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마법
대마법사가 준 희귀등급의 마법이라 이것은 더는 환영 정도가 아니다.
환영도 지나치게 되면 실제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법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환영미로진이 고작 해봐야 눈속임 정도라고 본다면 그루드가 준 이 등급의 환영 마법은 실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일 것이었다.
‘내가 이것을 배우고 앤드류의 비술을 일부 적용한다면 마나를 대용으로 쓸 수도 있겠군.’
다른 마법사라면 하기 어렵거나 반드시 특수 도구가 필요한 그런 짓을 시온은 할 수 있었다.
다른 자의 마나를 빌려다가 대량의 마법에 쓰는 것은 두 번째 비술의 연장선에 있었다.
다만 이것은 미끼에 불과하고 그루드가 그냥 이런 값비싼 것을 제공할 리가 없었다.
즉 따로 배워야 하는 부분도 많고 그루드의 집중적인 보조가 필요할 거였다.
이것은 계륵인 부분이 강하니 일단은 챙겨만 두었다.
돌아가면서 가장 급선무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앤드류의 다음 비술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정수에 대한 거였다.
사실 해야 할 일이 겹치는 상황이었다. 당장에 코논과 벤츨의 다툼이 도가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이자들을 중재하는 것보다는 비술을 알아내는 데에 시간을 쓰는 게 맞지. 설마 뭔 일 나겠나.’
충분히 무슨 일이 날 수도 있었다. 코논이 실력은 좋으나 생각보다 다혈질이었고 벤츨도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들이 이끄는 제자들도 다들 그런 부류를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있으니 한 번 제대로 붙으면 단순히 서로한테 핏대를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피를 볼지도 몰랐다.
경고는 해뒀다.
“잘 지내지 못하면 코논을 돌아가는 것이고 벤츨은 나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둘은 말만 그렇게 하고는 뒤에 가서는 한바탕 할 것 같더니 묘하게 조용했다.
그만큼 서로가 싫었던 것보다 시온의 곁에서 일을 맡아서 해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끝까지 가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시온은 새로 얻은 앤드류의 서적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별책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것은 처음의 비술과 같이 한 권으로 완성되는 완성품이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으니...
다른 두 비술의 완성 해야지 만이 세 번째 비술을 쓸 수 있었다.
‘의지를 가진 건물이라.’
그러니 두 마법에 능숙해야 했고 두 마법의 단점을 메꿀 방법을 알고 있어야 했다.
고렘류 마법의 상위계 인지라 당연히 주인을 인지하기에 한 번 얻어낸다면 소유 개념으로 자리까지 이동시킬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하다면 움드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쓸 수 있다는 뜻이지.’
이렇게 되면 거점을 바꿔 가면서 영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된다.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촛불을 껐다.
지나가면서 마법사에 대한 고용은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시온의 일행은 점점 불어났다.
“이렇게 재능 없는 마법사를 많이? 아무리 명예롭다고는 하나 너무 정이 많습니다.”
아직 고렘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는 벤츨이 시온에게 조언이랍시고 조언을 했다.
이제 곧 고렘의 노동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이들을 통해 퍼져나갈 것이다.
많은 자가, 아마도 마탑 대부분의 고위계 마법사들은 지금까지의 자기들이 추구해왔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에 빠질 것이었다.
그리고..
‘따라 하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천시하던 고렘 관련 기술에 대해서 갑자기 비용을 늘린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온이 앤드류의 비술을 공유하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누군가, 아마도 또 다른 천재가 나올 때까지는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천재는 앤드류가 했던 방식의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올 때쯤 시온은 따돌린 것뿐 아니라 더욱더 많은 것을 얻어냈을 거였다.
세 번째 비술을 독파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다른 자라면 몇 달이고 심하면 몇 년이고 매달렸을 것이다.
애초에 두 번째 비술의 원본과 별책을 다 가지고 있는 시온은 조금 의문이 들 때마다 그것을 참고해서 대입해보기만 하면 됐다.
그 요소가 그렇게 중요했다. 이것이 없다면 이것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백 년을 연구해도 답이 없다.
그러니 골동품 상점에 도저히 출처와 연력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게 처박혀 있던 거였다.
‘날씨가 흐리군.’
바람은 강했고 날씨는 먹구름이 슬슬 껴있었다.
시온은 천막 바깥에 있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에 걱정했던 두 인물이 이끄는 세력 문제는 실제로 존재했다.
최악의 상황을 꼽자면 크게 피바람이 불어서 둘 다 시온을 떠나는 거였다.
그나마 안 좋은 상황이라고 해도 마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괴짜 대장장이 코논이나 대마법사 그루드의 소개로 받아낸 고위계 마법사인 벤츨이 위약금을 물고 돌아가는 것.
물론 처음에 이 중 하나도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왕 환영계 고위 마법사인 안나 덕분에 이렇게 크게 먹은 인재들인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움드의 기반만 잘 닦아도 하나의 거대 세력으로 도약하는 게 이제 꿈으로 보이진 않았다.
‘허울뿐인 공작도 많지. 진짜 권력은 힘에서 나오는 법.’
현대인인 시온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직책이니 작위니 그건 기초적인 것만 있어도 된다.
진짜는 거기에서 기반이 되는 힘이었다.
중세에서는 힘이 충분하다면 백작이 왕조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금 홀랜드 공작은 시온에게 쩔쩔매는 상황이었다.
시온이 천막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필립스가 그리고 기사들이 거기를 둘러싸고 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분위기다.
오백 년의 역사를 카페 왕조와 함께한 성미셀 기사단의 반이 이렇게 시온을, 지금까지 한 줄의 이름도 올리지 못한 한미한 가문인 니벨룽 가문이라는 가문을 따를 가능성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 엄중한 모습을 두 세력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탑에서 따라온 두 인물을 주축으로 하는 마법사들이다.
이들의 성격은 물과 기름으로 실제로 마탑 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이들을 같이 보낸 것만으로도 그루드는 겨우 잡아놓은 관계인데 이들이 망쳐 버릴까 봐 걱정했을 정도였다.
‘저 빌어먹을 자식과 같이 가야 한다니. 집 태워 먹은 것만 아니었어도.’
‘이번 일은 위대한 마법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그런 직감이 든다.’
둘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시온에 대한 공포와 시온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경스럽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시온은 시간이 남았기에 헤어졌을 때 사과로 주겠다며 육 단계 마법서를 준 안나의 마법서를 펼쳤다.
블랙홀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물론 염동력 계열에서 드디어 고위계열의 초입으로 인정받는 마법서이니 슬슬 거창해지긴 했다.
다만 내용을 흘깃 보고는 시온은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석 자체도 난해해서 절대로 오 단계나 육 단계 마법사가 해석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루드가 시온에게 미끼를 던졌듯이 그녀 역시 다른 방식으로 미끼를 던진 것이다.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군. 실패하면 폐인이 된다.’
블랙홀은 대마법이었다.
육 단계이지만 대 마법으로 분류되고 미완성 본이었다.
즉 이것을 배우려면 두 가지를 다시 그녀에게 요청해야 했다. 하나는 이것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을 초청해야 했고 이것을 해석할 만한 자를 따로 구해야 했다.
게다가 장난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실패가 곧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꽤 무서운 대마법이었다.
“주석도 열심히 달아놨네. 하지만 틀린 부분도 있군.”
이건 그녀뿐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블랙홀 마법서를 다뤘던 마법사들이 달아놓은 주석들이었다.
즉 그녀가 일부러 이런 짓을 해놓은 것은 아니라는 뜻.
다만 시온이 이것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시온이 고대어에 대해서 네이티브급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들이 잘못했던 문제를 제거해보면 이 마법에 대한 위험도를 바로 낮출 수 있었다.
‘아마 안나가 나에게 이것을 준 것은 말 그대로 사과의 의미였겠지.’
진짜로 배우기는 모호한 물건이고 배우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면 또 다른 술책을 부릴 것이고...
‘지독한 여자잖아.’
하여튼 자기 나이와 얼굴을 숨기는 여자는 무서운 법이었다.
다만 그녀가 몰랐던 점은 시온이 고대어에 네이티브 수준이라는 것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기감이 있다는 것이다.
‘마나가 더럽게 많이 들긴 하는데, 실제로 써보면 대략 칠 단계의 대마법으로 분류가 되겠군.’
그 뒤로 움직이는 시간 동안 이 마법에 대해서 익혔고 배웠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오히려 정확도를 높였다. 마나가 많이 드는 부분은 해결할 순 없었다.
“시험하시겠단 말입니까? 모두 정지.”
시온은 마법을 배우고 시험적으로 써보기 위해서 일행을 멈췄다. 어느새 백 단위로 불어난 일행의 대부분은 마법사.
시온이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기에 다들 관심이 높았다.
“블랙홀? 그년이 또 술수를 썼구나. 그 마법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워낙 기이한 것에 지식이 많은 코논은 단번에 이 마법으로 잘못된 자들을 줄줄이 읊었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봤다. 한번 시험을 해보지.”
반은 진실이었으나 반은 아니다. 시온이 여정에서 대부분 보냈던 시간은 비술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것.
그러나 이들은 시온이 이렇게 말하자 감탄을 해댔다. 다들 마법사인지라 시온의 이런 자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오 단계의 마법사는 이 마법을 쓰기엔 마나가 부족해 결국 되돌려 맞을 수밖엔 없지만 시온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특이 체질로 인해 다른 마법사보다 단순 수치와 밀도 순도 모든 요소를 압도한다는 점이다.
이것 때문에 고위계 마법사인 안나가 시온을 처음 봤을 때 놀라기도 했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수백 명의 관심 속에서 마법을 시험해 봐야 했다.
‘무난히 될 것 같기는 한데. 과연 생각처럼 잘 되려나.’
첫 대마법으로 분류되는 마법이기에 시온도 이론적인 것과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것의 차이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마나가 진짜로 많이 드네.’
본격적인 시연에 들어가자 보조 마법사 없이 하니까 마나가 한 번에 훅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바지만 다시금 신중히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도중 주변 전체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음?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군.’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결과적으로 마법이 효력을 발생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끝에 있었다.
“됐나???”
하나하나 쟀던 대로 마법을 안배하고 나서 가운데에서 거대한 홀 같은 것이 생기자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약식으로 펼쳤는데도 대마법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기존에 쓰던 무력 폭풍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와 크기였다.
이어지는 건....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었다. 마법의 주인인 시온 하나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와 물체가 그곳으로 강력하게 끌려 들어갔다.
얼마나 그 효과가 강한지 끝나고 나서 부상자가 속출할 정도였다. 시온이 중간에 강제로 중지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가운데에서 합체될 뻔했다.
“........”
모두가 방금 벌어진 일에 대해서 가지각색의 혼돈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온을 경외하는 자부터. 이 위협적인 마법에 대해 다시 당하지 않으려고 거리를 크게 벌리는 마법사들,
시온이 대마법사와 남모르는 거래를 했을 것이라는 자들, 아예 마법의 충격으로 거품을 물고 기절한 자도 있었다.
‘대마법 맞네. 그런데 육 단계의 마법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절대로 육 단계의 마법이 아니었다. 위험한 부분을 고려해도 최소 팔 단계 대마법으로 분류해도 충분할 만한 위력이었다.
‘내가 열쇠를 풀어버린 모양이로군.’
이것으로,
수작을 부리려던 안나가 알면 땅을 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