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영수
원래 너무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이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시온은 죄다 고용을 해서 쓰려고 했다.
그 정도였는데 이들이 시온에게 감동한 나머지 무료로 마나를 내주는 일에 합류하기 시작한 거였다.
덕분에 마나 확보는 넉넉했다.
그나저나 점점 상황이 독해져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끝도 없이 생존자들을 움드쪽으로 보냈다.
끝도 없이 수재민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현대인의 지식으로 간단한 추리를 해보자면.
높은 건물은 모두 투링가 백국의 투링가령에 있을 테니 그 외에 마을 단위나 투링가령에서도 귀족이 아닌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슬슬 결정해야 할 시기였다.
“영수잡이를 불러라.”
시온이 킬번에게 말하자 킬번이 영수잡이들을 데려왔다.
영수잡이들은 아직은 하급 영수들을 잡기만 해서 그런지 여전히 지친 기색이 없었다.
사실 이대로 이들을 굴리기만 해도 이자들의 몸값은 잘 돌려받고는 있었다.
하급 영수들의 사체를 병사가 수거 해서 모아다가 해체해서 팔기만 해도 돈이 꽤 됐다.
“부르셨습니까.”
토어스틴이 긴장된 얼굴이었다.
‘이대로 받기만 해도 되긴 해.’
이대로 수비적으로 움직일지 아니면 공격적으로 이덴을 사냥할지.
시온은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바로 이 안건에 대해서 말하자 영수잡이들과 바로 의견을 나눴다.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애초에 특수 영수들의 패턴은 거의 예측이 안 된다고 한다.
원래라면 이덴은 움드쪽으로 왔어야 했고 전투가 벌어져야 했다.
“들어가자.”
규모를 보아하니 쉽지 않았다.
내버려 두면 더 문제다.
차라리 들어가서 잡아버리는 것이 움드쪽의 피해를 완전히 줄일 수 있어 보였다.
어떻게 보자면 파놓은 함정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투링가 쪽에서 잡으면 움드에 피해가 덜 오게 된다.
“준비해라. 그리고 고렘과 기사들 마법사 몇만 대동해서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구조가 약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움드로 다들 들어온다고 해도 원인이 이쪽으로 오게 되면 다 죽을 수도 있다.
시온이 명령하자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도 그런 일은 없었다.
다들 오히려 시온의 생각이 맞는다고 봤고 용감하다고 수군거리고 응원을 할 정도였다.
여기는 이제 인력에 맡기고 고급 인원들을 데리고 사냥에 간다는 것.
투링가 백국의 안쪽.
시온은 그곳을 향해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온의 판단이 맞은 모양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옅어지고 거의 끊어져 버린 거였다.
뭐지?
시온은 바로 영수잡이들에게 물었다.
“이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덴 이라고 해서 항상 비를 뿌리는 건 아닙니다. 즉 이동하려고 하거나 휴식을 취하려는 것 같습니다.”
리더인 토어스틴이 말했다.
이들도 수군거릴 정도로 시기가 딱 잡혀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건 빠르게 찾은 다음에 바로 공격을 하는 것이 된다.
독특한 장비들이 영수잡이의 품속에서 나왔다.
다 이유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전부 추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장비들이다.
그것들이 효과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방향을 명확히 가리켰다.
그 뒤에 빠르게 그곳으로 움직였다. 아까 공격적으로 들어오기로 한 것이 이렇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내부나 물가에 있었다면 따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 펼쳐졌을 거다.
특수 영수인 이덴은 물 밖에 나와서 움직이고 있었다.
상당히 포악해 보였다.
재해를 만드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당한 마나가 요동을 쳤다.
저 녀석을 잡았다 하면 무조건 남는 게 있겠다 싶었다.
원래라면 군을 동원해야 했고 여러 가지 까다로운 지형이나 행동 때문에 보병을 많이 잃을 수 있어서 내버려두는 것이 이런 재해 영수다.
어쨌든 이제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졌다.
근처에 다른 몬스터도 데리고 다녔다.
바로 선택의 문제에 빠졌다.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빠르게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숨어서 더 상황을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결론은 빠르게 냈다.
아까랑 같은 논리였다.
내버려 두면 골치 아플 거라는.
“바로 들어간다!”
“예? 저 정도 크기라면 좀 더 지켜봐야...!”
토어스틴이 시온에게 바로 반박했다.
‘아무리 시온 경이라 해도. 이쪽은 내가 전문인데!’
“앗.. 백작님!”
“필립스 붙어라!”
“옛!”
시온이 바로 튀어 나가자 난리가 났다.
신이 났는지 적마가 포효를 하면서 달려갔다.
“아니 이것아. 아무리 신나도 그렇지.”
시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마가 미친 속도로 내달렸다.
이 정도이니 대형 재해 영수인 이덴이 시온의 등장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
필립스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쨌든 접근해야 하는 거리가 있었고 이덴이 근처에 있는 몬스터와 하급 영수에게 뭐라고 지시를 한 것 같았다.
그것들이 시온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보통 기사라면 여기서부터 힘들었겠지만 시온은 익숙했다.
애초에 전선에서도 이랬으니까.
오히려 물리적 몬스터들은 기사들보다 약한 편 인지라 그대로 하나씩 박살이 났다.
시온은 랜스 하나로 달려오는 트롤의 면상을 찍고 그대로 돌진해 버렸다.
퍽. 퍽. 퍽.
적마의 힘도 대단해서 그 속도가 멈추질 않았다.
순식간에 세 명의 트롤이 꼬챙이가 되어서 버둥거렸다.
이덴이 있는 곳에 덩치 좋은 트롤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습기가 많고 먹이도 많으니.
하지만 죽이기에는 손이 가는 편.
시온은 그대로 랜스를 전방으로 던져버렸다.
거대한 랜스가 앞에서 달려오는 더욱더 큰 트롤에 박혀서 날려버렸다.
공기가 찢기는 소리.
시온의 돌파는 멈추지 않았고 계속되고 있었다.
속도를 낮춰서 필립스에게서 다른 랜스를 하나 받았다. 필립스는 거의 전투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큰 랜스와 작은 랜스를 주기 위해서 따라붙은 형태다.
‘좀 더 큰 메이스가 필요하긴 해.’
시온은 이 같은 일이 불편했다.
슬슬 무기를 바꿔야 할 때였다.
시온이 그렇게 이제 형성되는 전선을 돌파하자 이덴이 드디어 시온을 향해 거대한 앞발을 내리찍었다.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아무래도 크기 차이가 있는 데다가 단순한 영수가 아니다.
바로 들어가는 건 무리다.
겨우 잠잠해지던 빗물이 다시 소나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시온이 들고 있는 랜스를 있는 힘껏 던져서 몸통에 맞췄다.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적중했다.
핏물이 확 튀었다.
‘어차피 마법은 안 통하니까. 이 녀석은 오로지 이런 식으로 공격해야지. 그나저나 빨리 들어오길 잘했구나.’
잠깐의 여유가 있어 뒤를 돌아봤다. 다른 자들은 길이 막혔다.
생각보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와 영수가 많았던 거다.
마치 호위병처럼 말이다.
잘못하면 발이 묶였다.
영수가 움드로 들어간다면?
그건 난리가 날 일이었다.
시온의 공격이 먹히자 소낙비가 조금 줄었다.
역시 빗물을 조절하는 것이 이 영수가 맞았다.
공세를 늦춰서도 안 된다.
영수잡이의 조언을 아까 들었을 때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그러니 잘못했다간 쌓이는 빗물에 육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앞발이 내리찍었다.
적마가 진흙 사이로 재빠르게 방향을 바꿔댔다.
일반 말이었다면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을 정도의 속도와 공격이었지만 같은 영수급이다.
흠?
물이 가득한 땅인지라 적마도 고를 땅을 잡고 있는 와중 물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있었다.
즉 거대 소환 마법을 펼치려는 것인데, 거기에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일반 기사였다면 이 수법에 발이 묶여서 이대로 이 녀석을 놓치는 각이다.
하지만 시온은 여기에 대처할 방법이 하나 있었다.
‘대소환마법을 한번 시켜보자.’
저번에 새롭게 계약한 심연의 고렘이 부리는 소환 마법.
뭔가 느낌이 좋질 않아서 시험도 안 해본 마법이었다.
하지만.
심연의 고렘이 여기에 도달하지 못해도 심연의 고렘이 만드는 소환은 공간을 넘을 수 있었다.
그렇게 허락을 했다.
시온도 아직 제대로 테스트해보지 않아서 뭐가 나올지 몰랐다.
어차피 이대로 발이 묶여서 놓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시온이 명령을 내리자 심연의 고렘이 트롤 몇을 떨쳐내고 곧바로 소환 마법에 들어갔다.
쏴-
빗물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때의 느낌이 확 퍼진다.
물이 모여서 엄청난 크기의 덩치가 되었을 때 시온의 소환 마법이 더 빠르게 벌어졌다.
주위에 공간이 쩍 생겼다.
옥토퍼스?
몸을 다 내놓지도 못했지만, 그 크기 짐작이 안 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촉수가 한 개가 아니었고 어쨌든 되게 거대했다.
개수에 여유가 있는지라 물의 덩치도 묶고 이어서 이덴도 덮쳤다.
“이런 미친.”
시온이 소리를 빽 질렀다.
좋은 내단을 써서 계약한 마법 고렘이었는데, 설마 이 정도의 성능인지는 전혀 몰랐다.
“시온 백작님! 이건 빼셔야 합니다!!!”
필립스가 이 난동속에서 죽음을 느꼈는지 바로 소리를 질렀다.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 녀석은 아군인지 적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녀석인 것 같았다. 어떻게 보자면 잠깐 도와주는 중립의 소환수 일지도.
“이건 잡았다! 하나씩 넘겨!”
시온은 바로 결정을 내리고 필립스에게 랜스를 하나씩 달라 했다.
시온이 일단 한 개를 받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 던졌다.
각인마법의 흐름을 타고 들어간 랜스 하나가 이덴의 목에 박혔다.
제대로 들어간 것이 분명한 게 고통스러워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아마도 한 번도 이런 공격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쿨럭, 쿨럭.
엄청난 핏물.
빗물과 함께 쏟아지는 이덴이 흘리는 핏물은 치명타를 넣었음을 보여줬다.
“뭐하나! 필립스! 넘겨!!!”
그 압도적인 광경에 필립스가 잠시 얼어붙어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주위에 대마법이 펼쳐졌다.
죽음을 느낀 이덴이 시온을 향해 대마법을 쓴 거였다. 두 개가 다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온갖 형태의 창살 같은 물의 창이 시온을 향해 번개처럼 내리쳐댔다.
시온은 적마와 함께 미친 듯이 방향을 틀어댔다.
롱기우스의 갑주가 미친 듯이 잔여 창을 막아댔다.
적마도 영리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차례 공격을 막아낸 시온은 랜스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하나씩 꽂히는 숫자가 쌓여갔다.
다행히도 시온이 너무나 존재감이 대단했기에 필립스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여덟 개를 모두 꽂아버리고 시온이 말에서 내려서 내달렸다.
그렇게 많은 공격을 받아내고도 이덴은 도망칠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시온이 소환물인 이계의 옥토퍼스의 다리가 쭉 뻗어 나갔다.
느릿느릿했지만.
그걸 피하지 못하고 휘엉켜서 아래에 처박혔다.
“됐다!!!!”
시온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메이스로 이덴의 두개골을 후려쳤다.
함몰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리더니 이덴의 거대한 몸이 멈췄다.
시온은 체급 차이를 생각하고 계속 내려쳤다.
그리고 비가 뚝 그쳤고 마나의 근원이 멈춰서 그런지 물의 덩치들도 물 덩어리로 변해서 퍼졌다.
‘오우 정말 엄청난 녀석이었군.’
시온은 쓰러트린 거대 영수를 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펼쳤던 지형을 보았다.
완전 개판이었다.
“난 좀 쉬어야겠다. 필립스 나를 보호해라. 응?”
필립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시온은 소환 마법을 끝냈다.
나한테 인사한 건가?
그건 그렇고 얻은 이덴의 몸뚱이는 상상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내단도 내단이고 이 정도 규모의 비늘과 뼈라면 다양한 장비도 만들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전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잡다한 몬스터도 많았기에 이것들은 영수잡이들과 데려온 기사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