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304)

다중고렘계약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엔 없었다.

아니 그녀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마법사도 시온이 하려는 짓을 막을 거였다.

에슬린은 언제나 시온에게 경고하는 자였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시온은 언제나 이 젊은 천재의 예측을 깼다.

“아만다님?”

에슬린이 뒤늦게 합류했다.

얼굴의 안색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어차피 시온이 하려는 일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라 상관은 없었다.

“어머, 움드를 위해 희생하시나 보네요. 저번보다 상당히 수척해지셨는데요.”

물론 움드를 위해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전부 에슬린의 능력 안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마탑에서 여기보다 더 복잡한 사안을 다룬 적이 많았던 에슬린이 움드에서 맡게 된 시온이 준 임무에 대해서 그렇게 버거워할 리는 없었다.

다만 그를 수척하게 하는 것은 시온에 대한 강한 열의 때문이었다. 

언제나 천재라는 칭호는 그의 차지였다.

그런 그는 언젠가 스승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뛰는 것 위에 나는 것이 있다고.

그런데 스승이 해주지 않은 한 단어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정도라면 쫓아갈 수야 있지...’

시온이 독단적으로 정수 백 개를 처리해버린 실험은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평생 쫓아가려고 해도 발끝이나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느닷없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이후론 그는 밥도 잘 못 먹고 있었다.

시온에 대한 경외감은 짙어졌지만, 그만큼 천재 위의 천재를 눈으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거였다.

“뭐, 그렇습니다. 움드의 변화는 고무적이지요. 이곳의 열기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울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이 나쁜 쪽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마법사다운 호기심이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과연 이 자는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돕고 싶다는 그런 욕망도 컸다.

많은 마법사가 차례차례 들어왔다.

어느새 엄숙해진 분위기와 함께 주위는 마법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두가 침만 꼴깍 삼키고 있을 만큼 시온이 하려는 바와 행동과 말에 온 감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온이 가진 마나는 이제 눈으로 보일 지경. 

같은 마법사들은 시온을 봤을 때 대마법사를 근처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대해와 같은 후광을 보게 된다.

아만다는 문 듯 시온이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이 궁금해졌다.

이 모두의 진심 어린 존경을 받고 있을 시온의 감정이 말이다...

정작 시온은 계속해서 가능성을 추측해 보는 상황이었다.

그거 외에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하나씩 두 달씩 계획을 잡아 늘여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급성장한 마나와 욕심이 문제였다.

다만 가능성이 없는 욕심은 아니라는 것.

‘열다섯 기를 돌리게 되면 현대의 비밀 하나를 공유해도 되긴 한다.’

시온은 이 선점 효과를 보고 굴릴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열다섯 기에 두 기의 다목적 고렘을 쓸 수만 있다면 여기에서 나오는 거력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인력에 몇 배인지 계산도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앤드류의 비술에 특징상 누군가 시온의 고렘을 강탈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직접 계약과 속박은 시온이 오롯이 가져간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이것이 공유된다면 세상이 급변하게 될 철근에 대한 것을... 

공유하게 된다면 움드의 도시 건축 계획을 다시 한 번 수정해야 할 것이다.

운이 좋게도 마탑에서 가장 유능한 건축 관련 고위계 마법사가 둘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망설인다는 것도 시온으로서는 최선이었다.

결국, 욕심이 이겼다.

시온은 다중 계약을 한 번에 해버리겠다는 다시금 큰 계획안을 잡았다.

이 얘기를 들은 수많은 마법사는 전부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대마법사에 준하는 마나를 가진 시온이라고 해도 이것이 가능할지는, 유일하게 한 명만이 이 일에 대해서 긍정했다.

에슬린이었다.

‘이렇게 나를 또 따돌리겠지. 분명히 그냥 막연히 말할 인간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노림수가 있고 계획이 있고 가정이 있는 인간이야.’

본심을 들으면 꽤 억울할 만한 오해이긴 하지만 시온은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마음을 먹었다. 모두 나를 보조해라. 다중 계약에 들어간다.”

술렁술렁.

사실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그렇기에 시온은 자신하는 바가 있었다. 다만 항상 그렇듯이 큰 것을 노리면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

이번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는 아예 배제할 순 없었다.

작업이 하나씩 준비가 되고 특유의 마법진이 열다섯 개가 준비된다.

시온이 하나씩 그려나갔고 마지막엔 이것을 통합할 수 있을 만한 대원형 마법진을 만들었다.

누구나 이 규모를 그릴 수야 있지만, 이것을 돌릴 수 있는 자는 한정적이기 마련이다.

“나도 도울게.”

팔짱을 끼고 있던 아만다도 이 흥분에 동조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보조 마법사들 무리에 들어갔다.

‘자,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긴다.’

고렘을 중복해서 계약한다는 것은 더 좋은 계약물이 있어야 했다.

시온은 이것을 성사시킬 만한 물건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재해 영수의 내단은 이 다중계약의 확률을 분명히 대폭 늘려줄 것이다.

다만 여전히 시온은 이것을 아껴두고 싶었다. 세 번째 비술에 이것이 필요하다면 여기에 쓰고 싶었다.

아무래도 고렘 계약에 쓰기에는 재해 영수의 내단은 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은 다시 이어졌지만 이번에 주어진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원래 준비해둔 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저번처럼 대량으로 얻어낸 정수, 버만이 가져온 정수와 각종 재료를 더해 계약물로 쓰려는 것이다.

“진행한다.”

시온이 본격적으로 마나를 쓰자 이들이 만든 마나와 비등할 정도의 마나가 한 개인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

시온도 어떻게 보자면 그때 얻은 마나가 많다는 것만 알뿐 이렇게 눈으로 피부로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많긴 많다. 다른 자들이 놀랄만하긴 하구나.’

시온 자신도 변화에 혀를 두를 정도.

그런 상황에서 첫 번째 흐름이 닥쳤다. 시작부터 최악이었다. 계약 전체가 거부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음??!”

“앗!!”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은 딱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

그냥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시온은 그게 가능했기에 곧 거부 반응이 났던 고렘들이 다시 원래대로 잠식되어 갔다.

벌써 마나의 소모에 놀라서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욕심엔 대가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연동 반응은 완벽했다.

하나씩 파란 불이 들어오면서 마법진을 태양처럼 가득 채워나갔다.

꼭 염려했던 대로, 걱정했던 대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십육 미터의 트롤로 변해 시온을 공격했던 그때의 변수와는 달리 예상했던 대로의 무난함.

그런 흐름이 이어진 것이다.

마지막 열다섯 번째의 강철 고렘이 파란 불빛에 휩싸이고 시온은 계약물에 집중과 수인을 옮겼다.

수백 개의 다양한 정수와 여러 가지의 가치 있는 재료들이 둥둥 떠오르더니 여러 개씩 분배가 되어 각 고렘에게로 날아갔다.

시온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을 잘 나눠서 줘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기감과 관련된 능력이 필요했다.

열다섯 기의 고렘에게 나오는 일은 시온에게도 물을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그 중간쯤 되는 난이도.

그러니 다른 마법사들은 그런 시온이 하는 분류를 마치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착각해 입을 벌리고 바라봤다.

마치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작업을 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어려운 작업은 초반에 있었다.

어쨌든 그 일마저도 끝이 나고 그렇게 시온은 열다섯 기의 강철 고렘을 모두 계약을 해냈다.

“후우.”

아무리 시온이라고 해도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열다섯 기의 강철 고렘을 한 번에 계약했다는 것은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공했다. 예상이 맞았다. 저번만큼 까다로운 일은 없었다.’

너무 겁을 먹어도, 잘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었다. 이번엔 짜놓은 대로 일이 무난하게 다 풀려 버렸다.

시온이 명령을 내리자 열다섯 기의 고렘이 모두 알았다는 듯이 새로운 주인을 알아보고 시온의 앞에 정렬했다.

그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오르도님!!”

평생 고렘 계열을 연구했던 오르도는 이 광경을 보고 다리가 풀려 그냥 자빠져 버릴 정도였다.

시온은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하나씩 일일이 여러 동작을 시켜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잘 됐는지 잘되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는 작업.

그 신중한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여러 파문을 일으켰다.

“잘 됐군. 하하하.”

마지막 녀석까지 확인 절차를 밟자 시온도 텅 비어버린 마나에 힘이 빠졌지만, 솟아오르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열다섯 기의 고렘 계약에 성공하다니, 이제 가용할 수 있는 고렘은 열일곱 기였다.

게다가 재해 영수의 내단 까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세 번째 비술까지 들어가게 되면 움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바뀌게 될지도 몰랐다.

ㆍㆍㆍ

안 그래도 두 기의 고렘이 퍼붓는 거력이 대단한 수준인데, 여기에 열다섯 기가 추가된다니.

소식을 들은 벤츨과 코논은 턱이 빠지려고 했다.

특히 코논은 당장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망치를 집어 던지고 어린애처럼 뛰어갔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시온이 코논을 보게 된 것은 계약이 성공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대...대마법사! 시온 백작님! 제가 들은 말이 사실입니까!!! 열다섯 기의 고렘 계약을 해내셨다는 것이?!”

코논은 얼마나 흥분했는지 발음도 샐 정도였다. 시온은 점점 이 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들고 언행도 거칠고 가끔 이성적이지 못한 괴상한 심미학이 있긴 했지만, 

그가 이런 결과에 가지는 것과 이자가 항상 주장하는 인류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대와 헌신은 진짜였다.

어떠한 이득보다도 죽기 전에 최대한 시온이 만들어 낸 것으로 더 많고 거대한 것을 기여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기만으로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시온에 대한 찬양을 했고.

시온을 따라오기 위해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저택에 불을 지른 것이 평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라며 자화자찬하던 그가 열다섯 기를 연성했다는 소식은 그의 피를 끓다 못해 증발시킬 정도였다.

“사실이다.”

“그..그렇다면...”

“대략 고렘에 대한 프레임을 오르도가 짜야 하겠지만, 작업에 투입되는 것은 이틀 지나고 나서일 거다.”

“그렇게나 빨리 가능한 겁니까?”

그렇게 속사포처럼 시온에게 말을 쏟아내던 코논의 뒤로 벤츨도 참지 못하고 뛰어왔다.

그의 차갑고 침착한 성격상 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실제로 그와 오랫동안 일했던 제자와 조수들도 작업 외로 그가 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경이로운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다.”

그도 부들거릴 만한 일이었다. 

그는 시온을 찬양하지는 않았지만 고렘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고는 얼마 전에 사람을 보내 고렘과 관련된 기초 서적을 모두 가져오라고 한 상황이었다.

고위계 마법사라고 해서 모두 능숙한 것은 아니니, 고렘 계열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기초적인 작업부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것이라고 판단하고 학습을 시작한 터였다.

“믿..믿기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니..”

시온은 그의 말을 잘랐다.

“너희 둘에게 해둘 말이 있다. 나는 너희가 만들 건축물에 혁신을 줄 방법 하나를 알고 있다. 다만 나에 대한 서약과 비밀을 지킬 자에게만 알려줄 생각이다.”

코논이야 당연히 시온이 하라는 대로 서약을 하겠지만 마탑에 있는 벤츨 같은 경우는 좀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최악의 경우엔 그냥 벤츨의 직위를 강등시키고 코논을 책임자로 완전히 올릴 계획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