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계 마법사들의 전향
코논이나 벤츨이나 마탑에서 데려온 인재들이고 고위계 마법사인 만큼 단순한 인재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마탑의 건축 및 인프라에 대해서 해박하고 이곳을 기준으로 가장 솜씨가 좋은 편에 속했다.
시온으로서도 딱히 이들 중 하나를 돌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둘이 성격적인 문제가 심하긴 하지만 둘 다 서로를 보완해주는 부분이 있다는 거지.’
다만 여기에 대해서 시온도 모르는 것은 시온이 아니었다면 이 둘이 이렇게 서로의 성격을 죽이고 있을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하여튼 지금 낼 수 있는 거력은 거의 다섯 배까지는 끌어 올렸다.
나눠서 이것저것 만들게 한다면 더욱 좋은 것들이 만들어지거나 균형을 잡아줄 것 같았다.
이러한 속마음을 숨기곤 시온은 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말씀대로라면 혁신을 줄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알려주신다고.”
“그렇지. 나는 그걸 알고 있다.”
다른 자가 말했다면 아무리 황제라고 하더라도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시온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까지 시온이 했던 일과 그 결과를 생각해보자면 저 말은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할 몸. 나는 시온 백작님과 니벨룽 가문에게 남은 인생을 걸겠습니다.”
예상대로 코논의 답변은 별다른 문제 없이 바로 튀어나왔다.
코논이 바라는 것은 남은 인생에 채워줄 거대한 흥미, 그것을 가장 잘 채워줄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자네는?”
‘과연 벤츨이 한 번에 받아드릴까.’
고위계 마법사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만큼 비슷한 압박을 지금 받고는 것이었다.
벤츨은 어떻게 보자면 지금까지 마탑에서 그루드가 이끄는 계파에 속해 많은 혜택을 독점하면서 성장해 온 사람 중 유능했다.
할 일도 많을 텐데 가타부타 없이 그루드의 부탁이 있자 바로 시온에게 전력으로 협력할 정도로 본래의 그에 관계는 끈끈할 정도.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열중할 정도로 시온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먼저 듣고 싶었다.
이 세기가 열리게 될 순간에 첫발을 내딛는 자로서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획을 그을지도 모르는 이 거대한 작업에 기회를 받고자 하는 것은 마탑에서 받았던 은혜를 흔들 정도였다.
정적.
그의 대답이 코논처럼 쉽게 나오지 않자 시온은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만 하면 그가 넘어올 수도 있었고 아니면 질질 끌어야 할 수도 있었다.
‘다뤄야 할 사람이니 장기적인 것을 생각해 보면...’
협박적인 부분도 떠올려봤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먼저 코논에게 알려주고 그에게 독점권을 주는 식으로 간다면...’
그랬다. 분명히 시온은 이런 식의 방법이 코논에게 지기 싫어하는 그의 감정을 자극할 것 같았다.
이런 중요한 기회를 자신의 평생 라이벌에게 다 던져준다는 그런 욕구를 과연 벤츨이 참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깊게 생각해본 것은 아니긴 했지만 시온은 결정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시간을 더 끌면 불리해질 거라는 생각에 단숨에 밀어붙이기로.
“그러면 코논에게 먼저 알려주겠다. 따로 맹세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두말할 사람은 아니니까.”
이 말도 노림수가 있었고 코논이 감동을 했다.
하도 불같은 면이 있어서 그렇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노림수 자체는 벤츨에게 들어갈 영향에 관한 것이고...
“과연 세기의 마법사다운 안목이십니다. 저를 단번에 알아보시다니.”
은근히 단순한 성격답게 코논이 기분이 좋아져서 시온에게 그렇게 말했다.
“세기의 마법사라니?”
“모르셨습니까? 다들 그렇게 말하고 다닙니다.”
마법사로서 별칭이 붙으려면 그만한 업적이 있어야 하는데 시온에게 붙여진 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온도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보통 명성을 쌓기 위해 음유시인들을 고용하고 돈을 쥐여주거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는 말을 강요하고는 하는데.
시온의 별칭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그런 유형의 것이었다.
진정한 별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군....”
솔직히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시온은 코논을 가까이 불러 귓가에다가 철근에 대한 생각을 알려줬다.
설마 진짜로 이렇게 쉽게 알려줄까 하다가도 시온이 이렇게 알려주자 코논의 속은 다시 시온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이 생기고 있었다.
고집스러운 괴짜이자 평생 반기 드는 것을 취미로 삼던 그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돕고 싶었던 건 처음으로 있던 일이다.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지고 코논에게 현대의 빌딩에 대한 중요 원리 중 하나인 철근에 대한 것을 설명해나가자 그의 얼굴은 충격과 흥분으로 붉게 물들였다.
시온도 사실 코논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고, 이게 전부입니까? 라는 답변을 들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면 코논만 따로 직접 작게나마 시연을 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장장이 기술에 미쳐있던 것만큼 이런 건축 기술에도 미쳐있던 코논은 시온이 말하는 바를 단번에 깨우치고는 전율해 부르르 떨었다.
“신...신께서 보낸 것이 분명하다. 시온 백작님. 관련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거의 없지.”
“그러면 대체 이 같은 생각은 어떻게 얻으신 것인지...”
둘러댈 대답을 찾아내다가 대충 답변을 했다.
“어렸을 때 사냥하다가 우연히 떠오른 것이다.”
“사냥! 그러고 보니 사냥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셨던 것으로! 과연 이것이 해결에 대한 열쇠였던가!”
이상한 쪽으로 빠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코논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이것이 효과를 보였다.
코논은 연이어서 비슷하게 시온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고 시온은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답변을 대충 해댔다.
그것을 보고 있던 벤츨의 얼굴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색이 되어갔다.
벌써 격차가 나고 있다는 뜻이었고, 깨달음에 밀렸다는 뜻.
코논이 연신 신을 부르짖을 정도란 뜻이고 이것은 그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시온은 그런 벤츨의 모습을 보다가 결정타를 날렸다.
“벤츨 네가 확답을 주지 않으면 나는 너와 너의 중요 제자를 돌려보낼 계획이다. 아무래도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벤츨은 움드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데 설마 그러겠느냐고 배짱을 부렸겠지만, 지금은 턱도 없었다.
“저도 서약과 서원 맹세를 다 치르겠습니다.”
“?!!”
코논도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서약과 서원 맹세를 두 개 다 한다는 것은 돌아갈 길을 막아버리겠다는 뜻.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 견해를 약속해 주신다면...”
고위계 마법사의 합류였다.
단순한 경지로만 봐도 시온이 데리고 있는 마법사 중에 가장 급이 높았다.
물론 나이와 재능까지 고려해보자면 여전히 에슬린과 카롤리나가 더 가치가 있었지만, 거기엔 시간이라는 요소가 더 들어가야지 만이 만들어지는 것.
지금 당장에는 벤츨의 가치가 제일 높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사실 벤츨이 움드에 오면서 일을 도와줄지언정 시온에게 편을 옮길만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시온이 얻고 있는 민중에 대한 인기.
시온이 오자마자 벌인 놀라운 일들. 급성장한 경지와 마나.
고렘의 활용이라는 관습적인 얽매임을 떠나서 벌인 적극적인 활용과 압도적인 경지.
마지막으로 그 경지의 확장으로 인한 열다섯 기가 넘게 되므로 그 최신 기술의 결과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여기에 다시금 도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까지 있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유혹의 연속이었던 거였다.
“좋다. 둘의 서원은 내일 바로 하지. 둘 다 한 입 가지고 두말할 사람이 아니니, 기본적인 것을 지금부터 논의해 보자.”
오늘 하든 내일 하든 어차피 딴 맘이 생겨 도망갈 가능성도 없었다. 벌이고 있는 일이 워낙 많기에.
ㆍㆍㆍ
코논과 벤츨의 완전한 전향은 영지 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것을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버만과 아만다였다.
시온이 고렘을 한 번에 계약한 것도 너무 놀라서 물 한 번 못 먹고 자괴감까지 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됐다고 두 명의 마탑에 핵심 인재를 전향시켰다.
코논이야 워낙에 마탑과 갈등이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벤츨이 시온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게다가 둘은 곧바로 자신의 제자와 조수 관련된 부하를 솎아내기 시작했다.
세기의 마법사를 따를 생각이 아니라면 그대로 마탑에 돌아가라는 뜻.
시온 백작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건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으면 그거 자체로도 이들을 이끄는 두 사내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깔끔했다.
부모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는 세 명 말고는 단 한 명도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었던 거다.
‘역시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게 중요했군.’
시온은 손실 없이 인프라를 형성시킬 마법사들과 머리 둘 다 놓치지 않았다.
이들의 작업을 가속화 해줄 열일곱대의 고렘까지 밑 작업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었다.
“버만.”
“말씀만 하십시오. 시온 백작님.”
“금을 더 빌려줘야겠다. 가능하겠는가?”
“분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버만은 이 모든 일이 돌아가는 것을 옆에서 보고서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고 시온의 요구에 답했다.
시온은 아직 열다섯 기의 고렘에 대한 기체 값도 치르지 않았다.
여기에 추가로 금액을 내준다는 것은 만약 시온이 이것을 갚지 못한다면 드래곤 상회는 반 쪼가리가 될 것이다.
여러 세대를 거쳐 수도에서 이름을 떨쳐온 드래곤 상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가는 것도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뜻.
그러나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고려하지도 않을 정도로 시온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움드의 가치는 날로 올라가고 있었다.
철근이라는 것을 기둥을 잡고 시멘트를 부어 형태를 만든다는 이 간단한 논리는 현대에서 마천루라는 발전된 도시의 형태를 제공했다.
물론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자면 그것을 완전히 재현할 방법은 시온도 몰랐다.
다만 이곳의 관련 전문가들에게 이러한 아이디어와 여기에 쓸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을 대체할 힘을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벌써 감이 오는 모양이군.’
이제 시온이 할 일이라고는 아직도 정갈하게 연성 된 것이 아닌 마나를 갈무리하는 일과 가끔 이들이 하는 작업을 가끔 구경하는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열일곱 기의 고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마나를 시온이 제공하기에 마나에 대한 것은 게을리 하면 안 됐다.
‘장관이군.’
시온은 현장에서 오는 열기를 느끼고는 감탄했다.
가장 먼저 이 모두를 설득하고 집중한 작업은 현재 어설프게 지어져 있던 영수, 몬스터 거래소였다.
재해 영수의 죽음으로 급증하고 있는 물량을 해소할 수 있을 만한 사냥꾼과 그것을 처리해 돈으로 만들 만한 시설이 지금에서는 최우선 급선무라고 봤다.
그래서 과감하게 열일곱 기의 고렘을 전부 한곳에 집어넣은 상황.
물론 중간에 오르도 라든지, 안달이 난 에슬린 이라든지, 하나씩 맡아서 중간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되는 상황인지라 움드에서는 지금까지 백정처럼 천시하던 고렘계열의 마법을 배우지 못해 안달이 났다.
따로 오르도가 일이 끝나고 수업을 열었는데 전 마법사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것 자체가 진귀할 정도.
거기에 오르도의 단계로는 옷깃 하나 볼 수가 없는 벤츨까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사람은 밤에 쉬는 법이고, 그것은 이곳 중세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규칙이 더 심한 편이었다.
전쟁이 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이 진행되는 일은 드물었다.
시온은 앞에서 끊임없이 무거운 것들을 나르는 고렘들을 봤다. 그중 몇 개는 그 이상의 작업까지 할 수 있다.
사람을 혹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술과 마나를 통해 인력을 극대화한 것.
그리고 결과물이 단기간에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