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전환(2)
시작부터 이런 강렬한 전략을 쓰기로 한 것은 어쨌든 시온이라는 강력한 존재를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한껏 차려입은 샤를은 대마법사인 마리온과 신중하게 전략을 보고 있었다.
밖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붉은 머리의 마리온은 카페 왕조에서 키워내고 있던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대마법사의 마나는 공식적으로는 사다리와 재능에 관련된 것이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거대한 마나는 반드시 이어받아야 했다.
왕조나 제후들은 집중적으로 키우는 마법사 가문이 하나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이 자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쌓여 아래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세대를 거듭해서 내려가 이렇게 점점 더 높은 단계의 마법사를 낮은 나이에 만들게 된 거였다.
마리온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재능을 가져 적통을 제치고 여자임에도 그 마나를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존재였다.
여기엔 샤를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을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가 내 성격을 주체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샤를이 마리온을 향해 말했다.
마리온은 몇 번이고 시온의 존재에 대해 샤를에게 직접 적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이 작전에 대해서 좀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시작된 전쟁 준비에 어느덧 서로의 결렬.
의사가 교환된 시점 전쟁은 느닷없이 시작해 버렸다.
감정적인 선택을 했기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이 든 시점에서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싹을 밟는 것이 맞았다.
결정되자마자 샤를은 막대한 돈과 정보원을 풀어 시온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소문으로만 떠다니는 그런 미증유의 것들을 찾아서 수집한 것.
그것들이 차곡차곡 모이고 윤곽이 그어지자 샤를의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눈으로 보기 전엔 믿지 못하겠는데.’
서부 전선을 누구보다 수행했고 거센 반란과 점령전과 혹독한 통치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해 서부의 망치라는 칭호까지 가지고 있던 그는 괜히 카페 왕조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군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을 빼고 나면 능력적으로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이뤘다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의 업적이 있었다.
그렇게 전략, 전술, 자신조차도 훈련된 기사인 샤를이 봤을 때 시온은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높았다.
‘황제가 시온을 키우기로 작정을 했다고 해도 이 결과들은...’
아무리 음흉한 조작이 있었다 해도 시온 자체가 자신과 비슷한 급의 전쟁에 대한 이해도와 기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유비드 가문과 벌인 유비드 전쟁은 귀신 같은 유격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격전 하나만큼은 제국에서 제일 잘하는 자다. 그리고 그것을 잘 파악한 마리온 훌륭하다.”
‘반은 광기, 반은 성군과 명군. 신께선 가끔은 이상한 짓을 하시지.’
마리온은 전쟁이 다가오자 광증에서 벗어난 샤를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전이 뒤집혀있을 때 샤를의 전적은 전승.
솔직히 말하면 마리온 자신도 보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감사드립니다. 폐하. 그리고 제 전략에 동의를 해주셔서 말입니다.”
“유격전에 강한 자인데 병력이 유리한 우리가 처음부터 어설프게 했다간 끝도 없이 길어지겠지. 모든 정예 기사단을 넣은 자네의 판단은 다시금 날 지탱하는군.”
거대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에게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
그리고 마리온은 많은 기사단이 가져올 주요 승전보를 염두에 두며 다음 수를 예측하기 위해 샤를과 토의에 토의를 거치고 있었다.
“마법사라는 소문이 있던데?”
“알긴.. 아는 것 같습니다. 것도 상당한 수준으로요.”
“세기의 마법사라는 얘기는?”
“세기의 마법사라. 그에겐 너무나 과분한 칭호지요. 대마법사도 그런 칭호를 받기 위해선 그만한 대업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인류와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왕이시여.”
“인류라... 거창하군. 그렇다는 것은 이것 역시 황제가 마탑을 로비해서 만든 이미지라는 거겠군.”
샤를은 언젠가 몇 번 봤었던 제국의 황제를 떠올렸다.
그가 블랙프린스로 이름을 날릴 때 그는 고작해야 미성년자였고 그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를 철저하게 롤모델을 잡고 성장했다. 존경과 동시에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적인 존재.
그가 아니었다면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제국을 노렸을 거였다.
그리고 다급한 소리.
누군가가 빠르게 들어왔다. 샤를과 마리온의 눈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런데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티아고 기사단의 단원이었고 물론 지금 논의하고 있는 작전을 수행해야 할 남자였다.
“전..전하. 대..대패....입니다. 시온 니벨룽은... 괴물...”
그리고 그가 피를 토하고는 쓰러졌다.
“사람을 불러!! 에레제 어디 있어?”
마리온이 다급하게 치료 마법사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방금 한 말의 의미심장함을 놓칠 수 없었다.
“대..패? 괴물이라고? 어떻게 된 것이지?”
샤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뒤이어 근위대장이 긴급하게 뛰어와서 말했다.
“맙소사. 치료부터 해야 한다니까. 결국, 쓰러졌군. 전하, 제가 들은 바를 전해 드리자면....”
덩치가 좋은 근위대장이 심호흡할 정도였다.
그러나 반드시 전해야만 할 일.
“카발 기사단, 티아고 기사단, 스피델 기사단 모두 격파당했습니다. 총 단장 오기어는 생포 당한 것 같고. 각 단장과 부 단장인 불크, 데미트리는 사망. 로빈슨은 행방불명. 그 외에...”
“?????????”
조금 전까지 이번 일의 좋은 출발을 의심하고 있지 않았는데 끊임없는 사망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카발 기사단은 궤멸 수준이었고, 모든 포획된 오기어를 제외한 모든 단장과 부단장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었다.
나머지 기사단인 티아고 기사단, 스피델 기사단도 반 수가 죽었다. 살아남은 자들도 부상이 심하거나 장비를 잃어버린 자들도 태반이었다.
그렇게 훈련이 된 기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칠 정도.
그 정도의 일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지점에 대해선 알고 있다는 건..... 아니 그럴 리가. 내가 데리고 있는 자에서 배신자가 있었을 리가 없어.”
마리온이 이를 달달 떨었다.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설마 했던 그 시온의 대한 이명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점을 들켰다는 것은 그녀가 생각했던 모든 수를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간파당했다는 뜻이다.
그녀가 특히 신뢰하는 자로 정보를 모았는데 이들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할아버지가 고아에서부터 키웠던 그런 정보원들이었다.
죽으라고 한다면 그냥 죽을 정도의 그런 자들.
그들의 배신을 의심하는 것보다 자신의 모든 전략이 간파당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지?’
“설마... 일부로 물건을 중간에서 사재고, 일부로 성미셀기사단을 그런 식으로 빼앗은 것인가??”
샤를이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샤를도 그녀가 데리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목숨을 아끼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서부 전선에서 그 능력을 보여준 정보집단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보입니다.... 전하.”
그녀도 근위대장도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어디까지 수 싸움이 들어갔는지, 얼마만큼 수를 빼앗겨 불리해졌는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
동전이 뒤집혔을 때의 샤를은 괜히 전적이 무패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머리는 기적같이 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음 전략과 전술을 짜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니 나는 기사단을 모두 잃었다는 얘기가 되는군.”
“죄송합니다. 전하. 제 고집 때문에...”
“아니다. 기사단을 잃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욱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휘말렸을 거야. 유비드 전쟁이 다시금 재현될 뻔했었던 것이지.”
샤를이 침착하게 한 마디씩 돼내었다. 그는 바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국가 긴급 소집을 한다.”
“....!”
“전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켜라.”
“그렇게 된다면 서쪽 점령지에서 바로 반란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건 다시 하면 된다.”
점령지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병력을 모으겠다는 생각.
아무리 뛰어난 자라고 해도 결국 숫자는 극복하지 못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전술을 선택한 거였다.
ㆍㆍㆍ
‘이대로 협정을 보내도 받아줄 것 같기는 한데.’
티아고 기사단의 단장인 오기어는 생각보다 자기 목숨을 챙기는 데 급급한 자였다.
시온은 그에게서 자세한 왕국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거짓이 섞였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규모.
그만큼 백국 수준인 시온이 정면 전을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체격이었다.
기사단을 제거했다고는 하나 재정의 상태도 나쁘지 않아 곧바로 이곳저곳에서 용병으로 구성된 기사단을 다시 꾸릴 것 같았다.
다만 정예로 구성된 여러 부대를 박살 낸 것은 확실했다.
용병단 정도로는 절대로 채울 수가 없었다.
“어쩐다.”
시온이 데리고 있는 자들은 여러 개의 의견으로 나뉘어 있었다. 에슬린, 어레이, 에릭은 공격을 하자는 쪽이었고 코르도바는 반대였다.
결국엔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오기어의 말에 과장이 있다고 해도 누가 봐도 왕국의 전력은 풍부하다.’
심지어 그것을 다스리는 샤를이라는 자도, 시온이 봤을 땐 지금까지 붙어 봤던 사람 중 가장 유능한 것 같았다.
별칭이 우연히 붙는 경우는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승리왕이라는 것과 서부의 망치는 그만큼 그가 전쟁에 능하다는 것을 뜻했다.
아, 이거 진짜 밀어붙여야 하나.
이렇게 고민이 되다가 이도 저도 논쟁에 끼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있는 카롤리나가 보였다.
“카롤리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가끔 카롤리나의 예지는 쓸만한 편이었다. 물론 근거는 없었다. 시온이 봤을 때 경험적으로 그럴 것 같다는 뜻.
시온은 속으로 그냥 카롤리나가 고르는 쪽으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네??????”
“네 의견은 어떠냐고 물어보는 거다.”
순간 이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수줍음이 많은 그녀가 의사를 제대로 피력할 수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
어쨌든 시온이 답을 기다리자 그녀로서는 무조건 답을 내줘야 했다.
그 정도의 사회적 압박이 있기 때문에...
“공...공격!”
“?????”
당연히 수비적으로 얘기할 것 같은 그녀의 입에서 뜻밖에 공격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생각보다 공격적인 욕구가 있는 여자인가?’
시온은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거에 신기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하지. 모두 경계선을 넘어 샤를의 본대에 회전을 건다.”
일단은 별생각 없이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미 카발, 스피델, 티아고 기사단을 한 번에 궤멸시켰을 때,
이미 얻은 게 많았다.
뭐가 됐든 이것을 기반으로 굴리면 됐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결정을 통해 시온은 또다시 샤를과 마리온의 머리 위에 올라서게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어차피 샤를은 시온의 협정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끝을 볼 작정.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과 가장 얻고 싶어하는 것은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빼 온다 해도 명령이 전달되고 그것이 이행되어 아주 작은 조직까지 전달되기에는 시간이란 것이 걸릴 수밖엔 없었다.
각종 이해관계까지 있으니 단숨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샤를이 강력한 인물이라고 해도 여기는 중세였다.
즉 샤를의 봉신들, 영주들은 이 일을 통해 따로 이득을 보려고 하려는 행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다.
반면 시온의 병력은 시온이라는 인물 하나에 똘똘 뭉쳐 있었다. 시온이 아니었다면 이들 중 누구도 이곳에 있지 않았을 정도.
그 정도로 시온을 따라서 같이 출세한 자도 많이 있었고, 그냥 배우고 싶어서 따라온 자들도 많았고 가지각색이었다.
밑에서부터 하나라고 봐도 될 정도로 시온의 말 한마디에 아무런 반발 없이 진행될 정도였다.
이 점이 여기서 속도의 차이를 다시금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결정을 내리고 시온은 바로 선봉 부대를 이끌고 먼저 국경을 넘을 정도.
다른 자들이 여기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니, 기이한 일이었다.