한 이유는 없었다.

‘제국 측이라 살짝 부담되긴 하는데.’

시온은 코르도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보병대를 준비하고 투링가 백국에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투링가 백국은 제국 쪽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위험이 있었다.

즉 명분이 좋아야 했다.

제국 내에도 이렇게.

이해가 맞지 않으면 따로따로다.

코르도바의 목소리가 힘이 넘쳤다.

시온은 움드와 구스타를 잇는 가도를 찾아가서 진지하게 쳐다봤다.

오랫동안 구스타와 움드의 교류가 없었고 유비드 가문의 지속적인 약탈과 괴롭힘으로 관련 기반 시설이 다 파괴가 되어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괜찮은데?”

영지와 영지는 가도가 중요했다.

‘완성도가 높다.’

강철 고렘의 역할이 컸다.

무거운 것을 고렘이 나르고 세밀한 것은 사람이 집중적으로 하니 효율이 높았던 거다.

현대라면 모두 알고 있을 분업화는 이곳에서는 그다지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시온은 가도를 따라 움드로 가며 감상을 했고 어느덧 움드에 왔다.

ㆍㆍㆍ

“시온 백작이 우리에게 칼을 겨누다니!! 그래서 답변은 어떻게 왔지?”

“다들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홀랜드 공작에게 전서를 보내라! 황제께도 올리고! 시온 백작은 대체 무슨 짓거리인지! 신에게 벌을 받을 것이야!!”

하지만 그건 투링가 백작의 생각이었을 뿐 시온의 주장이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선전포고.

선전포고 자체는 명예로운 행동이었던 거다. 자기의 것을 되찾겠다는 시온의 주장이다.

‘감히 내 것을 건드리려 하다니.’

향과 관련된 무역은 비단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가치가 높았다.

투링가 백작은 계획은 있었다.

이대로 다른 곳에 알리려는 것.

홀랜드 공작과 황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시온은 선전 포고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

‘병사의 숫자도 밀리지 않지.’

기사도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넘쳐 흘렀다.

이제 영지가 두 개인 시온은...

“여기에 홀랜드 공작만 날 도와준다면, 오히려 비단 무역권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홀랜드 쪽에서 답변이 왔다.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홀랜드 공작도 시온의 움직임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황제에게서는 아무런 답변이 오지를 않았다.

암묵적인 허락이었다.

시온은 단숨에 보병과 함께 무역로로 들어왔다.

정기적으로 움직이는 향 무역로.

그 기준을 맞추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 기간을 맞추는 일인데 시온이 준비하는 시간과 딱 맞아 떨어졌던 거다.

“오고 있습니다. 백작님.”

코르도바가 보고를 받았는지 시온에게 곧바로 말했다.

미리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향을 운반하는 무역 상인들의 주위로는 투링가 백국의 보병과 기사들이 빽빽했다.

“정확하게 도착했군.”

그것은 칭찬이었다. 

코르도바의 준비 덕이었고 그만큼 이를 갈고 있었던 거다.

“영광입니다. 시온 백작님. 저는 이 순간만을 고대했습니다.”

목소리가 절절했기에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 있어 보였지만.

그건 나중에 알아봐도 될 일이었다. 지금은 저 앞에만 봐야 했다.

‘심연의 고렘과도 교감이 괜찮군.’

과연 고렘이 얼마나 잘 싸울까?

그런데 다른 깃발도 보이기 시작했다. 홀랜드 공작가였다. 많은 병력이 온 것은 아닌데 섞여 있었다.

펄럭.

가문의 반지 문장이 흩날렸다.

‘홀랜드까지 적으로 뒤에 둔다면.’

이러면 조금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보복성 정책들이 문제다.

이러한 선전 포고 공격은 더욱 정당하게 해야지 문제가 없기에 시온은 언덕에 대기하고 있는 상황.

“시온 니벨룽이다!!!”

적의 진형이 갖춰진다.

공격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움직임으로 바뀌는 것인데 당연히 기습의 묘미는 없어진다.

이런 식의 전투도 역시 포로를 위주로 잡아야 했다.

방어하는 자는 무식하게 죽이려고 하겠지만 공격하는 자는 아니다.

‘뺄까.’

피해가 예측보다 클 수도 있다.

그러나 시온은 공격을 결정하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공격하라는 것.

‘내가 선두만 잘 열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이 바뀌고 적마가 움직였다.

적마의 가속이 이어지고 시온이 가장 먼저 적의 한복판을 밀어붙이고 이어서 기사 몇 명이 따라서 돌격, 나머지는 보병 라인이 들어갔다.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다.

시온의 돌파도 대단했지만, 보병의 사기가 상대를 압도하는 수준.

그래서 전면을 밀어버린 것이다. 측면에서 나타난 고렘도 컸다.

“이게 대체 뭐야!!”

심연의 고렘이 시온의 명령을 받고 과감하게 들어왔다.

“고렘이 마법을???”

심연의 고렘이 촉수 마법을 쓰고 간단한 염력 마법도 겸했다. 

특히 촉수의 역할이 지대했다.

처음 보는 마법이라 그런지 상대의 사기가 바로 흔들린 것이다.

“뭐하는 건가! 정신 차려라! 이 자식들 밀리면 모두 교수형이다!!”

어차피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말이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았기에 밀려버린 보병이 가다듬었다.

그리고 시온을 향해 건장한 기사 하나가 뛰어왔다.

“노센즈다!!!”

노센즈는 투링가 백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였다. 투링가 백국은 노센즈보다 뛰어난 기사를 가지고 있질 않았다.

시온도 이자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본격적인 결투가 일어났다.

그렇게 그가 용맹함을 뽐내나 싶더니 세 번 네 번을 시온의 메이스를 받았을 때 그가 소리쳤다.

“도와줘!!! 토베이!!”

그는 토베이라는 기사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미 머리가 깨졌다.

주인을 잃은 말이 흥분해서 자기들 아군 사이로 뛰어들어가고 그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노센즈가 떨어졌다.

심연의 고렘 쪽도 심각했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진을 짰다.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촉수가 병사들의 목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원래 주력 인물들이 뭔가 성과가 있어야 사기를 받아내는데.

분위기는 가속화되기만 했다.

“못 이겨!! 절대 못 이겨!!!”

가장 먼저 붕괴가 된 곳은 심연의 고렘 쪽이었다.

그쪽의 병사들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미친 듯이 도망을 갔다.

이러니 라인을 만들고 있던 곳들이 버티지 못하고 계속 무너졌다.

시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운데로 돌진했다.

투링거 백작의 아들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어진 일이었다.

“살..살려줘!!”

“전원 항복해라. 아니면...”

“항복..항복합니다.”

징징거리는 데다가 눈동자가 돌아가고 있었기에 시온은 옆에 녀석을 통해 대신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진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서 일단은 상황 종료가 되었고 시온은 이들 대부분을 사로잡았다.

털썩, 털썩.

끝도 없이 무릎이 꿇리고 사망자는 한쪽으로 끌려나갔으며 안에 있는 향을 거래하는 상단의 인원들은 시온에게 맹세를 했다.

“시온 백작님에게 앞으로 거래할 것을 신에게 맹세합니다.”

상인들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일종의 연극이나 다름이 없지 이 전투의 승패가 무역권을 가진다.

시온이 압도적으로 이긴 데다가 시온의 명성과 실력이 너무나 높아 고민할 여지도 없이 선택한 거다.

이렇게 향 무역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면 무역권 두 개를 가지게 됐다.

비단보다야 값어치가 낮지만 두 개를 전부 소유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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