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날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어떻게 보자면 시온이 한 것은 그에게 되갚아준 것에 불과했다.
시온은 그저 자기 앞에 있는 문제를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결했을 뿐이다.
다만 재해 영수의 내단을 노렸다는 것치고는 샤를이 잃어버린 것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카페 왕조의 체면이나 다름이 없는 성미셀기사단의 붕괴, 그리고 부단장이 단숨에 사망함으로써 결투의 황제라는 칭호가 넘어가 버렸다.
연속 결투는 개개인의 기사단원이 제국의 기사단원을 압도한다는 전통을 아래부터 부숴버렸다.
그 자랑거리들마저 시온에게 투항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승리왕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업적은 탄탄대로였다.
무능력한 아버지가 날려버린 영토를 거의 다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로 늘려버렸다.
그 정도로 그는 나이와 실력 노력 출신 야망까지 한 가지도 빠지는 게 없는 인물이었다.
“여기 이 약을 드시면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으실 겁니다...”
붉은 머리의 미모에 마법사가 그에게 공손히 약이 담긴 찻잔을 건넸다.
퍽.
그가 날려버리자 비싼 잔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깨졌다.
“앗...”
“꺼져라. 창녀야.”
‘이런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씨발.’
그의 신체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샤를은 왕조의 권력을 잡기 위해 카페 왕조의 전설로 남을 셤브 전투를 치렀다.
세계의 관심을 받을 정도의 대반란이었던 당시 그 사건 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열여섯의 나이에 감금되어 있던 관리를 살해하고 정규군을 집결해 대반란을 진압했다.
그 전원을 잔혹하게 복수한 것으로 명성을 크게 얻고 그 이후엔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왕으로 등극 여기에 관련된 켈드 왕조를 무너뜨리며 서쪽으로 정복전을 연거푸 일으킨 시온과 비슷한 타입의 기사 왕이었다.
샤를은 그때 그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었다.
규모로 보자면 나라의 반 이상이 자신의 목을 쥐어오던 그때의 셤브 전투와는 비교하기가 어려운 작은 일이었다.
시온은 고작 해봐야 백작이었고, 시온이 차지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교하자면 그렇게 대단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은 그때보다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전력으로 그를 치기에는 적이 많은 데다가 명분도 전력으로 그를 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는 분명히 제국의 황실과 유력 가문에게서 지원을 받는 데다가...”
“나를 바보로 아는가? 뭘 말하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할 만큼의 병력을 보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붉은 머리 여자가 공손히 나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 이후로 처음으로 이 반응이네. 시온 니벨룽. 대체 어떤 자일까. 성미셀 기사단의 충성심과 실력은 내가 보증해. 그들을 실력으로 압도해 자발적으로 검을 바꾸게 할 정도라니....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데.’
미성년자 때부터 왕으로 올라 십오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복전과 전쟁을 치른 탓에 카페 왕조는 현재 적이 많았다.
그러니 아무리 열이 받아도 전력으로 시온에게 병력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불문율을 깨게 된다면 명분의 불충분함을 이유로 라이벌 왕조인 라레테저닛이나 제국 자체에서 시온을 중심으로 역으로 결집해 들어올 일이니 이 일은 분배와 은밀함이 중요했다.
ㆍㆍㆍ
대마법사에 필적할 만한 방대한 마법을 얻은 시온은 마법사의 규칙을 깨고 얻어낸 위험한 마나였다.
한두 개만 중복되어도 이상한 징조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시온도 자신이 얻어 내고야 만 신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런 일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결과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것은 단지 하나의 추측이다.
‘어쨌든 일단 내가 마나가 부족해서 비술에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오 단계와 육 단계의 차이는 천지 차이.
이제는 다중계약을 해도 끄떡없을 정도였다.
고렘을 운영하는 것은 아무리 다른 마법사의 마나를 대용한다 해도 근본적인 연결 고리가 시온과 계약이 되어 있기에 시온의 마나가 중요했다.
이제는 두 기 이상, 아니 열 기 정도를 계약할 수 있었다.
시온이 벌이고 있는 일이 일인지라 한번 자금을 대량으로 빌렸던 드래곤 상회의 협회장 버만이 직접 이곳을, 아만다까지 해서 움드에 도착했다.
단순히 시온이 요구한 바를 충당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이들이 굳이 직접 온 것은 눈으로 이 변화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시온이 범람하는 강물을 막아내던 것까지 보고 수도로 돌아갔던 아만다는 전반적으로 시작되는 이 변화에 이제 어느 정도 직감한 것을 봤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연신 침을 삼켰다.
어쩌면 시온에게 백작위를 준 것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도 이 남자가 하는 행동과 결과 그리고 나날이 바뀌는 성장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블랙파이어 가문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그 어떤 가문보다도 깊었다.
그래서 사촌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다른 가문보다도 많았다. 그 정도로 다른 자를, 다른 가문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여서 살아생전 어떤 잘나가는 자를 봐도 가슴이 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 경험을 깨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시온이었다.
이번의 일도 그랬다.
드래곤 상회의 모든 초점과 정보원은 시온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버만의 협회장의 임기는 시온의 압도적인 성공의 연속으로 강제적으로 연장됐다.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
그 원칙에 따라 버만의 권력이 강해졌다.
그런 그가 앞으로 정할 정책의 방향성이야 뻔했다.
시온과의 동맹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정한다.
오히려 이번에 직접 온 것은 시온에게 비비는 새로운 무역 귀족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어서 와라. 버만 오랜만이군.”
“시온 백작님이 보내는 연전연승에 대해서 저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만다의 눈이 고양이처럼 커졌다.
시온을 보면서 보고 싶다는 욕구를 채운 것은 채운 것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온이 지금 연성한 마나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 표현이 적당했다. 숨이 막힌다.
대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게 여러 가지 속성의 마나가 공존해 있는 시온의 상태는 그야말로 위압감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만다님. 이렇게 또 뵙는군요. 그때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만다는 진심으로 시온이 만들어 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라고 마법을 배우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블랙파이어 가문은 나름 마법에도 친숙한 가문이었고 의무적으로 이 단계까지는 도달해야 했다.
다른 자들보다 특별한 핏줄의 혜택 덕에 별다른 노력이 없다고 해도 가능한 단계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시온의 마나가 얼마나 이상한 형태이고 만난 시간을 생각하면 얼마나 이상한 결과인지.
불가능해. 진짜로 불가능해.
그녀는 갖은 머릿속의 지식과 경험을 조합해봐도 역사적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얘기를 한 줄이라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외적 인간.
천재, 아니 그 이상의...
영지민들이 그를 부르는 단어는 신의 사자였다.
호기심이 많은 그녀는 일일이 영지민들에게 직접 물어봐서 그 이야기의 답변을 들었다.
‘그때라면 단순히 치기 어린 하층민들다운 생각이라고 봤겠지만, 이건...’
놀라운 건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가 봤을 때 아직 끝을 본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아. 너는....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하하. 이번 일은 저도 위험했습니다. 하마터면 마나의 태반을 날려 버릴 뻔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했거든요.”
정적.
당연히 비밀이라는 것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알기 위해선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하여튼 버만. 내가 부탁한 고렘은 다 가져왔나?”
“예. 사실 구매하는 데에는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시온 백작님이 고렘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만...수도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지라.”
“잘됐군.”
시온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렘을 생산력이 필요한 일이 전면적으로 투입할 때는 이것을 다른 영주들에게 노출될 것을 각오하고 한 것인데 아직도 이 가치를 모른다니...
덕분에 싸게 좋은 걸 독점하듯이 구매했다.
원래 처음에 시온이 질 좋은 고렘에 대한 다량의 주문을 버만에게 넣었을 때 폭등했을 고렘의 기체 값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중세다운 일이지.’
좀 더 큰 변화가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모른다고 봐야 했다.
유일하게 시온의 고렘을 직접 상대했던 유비드 가문이 고렘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를 초청한다는 정보는 들었다.
그래 봐야 앤드류의 비술이 없다면 헛수고다.
“바로 가보지.”
ㆍㆍㆍ
이번에 얻은 대량의 마나와 단계로 시온이 생각하고 있는 역시나 비슷한 원리였다.
대량의 정수를 이용해 대량의 마나를 얻은 것처럼 단번에 다중계약에 성공하는 것이다.
원래라면 일단 기체만 확보하고 하나씩 몇 달에 걸쳐서 하려고 했는데, 지금 와서는 솔직히 고민이 되고 있었다.
모든 마법과 계약이 가지는 속성에 따르자면 잘못된 결과는 마찬가지로 모두 증발한다.
움드 자체가 이제 거인처럼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금이 아니었다.
자금은 빌릴 수 있는 드래곤 상회가 있었다.
냉정한 시각으로 봤을 때 그 자금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를 빨리 앞당길수록 더 빠른 수익을 낼 수 있는 법이었다.
즉 시온에게 필요한 건 지금 남아도는 마법사들을 전부 아슬아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고렘의 증편이었다.
버만에게 이번 방문에서 수도에서 제작되는 기체를 전부 가져오라고 한 것은 이것이 폭등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의해서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량의 마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나머지 새로운 길이 열린 상황이다.
‘하지만 두 번이나 행운이 나에게 돌까?’
솔직히 말하자면 마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에 그루드에게서 받은 마석에 푸른 액이 끼얹어져 거인의 눈이라는 특별한 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고민이 깊어지는 와중에 버만이 준비한 열다섯 기의 고렘에 도착했다.
시온이 가지고 있는 강철 고렘, 강화되고 나서 검은빛을 띠게 된 흑의 고렘.
그것의 전 상태인 강철 고렘들이었다. 당시엔 하나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시온이 가진 재산의 반을 다 털어야 할 수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아. 제법 능력을 보여줬구나. 버만.”
예상했던 것보다 질이 다 좋았다.
블랙파이어 가문에게서 받았던 그 정도의 질은 아니었지만, 수도에서도 빠듯하게 생산해 낼 수 있을 만한 급은 됐다.
‘체구도 좀 작고, 여러 가지 기존 강철 고렘 보다는 떨어지긴 하지만 역시 숫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군.’
당연히 이 열다섯 대를 구매하는 비용은 시온도 신경을 써야 할 정도다.
다만 버만이 이렇게 늦게 온 이유가 있었으니 시온이 요청한 고렘에 대한 대금은 추후 치르겠다는 제안 때문이었다.
저번보다 시온이 금액을 빌려 가는 강도가 더 강해진 것.
그래서 기존에 있던 드래곤 상회의 정책을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에 이런 요구를 한다고 해서 망설일 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일을 묵묵히 수행해서 다른 귀족상인들, 특히 비단 무역을 쥐고 있는 로마노 가문을 경쟁에서 따돌리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반드시 이것으로 더 커질 사람이다.’
버만은 자신의 눈을 더 굳게 믿었다.
“이 많은 고렘을 다 어쩌려고..?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많은 고렘을 전부 계약한다는 것은...”
버만이야 마법적 지식이 딸리니 시온이 하려는 바에 대해서 정확히 가늠해 볼 순 없었지만 아만다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