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전환
언제나 이곳의 전투는 정석적으로 이루어졌다.
공격당하는 측은 몇 개의 부대가 먼저 출발해 약탈을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전술의 근본이 되는 전통적인 강국으로 평가되는 왕국이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시온이 준비한 것은 이러한 공격을 받아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유비드 가문의 서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분위기였으나 시온은 이미 그쪽에 준비를 해두었다.
“흠.”
“오기어 경이 이끄는 부대입니다.”
가장 먼저 들어온 부대의 위치를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허를 찌를 수 있었다.
흩어져서 공격하더라도 그것을 정하기 위해서 한곳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법이다.
“이런...샤를 왕이 제대로 준비한 느낌입니다. 모두 서쪽에 있을 자들인데....”
누구보다 왕국에 대한 정보를 잘 알려줄 사람이 근처에 있었다.
원래 성미셀 기사단의 단장을 하던 라울이었다.
“그런가?”
“제 말을 신중하게 들어주십시오. 시온 백작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서쪽에 있어야 할 저들은 하나하나가 정예들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제각기 흩어지게 해서 하나씩 격파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라울이 비록 성미셀 기사단이었지만 카페 가문의 진정한 전력은 다른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단장 에슬링 하나가 특수임무를 맡아 성미셀기사단을 이끄는 진짜배기였는데 시온에게 머리가 깨졌다.
즉 살을 내주고 뼈를 치자는 얘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합리적이었다.
보통은 유비드 가문이 피해를 봐도 시온 입장에서는 종속 가문의 피해를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들이 파괴를 본격적으로 한다 해도 움드 근처까지 오려는 길은 유혹적인 장소가 많으니 거기부터 털려고 하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나씩 치다 보면 상대가 도망갈 것이 분명하니 나쁘진 않았다.
다만..
‘그럴 필요가 있나?’
이들이 강하다는 건 동시에 이 녀석들을 여기서 제거하면 앞으로의 일이 편해진다는 의미하기도 했다.
이들을 여기서 처리하면 상대의 전력을 대폭 깎을 수 있고 상대의 행동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뒷일을 생각해보면 지금 시도 할만하지.’
“이대로 공격에 들어간다.”
‘역시 용맹하구나.’
라울은 머릿속에서 바로 맴도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샤를이 아니라 시온에게 검을 옮긴 것이 정말 옳은 일이었다고.
시온이 이끄는 이 부대는 정찰 겸 같이 온 별동대 정도였다.
그러니 이대로 공격하는 것은 개개인 하나의 무게가 늘어나는 일이었다.
시온이 이리 결정을 하고 빠르게 명령이 아래로 내려갔다. 모두 바짝 긴장했지만, 신기하게도 이상 증세를 보이는 자는 없었다.
겉으로 보자면 불에 뛰어드는 꼴이었지만 이들 모두가 시온으로부터 많은 믿음과 기운을 받고 있었다.
오히려 시온 앞에서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도 많이 있었다.
그 정도로 시온 하나가 만들어주는 지독한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온이 본격적으로 선봉에서 움직였다.
‘이렇게 바로 실전에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시온은 새로 얻은 드래곤 브레이커를 쥐었다.
마탑 최고의 대장장이인 코논의 역작인 이 메이스는 여러 기능이 들어가 있지만 가장 특이한 기능이라고 한다면 바로 급성장이라는 능력이었다.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거다.
영주가 직접 선봉에서 유격대를 이끌다니, 이 특이한 상황에 감동하는 유격대와 함께 시온이 본격적으로 말을 몰았다.
ㆍㆍㆍ
“저...저게 뭐냐고..”
시온이 적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게 할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
급성장을 먹은 메이스가 무시무시하게 커진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시온의 근력은 이것을 지탱할 수 있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세 명의 기사가 뭉텅이로 날아갔다.
단순한 수준이라면 좋겠지만, 몸이 박살 나거나 아니면 즉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기어다! 시온 백작 내 용맹을!!”
이미 라울에게 들었기 때문에 이 자가 누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자들의 최고의 실력자.
시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해 메이스를 내리찍었다.
콰득!!
시온이 그를 향해 내리찍었고 그가 얼떨결에 검을 갖다 댔지만 그대로 으깨졌다.
이 같은 광경은 라울이 전선에서 할 말을 잃고 쳐다보게 할 정도였다.
오기어가 서부 정복전에서 괴물 같은 공을 세웠던 것을 라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시온의 공격을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다니... 놀라운 것은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시온은 공격은 그 거대한 것을 들고서도 물 흐르듯한 공세를 보여줬다.
오기어가 죽을 것 같자 다른 기사들이 뛰어나왔다.
전부 라울보다 강력한 기사들로 로빈스, 불크, 데미트리 하나같이 기사로서 일가를 이루기에 충분한 자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로 일대일이 아니면 공격하지 않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그런 문화가 깊이 뿌리 내려져 있지만 카페 왕조는 그런 면이 다른 곳보다 더 심했다.
결투 위주의 기사단.
그런데 이들이 순간 그것을 망각하고 한 명의 사내에게 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칠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비겁하게 한 명을 여러 명이 공격해 우세를 잡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온의 공격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치는데 전력을 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도달했다. 시온의 공격은 불크의 머리에 꽂혔다.
콰드드득!
사람에게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이들도 처음 알았고 시온도 처음 알았다.
단순히 머리를 깨부순 정도가 아니라 기사 하나를 으깨 버렸다.
‘빨리 나머지를 처리해야겠군.’
시온은 이 급성장 마법이 마나를 너무 잡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공격은 여전히 성공적이었다.
불크가 즉사하자 다른 자들이라고 버티지를 못했다.
시온이 공격이라도 느리면 어떻게든 도망이라도 칠 것인데 아군 기사를 버리지 않으면 도망도 치지 못하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힘이 겨워서 생존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도망칠 궁리만 하게 되는데 동료를 또 버릴 수가 없어서 고민했다.
그 망설임 덕분에 본격적으로 하나씩 끝이 났다.
다음 차례는 데미트리였고 그다음은 로빈스, 그나마 로빈스는 살짝 빗겨 맞아서 공처럼 튀어 나가 바닥을 미친 듯이 퉁겨졌다.
시온은 한 사내의 앞으로 갔다. 오기어는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서 조금씩 뒤로 움직였다.
“라울, 이 녀석을 포획해라.”
라울이 오기어를 사로잡고 시온은 드래곤 브레이커의 크기를 줄였다. 이어서 미친 듯이 적을 향해 공격했다.
예전 같으면 단숨에 지휘부를 파괴하고 좀 숨을 돌렸겠지만 지금은 마나가 상당히 늘어난 터라 아직 끄떡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시온은 추격까지 해서 상당한 수를 줄이고 깨달았다.
‘거의 전멸시켰군.’
이미 사방은 어두웠고 마나도 비어 있었다. 마지막 적은 나무에 찌그러져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행동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여지없이 사냥꾼의 추격 기술까지 발휘된 것.
곧 난리가 났다.
“시온 백작님!!”
“어서 찾아라!!”
시온의 행동이 너무나 빨라 수행하는 기사들도 그것을 놓칠 정도의 속도였던 것.
“난 괜찮다.”
“돌아가시죠. 이곳은 위험합니다.”
말하는 자도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여기가 위험하다니, 위험한 것은 이곳에 있는 시온이었다.
시온은 전투 현장으로 돌아와서 포로로 잡은 자들을 이동시키기 좋게 따로 태우고, 전리품을 챙기도록 명령했다.
‘전쟁엔 철이 부족한 법이지.’
게다가 이 정예 기사들의 물건은 그거 자체로 코논에게 맡기면 아군의 기사에게 재무장을 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질이 좋았다.
대단한 기사로 이름을 날리던 오기어는 기절한 것으로 보였지만...
‘기절한 척을 하고 있군.’
시온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마치 기절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기어는 몸값보다는 군사 정보를 얻어내고 상대를 위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일이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런가, 돌아간다!”
임시로 펼쳐놓은 진지로 돌아가기로 하고 시온은 움직였다.
라울이 재빠르게 시온에게 붙어서 조금 전의 피해 상황과 방금 몇 개의 기사단을 처리했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그 보고를 듣던 시온이 황당해서 말했다.
“잠깐만. 네 말은 지금 내가 카페 가문의 기사단을 거의 다 처리했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카발 기사단, 스피델 기사단, 티아고 기사단. 이 세 개의 기사단의 반절을 전멸시킨 데다가.
이 셋의 총 지휘자인 오기어를 지키기 위해 뛰어든 각 기사단의 핵심 인물을 죄다 사망시키거나 전투불능으로 만든 거였다.
“..........”
‘끝난 거 아니야?’
물론 이런 비슷한 것을 노리고 여기서 전멸 비슷한 것을 만들어 최대한 이득을 보려고 한 것은 맞았지만.
이건 그 정도를 넘어선 성과였다. 적을 위축시킨 정도가 아니라 적의 양팔을 박살 낸 거나 다름이 없었다.
주력 기사단을 순간적으로 다 격파를 했는데 그러면 대체 무엇으로 본대를 공격할 것인가.
아무래도 기본적인 모루와 망치라는 전술이 이곳 중세의 기본 전투 형태였다.
나머지는 죄다 변형이기에 어쨌든 이 두 형태를 가장 능숙하게 쓴 쪽이 이기는 법이었다.
그 망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 기사단인데 이 기사단이 이렇게 끝이 나서야.
망치가 이젠 없는 것이다.
‘어떨결에 이들을 싹 쓸어먹은 게 되긴 했군.’
왕국의 병력은 당연히 아무리 적게 포진이 된다고 해도 시온의 병력을 압도했다.
그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시온이 이렇게 힘을 써서 기사단을 하나씩 끝내려고 해도 추격전이라는 구도로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때가 만약 정면 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시온이 이긴다고 해도 중심부가 파괴되어 더욱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전장이라는 곳의 변수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아니 애초에 문제가 있는 판단이 아닌가? 왜 정예 기사단들을 약탈 선봉 부대로 짠 것이지?’
의문이 들 수밖엔 없었다.
잘 된 일이지만 상대의 이렇게 되고 나니 상대가 상당한 악수를 둔 게 되니.
이렇게 변칙적으로 처음부터 강하게 나온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는 것을 시온은 앞으로도 모를 일이었다.
샤를의 참모이자 수석 마법사인 마리온이 시온을 경계해서 이렇게 수를 짠 거였다.
선전포고 자체를 유비드 가문의 해방이었으니 유비드 가문의 식량 지대가 초토화되진 않겠다라는, 그런 심리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하여튼 마리온이 봤던 큰 그림은 시온의 능력이 대단해서 몇 달간 이어질 장기전으로 본 거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 파괴 하며 전진하는 쪽을 선택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짰던 것.
그런데 그것 때문에,
시온이 이들이 헤어지기 합류 전을 미리 한참 전부터 준비해둔 정찰에 대한 정보 때문에 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라울. 네가 봤을 땐 이미 끝난 것 같지 않나?”
“.........!!!!”
얼굴이 벌게진 라울은 시온 백작에게 다시는 이러한 경고를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다.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오히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결과가 되어버릴 줄은.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은 아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시온의 성격상 이것을 그대로 놔줄 일은 없었고 되려 역공에 들어가 얼마만큼 가져갈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원래라고 한다면 이 약탈 전을 조금씩 막아가면서 유비드 지역을 내주고 그들의 배신까지 일어난 상황에서 움드쪽에서 처절한 배수진이 펼쳐졌어야 했는데...
공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